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꽁이의 찬양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해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사도들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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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고고학

2013. 3. 17.

사도들의 생애   

2009/12/19 23:09

 
출처:http://blog.chosun.com/gogli/4389399   

<에베소에 있는 사도 요한의 무덤>

 

 

 

 

마태

 

마태는 레위라고도 불렸으며 마가복음 2 14절에서는 알패오의 아들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전에는 세리였으나 후에는 사도가 되었으며 A.D. 37-40년경에 마태복음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는 본래 가버나움의 세리였는데, 어느 날 그가 세관에 앉아서 직무를 수행하고 있을 때 주님이 그에게 와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좇으라"( 2:14)고 하시니 그는 즉시 그의 직무를 버리고 주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후에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세리들과 죄인들을 초대하여 주님의 복음을 듣도록 했었습니다. 그는 후에 마태복음을 기록하였습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마태는 초기에 팔레스타인 일대에서 복음을 전했고 나중에는 또한 애굽, 구스, 마게도냐, 바대 등 지역에서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어떤사람은 그가 A.D.60년경에 에디오피아에서 순교하였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그가 늙어서 죽었다고 합니다.

 

요한

 

요한은 야고보와 형제로서 "보아너게" 즉 우뢰의 아들이란 별명을 가졌는데 이것은 그의 과격한 성격 때문인 듯 합니다. 그는 뱃새다 출신으로서 어부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던 제자로서,  베드로, 야고보와 더불어 예수의 측근자였으며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예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그는 요한복음과 요한서신서(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를 썼으며, 말년에는 로마제국의 도미시안 황제에  의하여 밧모섬에 유배되어가서 요한계시록을 썼습니다.  그 후 로마의 트라얀(Trajan) 황제는 요한이 밧모섬을 떠나서 에베소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소아시아 태생으로 요한의 제자인 이레니우스(Irenaeus)는 요한이 A.D. 98년까지 에베소에서 살았다고 말했습니다. 지금도 에베소에는 요한의 무덤으로 알려진 곳이 있습니다.

 

야고보

세베대의 아들로서 위에서 소개한 요한과 형제입니다. 예수님의 형제인 야고보와 구분하여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로 부릅니다. 그는 그의 아우 요한과 같이  갈릴리 해변에서 어부 생활을 하다가  베드로의 형제와 같이 예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주후 44년에 헤롯왕에게 죽임을 당하므로서 사도들 중에 첫번 째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베드로

 

벳세다 사람  요나의 아들로서  안드레의 형제이며, 그의  본명은 시몬입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어부로 살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반석이라는 의미를 가진 아람어의게바라는 새 이름을 주셨는데,  그 이름을 헬라어로 번역하면 베드로입니다. 그는 주님을 배반하지 않는다고 선두에서 맹세하고도 주님을 세번씩이나 부인하였으며, 바다위를 걸어 주님에게 가다가 풍랑을 보고 무서워 하기도 하였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예언하실 때 그런 일을 하지 말라고 간하다가 책망을 받았으며, 변화산에 올라가서 장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에게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주고 내려가지 말고 여기서 그대로 살자고 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부활 승천 후 오순절의 성령강림사건 후 전도하여 하루에 수천명의 세례를 받았으며, 많은 기사와 이적을 행하였습니다. 그는 베드로 전후서를 기록하였으며,  후에 네로황제의 때에 로마에서 순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히에라볼리(파묵칼레)에 있는 빌립기념교회>

 

오늘도 지난 글에 이어서 사도들의 생애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은 안드레(Andrew)와 빌립(Phillip), 그리고 시몬(Simon)에 대하여 배우려고 합니다. 그중 안드레와 빌립은 오늘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안드레

 

베드로의 형제인 안드레는 갈릴리 호수가의 뱃새다 출신의 어부였습니다. 그는 처음에  세례요한의 제자가 되었다가 선생으로부터 예수의 일을 듣고 예수를 따랐습니다. 그는 형제 베드로를 예수님에게로 인도하였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있을 때에 예수님에게 어린 소년의 도시락을 예수님에게 가져온 사람이 안드레입니다.   A.D. 260년대 초에 팔레스틴에서 태어난 유명한 역사가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Eusebius of Caesares)의 유명한 책 ‘History of the Church’에 소개된 안드레에 대한 기록을 보면 그는  에베소 지방에서 열심히 전도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가롯유다 대신 제자로 뽑힌 맛디아가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구하려고 지금의 러시아의 남부지방인 흑해연안의  스구디아에 도착하여 맏디아를 구출하고, 그 지역의 사람들도 전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스구디아와 비잔티움에 교회를 세우기까지 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비잔티움은 지금의 이스탄불의 옛 이름입니다. 본래 비잔티움(Byzantium)이라는 이름의 고대도시는 로마시대에 콘스탄틴황제에 의해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고, 오스만 터어키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이스탄불(Istanbul)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것입니다.) 다른 기록에 의하면 그후에 안드레는 지금의 그리스의 북부 지방인 마케도니아에서, 그리고 남부 도시인 고린도에서 전도하였으며, 당시 그곳의 로마총독의 부인까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일로 인하여 결국 그 지역의 총독에 의해 X형의 십자가에 묶어서 죽게 하였다고 합니다.

 

빌립

 

사도 빌립은 안드레의 친구로서 그도 역시 갈릴리 호수가의 뱃새다 출신입니다. 그는 성경의 초대 일곱집사 중의 한 사람인 빌립 집사와는 다른 인물입니다. 사도 빌립은 안드레와 함께 제자로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제자로서, 나다나엘을 예수님에게로 인도하였던 인물입니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빌립은 열심으로 복음을 전파하다가 히에라볼리에서 순교 했다고합니다. 히에라볼리(Hierapolis)는 지금의 터키의 중부지방에 위치하고 있으며, 라오디게아와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현재의 이름은 파묵칼레로서 유명한 온천지입니다. 그곳에는 빌립을 기념하는 빌립기념교회의 유적이 남아있습니다.  

 

시몬

 

열 두 사도 가운데는 잘 알려진 시몬 베드로와 잘 알려지지 않은 셀롯 시몬 두 사람의 시몬이 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사도들의 이름이 나열될 때 언급되는 그의 이름 외에는 셀롯 시몬의 개인적인 기록이 거의 없습니다. 성경은 그를 소개할 때 가나안인 시몬, 혹은 셀롯 시몬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나안인 이라는 표현은 그의 출신지명을 담고 있는 것이라면, 셀롯이라는 말은 열심당이라는 말입니다. 당시 유대사회에는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 외에 셀롯, 즉 열심당이라는 이름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로마제국시대에 갈릴리 태생 유다가 궁궐을 습격하고 병기고를 부수어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무장시켜 유혈폭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결국 유다는 살해되었으며,  셀롯이라고 알려진 파가 생겨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해 근처의 마사다에서 마지막까지 로마군에 항거하다가 죽은 사람들이 바로 이 열심당원들이라고 합니다.

 

 

 

<도마의 무덤이 있다는 인도의 Mylapore)

 

오늘도 지난 글에 이어서 사도들의 생애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은 도마와 바돌로매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도마(Tomas)

 

헬라식 이름으로디두모라고도 불리우는 도마는 쌍둥이라는 이름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는 예수님의 열 두 제자 가운데 가장 의심이 많았던 제자로 알려져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  제자로 부르심을 받게 된 경위는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갈릴리 출신의 어부였던 도마는 열정적이면서도 이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도마는 예수님께서 병든 나사로를 방문하시려고 할 때 다른 모든 제자들의 반대에 맞서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말한 것을 보면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위험이라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었던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의 처참한 죽음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완성하실 예수님의 길을 알지 못하는 도마는 다른 제자들과 같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을 등지고 도망치는 한계를 보였습니다.  그 후 예수님을 잃고 슬픔에 잠겨 있던 도마는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동료들의 말을 믿지 못하고 자신의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손으로 만져보지 않고 믿을 수 없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며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신앙고백을 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그의 사역과 생애에 관하여는 그 이후 성경의 기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3세기의 교회사가인 유세비우스와 제롬 등의 기록에 의하면 도마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있던 날 성령충만함을 받고 A.D.52년부터 20년간 인도에가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순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인도의 남동쪽 해안도시인 Mylapore에는 도마의 무덤으로 알려진 곳이 있으며, 그 곳에 도마를 기념하는 교회당이 세워져 있기도 합니다.

 

나다나엘(Nathanael)

 

돌로매의 아들이란 뜻의  라는 바돌로매(Bartholomew)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는 나다나엘은 그 이름의 뜻이 하나님의 선물이란 뜻입니다. 갈릴리의 작은 마을 가나출신인 나다나엘은 어느날 절친한 친구 빌립으로부터 나사렛 예수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만난 예수가 메시아라는 빌립의 말을 나다나엘은 믿을 수가 없었으나 와 보라는 빌립의 강력한 권유에 나다나엘 은 선뜻 따라 나섰다. 빌립의 인도로 예수님과 대면하는 순간 나다나엘은 모든 의혹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생면부지의 사람과의 첫 대면이었음에도 한눈에 자신의 중심을 꿰뚫어 보시는 예수님 앞에 나다나엘은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간사함이 없고 순수한 사람으로 평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에게 항상 기도의 응답을 주실 것과 더불어 장차 임할 하나님 나라를 보게 될 것이라는 축복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기쁨과 감격 속에 신앙고백을 하였습니다.  이후로 나다나엘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깨서 가시는 곳마다 동행하였으나 다른 제자들처럼 죽음의 길로 가는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치는나약한 존재였습니다. 삼년 반 동안이나 함께 생활하며 의지해온 예수님을 잃고 슬픔과 놀라움에 잠긴 채 나다나엘은 다른 여섯 명의 제자들과 디베랴 바닷가에서 고기를 낚으며 절망의 나달을 보내던 어느날 새벽에 밤새도록 한 마리의 물고기도 낚지 못하여 실망한 제자들 앞에 나타나신 부활의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 후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마가의 다락방에서 다른 제자들과 뜨겁게 기도하던 중 성령충만함을 받고 사도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의 그 후의 사역과 죽음에 대하여는 성경에 언급이 없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다가 순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필자는 지난 3회에 걸쳐서 사도들의 생애를 소개했습니다.  오늘도 사도들 유다라고도 불리는 다대오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그리고 가룟 유다를 대신하여 사도가 맛디아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다대오(Thaddaeus)

 

칭찬하다혹은 상냥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그의 이름은 유다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의 아들로서, 신약성경 유다서를 기록한 인물입니다. 사람들에게 가룟 유다는 잘알아도 유다 다대오 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잘 알려 져 있지 않습니다. (참고로 가룟 유다를 계기로 성경의 이름을 이해하기 위해 잠시 언급해 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을 배반한 가룟 유다는 가룟이라는 마을 출신의 유다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시신을 장사지낸 아리마대 요셉의 경우도 아리마대 마을 출신의 요셉을 가리키는 것이며, 막달라 마리아도 막달라 마을 출신의 마리아를 의미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었던 구레네 시몬도 역시 북 아프리카의 구레네에서 온 시몬인 것입니다.) 유다 다대오의 행적은 요한복음 1422절에서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라는 질문이 성경에 유다에 대해서 나온 전부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그는 유대, 사마리아, 이두메, 리비아, 수리아, 그리고 메소포미아에서 전도하고 페르시아에서 순교하였다고 합니다.


야고보(James)

 

성경에는 여러 명의 야고보가 나옵니다. 열 두 제자들 중에도 두 명의 야고보가 나오는데 우선 가장 많이 알려진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가 있습니다. 성경은 이들은 구별할 때 그들이 부친의 이름을 사용하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를 큰 야고보,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를 작은 야고보로 부르기도 합니다. 작다는 구분은 그의 키와 나이를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도 있습니다. 신약성경 야고보서의 저자에 대하여 여러 주장이 있지만, 많은 성경학자들은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를 그 저자로 추정합니다. 그러나 그는 사도에 속하지는 않았습니다. 사도인 작은 야고보는 예루살렘 최초의 감독이었으며, 역사가 유세비우스의 기록에 의하면 A.D. 62년경에 예루살렘에서 순교하였다고 합니다.

 

맛디아(Mathias)

 

맛디아는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 제자들이 모여서 가룟 유다를 대신하여 뽑은 인물입니다.

사람들은 유스도라고 알려져 있고 바사바라고도 불리는 요셉과 맛디아 두 사람을 추천했습니다.

그 때, 사도들은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십니다. 주님께서는 이 두 사람 중 누구를 선택하셨습니까? 자기 직분을 떠나 자기가 원래 속했던 곳으로 간 유다를 대신해서 이 사도의 직분을 맡을 사람이 누구인지를 저희에게 보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마친 후, 제비를 뽑아 보니 맛디아가 뽑혔습니다. 이 때부터 맛디아는 다른 열한 사도와 함께 사도가 되었습니다. 성경에서는 그의 행적에 대한 기록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맛디아도 A.D. 70년에 순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사도라는 말의 원어의 뜻은 보냄받은 자입니다. 즉 주님에 의해 세상에 보냄받은 제자들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에서 사도로 불리운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직접 부르심을 받은 12제자들었습니다. 12제자 중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하고 자살하였으므로 사도가 되지 못하였고, 그 대신 맛디아를 뽑아 12사도의 수에 포함하게 되었습니다. 그 외에 핍박자였던 사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음성을 듣고서 변화되어서 전도자가 되면서 초대교회는 그를 사도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후에 사도 바울이 된 그는 가장 많은 성경을 기록한 인물이며, 이방인들을 위해 가장 먼저 복음을 전하였던 위대한 선교사이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사도 바울에 대하여 간단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바울은 유대인으로서 베냐민지파 출신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12지파는 분열왕국시대에 남쪽의 유다지파와 베냐민지파로 구성된 유대왕국과 나머지 10지파의 이스라엘왕국으로 나뉘었습니다. 그 후 남 유대왕국의 사람들을 유대인으로 부르게 되었으며, 남 유대왕국에 속해 살던 베냐민지파나 레위지파 등도 유대인으로 호칭되었습니다. 그리고 북 이스라엘에 속했던 나머지 사람들은 사마리아인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자신이 베냐민지파에 속하였다고 말한 것은 유대인들이 유대지파와 함께 자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또한 길리기아 지방의 다소 출신입니다. 길리기아란 소아시아반도, 즉 지금의 터키의 동남부지방의 이름입니다. 그곳에 다소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당시 로마제국의 영토였던 그곳으로 언제 그의 가족이 이주하였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이스라엘 민족은 나라가 망한지 오백여년이 지나는 동안 곳곳에 흩어져서 살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나면서부터 로마의 시민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로마제국내에서 로마의 시민권은 대우를 받는 신분이었으며, 식민지의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또한 당시 유명한 율법학자인 가말리엘에게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갈릴리 호수의 어부였던 베드로와 같은 제자들과 비교하여 그는 많은 학식을 갖춘 인물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당시 유대교의 정통파를 자부하는 바리새파에 속한 자로서 신앙생활에 매우 열심인 자였습니다. 그런 열심은 그로 하여금 스데반 집사를 죽이는 현장에 있게 하였으며,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다메섹까지 기독교인들을 잡아들이기 위해 찾아가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회심하여 오히려 전도자가 되어 초대교회의 지도자 중에 한사람인 사도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최초의 이방인 교회인 안디옥교회로부터 선교를 위해 파송을 받았습니다. 그 안디옥은 지금 터키 영토로서 레바논과 접경지대에 있는 안티키아입니다. 바울은 1, 2, 그리고 3차 선교여행을 통해 소아시아지방과 유럽의 마케도니아지방, 헬라반도, 그리고  필로폰네소스반도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즉 당시로는 역사와 문명의 중심지인 아시아와 유럽의 땅에 복음을 전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을 찾아가 복음을 전하였으며, 비유대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여 곳곳에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3차 선교여행을 마친 후 그가 바라던 당시 세계의 중심지라고 여겨지던 로마시에 복음을 전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로마 황제에게 재판을 받기 위한 모양이었지만 그는 기쁨으로 그 길을 갔던 것입니다. 그는 로마에서 재판을 기다리며 연금된 상태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을 만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옥중서신이라고 불리는 네 권의 성경,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그리고 빌레몬서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당시에 일어난 로마의 대화재로 인한 네로의 기독교인 핍박의 때에 로마에서 순교하였다고 전하여집니다.

 

그동안 아브라함의 족장시대로부터 사도시대까지 진행한 성경과 세계사는이번 글로 마치게 됩니다. 이 글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다음에 연재될 <교회와 세계사>에서 다시 만나기를 바랍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