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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해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부활절 계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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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4. 13.

 

절기와 칼렌다 이야기

- 부활절 계산법 - 

 

글 : 오소운 목사

 

 

 

 



1. 절기의 유래

질서의 하나님은 우주를 지배하는 율동을 정하셨다. 낮과 밤의 교체(창1:5), 천체의 운행(창 1:14), 계절의 순환(창8:22), 안식일의 제정(창2:2, 출16:23) 등이다. 세계 모든 민족이 이들 천체의 순환현상을 시간의 단위의 기초로 하고 있다. 구약성서의 유대력(曆)은 태양력과 태음력의 양쪽의 영향을 받았다. 1년을 12개월로 나눈 것은 태양 순환기를 따랐고, 달(month, 月)의 구분은 달의 순환기를 따른 것이다. 공동번역성경 집회서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 달도 언제나 제 궤도에 충실하다. 달은 세월의 시작이며, 시절을 구분해 주는 영원한 표지이다. 달은 축일을 알려 주고, 한번 찼다가는 다시 기우는 천체이다. 매월의 이름도 여기에서 나왔다. 달은 차 갈 때에 신기하게 커 가며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천사군의 기수요 하늘에서는 찬란한 빛을 낸다…. 그것들은 거룩하신 분의 말씀대로 대령하고 주의를 게을리 하여 흐트러지는 법이 없다. (집회 43:6-10).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안식일과 여러 절기를 주셨다. 이방인들도 자기네 신들을 위한 여러 절기를 만들어 지켰는데, 이 절기에 매여 그리스도의 복음이 변질되는 일이 생기자, 바울은 이렇게 경고의 편지를 썼다.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갈 4:10-11).

 

 

2. 칼렌다의 유래

영어「칼렌다」'calendar' 란 말은, 라틴어「칼렌다리움」'calendarium' 에서 온 말이다. 로마에서는 [채무장부]를 이렇게 불렀다. 당시 이자는 매월 첫날인 칼렌즈(calends)에 갚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매월 첫날을「칼렌즈」calends 라고 부른 것은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 매월 초하루가 되면 전문 통보자가 채무자들을 불러서 이를 알려주었기 때문에 ‘불려간다’ 라는 뜻의 calends 가 매월 첫날 이름이 되었던 것이다.

고대 칼렌다 곧 달력이 가장 발달한 나라는 이집트였다.

 

가. 이집트력(Egyptian calendar)

고대 이집트는 현대인도 놀랄만한 수학과 천문학의 나라였다. 그 증거가 피라미드의 연구로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런 수학과 천문학의 지식을 가진 이집트인은, 1년 주기로 정확하게 반복되는 나일강의 범람을 관찰해 달력을 만들었다.

 

주:【피라미드】기자(Giza)의 대(大)피라미드는 이집트 제4왕조(주전 2575경-2465경)의 2대 왕 쿠푸(Khufu)가 자기 무덤으로 세운 것이다. 밑변의 각 변은 동서남북 네 방위를 정확히 가리키고 있다. 축조당시의 길이 단위는 큐빗(cubit)인데 1큐빗은 지구 반지름의 1천만분의 1인 25.3인치와 같다. 이를 다시 25로 나눈 것을 [피라미드 인치]라 하는데, 이를 5억 배 곱하면 지구의 지름이 된다. 2.5톤짜리 돌을 270만개나 쌓아 203 계단으로 만든 이 피라미드는, 밑변의 길이가 230.7m, 높이는 146.7m이다. 밑변을 피라미드 인치로 환산하면 365.242인치로서, 태양력 1년의 날수와 같다. 네 변의 길이를 전부 다 더한 다음에 이를 피라미드 인치로 곱하면 100년 즉 1세기의 날수가 된다. 현재 피라미드는 꼭대기 일부가 허물어져 지금은 높이가 143m이지만, 원 높이인 146.7m를 10억 배 곱하면 지구와 태양과의 거리인 1억 4694만 4천km가 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피라미드 밑변 둘레를 높이의 2배로 나누면 3.14로 원주율 파이(π) 값이 된다. [왕의 방]의 가로와 세로를 비롯한 여러 가지 건축 구성 비율이 [1.618 : 1], 즉 황금비로 이뤄졌다. 황금비는 기원전 4세기를 전후한 고대 그리스에서 처음 발견됐다고 알려졌는데, 이보다 2천 여년 전에 건축된 피라미드에 나타난 것이다. 모세는 이런 애굽에서 최고 학자들에게서 왕자교육을 받은바 있다.

 

이집트력에는 시리우스(Sirius, 眼視等級이 -1.5로 밤하늘에서 가장 밝은 별 ․ 필자 주) 별의 주기적인 출현이 1년의 시작을 알리는 지표가 됐다. 태양의 위치가 시리우스의 방향과 일치하면, 해뜨기 직전에 시리우스가 동쪽하늘에 보이게 된다. 나일강은 시리우스의 출현과 함께 범람하게 되는데, 이집트인은 이 때를 1년의 시작으로 삼았던 것이다. 범람이 반복되는 주기는 정확히 1태양년의 주기와 일치한다. 이렇게 한 해를 365일로 역법을 공포한 것은 주전 4241년이었다. 1년은 30일로 된 12개월에 5일의 신들을 위한 축제로 지냈는데, 이 5일은 어느 월에도 속하지 않고 1년의 마지막에 놓여졌다. 각 월은 주전 6세기에 여러 축제의 이름을 따서 붙이기까지는 숫자를 붙여 사용했다.

 

나. 로마력(Roman calendar)

초기 로마력은, 로마를 세운 로물루스(Romulus) 왕이 주전 738년에 제정했다는 전설이 있다. 모두 10개월인데, 5-10월의 이름은 몇째 달의 뜻이다. 그 이름은 다음과 같다.

 

1월=Martius,

2월=Aprilis,

3월=Maius,

4월=Junius,

5월=Quintilis,

6월=Sextilis,

7월=September,

8월=October,

9월=November,

10월=December.

 

한 해는 오늘날의 3월로 시작되며, 6개월은 30일, 4개월은 31일 합 열 달로 이루어져 있고 304일이었다. 1년은 오늘날의 12월인 데켐베르(December)로 끝나는데, 그 뒤는 계산되지 않은 겨울 공백기간에 해당하는 어떤 것이 이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주전 7세기 로마의 제2대 왕 폼필리우스(Numa Pompilius, 주전 715-673)는, 1월 Januarius와 2월 Februarius를 추가하여 1년은 50일이 늘어난 354일이 되었다. 추가된 달의 날수를 채우기 위해, 30일로 된 달에서 하루씩 빼어 1월과 2월에 배정하여 28일로 만들었다. 그러나 로마인들은 짝수를 두려워하는 미신이 있었기 때문에 폼필리우스는 1월에 하루를 더하여 29일로 하고, 2월은 [지옥의 신에게 맡겨진 달]이었으므로 28일로 남겨 두었다. 이리하여 12개월의 1년 355일이 되었다. 주전 7세기 후반에 이르러 로마 공화력이 생겼는데, 이것도 355일을 1년으로 했다. 즉 3, 5, 7, 10월은 각각 31일, 2월은 28일 그리고 나머지 달은 29일이 되었다. 이 역법은 태음년이어서 태양년보다 10.25일이 짧았다.

 

다. 율리우스력(Julian calendar)

주전 45년, 율리우스(Julius Caesar, 영어로는 줄리어스 시저, 주전 100-44)는 알렉산드리아에서 겨울을 나면서 클레오파트라와 사랑에 빠졌다. 이 때 여왕의 권유로 천문학자인 소시게네스(Sosigenes)의 조언을 받아 태양력을 만들어 한 해의 길이를 365.25일로 선포했다. 각 달은 오늘과 같은 날수이고, 4년마다 윤년을 둔다. 주전 44년 3월 율리우스가 죽자, 그를 기념하여 7월(Quintilis)을 Julius로 바꾸었다. 주전 8년 율리우스의 뒤를 이은 가이사 아구스도(Augustus)는 8월(Sextilis)을 자기의 이름인 Augustus로 바꾸었다.

 

라. ▶그레고리안력(Gregorian calendar)

그런데 소시게네스가 1년의 길이를 11분 14초 길게 잡았기 때문에 날수가 자꾸만 늦어져 갔다. 이렇게 늦어진 날수가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1502-1585) 시대에 이르러 10일이나 되었다. 교황은 그 당시 3월 11일이었던 춘분을 325년 니케아공의회 시대의 춘분 날짜인 3월 21일로 개정했다. 이 개정으로 1582년 10월 4일을 기점으로 달력의 날짜가 열흘씩 앞당겨져 10월 4일 다음 날은 10월 15일이 되었다. 1582년 교황은 치윤법(置閏法)도 바꾸었다. 즉, 4로 나누어 떨어지는 해는 윤년으로 하되 100으로는 나누어지지만, 400으로 나누어지지 않는 해는 평년으로 두기로 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각 달의 이름은 주로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이름을 따서 지었는데 다음과 같다.

(1) January-야누아리우스(Januarius/Janus)의 달. 야누스(Janus)는 앞 뒤로 얼굴이 있는 신(god of doors, beginnings, sunset and sunrise)으로서 지는 해를 돌아보고, 뜨는 해를 맞이한다는 신이다.

(2) February-페브라리우스(Februarius)의 달. 뜻은 정결의식(purification). 로마인은 2월 15일에 [용서의 축제]를 벌였기 때문에 미리 정결의식을 행하였다.

(3) March-마르티우스(Martius)의 달. 마르티우스는 로마의 전쟁 신.

(4) April-아프릴리스(Aprilis/Venus)의 달. 아프릴리스는 그리스의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의 라틴식 이름.

(5) May-마이우스(Maia)의 달. 마이우스는 성경의 나오는 웅변의 신 허메(Hermes, 행14:12, 롬16:14)의 어머니.

(6) June-주피터(Jupiter)의 아내 유노(Juno)의 달.

(7) July-본래 1년이 10개월일 때의 5월(Quintilis). 율리우스(Julius Caesar)가 태어난 달..

 

마. 율리우스력과 유대력

그레고리오력의 채택 동기는 역사적으로 로마 가톨릭 내의 사소한 의견 차이에 근거한다. 주후 4세기 초에 에페소의 주교인 폴리크라테스는 가톨릭교회의 축제일인 부활절의 날짜를 로마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날짜와 달리 정함으로써 의견 충돌의 불씨를 당겼다.

 

폴리크라테스는 물론 부활절의 날짜를 임의로 정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요한복음의 기록을 바탕으로 하였던 것이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짜는 태음력인 유대력에 따르면 니산월(Nissan: 봄이 시작되는 달)의 14일 혹은 15일로서 당시에 로마 가톨릭에서 쓰이던 태양력인 율리우스력과 동일한 날짜가 아니었던 것이다.

 

 

325년 로마 제황 콘스탄티누스 1세에 의해 소집된 니케아 총회의에서 이와 같은 사소한 종교상의 의견 충돌은 완화한다는 의미에서 부활절을 모든 기독교인 사이에 동일한 날에 지키기 위한 방안으로 낮과 밤의 길이가 같게 되는 춘분일을 율리우스력에 따라 3월 21일로 확정하였다. 회의에 참가한 주교들은 또한 이에 따른 부활절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에 동의하였다.

 

개정 내용은 첫째로 1582년 10월 4일 다음에 곧바로 1582년 10월 15일이 따르도록 하여 위에서 설명한 10일의 편차를 제거하였으며, 둘째로 율리우스력보다 편차가 적게 나는 윤력의 계산 방법을 도입하였다. 그레고리오력의 윤력 계산 방법에 따르면, 400년마다 3일의 윤일을 공제시키며, 이는 오직 해당 해가 400으로 나누어 떨어지지 않을 경우에 한한다. 예컨대 2000년은 윤년이지만, 1700년, 1800년, 1900년은 윤년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레고리오력은 물론 천문학적 달력의 근사치에 불과하며, 3333년 마다 하루가 길어지는 편차를 갖고 있다.

 

바. 나중에 개정한 나라들

오늘날 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가 그레고리오력을 공식적으로 채택하고 있지만, 위에서 짧게 살펴본 바와 같이 종교적 이유에서 동유럽 국가는 20세기 초엽까지 유대력 혹은 율리우스력을 고수하였다. 한 예로서 안톤 체홉이 독일의 바덴바일러에서 사망하였을 때, 그곳 경찰에 의해 기록된 사망 날자는 그레고리력에 따른 1904년 7월 15일이지만, 당시의 러시아에서 쓰이던 율리우스력으로는 7월 2일이며 이 사망일을 오늘날까지 체홉 연구학회에서는 고수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895년 을미개혁으로 1896년 1월 1일부터 그레고리력을 사용하고 있다.

 

 

  부활절 계산법

 

부활절은 매년 3월 22일부터 4월 25일 사이에 온다.

즉 춘분 다음 첫 만월 후 첫째주일에 해당된다.

 

이렇게 지키는 이유는 그 유례가 있다. 초대교회 때 3세기 동안에는 해마다 부활절을 지켜야 할 일자에 대하여 계속 날카로운 의견의 차이가 있었다.

동방교회에서는 유대인들이 유월절 날을 계산하는 방법에 따라 부활절을 음력으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서방교회(로마교구를 중심으로 한 서쪽에 위치한 교회들)에서는 부활절이 언제나 주일(일요일) 부활일에 지켜져야 하며 십자가 처형은 언제나 금요일에 기념되어야 한다고 여겨졌다.

 

이것은 서방 크리스천들에게는 주중의 날이 중요하였고 동방교회(알렉산드리아, 예루살렘, 안디옥, 콘스탄틴 교구를 포함한 로마 동쪽에 위치한 교회들)의 크리스천에게는 달(月)의 날이 중요하였다.

 

이런 의견의 해결은 니케야 총회(325년)에서 결정했는데 결국 달과 주중의 날 둘 다 인정하여 부활절은 춘분 다음 첫 만월 후 첫째주일이 되도록 하였다.

 

그런데 이런 유동적인 부활절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교회만이 아니라 부활절에 휴가를 하는 학교와 대학들이 교육계획을 종교적인 휴일과 맞추기 위하여 어려움을 보기 때문에 관심이 많다.

 

이뿐 아니라 의복상으로 이른 부활절과 늦은 부활절 때문에 행사 의복의 수요공급이 해마다 달리되는 경우가 있다는 등으로 근년에 와서는 부활절이 고정된 주일이 되도록 고정된 교회력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정장복 교수님의 예배학 개론에는

'두 월력은 보통 10일에서 심한 경우 한 달의 간격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2001년에는 서로 다른 날짜의 계산법에도 불구하고 4월 15일에 합치되는 현상을 보이게 된다. 이러한 현상을 앞에 두고 세계교회협의회(WCC)와 중동교회 협의회(MECC)는 1996년 시리아 알렙포에서 회의를 갖고 역사적인 결정을 내린바 있다.

 

이들은 "예수님의 부활의 날짜를 가장 정확한 천문학적 지식을 이용해 산출한 뒤 21세기가 시작되는 2001년을 기점으로 부활절을 함께 지내자"는 합의를 한 바 있다. 이러한 [알렙포 제안]은 세계의 많은 교회로부터 환영을 받는 시점에 이르렀다.

 

세계성공회 주교회의를 비롯하여 루터교 세계연맹(LWF)나 로마교황청도 "이러한 시도에 근본적으로 동의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심지어 시리아 정교회까지 적극적인 호응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다만 정교회의 최대교단인 러시아 정교회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