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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쇠를 가진 자, 권력을 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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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6. 5.

 

  무쇠를 가진 자, 권력을 잡다 

이영희 지음 / 현암사

 

“신라 시조 박혁거세는 제철왕이었다.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다. ‘박’은 성이다. <삼국사기>에는 ‘박혁거세는 알에서 태어났는데 알 모양이 박을 닮았다 하여 박이라는 성을 붙였다’고 나온다. 그러나 사실 그의 성 ‘박’은 밝다는 뜻의 ‘밝’을 한자로 표기한 순수 우리말 성씨다.”

 

<무쇠를 가진 자, 권력을 잡다>의 첫 구절이다. 저자인 이영희 포스코 인재개발원 교수는 이 책에서 “박혁거세와 고구려 시조 고주몽 등 우리 역사의 시조들은 알에서 태어난 이가 많은데 알은 무쇠를 의미하는 단어”라고 강조한다.

 

당시의 무쇠는 강모래에서 거른 사철(砂鐵)로 만들었고, 옛사람들은 이 모래 무쇠를 작은 알갱이처럼 생겼다 하여 ‘알’이라 불렀으며, 따라서 박혁거세나 고주몽 등은 제철 기술자 혹은 제철 집안 사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는 박혁거세의 ‘거세’도 이름이 아니라 관직명으로 ‘무쇠 거르기’를 뜻한다면서 ‘거’는 거른다는 뜻의 옛말이고 ‘세’는 무쇠의 옛 소리라고 설명한다. 박혁거세의 왕호 ‘거서간’도 ‘거서’ ‘거세’와 같으며 ‘간’은 왕을 뜻하므로 ‘거서간’은 ‘무쇠 거르기 왕’, 즉 제철왕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덧붙인다. 그는 이를 통해 우리나라의 철기문화와 제철산업이 오래전부터 융성했으며 ‘무쇠’는 권력의 근원이었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박혁거세, 무쇠 거르는 제철왕

 

1300년 전 100만명의 인구를 자랑하던 신라의 서라벌은 세계 4대 도시에 꼽힐 정도로 큰 도시였으며 그 번영의 바탕은 당시의 최첨단 기술인 무쇠 제조 기술이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무쇠는 농업과 생활, 전쟁 등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그러나 우리 역사서에는 무쇠와 관련된 이야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왜 그랬을까.

그는 무쇠 제조술이 국가의 기밀사항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상세한 기록을 남기지 않고 은유적인 이야기나 설화에 빗대 구전했다는 것이다.

 

그는 전국 각지에 남아 있는 ‘솟대’는 제철소를 상징하던 표지였고 단군신화도 부족 간에 제철 기술을 전달하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솟대’가 있던 ‘소도’는 단순히 제사를 드리던 제사 터가 아니라 제철 작업이 이루어지던 제철 터였고, 여기에 세웠던 솟대는 제철소를 알리는 표지판이었으며, 솟대에 깎아 앉히던 오리는 무쇠와 동일시되던 새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개국 신화로 알려져 있는 단군신화와 제철 기술 전달은 어떤 연관을 갖는 걸까.

곰과 호랑이는 맥 부족과 예 부족을 의미하는데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한 것은 철기 도구를 사용하고자 한 것이다. 무쇠 제조 기술이 없던 맥 부족과 예 부족은 환웅에게 기술의 전수를 간청하고 환웅은 백일 동안의 훈련을 제시했는데, 이 훈련을 통과한 맥 부족에게 제철 기술을 전달했다는 이야기다.

 

그는 또 우리나라의 도깨비와 일본의 ‘오니’를 연계시킨다. 그에 따르면 우리의 도깨비는 제철 기술자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도깨비의 옛말인 ‘돗가비’는 거인을 뜻하는 말이었고 신라에서 도깨비를 부르던 ‘두두리’는 바로 단조 기술자를 이르는 말이다. 일본의 도깨비라 할 수 있는 오니 역시 제철소에서 일하던 이를 상징한다.

 

특히 포항과 관련된 이야기가 관심을 모은다. 박혁거세의 왕비 이름 ‘아리영’은 형산강과 알천(현 북천)이 만나는 사량리(옛 사도리)의 제철소 터에서 자란 딸을 뜻한다. 신라 2대 남해왕의 왕비 ‘운제’가 기우제를 지내던 포항의 운제산과 비학산도 쇠가 많이 나는 산이다.

 

 

 

포항 일월지는 고대 제철 용수지

 

<삼국유사>에 나오는 ‘연오랑과 세오녀’ 얘기 또한 의미심장하다. 이들이 일본으로 가서 왕과 왕비가 되자 신라에서 해와 달의 광채가 사라졌는데, 사신들이 돌아와 줄 것을 청했으나 오지 않고 세오녀가 짠 비단을 줘서 갖고 와 제사를 지냈더니 해와 달이 예전처럼 빛났다는 내용이다.

 

그 비단으로 제사 지낸 곳을 영일현 또는 도기야라 불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영일현은 포항시의 옛 지명으로 ‘해맞이 고을’이라는 뜻. 도기야는 ‘달 벌판’이라는 뜻의 포항시 도구동을 가리키는 옛 지명이다. ‘도기’와 ‘도구’는 모두 달을 의미한다.

 

저자는 “연오랑은 무쇠를 갈아 칼을 만드는 단야장이었고 세오녀는 제철 집단의 우두머리였다”며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는 것은 철 제조공정의 불이 꺼졌다는 의미이고, 일월이 예전같이 돌아왔다는 것은 고로에 불이 지펴졌다는 의미”라고 풀이한다. 제철의 불을 지피는 화입(火入)에 앞서 제사를 지내는 것은 필수적인 절차였으니 더욱 놀라운 일이다. 게다가 포항의 일월지(日月池)도 고대의 제철 용수지였다고 한다.

 

일본의 ‘제철신’도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이었다. 백제 시조 온조왕의 형 비류에 비견되는 일본의 제철신 ‘스사노오’가 대표적인 예다. 이 이름을 일본인들은 뜻도 모르고 쓴다. 그런데 비류왕의 어머니인 고구려 소서노 왕비의 이름과 흡사하다. 이를 풀이하면 소서노는 ‘사철(砂鐵)의 들’이고 스사노오는 ‘사철 들판의 사나이’라는 뜻이다.

 

<일본서기> 신화편 첫머리에 나오는 신 ‘으마시아시가비’의 뜻도 일본인들은 모른다. 왜 그럴까. 일본 신 이름의 태반이 우리 옛말이기 때문이다. ‘으마시’는 ‘어머니’라는 신라말로 고위층을 가리키는 뜻도 가졌다. ‘아시’는 ‘최고의 무쇠’, ‘가비’는 ‘칼을 갈다’는 뜻이므로 ‘으마시아시가비’는 ‘최고의 무쇠로 칼을 가는 어미(우두머리)’라는 의미다.

 

저자는 이처럼 흥미진진한 얘기를 펼쳐 보이면서 “무쇠를 빼놓고 우리 고대사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한다. 우리 고대사의 중심에 ‘무쇠’라는 키워드가 있었고, 그 무쇠를 얼마나 읽어 내느냐가 고대사 이해의 관건이라는 것이다.

 

그는 “한국과 일본의 고대어에 관심을 두고 언어의 변화를 연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중심에 무쇠가 있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고대어의 어원을 통해 한국과 일본의 말이 서로 같은 뿌리에서 나왔음을 발견하게 됐고, 그 어원의 유래를 따라가다 양국 고대사의 비밀을 파헤치게 됐다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 말은 같은 뿌리

 

“무쇠를 통해 보는 우리 고대사는 흥미진진하다. 당시로서는 최첨단 기술인 무쇠 제조 기술을 가진 이는 권력의 중심에 설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무쇠 제조 기술은 권력 다툼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또한 제철 세력들이 일본으로 진출하면서 일본에 제철 기술을 전하기도 했다. 무쇠를 통해 역사를 보면 쉽게 눈에 띄지 않았던 우리 역사의 진실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다.”

 

인류문명과 산업혁명의 원동력인 무쇠. 제 몸을 녹여 새로운 철기로 되살아나는 무쇠는 인간의 행복과도 직결된다. 무쇠 도구를 가리키는 우리의 옛말 ‘사치’가 일본으로 건너가 행복을 의미하는 단어가 됐다는 저자의 마지막 문장에 밑줄을 긋고 싶다.

 

고두현<시인·한국경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