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꽁이의 찬양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해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기독교, 한국문화 근대화 ‘보물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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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 전래사

2013. 6. 10.

기독교, 한국문화 근대화 ‘보물창고’
문화재청 ‘근대문화유산’ 목록에 오른
한국교회 음악유물들

 

   
  ▲ 배재학당 설립자인 아펜젤러 선교사가 한국에 올 때 가져온 것으로 알려진 배재학당 피아노.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피아노이다.  
문화재청이 올해 근대문화유산 음악유물 목록화 조사 사업을 벌여, 최근 총 208편의 유물을 목록화한 가운데, 이 중 양악분야에 해당하는 49점의 유물 대부분이 개신교와 직간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개화기부터 해방 전후까지 기간에 생성된 역사적 유물들을 근대문화유산이라는 이름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기 시작한 2001년 이후, 한국 기독교는 상당수의 역사적 유물들을 근대문화유산으로 보유하게 됐다. 특히 2005년에는 서대문 한국기독교장로회 선교교육원, 광주 수피아학교 수피아홀, 목포 양동교회당 등 개신교 건축물이 무더기로 근대문화유산에 지정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9년 의료분야에 이어, 금번 음악분야에까지 기독교 관련 유물들이 대거 목록에 오름에 따라 한국기독교는 앞으로 미술, 체육, 교육, 종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문화재가 양산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불교 등 타종교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문화재 보유기록을 세우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됐다. 본 지면에서는 금번에 음악유물 목록화에 등재된 기독교 유물들의 구체적 내용들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양악분야 49점 유물 대부분 개신교와 깊은 관련
2001년 보호정책 이후 상당수 역사유물 보유


배재학당 피아노

   

배재학당 피아노는 이 학교의 설립자인 아펜젤러 선교사가 한국에 올 때 가져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94년 독일에서 제작된 연주회용 그랜드 피아노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피아노이며, 학교 강당에서 사용해오다 현재는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에 상시전시물로 전시되어 있다.
배재학당은 1950년대까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음악회 연주장 중 하나였다. 전봉초, 김순열, 김순남, 황병덕 등 당대의 대표적 음악가들이 배재학당 강당에서 바로 이 피아노로 연주를 했으며, 배재학교 출신 세계적 피아니스트인 한동일, 백건우 등도 학창 시절 이 피아노로 실력을 길렀다. 특히 한동일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 이 피아노로 고별연주회를 연 적이 있다.

 

찬양가
장로교 선교사이자 연세대학교 설립자인 언더우드가 미국 찬송가와 영국 찬송가를 우리 실정에 맞게 편찬하여, 1984년 예수셩교회당에서 출판한 악보집이다. 이 책에는 모두 116편의 찬송가가 4성부로 된 악보와 함께 수록되어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악보가 있는 찬송가집이자, 최초의 오선보로 출판된 악보집이라는 중대한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오선보 인쇄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일본에서 인쇄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는 연세대학교도서관 국학자료실에서 보관하고 있다. 찬송가집이지만 여기에 수록된 곡들이 애국가나 독립운동가의 선율로도 역할을 했던 것을 떠올리면, 사실상 이 악보집이 한국 양악의 원천으로 역할을 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챵가집
평양숭실학교 창립자인 베어드 선교사의 부인 베어드 여사(한국명 안애리)가 기독교학교 학생들과 주일학교 어린이들에게 찬송가를 쉽게 가르치기 위한 목적으로 편찬한 책이다. 초판은 1915년에, 재판은 1920년에 발행했는데, 경성의 재판본은 아소교서회와 평양의 아소교서원에서 동시에 발행했다.


찬송가와 함께 창가와 미션스쿨의 교가들이 수록되어 있으며, 그림이 삽입되어 있어 노래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놓았다. 서양선교사가 출판한 유일한 창가집으로, 우리나라의 서양음악 수용 초기에 많은 영향을 준 악보집으로 평가받는다. 희귀본인 초판본은 약간의 훼손이 있어 현재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특별관리를 하는 중이다.

   
 

음악대해
찬송가를 알기 쉽고, 바르게 습득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음악교육서이다. 한영길과 박영호의 공저로 1923년 평양 아소교서관에서 발간했다. 찬송가, 교가, 외국곡 등 31편이 악전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현재 연세대학교도서관 국학자료실에 소장되어 있다.
특히 이 책에는 재미있는 번역용어가 많이 등장하는데, 악기를 오늘날처럼 외국어 발음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피아노를 양금, 오르간을 풍금, 바이올린을 사현금, 하프를 수금, 기타를 육현금, 플루트를 횡관으로 번역하는 등 우리말로 바꾸어 표기한 것이 특징이다. 경성외의 지역에 서양음악의 수용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알게 해주는데 이 책의 의의가 있다.

 

박태준 가곡집
한국근대음악 개척자 중 한 사람인 작곡가 박태준이 1927년 찬양대용 남녀합창곡들과 주일학교용 노래, ‘동무생각’(일명 사우)을 비롯한 자작곡 등 36편의 노래들을 모아 출판한 악보집이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도서관 고서실에 보관되어 있다.


대구서적조합에서 출판해, 이 지역에서 출판된 첫 번째 음악관련 서적이라는 기록도 갖고 있다. 특히 ‘동무생각’은 홍난파의 ‘봉선화’와 더불어 한국 최초의 가곡 논쟁을 벌이는 유명한 가곡이다.

 

조선민요합창곡집
선교사이자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던 메리 영이 1931년 편찬한 악보집이다. ‘도라지타령’ ‘방아타령’ ‘농부가’ ‘한양의 봄’ 등 7편의 우리 민요에 화성을 붙여, 합창으로 편곡했다. 민요합창의 계기를 만들어 준 악보집이라는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이 악보집을 가지고 이화여전 합창단이 전국순회연주를 하고, 음반으로 취입하기도 했다.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기생 양성’을 한다고 혹독한 비판을 가하기도 했지만, 이화여전은 이에 굴하지 않고 서양음악 뿐 아니라 전통음악도 주요 교과목으로 채택하여 가르쳤다. 기독교가 우리 민족음악의 근대화에 기여한 대표적 사례로 손꼽힌다.

 

조선동요작곡집
경상노회종교교육부가 1938년 발행한 이일래의 창작동요집이다. 유명한 ‘산토끼’ 등 동요 20여곡과 시편 23편을 가사로 한 성가곡 한 편이 수록되어 있다.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컬러로 된 표지와 삽화, 그리고 영문 번역 가사 등 호화롭게 제작된 것이 특징이다. 영어번역은 앤 뉴(한국명 유안례) 선교사, 삽화는 에스모니 뉴(한국명 유영완) 선교사가 담당했다.
마산에서 출간된 유일한 동요집이자, 가사를 영문으로 번역한 유일한 동요집이라는 의미가 있다. 현재는 연세대학교 국학자료실에서 소장하고 있다. 1975년에 남향문화사에서 영인본으로 재출판한 바 있다.

 

   

애국창가

해외 독립운동사료 발굴사업 당시 하와이에서 구한 자료로, 1916년 이전 한반도에서 불렸던 애국창가들을 집대성한 악보집이다. 현재 독립기념관에 소장되어있으며 한국어, 한국문학사, 독립운동사, 근대음악사 연구에 중요한 사료적 가치가 있다고 평가받는다.


특히 이 악보집에 수록된 70여 편의 애국창가들 중 대부분이 찬송가에서 선율을 딴 것으로 나타나, 당시 기독교음악이 한국의 근대음악 발전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는지를 입증하는 좋은 예가 되고 있다.

 

보통창가집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교사이자 최초의 작곡가인 김인식이 1912년 편찬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창가집이다. 모두 31편의 창가가 수록되어있는데, 역시 상당수가 찬송가 선율에 새로운 가사를 붙인 것들이다. 그 무렵 제작된 대부분 창가집과 달리 일본창가는 한 편도 없으며, 김인식이 직접 작곡한 것으로 보이는 곡들도 있다.
음악고서수집가 안춘근씨가 기증해, 현재 한국학 중앙연구원 장서각에 보관되어 있다. 홍난파의 스승이기도 한 김인식은 평양숭실학교 재학시절 하급생의 음악시간을 맡아 가르칠만큼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교육기관인 조양구락부를 비롯해 배재학교, 경신학교 등에서 후학들에게 음악을 가르쳤다.

 

이흥렬의 피아노

   

‘바위고개’ ‘꽃구름 속에’ 등 주옥같은 명곡들을 남긴 작곡가 이흥렬은 이름난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다. 그가 사용한 야마하 어프라이드 피아노는 1931년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이흥렬 자제들 또한 모두 이 피아노로 연습하며 아버지의 대를 이은 음악가들로 자랐다.


당초 이 피아노는 유족들이 한 교회에 기증했으나, 이 피아노와 이흥렬씨에 관련된 역사성을 알게 된 교회 측에서 나중에 되돌려줘 현재는 이흥렬씨의 차남인 작곡가 이영조 교수(한국예술영재교육원 원장)가 가보로 소장하고 있다. 오랜 세월 몇 번의 수리를 거쳤음에도 현재도 연주가 가능할만큼 상태가 좋다. 이 교수는 감사의 뜻으로 그 교회에 성능이 좋은 새 피아노를 사서 기증했다는 일화도 있다.

참고자료:한국예술종합학교 산학협력단, <2010 근대문화유산 음악분야 목록화 조서 연구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