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꽁이의 찬양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해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明나라의 上帝와 朝鮮王朝實錄의 《上 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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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회 참고자료

2013. 2. 12.

 

 

 

▶2013.2.15. 속회참고자료/明과 王朝實錄의 上帝◀

 

 

 

明나라의 上帝와

 

朝鮮王朝實錄의

 

《上 帝》

 

 

 이 지도는 삼국시대 지도다. 고조선 은나라 영토는 중원을 거의 다 점령했었다.

 

 

 

오늘 공과는「유혹을 이기는 삶」이다. 요셉이 깨끗한 삶을 살기 위해 유혹을 이긴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도 유혹을 이기자는 과목이다. 이 자료는 고대 중원을 제패한 우리 동이족이 세운 순나라는 매헤 두 차례 국가적으로 샹다이(上帝)께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하나님을 뜻하는“샹다이”란 말이 히브리어의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인 “샤다이”와 같다는 것이다. 이 제사규례는 「大明會典」에 있어서 근세까지도 실행되었고, 명나라를 종주국으로 섬겼던 조선왕조실록에도 왕이 국가의 재난에는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는 제사의식이 수 없이 나온다, 우리 민족은 옛날부터 하나님을 섬긴 택한백성(Chosen People)임이 증명되었다.

 

 

지금 <중국>이라고 하는 명칭은 모택동 이후에 자기네 나라가 세계의 중심이라는 오만한 생각으로 만든 말이다. 이 나라는 진시황 이후 China, 곧 支那로 세계 각국이 표기해 왔다. 동북공정으로 우리 고대사까지 자기네 역사라 하는 者들에게 <중국>이란 이름 쓰기가 싫어 本稿에서는 <支那>로 썼다. (오소운)

                 

 

1. 국경제사(國境祭祀)

 

기록에 의하면 순(舜) 황제는 해마다 두 차례씩 「샹다이」께 제사를 드렸는데, 冬至에는 국경 최남단에서, 夏至에는 국경 최북단에서 上帝에게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국경제사」라고 불린다.

 

가. 다음 글은【야후 홍콩】에서 퍼와 번역한 것이다.

 

― 공자가 편찬했다는 《書經》에 보면 순 임금이 상제께 「교제(郊祭)」를 드린 기사가 자주 나온다. 교제란 고대 支那의 가장 중요한 국가적 대사였다. 이 법은 고치거나 폐할 수 없다. 공자는《중용》에서 「교사(郊社)의 예식은 샹다이(上帝)를 섬기기 위한 것이다」 郊社之禮,所以事上帝也 라고 하였다. 《禮記》에는 제사 드리는 예법이 여러 군데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나라에서 샹다이께 드리는 제사를 「교제(郊祭)」라 칭한다”하였다. 孔子는 설명하기를 “샹다이께서 사람이 거룩하게 되는 규칙을 내리셨는데 이것이 「교제」이니, 샹다이께서 가르쳐주신 바른 길이니라. 天垂象, 聖人則之. 郊祭, 天之道也. 하였다.

天子는 매해 첫날 반드시 먼저 교제를 샹다이께 드리며 경배하였다.

 

― 왕은 한 해 한 번 샹다이께 「교제」를 드려야 한다. 종묘에서도 철 따라 네 차례의 제사를 드려야 한다, 교제는 새해가 바뀔 때 일찍 제사를 드릴 것이며 왕이 직접 드려야 한다. “하나님은 모든 신의 왕이시니, 임금이 가장 높여야 할 至尊者”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가 바뀌면 반드시 정월 첫 辛日에 교제를 드리며, 至尊者에게 한 해의 가장 중요한 일을 고해야 한다. 국경에서 드리는 교제는 나라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또한 귀하고 옳은 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도리다.

 

이 제사시작 때, 제사장인 황제가 읽는 말씀은, 우리 성경에 있는 말씀과 너무나도 흡사하다.

「大明會典」에 기록되어 있는 「국경제사문」을, 제임스 렉((James Legge)의 책에서 인용한다.

― 태고에, 혼돈과 공허와 흑암만이 있었도다. 五星은 회전을 시작하지 않았고, 해와 달도 빛을 비추지 않았도다. 이 깊은 흑암 속에 형체도 소리도 없었도다.

 

― 오! 신령하신 주, 神皇의 주관 아래 만물이 창조되었나이다. 당신은 하늘을 만드셨고, 땅을 만드셨고, 사람도 만드셨나이다. 모든 것이 당신의 능력으로 말미암았나이다.

국경제사 마지막에 황제가 낭독하는 말씀은 이렇게 되어 있다.

 

― 당신의 선하심은 끝이 없나이다. 당신은 토기장이 같이 모든 생물을 만드셨나이다. 크고 작은 모든 것이 당신의 사랑 안에서 안식을 취하고 있나이다. 당신의 불쌍한 종의 마음에 새겨진 것은 오직 당신의 선하심 뿐이오며, 우리의 감정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나이다. 당신의 크신 사랑을 따라 우리의 허물을 책망하지 마시고, 길이 참으시며, 우리에게 생명과 번영을 허락하소서.

 

唯一神 신봉자 이외의 이 세상 어떤 종교에도 이런 기도문은 있을 수 없다. 이것은 바벨탑 사건 이후 東方으로 이동해 온 민족들이 샹다이를 기억하며 드렸던 기도문이 아니겠는가. 한국 창조과학회 홈페이지에는 이런 글과 북경 天祭壇 그림이이 올라 있다.

 

 

― 북경에 있는 450년 된 천제단(天祭壇, Temple of Heaven)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왜 황제는 매년 소위 “교사 (郊祀, Border Sacrifice, 교외에서 드리던 제천의식)”라 불리는 그 해의 가장 중요하고 화려한 의식으로, 하얀색의 커다란 대리석 천제단(Altar of Heaven)에서 황소(bull)를 희생 제물로 드렸는가? 이 의식은 마지막 황제가 폐위된 1911년에 끝났다. 그러나 犧牲儀式은 단지 450년 전에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 의식은 4000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Border Sacrifice가 기록되어 있는 가장 초기의 기록 중 하나는 孔子에 의해서 편집된, 舜황제를 기록하여 놓은 書經에서 발견된다. 거기에서 순 황제는 샹다이(上帝)에게 희생제물을 드렸다고 되어 있다.

 

2. 순() 임금은 동이인(東夷人)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고대 支那의 聖王으로 일컫는 순舜 임금은 東夷人이라고 孟子는 밝혔다는 것이다.

 

― 맹자 가로되, ‘순 임금은 제풍(諸馮)에서 태어나 부하(負夏) 땅에 가서 살다가 명조(鳴條)에서 죽었는데, 東夷사람이다. 부하와 명조는 모두 지명으로서 동방에 있는 이(夷)가 다스리던 땅인데, 東夷는 支那의 극동지방이다.

 

그럼 東夷族은 과연 우리 조상인가?

支那人은 자기 나라의 동방에 거주하던 종족(곧 조선족)을 東夷라고 불렀다. 이(夷)라는 명칭은 은(殷)의 갑골문자에 이미 등장하고 있는데 殷代의 「夷」는 황하강 중류 以東의 지역인 반도 및 회수강(淮水), 사수강(泗水) 일대의 동방종족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으며 서주(西周) 때에는 이 일대의 종족을 東夷, 南夷, 회이(淮夷)로 나누어 지칭했다.

 

支那人의 東夷에 대한 인식은 다른 주변 민족에 비해 뚜렷하여 선진(先秦) 문헌에서부터 비교적 자세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夷」라는 글자의 어원에 대하여 〈說文解字〉는 大弓, 즉 활을 잘 쏘는 것과 관련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支那 역사에서 9개의 해를 떨어뜨려 支那를 구했다는 전설상의 인물인 예(羿)나, 한때 동방의 30국을 아우르고 서주를 위협했던 활의 名人 서언왕(徐偃王)이 동이족으로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지나인의 동이족에 대한 활과 관련한 인식은 매우 뚜렷했던 것 같다. 고구려의 시조 朱蒙도 그 이름이 「활 잘 쏘는 사람」이라는 뜻인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선진문헌 중에는 동이를 「東方君子之國」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여, 지나인의 동방에 대한 외경(畏敬)을 전하기도 한다. 공빈(孔斌)의《東夷列傳》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 그 나라는 크지만 남의 나라를 업신여기지 않았고, 그 나라의 군대는 비록 강했지만 남의 나라를 침범하지 않았다. 풍속이 순후(淳厚)하여 길가는 이들이 서로 양보하고, 음식을 먹을 때는 서로 사양하며, 남자와 여자가 따로 거처해 섞이지 않으니, 이 나라야말로 「동쪽에 있는 예의 바른 군자의 나라」 東方禮義之國이 아니겠는가! 여기서 우리가 자랑하는 「東方禮義之國」이란 말이 나왔다.

 

이 기회에 동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支那 후한시대에 허신(許愼)이 지었다고 하는 󰡔說文解字󰡕는, 한자의 근본 원리를 해설한 가장 오래된 책으로 권위 있는 책인데, 그 책에 이런 말이 있다.

 

― 夷란 동쪽 사람을 부르는 말이다. 남쪽 사람은 만(蠻)이라고 하는데 벌레 같기 때문이요, 북쪽 사람은 적(狄)이라고 하는데 개 같기 때문이다. 서쪽 사람은 융(戎)이라고 하는데 양 같기 때문이다. 오직 동쪽 사람들만 夷라고 하는데 大人君子이기 때문이다. 夷의 풍속은 어지니, 어진 사람은 장수하는 법이다. 그래서 「군자가 죽지 않는 나라가 있다」 하였다. 고로 공자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이 땅에서는) 나의 道를 행할 수가 없으니 군자불사지국인 九夷에 가 살고 싶다” 하셨고, “뗏목을 타고서라도 가고 싶다”란 말도 하셨다.

 

자기네가 최고라는 中華 우월주의자들도, 東夷 사람은 존경해 마지않았다는 것이다.

 

3. 조선왕조실록의 상제 관련 글

우리나라가 세계에 자랑하는 문화유산인 오백년 [조선왕조실록]은 세계에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방대한 기록이다. 이 기록이 번역되어 누구나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볼 수 있게 된 것은 참으로 잘 한 일이다. 알다시피 조선왕조는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으로 고려를 무너뜨리고 세운 나라로서 明나라의 모든 제도를 받아들여 전국에 시행하였는데, 그 實錄 중에서 太祖부터 世宗代까지 <上帝>라는 말이 나오는 부분을 찾아보았더니 놀랍게도 엄청 많았다. 그 중의 이를 일부 소개한다.

 

가. 태조 1권 1년 7월 20일

사헌부에서 또 상소(上疏) 하였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전하께서 하님의 뜻에 순응하여 혁명을 일으켜 처음으로 왕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書經》에 ‘황천상제(皇天上帝)께서 그 원자(元子=천자)와 이 큰 나라인 은(殷)나라의 명(命)을 개체(改替)시켰으니, 왕의 天命을 받으심이 한없이 경사로우나, 또한 한없이 근심이시니, 아아! 어찌 하겠습니까! 어찌 공경하지 않겠습니까?’하였습니다. 대체 敬이란 것은 한 마음의 주재이고 모든 일의 근저이니, 그러므로, 큰일로는 하늘을 섬기고 上帝께 제향(祭享)하는 것과, 작은 일로는 일어나고 자고 밥 먹고 휴식하는 것까지 이를 떠날 수는 없습니다. 天道를 공경하고 높여서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조심하고 두려워하는 일은 탕왕이 흥한 이유이며, 德을 없애고 威力을 사용하여 敬을 행할 것이 못된다고 한 것은 걸왕(桀王)과 주왕(紂王)의 망한 이유입니다. 歷代의 治亂과 興亡을 상고해 보아도 모두 이로 말미암아 나오게 되니, 이것은 敬이란 한 글자가 진실로 임금의 정치를 하는 근원입니다. 하물며, 지금 전하께서는 王位에 오른 초기에 基業을 세워 후세에 전하여 자손에게 계책을 끼치게 됨이 바로 오늘날에 있으며, 하늘이 吉凶을 명하고 歷年을 명함도 또한 오늘날에 있으니,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마음에 두고 거처하면서 上帝를 대한 듯이 하여 비록 일이 없을 때를 당하더라도 항상 상제께서 굽어보신 듯이 하며, 그 일에 응접할 즈음에는 더욱 그 생각의 맹동(萌動)을 삼가 한다면, 이 마음의 敬이 天心에 감동하여 至治를 일으킬 수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이 왕으로 세우셨으니 하나님 보시는 앞에서 행동하듯 정치하라는 간언이다.

 

나. 태조 2권 1년 10월 22일

…皇帝의 聖旨를 삼가 받았는데, 그 勅旨에, ‘天地의 사이에 백성들을 主宰하는 사람은 크고 작고 간에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는데, 혹은 興하기도 하고 혹은 敗亡하기도 하니, 어찌 우연한 일이겠는가? 上帝의 명령이 아니면 되지 않는 것이다. 그 三韓의 신민이 이미 이씨를 높이고 백성들에게 兵禍가 없으며 사람마다 각기 하늘의 樂을 즐기니, 곧 上帝의 명령이신 것이다…

 

明나라 황제의 <勅旨>에도 역사의 주관자가 上帝라는 내용이다.

 

다. 태조 4권 2년 7월 26일

시랑찬성사 정도전이 전문(箋文)을 올리었다. “주상 전하께서 잠저에 계실 때에, 꿈에 神人이 金尺을 받들고 하늘에서 왔는데…. 하님의 살피심이 심히 밝으셔서, 吉夢이 金尺에 맞으셨습니다…. 上帝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헤아려서 국가를 整齊하게 했으니, 꼭 맞은 그 증험은 天命을 받은 祥瑞입니다…."

 

태조의 꿈에 上帝께서 금으로 된 자를 하사하셨다는 꿈 얘기다.

 

라. 태종 4권 2년 7월 9일

처음에 예문관 직제학 정이오가 진양에 사는 文可學이란 사람이 術法이 있어 능히 비를 내리게 할 수 있다고 천거하여, 임금이 내관을 시켜 불러서, 역마를 타고 함께 이르렀다. 임금이 말하기를,“들으니 네가 능히 비를 내리게 할 수 있다고 하니, 나를 위하여 한번 (하님께) 비를 빌라.” 하였다. 이에 가학이 齋戒하고 사흘이면 반드시 비를 얻을 것이라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기한이 되어도 비가 오지 않았다. 임금이 사람을 시켜 가학에게 명하기를, “다시 致齋하는 것이 어떠하냐?” 하였다. 가학이 대궐에 나아가서 말하기를, “역마를 타고 급히 오느라고 정성과 공경이 부족하였으니, 다시 치재하게 하여 주소서.” 하였다. 이튿날 가학이 대궐에 나아가서 말하기를, “오늘 亥時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明日에는 큰 비가 내릴 것입니다.” 하였다. 亥時에 이르러 과연 비가 내리고, 이튿날 또 비가 왔다. 그러므로 가학에게 쌀과 옷을 내려 주었다. 가학이 일찍이 廣州에 있을 때에 봄이 가물어, 牧使가 가학이 능히 비를 내리게 할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청하였다. 가학이 사양하다가 굳이 청하므로, 가서 과연 비를 오게 하였다. 이렇게 한 것이 세 번이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매우 惑하였다. 그 술법을 물으니,“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王公· 大臣들이 가뭄을 근심하여 청하면, 내가 이 뜻을 上帝께 전할 뿐이다.”하였다.

 

<조선판 엘리야>의 비 내린 이야기다.

 

마. 태종 10권 5년 7월 7일

임금이 가뭄에 대해 자책하면서 求言하다…. 左司諫大夫 李垠 등이 아뢰기를, “災異를 그치게 하는 道는 마땅히 마음을 바르게 하고 上帝께 對越하여야만 感應하는 바가 반드시 速한 것입니다….

 

<주> 對越이란 이런 뜻이다.

詩曰. 上帝臨女하시니 無貳爾心이라 하고 又曰 無貳無虞하라 上帝臨女라 하니라.

『시경』에 이르길, "上帝께서 너를 굽어보시니 네 마음을 두 가지로 하지 말라.“하였고, 또 이르길 ”두 마음을 품지 말고 근심하지 말라. 上帝께서 너를 굽어보신다.“하였다.

程子曰, 毋不敬이면 可以對越上帝니라

정자가 말씀하였다. “공경스럽지 아니함이 없으면 上帝님을 마주할 수 있느니라.”

저 숲속을 보건대 굵은 나무섶과 잔 나무섶이 있도다. 백성들이 이제 막 위태롭거늘 하늘을 보건대 막막하여 밝지 못하도다. 하늘이 이미 정해짐이 있으면 사람을 이기지 못함이 없을 것이니 위대하신 上帝께서 누구를 미워하시리오 (小雅, 正月)

 

대월 1칙 : 自作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대월 2칙 :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것 만 한다.

대월 3칙 :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는 바를 항상 해드린다. <대월> 하나님이 내 앞에 계심을 성실히 의식하고 대월생활이 본성의 일부가 될 때까지 훈련을 반복한다.

 

 

천재지변 때에 왕이 하나님이 앞에 계시다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임해야 한다는 말이다.

 

바. 태종 13권 7년 5월 22일

가뭄이 심해 求言하니, 대사헌 성석인 등이 상소…. 어버이를 섬기는 것에 의하여 上帝 섬기는 기틀이 거의 달려 있는 것입니다. 만일 天心이 順해지면 陰陽이 和하고, 風雨가 때를 잃지 않을 것입니다….

 

자연재해 때 어버이를 섬기 듯 하나님을 섬기면 비바람이 때를 따라 좋아질 것이란다. 역시 ‘對越’하라는 간언이다.

 

사. 태종 19권 10년 6월 25일

知議政府事 黃喜를 보내어 圓壇에 비를 빌게 하였다. 황희가 원단에 이르러 香과 祝을 점고하여 보니, 昊天上帝의 祭文만 있고 五帝의 祭文은 없었다. 황희가 사람을 달려 보내 아뢰니, 임금이 노하여 여러 代言을 꾸짖기를,“어찌하여 不敬하기가 이와 같은 데까지 이르렀는가? 이와 같은 君臣의 才德으로 또 職事를 공경하고 조심하지 못하였으니, 어찌 하님의 應驗을 받겠는가? …."

 

아. 태종 11년 3월 17일

禮曹에서 圓壇의 祭儀를 올렸다. 예조에서 上書하기를,“《禮記》에 이르기를, ‘지극히 공경하면 壇을 묻지 아니하고 땅을 쓸고 祭祀한다.’ 하였고, 漢나라 元始 年間의 의식에는, ‘上帝의 圓壇은 팔방형八方形이니, 직경이 5丈에 높이가 9척이라.’하였고….삼가 圓壇의 제도를 살펴보면, 世代마다 각기 같지 않았습니다. 前朝 의 《古今詳定》에는 圓壇의 주위가 6丈으로 되어 있는데, 國朝에서 이것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둥근 제단인 圓壇 건축 규칙이다.

 

자. 태종 024 12/07/21 (갑진) 002

임금이…. 또 말하였다. “내가 부덕한 사람으로 삼가 대업을 이어 받으매, 오직 上帝께 어김을 얻을까 염려하였다…. 먼젓날 내 上帝께 고하기를,‘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내가 구하여서 얻은 것이 아니라, 바로 上帝께서 명한 것이니, 내가 만약 죄가 있다면 어찌하여 내 몸만 죄를 주지 아니합니까?’하였으니, 근일의 과인의 마음을 경 등이 어찌 다 알겠는가?”

왕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것이니 왕이 잘못했으면 왕만 벌하시지 백성까지 벌하시니 마음이 편치 않다는 말이다.

 

차. 세종 002 00/11/03 (기유) 007

하늘이 동방을 돌보아 上聖을 낳아 위태한 세상을 구제하였네. 太祖를 도와 고려를 대신하게 하고, 嫡長을 높여 天倫을 바루었네. 上帝의 명을 받아 君師가 되었으니, 多士가 도와 모든 공적이 빛나네.

 

카. 세종 002 00/11/08 (갑인) 001

“훌륭하신 上王이여, 성대한 덕과 높은 공이었다. 우리 성조를 도와서 東方을 保有하였다. 크게 上帝의 명을 받았으니, 宗社가 만년까지 전하리라.”

 

타. 세종 032 08/05/04 (정유) 003

圓壇에 비오기를 빌었다. 그 祭文에 말하기를, “이번 가뭄은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이르렀다. 이미 무더움이 극심하니 삼가고 두려움이 마음을 태우노라. 나의 덕이 착하지 못하므로 上帝께서 크게 노하사 굽어보시고 이에 견고(譴告)함이 엄하시니, 대개 仁愛가 심히 깊으신 까닭이다. 스스로 반성하고 스스로 꾸짖으니, 五事의 常道를 지키는 데에 어두웠도다. 아아, 하늘과 사람은 본래 한 기운이니, 지성이면 반드시 이른다는데, 한 생각이 上帝의 마음에 통달하니, 진실로 조그만치도 사이가 없었도다. 과실을 용서하고 죄를 용서하사, 비가 세차게 퍼붓기를 바라며, 여러 마른 초목을 소생하게 하여, 億兆의 백성이 다 화목하게 되기를 빕니다.” 하였다.

 

 

 

4. 世宗上帝께 올리는 祈禱

 

세종 036 09/06/14 (신미)

원단 기우제에 쓸 향과 축문을 친히 전하다. 임금이 遠遊冠, 絳紗布 차림으로 근정전의 月臺 幕次에 나아가 圓壇 기우제에 쓸 향과 축문을 친히 전하였다. 昊天上帝께 제사하는 글에 이르기를;

 

“아아, 하님은 陰陽五行으로 만물을 생성하시니, 그러므로 하늘과 땅은 오직 만물의 부모라고 합니다. 대개 부모는 자식에게 이로운 데로 인도하고 해로운 데를 피하도록 하려고 아니하는 일이 없으니, 비 오고 볕 나고, 덥고 춥고, 바람 불고 하는 것이 春夏秋冬에 서로 교대하여, 천하의 물건들이 크나 작으나, 굵으나 자나 모두 그 삶을 완수하나니, 《周易》에 이르기를,‘天道의 변화로 모든 것이 생명을 바로 가지며, 구름이 다니고 비가 내리어 각종 물건이 형태를 갖춘다.’함이 이를 이른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하님의 명령을 받아 억조의 인민을 다스리는 자는 임금이온대, 사람의 일이 아래에서 감동하면 하늘의 변화가 위해서 응하는 것이어서, 〈洪範〉에 말한 것처럼 공손히 하며[肅], 평안히 하며[乂], 밝게 하며[哲], 신중히 하며[謀], 성스럽게 하면, 그 감응은 비[雨]와 볕[暘]과 더위[燠]와 추위[寒]와 바람[風]이 때맞추어 순조롭게 되고, 광망하며[狂], 참람하며[僭], 게을리 하며[豫], 조급히 굴고[急], 몽매하게 되면[蒙], 그 결과는 좋지 않은 징조가 곧 나타나게 됩니다. 이제 더위가 다 가는 유월달에 있어서 한재가 극심함을 당하오니, 허물이 실로 나에게 있고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필연코 형벌 정책이 바로 되지 못하여, 죄 있는 자가 잘못 용서를 받고 무죄한 자가 도리어 화를 입게 되어, 쓸 사람과 버릴 사람이 당치 못하게 바뀌고, 충성하고 바른 말 하는 이가 소홀함을 당하며, 총명의 길이 막히어 아랫사람의 사정이 윗사람에게 통하지 못하며, 법령이 어지럽게 변경되어 관리들이 준수하기에 어두우며, 또 더군다나, 눈으로 미처 보지 못하고 귀로 미처 듣지 못한 중에서 광범한 여러 고을들과 수많은 여러 백성들이 고르지 못한 부역으로 괴로움을 당하고, 번다한 납세에 쪼들리어 원망과 한탄이 일어나고, 평화로운 기분이 상하게 된 자가 얼마나 되는지 헤아릴 수 없으니, 이는 다 나의 부덕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속으로 반성하여 스스로 자책하기를 금할 수 없나이다. 내가 성현의 글을 읽어서 대강 임금 도리의 당연히 할 바를 알고, 깊이 역대 국가의 성하고 쇠함을 거울삼아서, 거의 주색에 빠지거나 사냥을 일삼거나, 재물을 남용하여 백성을 해치거나, 병사에 전력하여 무위를 더럽히거나 하기에는 이르지 아니하고, 오직 대국을 예의로써 대접하고 신명을 정성으로써 받들며, 제 몸 기르기에는 박하게 하고 백성 구제하기에는 돈독하게 하며, 정사에는 부지런하고 형벌에는 조심하여, 한 마디 말과 한 가지 동작에도 호령을 내리고 법령을 시행할 때에 이르기까지 다 그 분수에 맞게 하여, 위로는 하님이 내리신 무거운 책임을 저버리지 아니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이 우러러 받드는 全一한 마음을 위로하고자 할 뿐이오니, 틈틈이 생각나는 나의 심회는 하님이 실로 굽어 살피실 것이옵니다. 그러나 기품과 물욕이 서로 엇갈리고 학문과 수양이 미치지 못하는데, 어찌 능히 그 일상의 언동하는 가운데에 모두 꼭꼭 〈이치에〉 들어맞게 하여 하님 뜻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게 하겠으며, 더구나 능히 진실한 마음으로 하님을 섬기며 겸손한 마음으로 上帝를 섬기기에 조심조심 전념하여 밝은 정신으로 잠시도 쉬지 않고 온종일 모시기만 하겠나이까. 당연히 上帝의 꾸지람이 깊으실 것이니 또 누구를 허물하겠나이까. 그러나 비록 하님의 총명은 곧 민중의 총명으로 말미암아 위와 아래가 서로 통하여 간격이 없는 것이니, 그러므로 한 개인이라도 실망이 된 일이 있을 때에는 오히려 하님을 부르게 되거든, 하물며 한 국가에 임금이 되어서 억조의 민중을 통솔하는 자이야 어떠하겠으며, 또 하물며 자식으로서 아비에 대하여 진실로 정의가 있다면 어찌 저의 어질고 어질지 못함을 계교하여 구원해 주기를 청하지 아니할 것이며, 또 더구나 나 한 사람으로 인하여 만물들이 모두 시르죽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면 어찌 하님의 마음인들 편하게 될 것입니까. 이번의 한재가 사뭇 이처럼 극도에 이르기에 일찍이 산천과 사직에까지 기도하고, 또 일찍이 부모와 조상에게도 고하였으나, 끝내 효과가 없어서 근심된 마음이 극도로 답답하여 가슴이 타고 애가 달아, 밥을 대하여도 먹히지 않고 자리에 누웠다가 도로 일어나곤 하여 더욱 더욱 안타깝고 송구한 지가 여러 날이 되오니, 어찌 속에 있는 대로 쏟아서 하님께 소상히 고하여 도와주시기를 빌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이에 약소한 제물을 올리면서 어린 회포를 진술하오니, 엎드려 생각하건대 昊天上帝께서 나의 쌓인 정성을 살피시고 나의 서정하는 말씀을 굽어보셔서, 잘못된 허물을 용서하시고 애련한 생각을 특히 내리시어, 흐뭇하게 비를 주심으로써 모든 마른 것을 소생시키며 여러 가지 곡식도 잘 되게 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백성들과 억만의 생명으로 날짐승 물고기들 여러 종류에 이르기까지 다 살아 자랄 수 있도록 하여 주시면, 지극한 소원이 여기에 더 할 것이 없겠나이다.” 하였는데, 판부사 卞季良이 지은 글이다.

 

가. 세종 040 10/04/06 (정해)

공조에서 啓하기를,“昭格殿· 太一殿은 神位는 많고 殿이 작으니, 청하건대 개축하게 하소서.”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하늘에 계시는 上帝께서 下世의 여염 사이에 강림하기를 즐겨하시겠는가. 이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풍년을 기다려 짓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나. 세종 047 12/02/19 (경인) 005

圓壇의 제사는 곧 圜丘이니, 上帝께 제사지내는 禮입니다.

 

우리나라의 환구단

 

<주>

환구단(圜丘壇)은 天子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단壇이다. 원구단(圓丘壇)이라고도 하는데, 예로부터 天圓地方이라 하여 하늘에 제사지내는 단은 둥글게, 땅에 제사지내는 단은 모나게 쌓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사적 157호로 지정된 환구단은 고종 대에 있었던 환구단 터로, 서울시 중구 소공동에 위치한 조선호텔 자리이다. 1897년(고종 광무 원년), 러시아 공사관에서 경운궁으로 환궁한 고종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선포하고 환구단에 나아가 천지에 고하는 제사를 드린 후 황제에 즉위했다

 

다. 세종 048 12/05/15 (갑인)

임금이 좌우 近臣에게 이르기를,“近日에 地震이 심히 많고 날씨가 아직 추운데, 고기 잡는 船軍이 많이 빠져 죽고, 밀· 보리가 잘 자라지 못하여 백성들이 굶주린 빛이 있어, 이와 같이 재변이 많으니 上帝께 빌고 제사하는 禮가 없을까.”하니, 좌우 여러 신하들이 대답하는 이가 있지 아니하였다.

 

라. 세종 064 16/04/01 (무신)

영의정 황희가 百官을 거느리고 甘露가 내렸음을 致賀하는 箋을 올리었다. 그 箋文에 이르기를, "…. 교화가 하늘의 공덕을 몸받으시매, 祭祀가 上帝께 올라가 감동하게 되었고, 덕이 높아 착한 정사를 하시매, 恩澤이 下民에게까지 젖었사오므로, 이제 先陵에 배알하시는 날 새벽에 바로 진액이 흘러내리는 祥瑞가 있어 소나무에 맺혔고, 달기가 엿맛과 같았나이다…."

 

마. 세종 088 22/02/27 (경자) 002

昭格殿提擧인 禮賓寺尹 李賀가 上言하기를, “소격전은 上帝께 기도하고 제사지내는 곳이니, 진실로 마땅히 嚴肅하고 깨끗하고 조용하게 할 것이며, 더럽히고 소란하게 할 수 없사옵니다…."

 

바. 세종 113 28/07/16 (임오) 004

"….거룩하신 上帝께서 우리 聖王을 돌보시어, 이에 배필을 지으시고 그 상서를 정하셨습니다…."

 

사. 세종 116 29/06/04 (을축) 001

"…. 功德과 業績이 赫赫하게 빛나시되 돈독하신 사양이 아아 더욱 도타우셨네. 上帝의 명령을 어기시지 못하와 마침내 보배자리에 응하셨도다. 天命을 받으심이 이미 평안하시매 억만세 길이길이 百福을 부리시리.” "…. 아름다운 운명이여, 우리의 깃발이 도로 돌아옴은 上帝의 명령에 순응함이신져…." “아름답도다. 거룩하신 太祖께서 큰 덕을 널리 베푸시매, 움직이는 대로 큰 感應이 있으니, 上帝께서 인도하심이로다. 威化島에 軍士를 머무를 때에 물이 불어 넘칠 것을, 하늘의 도움이 아니고야 뉘 능히 막을까마는, 우리 軍士가 떠나자마자 온 섬이 곧 잠기었네. 막힘을 통하여 세상을 구제할 때 上帝의 명령이 빛나도다.” "신령한 동물이 나타나서 아름다운 상서를 보이니, 신기한 광채가 방에 비쳐 찬란한 무늬가 빛나도다. 上帝의 명령이 크게 나타나니 우리의 복받음이 실로 도탑도다…."

 

마치면서:우리 민족이 古代부터 하님을 믿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福音이 불과 100년 만에 온 나라에 퍼진 것이라 생각하니 너무나도 感慨無量하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