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꽁이의 찬양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해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누가 우리의 이웃이니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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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회 참고자료

2012. 6. 19.

 

▶속회참고자료

 

누가 우리의 이웃이니이까? 


(2012.6.15)

 

 

 

오늘 속회 주제는「이웃사랑」이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 비유를 통해 이웃사랑의 실체를 배우는 과목이다. “누가 내 이웃인가?” 이 문제는 아주 중요한 문제다. 


1950년 6월 25일 대한민국은 날강도 김일성의 공격으로 초토화되고 망하기 직전이었다. 우리의 이웃은 전 세계에서 몰려와 사마리아 사람 같이 우리를 구해 주었다. 


그런데 이런 나라를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며 원수 김일성 도당을 ‘하나님’으로 믿는 김일성교 광신도들이 이 땅위에 10년 종북정권 아래 독버섯처럼 자라나 국회까지 오염시키고 있다. 


한때 아웃을 잘못 선택 종북주의자인 문익환의 추종자였던 하태경이 제정신을 차리고 회개하여 크게 활동하자 막말녀 임수경이 ‘내 손으로 죽여 버리겠다’ 벼르고 있다. 그러나 세계 우방 특히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준 미국은 우리의 원수 강도들을 굴복시키려고 오늘도 목숨을 걸고 훈령중이다. 진정 고마운 일이다. 이웃은 누구인가? (오소운)

 

1. 세계 언론이 주목한 북한 뉴스 생산자 하태경


● 수용소 같은 북한에서 내부 소식 누설은 혁명 같은 일 <뉴욕타임스>

● 북한 고위급과 연결되는 소식통이 가장 큰 자산

● 민족해방(NL)진영에서 문익환 목사 돕다 보수 우파로 돌아선 계기는?


다세대주택(서울 관악구 신림본동) 2층에서 직원 20명이 인터넷뉴스, 라디오방송을 제작한다.

 

‘뉴욕타임스’(NYT) 기자가 얼마 전 이 사무실을 찾아 

“작은 통신사가 메이저 언론도 못하는 특종을 생산하는 비결이 뭐냐”

고 물었다. 


1월24일자 NYT엔 ‘한국의 발빠른 통신사가 북한에서 은밀히 정보 수집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하태경(43) 열린북한방송 대표 사진이 실린 기사 요지는 이렇다. 


“탈북자, 인권운동가로 이뤄진 열린북한방송, 데일리NK가 휴대전화를 이용해 북한 언론 통제를 허물고 있다. 수용소 같은 북한에서 내부 소식 누설은 혁명 같은 일이다. 한국 주류 언론도 이들의 보도를 인용한다.”

 

BBC 블룸버그도 신림본동 다세대주택을 찾아와 비슷한 내용을 취재했다. 

아사히신문 월스트리트저널 CNN에 적을 둔 기자들도 수시로 하 대표를 찾는다.

 

가. 북한 거주 소식통


1월 7일 오후 2시 30분. 하 대표는 북한 거주 소식통과 전화로 대화했다. 

소식통이 그에게 말했다.

 

“5시에 김정은 탄생 기념 중앙보고대회에 가라고 해서 지금 준비 중이다.” 

열린북한방송은 북한 거주 소식통 언급을 기사로 보도했다. 


“김정은 탄생 기념 중앙보고대회가 북한에서 열렸다”

고 조선일보가 받아썼다. 열린북한방송 같은 북한 전문 매체가 등장하면서 국가정보원 통일부에 의존하던 북한 뉴스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북한 내 정보원을 확보한 인터넷 매체가 콘텐츠 생산자로 떠오른 것. 서울에서 북한으로 전화를 걸어 정보를 획득한다. 중국 휴대전화가 북한 국경지역에서 터진다.

 

북한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하는 매체는 열린북한방송ㆍ데일리NKㆍ좋은벗들ㆍ열린북한통신ㆍNK지식인연대ㆍ자유북한방송이 있다.

 

지난해 11월30일 북한이 단행한 화폐개혁은 데일리NK가 보도하면서 한국에 알려졌다. 

한국에 거주하는 탈북자가 북한에 남은 가족과 통화하다 확보한 소식을 기사화한 것. 

신종인플루엔자가 북한에서 창궐한다는 소식은 좋은벗들이 처음으로 전했다.

 

북한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하는 매체들은 극찬받는 만큼 비판도 듣는다. 

“특종도 있지만 오보가 많다”는 것. 


조선일보가 인용한 ‘김정은 탄생 기념 중앙보고대회’가 실제로 열렸다는 증거는 없다. 

17년간 168회 방북해 민간 최고 북한통으로 꼽히는 박상권 평화자동차 사장은 


“북한 전문 인터넷 매체가 북한 현실을 호도한다”고 꼬집는다. 

“정보원 노릇하는 북한 주민이 돈을 받고자 한국사람 입맛에 맞게 허위 조작 과장해서 말하는 걸 북한 전문 매체가 검증하지 않고 보도합니다. 인터넷 언론의 가십성 보도가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주고 있어요.”

 

박 사장은 “주민들은 화폐개혁 잘 했다고 여긴다” 

“화폐개혁 실패 보도는 오보(誤報)”라고 전하면서 

“북한 민주화 운동하는 사람들이 만든 북한 전문 매체가 북한이 망하길 바라면서 왜곡된 보도를 한다”고 주장한다.

 

<신동아>가 실은 박 사장 인터뷰 기사를 읽은 하 대표는 “박 사장이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일부 소식통이 돈을 벌고자 거짓 소식을 팔거나 과장하는 측면도 없지 않겠지만 크로스 체크를 통해 검증한 뒤 신뢰할 만한 정보만 기사로 보도한다”고 맞받았다.

 

나. 좌익에서 우익으로


하 대표는 2005년 12월 열린북한방송을 설립했다. 

이 매체는 인터넷신문을 통해 북한 소식을 한국에 전하고, 

단파를 이용한 라디오방송을 북한으로 송출한다.

―열린북한방송을 듣는 북한 주민이 얼마나 될까요.

“100만명은 넘을 겁니다.”

 

―그렇게 추산하는 근거가 있나요.

“수년 전 탈북자 상대로 샘플 조사를 했더니 

12%가 열린북한방송을 들었다고 답했습니다.”

 

―탈북한 이들은 상대적으로 바깥소식에 관심이 많았겠죠.

“북한 인구 2000만명(북한 인구는 2300만명으로 추산된다)의 12%면 240만명입니다. 탈북자가 특수하다는 점을 고려해 반으로 줄이더라도 120만명이 들었다는 추산이 나옵니다.”


―북한에 단파라디오가 많은가요?

 

“중국 게 북한에 돌아다니죠. 그 사람들도 외부 소식이 궁금하니까. 한국처럼 영토가 좁으면 단파가 필요 없어요. AM FM으로 커버하니까. 중국은 땅덩어리가 커서 단파방송이 많습니다.”

 

열린북한방송은 아침 6―7시, 밤 10―11시 북한으로 단파를 송출한다. 

“북한에 새로운 위협이 되고 있다”고 NYT는 평가했다. 

그는 좌파에서 우파로 전향했다. 국가보안법을 위반해 실형을 산 전력도 있다. 

서울대 물리학과 86학번. 문익환 목사와 함께 일했다.

 

―1986년이면 수재가 물리학과에 모일 땐데 학력고사 등수 기억해요.

“숫자가 특이해서 안 잊어버려요. 전국 100등.”

―주사파였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아니에요. 그렇게 아는 분이 많은데, 잘못 알려졌죠. 

운동권이 NL(민족해방), PD(민중민주)로 나뉘었는데, 

NL은 주사NL 비주사NL로 갈렸어요. 

서울대엔 저처럼 비주사NL이 많았고요. ‘수령님 만세’ 같은 거 안 외쳤어요.”

 

―대학 다닐 적엔 북한에서 한국으로 송출하는 단파방송을 들었겠네요.

“방송을 직접 듣는 사람은 많지 않았어요. 방송 내용을 필사해서 뿌린 걸 읽었죠. 

운동권 70―80%가 봤을 겁니다. NL은 거의 다 봤으니까.”

―격세지감이 듭니다. 지금은 북한 민주화운동을 하니….

 

“넓게 보면 북한 민주화운동을 하는 거죠. 작게 보면 남북 간 정보 소통 운동이고요. 

세계가 어떻게 돌고, 한국이 어떤지 북한 주민이 아는 건 민주화 과정에서 

중요한 축입니다.”


―교도소는 왜 갔다 왔나요.

“1989년 임수경 다음에 1991년 박성희, 성용승이 방북했습니다. 

그 친구들 방북과 관련해서 잡혀갔어요.”

 

―실제로 관련 있었나요.

“관련이 없지 않았죠. 북한 인사와 팩스를 주고받았으니.”

그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조국통일위원회 간부로 활동했다.

―북한을 들여다보는 시각이 바뀐 계기가 있나요?

 

“박성희, 성용승 방북이 첫 번째 계기죠. 

두 친구는 임수경처럼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독일에서 통일운동을 계속했어요. 


북한 사람들이 그 친구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런데 북한 사람들이 비민주적이고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는 겁니다. 

북한이 문익환 목사한테 한 행동도 계기로 작용했고요. 

문 목사의 통일노선은 북한과 달랐거든요.”

 

―어떻게 달랐나요.

“자세하게 설명하긴 곤란해요. 

북한이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문 목사를 안기부 프락치로 몰았습니다. 

의견이 안 맞으니까 프락치라고 몰아세운 겁니다. 

북한은 늘 그런 식이죠. 저도 순진했죠. 

그런 말 안 되는 상대와 통일을 논했다니. 

문 목사가 그것 때문에 화병에 걸리셨어요. 

화병으로 돌아가셨다고요.”

 

―처음 듣는 얘기입니다.

“친북세력은 숨기려고 하죠. 친북 하는 사람들, 문 목사 존경하죠. 

저 역시 지금도 문 목사 존경합니다. 

저처럼 가까이서 본 사람은 존경할 수밖에 없어요. 

안기부 프락치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 사람들과 싸웠거든요. 

주사파도 아니셨고요. 살아계셨다면 저처럼 바뀌셨을 겁니다. 

그렇게 돌아가셨지만….”

 

그는 고려대 국제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치고 1998년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지린(吉林)대에서 국제경제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은 뒤 한국에 돌아와 

SK텔레콤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했다.

 

“기근으로 수십만, 수백만이 죽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충격이었죠. 

북한에 대한 소명감 같은 게 남아 있었어요. 미국으로 유학 가 박사하고, 

교수하고 그래서 될 일인가. 초심을 자문한 거죠. 


중국에서 탈북자를 직접 만나 북한 실상을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박사과정 시작하기 전 6개월 동안 옌볜(延邊)에서 중국어를 익히면서 

탈북자 수백 명을 인터뷰했습니다. 

인터뷰 내용을 가명으로 ‘신동아’에 기고한 적도 있어요. 

박사 공부하면서도 주말마다 국경지역으로 달려갔습니다.”

 

―SK에선 어떤 일을 했나요.

“구해우 상무(현 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밑에서 북한, 중국 관련 일을 했어요.”

―SK가 대북사업을 준비했군요.

“기업이 하고 싶어 했다기보다 정부에서 하라니까. 

북한 업무가 없어지면서 SK텔레콤경제연구소로 옮겼죠.”

 

진보정권 때 북한 진출을 저울질하다 

보수정권이 들어선 뒤 접은 기업이 적지 않다. 

오너가 베이징으로 직접 날아가 북측 인사를 만나 

의향서를 전했다가 정권이 교체되자 사업을 접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표적이다.

 

―대기업이 주는 월급 받으면서 편하게 살 걸 그랬다 싶을 때는 없나요.

“가끔씩. 힘들 때. 적자 경영은 한 해도 없었어요. 

미국 유럽에서 기부금을 받고 있어요.”

열린북한방송은 민주주의진흥재단(NE D), 

국경없는기자회(RSF) 등으로부터 후원금을 받는다.

 

―북한 소식을 전하는 정보원이 대략 얼마나 되나요.

“10명 이상입니다.”

 

뉴스 출고량을 고려할 때 생각보다 취재원 수가 적었다. 

주류 언론에서 북한 기사를 쓰는 기자들도 북한 거주 정보원을 갖고 있지만 

익명의 소식통이 전한 확인되지 않은 소식을 보도하는 걸 부담스러워한다.

 

―소스는 어떻게 관리해요.

“둘로 나뉘어요. 스트링거(stringer·비상근 통신원)에겐 활동비를 줍니다. 

취재원은 그런 게 없죠. 전화 통화하거나 중국 출장 가서 만납니다. 

김정일이 뇌졸중 걸린 뒤 엘리트층이 흔들렸어요. 

미래가 불안하니까 안전판을 만들려는 사람이 생긴 겁니다. 

한국 사람을 사귀어놓으면 나중에 도움이 되리라고 판단한 거죠. 

그런데 신분을 증명할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증명하는 방법이 정보를 말해주는 거죠. 

정보가 사실로 드러나면 그 정도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신분이라는 게 확인되는 거죠.

 

북한 고위층과 연결되는 인사들이 우리의 자산입니다. 특정 정보가 사실로 확인되면 <단순 소식통>에서 <신뢰할 만한 소식통>으로 바뀝니다. 지난해 봄 한 소식통이 ‘북한이 개성공단 임금 4배 인상을 요구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상식적으로 4배 인상은 과하다 싶어 보도를 자제하다가 정황이 일리가 있어 고심 끝에 보도했어요. 빠르고 정확했죠. 김정일과 김정은이 함께 서해함대를 찾아 보복을 지시했다는 보도도 믿을 만한 소스로부터 나온 것이고요.”

 

“연합뉴스도 똑같아요. 고위급 정보는 우리가 경쟁력을 갖췄다고 봅니다. 

김정일 위원장이 톈진(天津)을 들를 거라고 우리가 보도했는데 

연합뉴스에서 이렇게 받아씁디다. 


‘일부 언론에서 톈진에 먼저 간다고 보도하지만 그럴 소지는 거의 없다’고. 

수 시간 후 김 위원장이 톈진에 도착합니다. 

북한 뉴스 시장에서 연합뉴스는 일종의 권력이었어요. 

과거엔 연합뉴스가 받아야 중앙언론이 받았습니다.

 

연합뉴스가 박남기 전 북한 재정부장 총살설을 보도했는데, 우리는 총살이 아니라 지방으로 유배 됐다고 보도했어요. 박 전 부장이 화폐교환 일정을 측근들에게 알려줘 금으로 바꾸게 했다는 겁니다. 연합뉴스에서 당연히 안 받았죠. 그런데 지금은 사정이 바뀌었어요. 외신ㆍ내신이 연합뉴스를 안 거치고 바로 받습니다. 간부 교양 때 천안함은 남측의 자작극이라고 가르쳤다는 보도는 동아ㆍ조선ㆍ중앙일보가 인용보도한 후 연합뉴스가 따라오더군요.”

 


그는 구글에 접속해 열린북한방송 기사를 직접 인용한 외신보도들을 보여줬다.

―북한 뉴스가 과잉 상태라고 보지 않나요.

“외신에서 다루는 한반도 기사 열에 아홉이 북한입니다. 한국은 1이고요.” (이하 생략).

 

2. “안기부 프락치로 몰려 분사(憤死)한 문익환"

[중앙선데이] /문익환 보좌했던 하태경 인터뷰

 

김일성과 손잡고 가는 문익환

 

“문익환 목사는 북한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국내의 주사파는 북한지령에 따라 문 목사를 안기부 프락치로 몰았다. 문 목사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이로 인한 화병 때문이다.”

1989년 밀입북해 김일성 주석을 만났던 문익환 목사의 사인(死因)에 대한 새로운 증언이 나왔다. 94년 1월 문 목사가 숨질 때까지 7개월 동안 바로 곁에서 모시고 함께 일했던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에 의해서다. 하 대표는 16일 중앙선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친북 인사로 알려진 문 목사가 1990년대 초반엔 북한의 대남 전략에 반하는 독자 노선을 걷고 있었다”며 “이로 인해 북한은 문 목사를 운동권의 중심에서 제거하려는 공작을 펼쳤다”고 말했다. 하 대표는 인터뷰에서 최근 탈고한 회고록 ‘민주주의는 국경이 없다’ 에 미처 쓰지 못한 문 목사의 만년(晩年) 활동과 대북 인식, 문 목사를 배제하기 위한 북한의 지령과 이를 둘러싼 운동권 내부의 갈등과 암투에 대해 소상히 증언했다. 80∼90년대 친북 학생운동권 핵심에서 활동하다 두 차례 구속 수감됐던 하 대표는 현재 북한 민주화운동가로 활동 중이다.

 

-문 목사를 곁에서 모시게 된 경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활동을 하다 수감되었는데 93년 2월 김영삼 대통령 취임과 함께 이뤄진 특별사면 때 풀려났다. 서너 달 쉬며 건강을 회복한 뒤 6월께부터 ‘통일맞이’란 단체에 들어가 상근자로 일했다. ‘통일맞이’는 문 목사가 통일문제와 관련한 전문가로 키우기 위해 만든 단체였다. 사무실은 서울 종로5가에 있었고 문 목사와 나 이외에 네댓 명의 상근자가 있었다. 임수경씨나 임종석 전 의원 등도 수시로 사무실에 찾아와서 일을 거들었다. 문 목사와 거의 매일 사무실에서 같이 지내며 많은 대화를 나눴다.”

 

-당시 문 목사는 어떤 활동을 했나.

“문 목사는 당시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 의장을 맡고 있었는데, 범민련을 해체하고 새로운 통일운동 조직을 만들기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문 목사가 범민련을 해체하려 한 이유는 태생적으로 많은 한계가 있는 조직이었기 때문이다. 90년 창설된 범민련은 남측본부와 북측본부, 해외본부로 구성되는데 해외본부라는 게 말이 해외동포들의 조직이지 실제로는 북한의 지령을 그대로 집행하는 북한 정권의 하부기구나 마찬가지다.

 

이런 상태로는 1대 2의 구도가 되기 때문에 늘 북한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조직이란 게 문 목사의 판단이었다. 또한 범민련은 실정법(국가보안법)에 저촉되는 단체여서 대중성이 취약했다. 그래서 이걸 해체하고 독자적인 통일 조직을 만들려고 한 것이다. 그게 바로 문 목사가 재야·시민단체들을 규합해 만든 민족회의다.”

 

-문 목사의 독자 노선에 대한 운동권의 호응은 어땠나.

“당시 문 목사는 운동권의 정신적 스승으로 추앙받고 있었다. 인도의 간디 수준이랄까, 문 목사의 권위는 대단했다. 이 때문에 학생운동권 대부분과 재야 단체들이 처음에는 문 목사의 노선을 지지했다. 그런데 그게 하루아침에 바뀌게 된다. 북한에서 날아온 팩스 한 장 때문이었다.”

 

-팩스 내용은 무엇이었나?

“나도 그랬지만 당시 운동권 조직들은 어떤 형식으로든 북한과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있었다. 주로 제3국을 통해 팩스를 주고받는 방식이었다. 당시 민족자주 평화통일 중앙회의(민자통)이란 조직이 있었는데 문제의 팩스는 그쪽으로 날아왔다. 민자통 사무실은 ‘통일맞이’ 사무실 근처에 있었는데 60년 4ㆍ19 때의 혁신계 인사와 출소 장기수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팩스 발신자는 범민련 북측본부 백인준 의장이었고 당시 유럽에 있던 범민련 해외본부 임인식 사무총장이 중계해 준 것이었다. 내가 민자통 사무실에서 직접 팩스를 봤는데 ‘문익환은 안기부의 프락치’라고 적혀 있었다. 내용은 ‘문 목사가 안기부의 사주를 받아 범민련을 해체하려는 책동을 펴고 있는데 이를 거부하고 범민련을 지켜야 한다’는 요지였다.”


-그 이후 운동권의 분위기는 어떻게 바뀌었나. 

“나는 이 팩스를 공개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는데 민자통에서 전국의 주요 운동권 조직과 학생회 등에 전파시켰다. 당시 운동권은 주사파가 장악하고 있었는데 그들에게 이 팩스는 향후 운동 지침을 알려주는 교시나 마찬가지였다. 지하조직들은 일사불란하게 이 지시에 따랐다. 그때까지 문 목사 노선을 지지하던 운동권들이 하루아침에 돌변해 문 목사를 비판하고 나섰다. 재야단체 회의가 열리면 문 목사를 성토하는 분위기로 돌변했다.

 

문 목사가 마지막 돌아가시던 날에도 그런 성토 모임이 열리기로 돼 있었다. 이미 돌아가신 분이라 이름을 공개하긴 뭣하지만 문 목사 면전에서 ‘당신은 안기부 프락치’라고 비난한 운동권 원로도 있었다. 이를 계기로 운동권 내부에선 소위 ‘범민련 해체 논쟁’이 벌어졌다. 결국 다수 세력인 주사파의 주장대로 범민련은 계속 유지됐다. 하지만 이 논쟁으로 인해 운동권의 분열이 촉발되기도 했다.”

 

-문 목사는 어떤 반응을 보였나.

“정신적으로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루는 자기 방에서 나오며

‘야, 나더러 안기부 프락치란다’고 말씀하시며 허탈한 표정으로 쓴웃음을 짓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평소 화를 잘 내지 않는 분이었는데 돌아가시기 전까지 계속 격앙된 상태로 계셨다. 문 목사가 갑자기 돌아가신 것도 그때 얻은 화병 탓이다. 결국 종북세력들이 문 목사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다.”

 

-문 목사의 사인은 심근경색이라던데

“고령이긴 했지만 돌아가시던 날까지 건강하게 생활하셨다. 직원들과 저녁 식사를 할 때는 반주를 드시기도 했다. 그 날도 아침에 정상 출근한 뒤 집에 들어갔다가 갑자기 쓰러진 것이다. 의학적인 견지에서는 화병이 직접 사인이 아닐지 모르지만 곁에서 지켜본 내 판단으론 화병으로 돌아가신 게 틀림없다.”

 

-이런 일들을 지금 공개하는 이유는?

“나는 그 팩스를 보면서 북한의 실체와 이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종북세력의 행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한때는 영웅으로 떠받들던 문 목사를 그런 식으로 몰아가는 것을 보고 북한은 인간에 대한 기본적 예의도 없는 집단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직까지 북한에 대한 환상에 빠져 있는 종북세력들도 북한의 실체를 정확하게 알아야 된다는 생각이다.”

 

-자신의 방북 경험에 대해선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얘기했나.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지만 그 당시엔 북한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소외되거나 억압받는 사람이 없고, 지도자와 대중이 융화가 된 사회이며 경제적으로도 우리와 대등한 수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와중에 문 목사가 평양에 다녀왔으니 많은 사람이 북한이 어떤 사회인지 물어봤다.

 

문 목사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북한은 우리보다 못 살고, 생활수준이 낮다. 주민들이 김일성 주석을 존경하는 것 같긴 한데 주사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상적인 사회는 아니더라’는 게 그 분의 지론이었다.”

 

-김일성과의 만남에 대해서는?

“문 목사가 김일성에게 직접 동진호 납북자들을 남쪽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요구해 ‘그렇게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고 했다. 나중에 북한이 일가족 탈북자인 김만철과의 교환 조건을 내거는 바람에 실천이 안 됐다는 말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들었다. 당시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면서 문 목사와 친분이 깊은 한완상 서울대 교수가 통일부 장관이 됐다.

 

그때 이번엔 정부 특사 자격으로 문 목사가 다시 방북하는 방안이 논의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쨌든 문 목사는 김일성에 대해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문 목사는 자신을 프락치로 몰아세운 팩스는 백인준의 명의로 돼 있었지만 실제로는 김일성의 지시로 보내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 때문에 문 목사가 받은 충격이 더욱 컸다. 자신은 처벌까지 감수해가며 김일성을 찾아가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눴는데, 바로 그 김일성이 자신을 프락치로 몰았다는 사실에 대해 배신감을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무렵의 북한은 김정일이 모든 실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훗날 황장엽 선생 등의 증언으로 명백해진 사실이다. 그러니 문제의 팩스는 김일성이 보낸 게 아니라 김정일이 보낸 것이다. 만약 문 목사가 당시 북한 내부의 권력 사정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면 충격을 덜 받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더 오래 사셨을지 모른다. 문 목사는 오랜 수감 생활 동안 나름대로 건강 비법을 익혀 수지침에 관한 책을 낸 적도 있다. 그래서 처음 만나는 사람도 얼굴을 보고 건강 상태를 알아맞히곤 했다. 한번은 문 목사가 ‘김일성은 내가 만나보니 오래 살지는 못할 것 같다’고 얘기한 기억이 난다. 하지만 실제론 문 목사가 먼저 돌아가셨다.” (끝)

 

 

3. 북한 영공을 휘젓고 다녔다!

美스텔스 전투기 조종사의 증언


미국이 2005년 이후 실시한 한미합동 군사훈련에서 스텔스 전투기를 북한 영공에 침투시켜 급(急) 기동을 했던 사실이 당시 작전에 참여한 미 공군 조종사에 의해 또 다시 확인됐다.

 

F-117 스텔스 전투기 조종사인 마이클 드리스콜(Michael Driscol) 대위는 최근 미 군사전문지인 ‘에어포스 타임스(Air Force Times)’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수행해온 임무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김정일 독재정권이 통치하는 북한 영공을 휘젓고(buzzing) 다닌 것”이라고 밝혔다.

 

F-16으로 기종을 전환할 예정인 드리스콜 대위는 마지막 임무를 수행 후 가진 이 날 인터뷰에서 F-117의 공식 퇴역과 관련, “전투기에서 내려올 때마다 그 동안 내가 해온 임무를 생각하면 까마득할 정도” 라며 자신의 숙소에 걸려 있는 F-117을 가리키며 아쉬운 감정을 표현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미국의 대(對) 한반도 군사 작전계획은 다섯 가지로 모두 미 태평양사령부(PACOM)가 주관한다. 구체적인 한반도 작전계획으로는 ‘정밀공습계획’(작계 5026), ‘전면전 계획’(작계 5027), ‘개념계획’(작계 5028), ‘북한붕괴계획’(작계 5029), 그리고 전쟁예비 단계로서의 ‘북한동요계획’(작전계획 5030)등이 존재한다.

 

가. 작계(OPLAN)5026, 북한붕괴계획(5029)과 연계

이 가운데 작계 5029와 연동된 제한적 초정밀 대북공습 계획인 ‘작계5026’의 경우 제1차 북핵 위기 당시 작성된 계획으로 JDAM(일명 ‘스마트 폭탄’) 폭탄을 사용, 612~756개에 해당하는 북한의 주요 군사 시설을 정밀 타격한다는 작전계획이다.

 

특히 전면전을 피하는 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이 계획은 B-2 스텔스 폭격기와 F-117 스텔스 전투기를 동원, 북한 전역의 전략 거점들을 동시에 타격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나. ‘작계5026’은 구체적으로

△유사시 전방지역의 북한 장사정포를 정밀 공격해 수도권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북한정권의 수뇌부에 ‘족집게 공격’을 가해 전쟁지휘능력을 조기에 무력화하며

△핵 및 생화학 무기ㆍ미사일 기지ㆍ공군기지ㆍ지휘소 및 통신시설 등을 공격, 김정권의 전쟁능력을 조기에 마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실제로 미 공군은 2005년 6월 F-117 전투기 15대를 김정일이 머물고 있는 ‘특각’ 상공에 출격 시켜 급강하와 급상승을 반복하도록 했다. 제트기가 급강하 할 때 공기를 가로지르는 충격음, 또 급상승 할 때의 애프터버너에 의한 폭발음으로 인해 김정일을 경호하던 호위총국은 이를 미군에 의한 ‘공폭’(空爆)으로 오인해 긴급사태에 대응하기도 했다.

 

다. 북, F-117 영공침투 대응실패ㆍ방공체제 결함 드러내

이 사건을 최초로 다룬 일본의 ‘사피오’(SAPIO)는 2005년 8월 24일자 기사에서 “F-117의 북한상공 비행은 명백한 영공침범으로 원래대로라면 북한은 목소리를 높여 ‘미제(美帝)비난’을 되풀이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보도가 없는 것은 북한 공군기가 긴급발진조차 못하는 실태라든가, 방공 체제의 결함이 내외에 밝혀지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라. 기자는 이 사건을 ‘사피오’ 보도를 인용해 국내최초로 다뤘다.

당시 기자의 기사가 모 신문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게재되자 ‘스텔스기는 애프터버너 소리가 나지 않는다’, ‘찌라시 신문의 기자가 하는 얘기는 믿을 수가 없다’면서 군사매니아들 사이에서 큰 논란이 됐다. 한편, 미 공군은 지난 21일 F-117 전폭기가 뉴멕시코주 홀로먼 공군기지에서 환송식을 가진 뒤 네바다주 넬리스 공군기지 북쪽의 외지고 철저히 통제된 토노파 비행실험장으로 이동하는 마지막 비행을 했다고 밝혔다.

 

미 공군에 따르면 F-117A 전투기들은 모든 임무가 해제됨에 따라 정비요원들에 의해 전투기 날개가 분리된 뒤 동체만 영구보존 될 예정이다. 지금까지 만들어진 F-117은 모두 59대 이 중 37대는 이미 퇴역했고 7대는 추락했다.

 

마. F-117에 이어 F-22 북 영공침투 임무승계

그동안 F-117A 전투기가 맡아온 임무는 최신예 스텔스기로 초음속의 기동능력에 첨단 공격 대응능력을 보유한 F-22(일명 ‘랩터’)가 맡을 예정이다.

홍콩의 ‘봉황 TV’는 최근 익명을 요구한 대만 군사소식통을 인용, “F-22 8대가 태평양의 괌(Guam) 기지를 떠나 일본 상공에서 한 차례 공중 급유를 받은 후 북한 영공에 침투했다 무사귀환 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와 관련, 대만 삼군대학의 한 교관은 정확한 날짜까지는 밝히지 않았으나 “F-22가 군사 목표물 위에서 선회를 했고 모의 공격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미 군사전문 연구소인 ‘글로벌 시큐리티’의 존 파이크(John Pike) 소장은 최근 미 언론과의 전화인터뷰에서 “이번 F-22 전투기의 알래스카 배치로 북한이 더더욱 (남한을 겨냥한) 대규모 군사행동을 획책할 수 없게 됐다”고 분석했다.

 

파이크 소장은 “동북아 지역에서 군사력의 균형이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미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더욱 기울고 있다”면서 “이번 F-22 전투기의 알래스카 배치는 이러한 이유를 하나 더 추가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번역-정리/김필재

 

4. "미, 북정권 제거계획 진행 중"

[관련기사]


대북 금융제재 조치, 북 고위층 망명 유도작전. '작계 5030'의 일환. '일본재단' 연례 연구보고서(한반도 중장기 전망과 일본의 대응)에서 밝혀. 2006년 2월1일자 인터넷 안보신문 코나스 보도.

 

일본의 보수성향 싱크탱크인 '일본재단'이 최근 발간한 연례연구보고서를 통해 현재 미국이 추진 중인 대북 금융제재 조치와 북한 고위층 망명 유도작전 등이 모두 김정일 체제의 붕괴를 목표로 한 미국의 군사작전 계획(작계 5030)이라고 밝혀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한반도에 일시적으로 전개했던 15대의 F-117A 스텔스 전폭기가 김정일이 머물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특각(特閣)' 상공에 출격해 급강하와 급상승을 반복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진은 지난해 6월 한반도에 배치됐던 F-117A 전폭기의 모습이다.

 

 

 

F117 스텔스 전폭기

 

일본재단은 지난 30일 美 중앙정보국(CIA)의 자료를 토대로 작성한 '한반도 중장기 전망과 일본의 대응'이라는 제목의 연례 연구보고서를 통해 "미국은 지난 2003년 중반부터 김정일 체제의 붕괴를 목표로 내부 교란 작전인 '작계 5030'을 수립해 실행 중"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90년대 초의 '제1차 핵위기' 당시, 영변의 핵 시설 등을 정밀유도탄으로 타격한다는 '작계 5026'을 입안했으나, 전면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 본격적인 전쟁이 발발했을 경우, 이를 <흡수 통일>의 기회로 잡아, 韓美 연합군의 적극적 공격에 의해 북한을 점령하고, 한반도 통일을 성취한다는 '작계 5027-98'(98년 판 '작계 5027')이 책정됐다.

 

가. 작계 5027-98, 한반도 유사시 김정일 제1공격 대상으로 삼아

'작계 5027-98'의 경우 걸프전의 교훈에 따라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김정일의 제거 즉 ‘참수공격’(decapitation attack)을 목표로 한다는 가정 하에 작성됐다. 이 계획은 유사시 美 본토로부터 온 증원군 69만 명이 전장에 투입된다는 대규모 전면전을 상정해 작성된 계획이다.

 

그러나 주한미군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가 융화적으로 되어 가고 있다는 판단 하에 2003년 중반 새로운 대북군사작전계획을 책정했다. 이것이 바로 '작계 5030'이며, 북한의 군사자원을 고갈시켜, 김정일에 대한 군사 쿠데타 등을 유발시키는 한편, 궁극적으로 '김정일의 제거'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례로 지난 2003년 3월 2일 발생한 미국 정찰기(RC-135S)에 대한 북한 전투기의 긴급발진과 같은 우발충돌을 들 수 있다. 즉 북한의 영공에 미국 항공기를 근접 비행시켜 북한 전투기들의 잦은 출격을 유도함으로써 극심한 에너지난을 겪고 있는 북한의 보유 연료를 소진시키는 등 다양한 형태의 작전을 구사하는 것이다.

 

나. 오세욱 전 인민군 대좌의 망명, 작계 5030의 성과

'작계 5030'에는 예고 없이 한반도 주변에서 수주간 지속되는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방안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 경우 북한은 불가피하게 대비태세를 갖춰야 하기 때문에 식량 등 전시대비 비축자원을 소진시킬 수밖에 없다. 이와 함께 '작계 5030' 북한 고위급 인사의 망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공작, 외화 유입을 저지해 김정일의 자금원을 괴멸시키는 공작, 전략적인 허위정보를 유포시켜 내부혼란을 조장하는 공작 등이 포함되어 있다. 보고서는 '작계 5030'의 성과로

▲지난해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은행 북한 계좌 폐쇄조치

▲오극렬 노동당 작전부장의 장남 오세욱 전 인민군 대좌의 망명지원

▲북한 상공에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10대 거짓말 전단살포

▲김정일의 거처로 추정되는 장소에 스텔스 전폭기를 출동시켜 위협한 작전 등을 꼽았다.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10대 거짓말>

1. 김일성ㆍ김정일은 '주체의 혈통'을 외치면서 저들의 리력을 기만하고 우리 인민을 계급적으로 등분화하고 차별시하면서 인권을 여지없이 유린하였다.

 

2. 김일성ㆍ김정일은 '사상에서 주체'를 줴치면서 온 나라를 수령의 유일사상으로 일색화하고 전체 인민을 수령의 사상적 노예로 만들었다.

 

3. 김일성ㆍ김정일은 '정치에서 자주'를 줴치면서 인민이 주인 된 나라를 건설한 것이 아니라 수령 절대주의 세습 왕조를 건설하였다.

 

4. 김일성ㆍ김정일은 '경제에서 자립'을 줴치면서 국가 경제를 저들의 가계 경제로 만들고 든 재원을 수령 우상화 건설과 수령 향락생활에 탕진함으로써 인민경제를 만들고 모든 원을 수령 우상화 건설과 수령 향락생활에 탕진함으로서 인민경제를 파국 상태로 몰아 넣고 300만명 이상의 인민을 굶겨 죽였으며 우리 조국의 자라나는 용근한 세대를 기형화시켰다.

 

5. 김일성ㆍ김정일은 '국방에서 자위'를 줴치면서 나라의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을 세습 독재체제 유지를 위한 핵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탕진하고도 안심치 않아서 암암리에 끊임없이 미국에 대고 독재 체제 보장을 구걸하고 있다.

 

6. 김일성ㆍ김정일은 장장 반세기 동안이나 '이밥에 고깃국, 기와집에 비단옷' 거짓말을 해오면서 우리 인민을 빌어먹는 인민으로 우리 조국을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락후한 나라로 락시켰다.

 

7. 김일성ㆍ김정일은 '어린이들은 나라의 왕'이라고 줴치면서 우리의 아이들을 지구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비참한 세대로 만들었다.

 

8. 김일성ㆍ김정일은 '혁명의 군대, 계급의 군대'를 건설한다고 줴치면서 인민군대을 저들의 가병으로 세습 독재체제의 총알받이로 만들었다.

 

9. 김일성ㆍ김정일은 '문화예술은 인민에게 복무해야 한다'고 줴치면서 우리의 문학과 예술을 수령 우상화, 수령의 향락수단으로 만들었다.

 

10. 김일성ㆍ김정일은 '인민복'을 줴치면서 우리 인민의 의사도 묻지 않고 국가의 모든 권력과 재원 심지어 인민까지도 사유화하고 세습한 만고의 도적놈들이다. [북한용어 해석:줴치면서→외치면서]

 

보고서는 실제로 주한미군이 지난해 6월 한국 공군기지에 배치된 F-117A 스텔스 전폭기 15대를 김정일이 머물고 있다고 추정되는 '특각(特閣)' 상공에 출격시켜 급강하와 급상승을 반복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제트기가 급강하 할 때 공기를 가르는 충격음, 또 급상승 할 때의 애프터 버너에 의한 폭발음으로 인해, 김정일을 경호하고 있는 호위총국은 미군에 의한 공중폭격으로 잘못 알고, 긴급사태에 대응했으며, 서울 인근 의정부에 있는 주한미군 501정보여단(501MI)은 이 같은 움직임을 포착했다.

 

다. "김정일에 대한 미국의 공격작전은 이미 실행 중"

이와 관련해 일본의 보수성향 잡지인 'SAPIO'는 2005년 8월 24일자 기사에서 "F117에 의한 북한상공비행은 명백한 영공침범이며, 원래대로라면 조선통신이나 평양방송이 목소리를 높여 '미제비난'을 되풀이했을 것이나 그러한 보도가 없는 것은 (북한은 기름이 없어) 공군기가 긴급출동조차 못하는 실태라든가, 방공레이더가 무력하다고 하는 방공 체제의 결함이 내외에 밝혀지는 결과를 우려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한편 일본재단 관계자는 "미국은 정밀 제한폭격작전인 작계 5026과 내부혼란·쿠데타 유도용인 '작계 5030'을 통합해 김정일 제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김정일에 대한 미국의 공격작전은 이미 실행 중"이라고 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