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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 넌 어디서 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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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13. 6. 20.

 

냉면, 넌 어디서 왔니

  • 박정배 음식칼럼니스트·'음식강산' 저자

입력 : 2013.06.20 04:00

대한민국 냉면 계보

월남<越南> 냉면들, 지역 입맛 맞춰 '생존경쟁'

까나리 액젓 넣어 단맛 내는 백령도
명태회 고명 얹어 먹는 속초
구수한 메밀 면발 이용하는 대전


	손님 주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면을 뽑아 사발에 담고 꾸미를 얹어 차가운 육수를 붓는다.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실향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냉면집 중 하나로 꼽히는 서울 장충동 ‘평양면옥’이다.
손님 주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면을 뽑아 사발에 담고 꾸미를 얹어 차가운 육수를 붓는다.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실향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냉면집 중 하나로 꼽히는 서울 장충동 ‘평양면옥’이다. /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날이 더워질수록 생각나는 음식, 냉면입니다. 냉면은 본래 추운 겨울이 제철이요 제 맛이라지만, 무더위를 잠시나마 식혀주는 별미로 냉면만 한 게 없지요. 본래 평안도·황해도·함경도 등 이북이 고향이라는 냉면이 어디서 어떻게 내려와 자리 잡은 걸까요. '대한민국 냉면의 계보'를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도시별로 이름난 냉면집들을 소개합니다.

[냉면의 고향-평안·함경·황해도]


	[그래픽] 냉면의 계보

평양·평안도

1911년 이미 '평양조선인면옥조합'이 생길 정도로 냉면은 평양의 대중적인 외식이었다. 평양은 물론 평안도 전체가 '냉면의 나라'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냉면은 대중의 일상 음식이었다. 평양냉면은 겨울에 즐겨 먹던 음식이었다. '쨍'한 동치미 국물을 주로 국물로 사용했지만 소고기·돼지고기·닭고기·꿩고기를 이용한 고기육수에 메밀면을 말아낸 냉면도 동시에 존재했다.

함경도

감자나 고구마로 만든 전분 '국수'는 1920년대 함경도의 대중적인 외식이었다. 감자 전분 면발에 식초로 삭힌 가자미회를 얹고 고춧가루, 마늘 등으로 만든 양념을 한 '회국수'는 1930년대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로 흥남지역에서 회국수를 많이 먹었다. 현재 북한에서는 국물 없는 회국수보다 국물이 있는 '감자농마국수'를 더 즐겨 먹는다.

황해도

황해도는 해주와 사리원이 냉면의 중심지였다. 같은 물냉면이지만 황해도 냉면은 평안도보다 면발이 굵고 돼지고기 육수를 많이 사용해 진한 고기맛을 기본으로 하면서 간장과 설탕을 넣어 단맛이 난다. 사리원의 냉면가게들은 1928년 4월 21일에 70명의 조합원으로 구성된 '면옥노동조합'을 결성할 정도로 크게 성장한다.

['이남(以南)'에 정착한 냉면 '제 2의 고향']

서울

서울의 냉면은 몇 번의 커다란 전환기를 맞으며 다양한 모습으로 분화 발전해 왔다. 서울에 냉면이 외식으로 등장한 것은 19세기 후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20년대가 되면 서울의 냉면집은 수십 개로 늘어난다. 당시 서울의 냉면은 여름 별식이었다. 서울식 냉면집들은 분단과 전쟁 이후 대거 내려온 평안도 사람들이 만든 냉면집들에 밀려 사라진다. 6·25 전쟁 이후 평안도 실향민들은 남산 일대와 남대문, 영락교회 주변에 정착한다. 평안도 출신들이 운영하는 평양냉면집들은 재료와 기후 차이 때문에 육수는 평안도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했던 동치미 국물 대신 주로 맑은 소고기 육수를 사용하게 된다. 우래옥(02)2265-0151, 평양면옥(장충동)(02)2267-7784, 남포면옥 (02)777-3131, 을지면옥(02)2274-6863, 서북면옥(02)457-8319, 을밀대(02)717-1922, 봉피양 방이점(02)415-5527, 능라(판교)(031)781-3989


	1 서울 종로4가 사거리에 있는 ‘함흥곰보냉면’의 회냉면. 식초로 삭혀 매콤달콤한 양념에 버무린 가오리회가 쫀득하고, 가느다란 면발은 탱탱하다. 뜨거운 사골육수로 얼얼해진 입안을 달래가며 먹는 맛이 황홀하다. 2·3 서울 장충동 ‘평양면옥’에서 면을 뽑아 삶은 후 찬물에 헹구는 모습.
1 서울 종로4가 사거리에 있는 ‘함흥곰보냉면’의 회냉면. 식초로 삭혀 매콤달콤한 양념에 버무린 가오리회가 쫀득하고, 가느다란 면발은 탱탱하다. 뜨거운 사골육수로 얼얼해진 입안을 달래가며 먹는 맛이 황홀하다. 2·3 서울 장충동 ‘평양면옥’에서 면을 뽑아 삶은 후 찬물에 헹구는 모습. /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함경도 사람들은 중부시장과 청계천 오장동 부근에 자리 잡았다. 1953년에 '오장동함흥냉면'이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하면서 서울에서 함흥냉면의 질긴 역사가 시작된다. 전성기 때는 오장동에만 20여 개의 함흥냉면집이 있었다. 함흥곰보냉면(02)2267-6922, 오장동함흥냉면(02)2267-9500

인천·백령도

인천에는 6·25 전쟁 이전에도 냉면이 성행했다. 1936년에는 인천의 ‘냉면배달조합’에 관한 기사가 신문에 나올 정도로 냉면은 상당히 보편적인 외식이었다. 6·25 전쟁 당시 황해도 사람들은 백령도로 대거 피란한다. 실향민들이 많이 정착하면서 백령도에는 냉면문화가 꽃핀다. 백령도 냉면이 유명해지자 백령도 출신 사람들이 인천에서 백령도식 냉면을 팔면서 인천에는 백령도식 황해도 냉면이 전성기를 맞는다. 인천의 백령도식 냉면의 가장 큰 특징은 육수에 까나리 액젓을 넣어 진한 단맛이 난다. 부평막국수(032)527-1510, 변가네 옹진냉면(032)875-0410, 사곶냉면(백령도)(032)836-0559

옥천(양평)

옥천은 인천 백령도와 더불어 ‘황해도식’ 혹은 ‘해주식’ 냉면 문화가 꽃피운 곳이다. 1952년 황해도 출신의 이건협씨가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에서 ‘황해냉면’이란 이름을 걸고 시작한 후 현재는 예닐곱 개의 냉면집들이 성행하고 있다. 황해도식 냉면은 면발이 굵고 돼지고기 육수에 간장이나 설탕으로 간을 해서 단맛이 강하게 나는 것이 특징이다. 옥천냉면(구 황해냉면)(031)772-9693, 옥천고읍냉면(031)772-5302

대전

평양에서 냉면집을 운영하던 가문의 후손인 박근성씨가 6·25 때 월남해 평안도 출신 피란민들이 자리 잡은 대전 숯골에서 ‘숯골원냉면’을 창업한 것이 대전 평양식 냉면의 시작이다. 메밀을 이용한 면발과 닭육수와 동치미를 섞은 육수를 사용한다. 숯골원냉면 본점(042)861-3288

의정부·동두천

1952년부터 미군 기지가 주둔하면서 의정부·동두천 일대에는 실향민들이 많이 정착하게 된다. 평양 출신 실향민이 1953년에 창업한 동두천 ‘평남면옥’은 평양 장터의 냉면을 파는 집으로 알려져 있다. 얼음이 가득한 육수는 서울 마포의 ‘을밀대’와 닮았다. ‘의정부평양면옥’은 1·4 후퇴 때 평양에서 피란 온 홍진권씨가 1970년 경기도 전곡에서 냉면집을 창업했다가 1987년 의정부로 옮겨 지금까지 영업하고 있다. 서울의 ‘필동면옥’과 ‘을지면옥’이 홍씨의 딸들이 운영하는 집들이다. 양지머리를 삶아 기름을 걷어낸 후 차게 숙성시킨 육수에 약간의 동치미 국물을 더하고 고명으로 고춧가루를 뿌리는 것이 의정부 평양면옥 계열 냉면집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평남면옥(031)865-2413, 의정부평양면옥(031)877-2282

평택

전쟁 중인 1951년에 피란민 수용소와 미군 기지가 평택에 들어섰다. 전쟁이 끝나고 평안도·황해도 출신 실향민들이 정착하면서 평양식 냉면이 자리 잡는다. 평남 강서에서 냉면가게를 운영하던 실향민이 1953년 ‘강서면옥’을 시작한다. 강서면옥은 1958년 서울로 이전했다. 1930년대 평안북도 강계에서 ‘중앙면옥’을 운영하던 고학성씨의 아들이 1974년 ‘고박사냉면’을 개업한다. 강서면옥과 고박사냉면은 모두 양지머리와 사태살을 삶아낸 육수를 기름을 제거해 맑게 한 후 동치미 국물을 섞고 간장을 살짝 쳐 엷은 갈색이 도는 육수를 만든다. 고복례냉면(구 고박사냉면)(031)655-4252 강서면옥(서울)(02)752-1945

대구

1951년 평양 실향민이 창업한 ‘강산면옥’이 대구 최초의 평양식 냉면집이다. 1960년대 중후반 평양 냉면집 ‘안면옥’ 창업주의 아들이 ‘대동면옥’을, 1969년에는 ‘부산안면옥’이 부산에서 옮겨오면서 냉면이 대구에 본격적으로 자리 잡는다. ‘안면옥’은 지금까지 기록으로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냉면집이자 그 가족들이 운영하는 최고로 긴 역사를 가진 식당이다. 소고기 양지를 중심으로 끓여낸 맑은 육수에 간장으로 단맛을 더하고 식초를 조금 쳐 동치미같이 신맛이 약간 감도는 맛을 내는 것이 대구식 평양냉면의 특징이다. 대동면옥(053)255-4450, 부산안면옥(053)424-9389

풍기(영주)

경북의 내륙 풍기는 경상북도에서 실향민이 가장 많이 정착한 곳이다. 휴전 이후 풍기에 모여든 실향민들은 견직물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다. 덩달아 평양식 냉면집들도 장사가 잘됐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견직업이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냉면집들도 대부분 문을 닫았다. 지금 풍기를 대표하는 ‘서부냉면’은 평북 운산 출신의 창업주가 1973년에 문을 연 집이다. 평안도에서 육수로 자주 사용하던 꿩과 돼지고기 국물을 경상도 사람들이 싫어한 탓에 지금 같은 소고기 육수가 만들어졌다. 서부냉면(054)636-2457

속초

함경도 출신의 실향민들은 1951년 이후 고향과 가장 가까운 속초로 모여들었다. 바닷가 모래사장이던 청호동과 건너편인 중앙동, 금호동에 피란민들이 둥지를 틀었다. 현재 남한에서 가장 오래된 함흥냉면집으로 알려진 함흥 출신이 세운 ‘함흥냉면옥’은 1951년 중앙동에 자리를 잡고 영업을 시작했다. 함흥냉면옥은 ‘속초식’ 함흥냉면을 만들어냈다. 고향과 다른 환경과 재료 때문에 면의 주재료였던 감자 전분이 고구마 전분으로 변했고, 냉면의 성격을 결정하는 꾸미가 가자미회에서 명태회로 바뀌었다. 함흥냉면옥(033)633-2256, 양반댁(033)636-9999, 단천식당(033)632-7828, 대포함흥면옥(033)632-6688

[밀면―함흥냉면의 현지화]

부산

함경도 실향민의 대량 이주로 시작된 부산의 냉면 문화는 특이한 양상으로 발전하게 된다. 부산의 번성했던 면(麵) 문화가 함경도의 회국수 문화와 만나 ‘밀면’이라는 새로운 면 문화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1954년 부산 남구 우암동에 흥남철수 당시 남쪽으로 내려온 실향민들의 대규모 피란촌이 형성된다. 함경도 내호에서 냉면집을 하던 실향민이 고향 이름을 따 1954년에 ‘내호냉면’을 개업한다. 실향민들을 대상으로 한 냉면집이었지만 고향과 다른 기후와 재료 때문에 밀가루 70%에 고구마 전분 30%를 섞은 밀면을 만들어 낸 것은 1959년의 일이다. 밀면은 초기에는 ‘밀냉면’, ‘부산냉면’, ‘경상도냉면’으로 불렸을 만큼 냉면의 영향이 강했다. 내호냉면(051)635-2295, 시민냉면(051)895-8726, 개금밀면(051)892-3466

[진주냉면―독자적으로 탄생한 맛]

진주·사천

진주냉면은 19세기 말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1960년대 중반까지는 옥봉동을 중심으로 ‘은하식당’, ‘평화식당’ 같은 냉면집이 6~7개 있었지만 60년대 말에 거의 맥이 끊긴다. 그런데 최근 진주냉면이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새롭게 각광받는 진주냉면은 해물 육수를 기본으로 소고기 육전을 꾸미로 올리고 메밀에 고구마 전분을 섞은 면을 사용한다. 진주 바로 밑 사천에는 전국에서 가장 큰 냉면집인 ‘재건냉면’이 있다. 1948년 일본에서 귀국한 창업주가 만든 냉면집이다. 이곳에는 돼지고기 육전이 꾸미로 올라간다. 하연옥(055)746-0525, 재건냉면(055)852-2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