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꽁이의 찬양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해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기독교는 통일신라시대부터 傳來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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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 전래사

2012. 10. 28.

“기독교는 통일신라시대부터 傳來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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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통일신라시대부터 傳來됐다”

종래 舊韓末보다 1,200년 앞서


동서교류사 大家 깐수 박사의 충격 考證

 

정수일(무함마드 깐수) 前 단국대 교수

 

 

종교의 교류란 인간과 초인간적 실재의 신앙적 관계인 종교와 그에 수반된 종교문화의 상호 전파 및 수용을 말하는데, 이러한 교류는 정신문명 교류의 중요한 분야다. 종교는 우선 인간의 주관적인 심적 현상으로 나타나지만 초인간적 실재에 대한 믿음이나 기원(祈願)을 표백(表白)하기 위한 객관적인 사회공동체 형태와 표현 수단으로도 나타나는 바, 이러한 형태와 수단을 종교문화라고 한다. 따라서 종교의 교류에는 이러한 주관적인 심적 현상과 객관적인 사회공동체 형태 및 표현 수단의 교류가 포함된다.

 

종교의 교류가 당위적인 것은 원초적으로 갖고 있는 종교간의 상차성(相差性) 때문이다. 여러 종교가 학문이나 예술, 도덕과 달리 삶의 근본 교훈을 초인간적인 실재로부터 얻고자 한다는 것에서는 큰 차이가 없지만, 그렇다고 동일한 형태와 내용으로 이루어지거나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신앙의 대상이 되는 초인간적 실재의 본질에 따라 또는 그것을 신봉하는 인간의 심성이나 태도 여하에 따라 각이한 종교들이 형성되고, 신관(神觀)을 비롯해 그 내용과 의식도 고유의 특성을 지니게 된다. 일반적으로 상이한 여러 종교들을 대별하여 원시종교와 이상종교, 유일신교와 다신교로 분류한다. 전자는 신앙의 내용과 형태가 문화적인가 현대적인가에 따른 구별이고, 후자는 신앙의 대상이 유일한 절대자인가, 여러 신을 섬기는가에서 차이점을 찾는다. 종교 간의 이러한 상차로 인해 종교의 교류가 필연적이며 또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상차가 없다면 동수위(同水位)에서의 물의 고임과 같이 종교는 자생지에 그대로 머물러 있을 뿐, 타지로 유입되는 교류 현상을 결과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당위적으로 발생한 종교의 교류는 신앙적 관계의 심리적 활동으로서의 종교와 그에 수반한 신앙적 관계의 사회공동체 형태와 표현 수단으로서의 종교문화라는 두가지 내용의 교류를 포함한다. 종교에는 교리와 교법, 계율, 의식 등이 속한다. 이에 비해 종교문화는 종교철학, 종교윤리, 종교예술, 종교건축, 교단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교류의 측면에서 보면 종교와 종교문화는 상호 의존적 관계에 놓여 있다. 교리를 비롯한 종교의 내용은 종교문화의 내용과 형태를 규제하고, 종교문화는 종교의 내용을 구현한다. 따라서 종교 없는 종교문화의 교류란 있을 수 없고, 종교문화가 결여된 종교의 교류는 명실상부한 종교의 교류라고 말할 수 없다.

 

종교 전파에서의 초전과 공전의 혼란

 

이러한 종교의 교류는 그 내용이 다방면적이며, 정신문명뿐만 아니라 물질문명에 대해서도 강력한 문화접변(acculturation)을 초래한다. 그리고 그 교류는 초지역적, 초국가적, 초민족적, 초계급적인 활동무대에서 그야말로 무소불위(無所不爲)로 시·공간을 초월해 간단없이 진행된다. 그리하여 종교는 문화현상 가운데 전파성이 가장 강한 분야다.

 

특히 기독교·불교·이슬람교 같은 보편종교에서는 자연이나 혈연구조에 입지(立地)한 자연종교와 달리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종교적 이상까지 추구하려는 노력, 즉 포교와 전도를 통한 전파가 활발하게 진행된다. 이와 같은 종교의 전파는 자연적으로 전달(傳達·trans-mission)과 변용(變容·metamorphosis)의 과정을 거치는 바, 타지로의 종교 전파 시원은 의당 초전(初傳)단계인 전달에서 찾아야 하며, 초단계적인 변용을 그 시원으로 간주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요컨대 종교의 전파는 전달에서 비롯되는 초전과 변용을 수반한 공전(公傳)의 두 단계를 거쳐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왕왕 종교의 전파에서 이 사전(私傳)과 공전 문제가 상당한 혼란을 일으킨다. 특히 종교 전파의 시원 문제를 따질 때는 초전이 아닌 공전을 시원으로 보는 경향이 상당히 많다.

 

예컨대 ‘순도조려’(順道肇麗) ‘난타벽제’(難陀闢濟) ‘아도기라’(阿道基羅), 즉 순도가 고구려 불교를 창시하고 마라(摩羅)난타가 백제 불교를 개척하였으며 아도가 신라 불교의 기반을 닦았다는 3국시대 불교 전래의 시원에 관한 통설은 사전을 무시한 채 공전에서 그 시원을 찾은 일례다.

 

종교의 전파 과정에서 공전을 결과하는 변용은 주로 종교의 전달과 확산으로 초래되는 문화(또는 생활양식)의 재조정, 즉 문화접변(文化接變·acculturation)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대체로 종교의 전파에 의한 문화접변은 국가나 사회가 공식적으로 새 종교를 받아들임으로써 성사 가능한 것이다. 국가나 사회에 의한 이러한 공식적인 수용을 공허(公許, 혹은 公認)라고 하는데, 공허는 공전의 기점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공허와 공전에 앞서 주로 민간에 잠행적(潛行的)으로 전파되는 것을 초전, 혹은 사전이라고 한다.

 

불교의 전파사에서와 같이 종교 전파 시원을 무엇으로 잡는가 하는 것은 시종 문제시된다. 중국이나 한국의 실례에서 보다시피 지금까지는 대체로 공전의 시초, 즉 공허를 불교 전래의 시초로 삼는다. 실제적으로 왕명이나 공권력에 의한 국가적 수용이나 사회적 공인은 이미 초전 단계의 전달이 아니라 변용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일로써 초전이라고 볼 수 없으며, 따라서 그것을 전래의 시원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의 기독교 전래 시원 문제도 이와 유사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외래종교는 이질감에서 오는 냉대와 거부 때문에 쉽사리 수용되지 않고 그 전파 과정은 순조롭지 못하고 우여곡절을 겪게 마련이며 오랜 기간을 요한다. 모든 종교의 전파사가 실증하다시피 한 종교가 이역에 정착됐음을 알리는 공허나 공인에 이르기까지에는 초전자들의 헌신적인 포교 활동이 필수다. 엄밀히 말하면 이 전달 단계에서 이들 초전자들의 전도 활동 개시가 바로 해당 종교의 전래 시원이며, 그들이 다름아닌 전래의 시조들인 것이다. 그런데 왕왕 초전자들은 사회적 비난과 저항 속에서 비밀리에 포교 활동을 전개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공개성이 적고 기록에도 남아 있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그들에 의한 전래의 시원이나 과정을 구체적으로 명백하게 추적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우며, 때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 결과 흔히 초전(전달) 활동은 무시된 채 기록, 그것도 공전을 기준으로 한 기록에만 의존해 전래의 시원을 판단하는 편향을 범하게 된다.

 

이와 같이 외래종교는 일반적으로 전달(초전, 사전)과정을 거친 후 확산과 진흥에 의한 변용 단계에 이르러 정착되면서 복합문화체로서의 면모를 갖춘다. 물론 모든 외래종교가 꼭같이 일률적으로 이러한 과정(단계)을 거치는 것은 아니다. 전달에만 그치고 생명력을 잃어버린 나머지 변용을 초래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통상 변용까지 가져온 전파는 그 전제인 전달 과정을 필히 거치는 법이다. 그리하여 종교 전파사를 통관하면 모든 종교는 대체로 전달(초전, 사전) → 변용(공허, 공전)이라는 종교 전파의 보편원리나 과정을 따라 순리대로 전파되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종교는 일종의 문화현상이기 때문에 그 전파 과정이나 결과에 관해서는 문명교류사적 시각에서 접근하되 반드시 하나의 종교적 복합문화체로 인식하여야 한다. 보편종교일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문명사적 의미에서의 종교란 경전과 숭배물, 승려와 승원, 또는 그 속에서 거행되는 각종 종교의례와 연찬하는 학문, 그리고 승원과 의례도구·승려 등을 건조, 장식하는 각양각색의 회화나 조각·복식·음악·무용 등 건축 및 공예술을 망라하는 종교적 복합문화체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의 전파나 홍통(弘通)을 거론할 때는 이 종교적인 복합문화체의 여러 구성 요소들을 두루 다루어야 한다.

 

수많은 교류 종교 가운데 가장 광범위한 세계성을 띤 종교는 보편종교라고 하는 불교·기독교·이슬람교 등 3대 종교다. 대략 600년을 사이에 두고 출현한 이 세계 3대 종교는 전파 지역이 광대함은 물론이거니와 신도 수에서도 단연 기타 종교들을 능가한다. 그리하여 한반도를 포함한 세계 각지를 향한 이들 3대 종교의 전파와 교류가 가장 활발히 전개되었으며, 그 영향도 가장 심원하다.

 

고대 기독교는 서방종교 아닌 동방종교

 

기독교의 유라시아 전파는 시·공간적으로 다양한 양상을 띠면서 때로는 지속적으로, 때로는 간헐적으로 그러나 면면이 이어져 왔다. 기독교 전파사를 살펴보면 서방에로의 전파는 초기의 형극을 극복한 후에는 비교적 일로순풍이어서 짧은 기간에 서구문명의 바탕으로 착근했지만 동방에로의 전파는 서방과 달리 문명 간의 이질성과 이교(異敎)의 ‘색로’(塞路)로 인해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기독교는 출현 초기부터 마냥 서구의 종교처럼 인식되고 기독교문명은 곧 서구문명이라는 등식 개념으로 비쳐졌다. 그러나 근원을 소급해 보면 고대 기독교는 동방종교이지 결코 서방종교가 아니다. 그 이유는 교조 예수의 탄생지와 활동지 및 그에 의한 기독교의 발상지가 다름아닌 동방, 즉 오리엔트의 중간 요지인 팔레스타인이다. 신약성서에도 명시되어 있다시피 그리스도인들의 최초 종교단체(교단)가 조직된 곳이 바로 소아시아 지방(현 아시아 서단 터키 지방)의 안디옥이며, 기독교가 국가종교로 첫 공인을 얻은 곳도 서구의 어느 곳이 아니라 동방의 나라 메소포타미아의 에데사라는 사실 등이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에데사교회의 초기 기독교학자인 타티안(A.D.2)도 기독교는 서양인의 종교라기보다 오히려 동방인의 종교라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렇게 동방의 일우(一隅)에서 출범한 기독교는 출현 당초부터 다양한 문화전통을 배경으로 포교에 의한 입지를 점차 확대해 나갔다. 초기에는 주로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한 희랍어권과 에데사를 중심으로 한 시리아어권이라는 동방의 문화적 배경 속에서 걸음마를 떼었다. 일단 출발한 기독교는 이러한 동방의 문화적 배경을 자양분으로 자라다 4세기초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정치적 질서와 타협하면서부터는 라틴 서방을 중심으로 하여 일약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이때부터 고대기독교는 상이한 역사·지리·문화적 배경을 갖는 동방기독교와 서방기독교라는 두개의 큰 흐름으로 갈라지게 되었으며, 교리 논쟁을 비롯해 동·서방 기독교 간의 갈등은 쉼없이 거듭되다 드디어 1054년에 발생한 성 소피아 성당에서의 상호 파문 조치를 계기로 끝내 결별하게 되었다.

 

결별후 서방기독교는 크게 로마가톨릭과 프로테스탄티즘으로 양분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서방기독교권을 이루고 있다. 한편 동방기독교는 크게 동방정교회(東方正敎會)·동방독립교회(東方獨立敎會)·동방귀일교회(東方歸一敎會)로 3분되어 오늘날까지 동방기독교권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러한 기독교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만이 기독교의 동방 전파(東傳)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기독교의 동전은 주로 전도의 주역과 대상지에 따라 크게 11세기 기독교의 동·서 분리 이전과 이후의 두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를 고대 기독교의 동전 단계(혹은 전단계)로, 후자를 근대 기독교의 동전 단계(혹은 후단계)로 각각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전단계의 전도 주역은 초기 서아시아 일원에서 흥기한 여러 교파나 교단들로서 후일 동방기독교권의 구성원이 된 동방독립교회(예:네스토리우스파)와 동방귀일교회(예:동방가톨릭)의 전신들이다. 그들이 전도한 기독교는 중국 당(唐)대의 동방기독교인 이른바 경교(景敎)에서 보다시피 초기(원시) 기독교의 성격을 띠고 있다. 전도 대상지는 고대 기독교의 발상지와 인접한 지역(페르시아 등)으로부터 점진적으로 인도나 중국과 같은 동방 지역으로 확장되었다.

 

여기서 한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동방기독교권의 주요 구성원인 동방정교회(핵심은 그리스정교회와 러시아정교회)가 전단계에서는 기독교의 동전에 별로 기여한 바가 없다는 사실이다. 동방정교회의 ‘동방’은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의 그리스어권에서 발원되었다는 뜻에서의 동방이지 고유한 의미의 동방은 아닐 뿐만 아니라 전도 대상지도 동방이 아닌 유럽의 그리스나 러시아 등지었기 때문이다. 전단계에 비해 후단계의 전도 주역은 주로 로마가톨릭을 비롯한 서방기독교 단체들이며, 전도 내용도 초기 기독교와 달리 7∼8세기의 교리 정립과 중세의 종교개혁 과정을 걸친 근대화한 교리 및 기독교문화를 보급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전도 대상지도 제한 없이 동·서방 곳곳을 택하고 있다.

 

고대 동방기독교의 동전은 전단계, 즉 기독교가 동·서로 공식 결렬되기 이전 시기(1∼10세기)의 초기 기독교가 서아시아로부터 선택적으로 페르시아와 인도·중앙아시아·중국 등 동방아시아 지역으로 전파한 것을 의미한다. 이 시기는 기독론 논쟁을 비롯한 교리 논쟁이나 교세 확장, 그리고 교권 확립을 위한 배타적 경쟁이 면면부절(綿綿不絶)하여 정통과 이단 시비가 엎치락뒤치락하는 시기로써 의도적인 동방 전도가 없지 않았지만 많은 경우 이러한 경쟁과 갈등의 소산에 불과했다. 그리하여 이 단계의 기독교 동전상을 제대로 구명하는 데는 여러 가지 제한과 어려움이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