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꽁이의 찬양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해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바흐의《요한수난곡》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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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곡의 전당

2014. 4. 8.

바흐의《요한수난곡》해설

 

 

 

바흐: 요한 수난곡 BWV 245

잉그리드 슈미튀센 (Ingrid Schmithusen, 소프라노)

요시카주 메라 (Yoshikazu Mera, 카운터 테너)

게르드 튀르크 (Gerd Turk, 테너: Evangelist and tenor arias)

마카토 사쿠라다 (Makoto Sakurada, 테너: Servant and tenor arias)

요시 히다 (Yoshie Hida, 소프라노: Maid)

치유키 우라노 (Chinki Urano, 베이스: Christ)

피터 쿠이즈 (Peter Kooij, 베이스: Peter, Pilate, bass arias)

 

마사키 스즈키 (지휘)

바흐 콜레기움 재팬

 

 

 

 

요한 수난곡은 마태 수난곡과 함께 바흐의 종교음악의 절정을 차지하는 작품들 중 하나이다. 마태 수난곡 만큼의 대중적인 인기는 떨어지지만 분명 걸작임에는 틀림없다.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요한 수난곡의 악보는 네 가지의 다른 판본이 존재하는데, 이는 바흐가 최소한 네 번 이상 이 곡을 개정하였음을 의미한다. 초연은 아마도 1724년 성금요일인 4월 7일 라이프찌히의 성 니콜라이 교회에서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바흐는 초연이후 몇몇 곡을 수정하고 일부는 완전히 다른 곡으로 바꾸었다. 두 번째 공연 이후 그는 다시 몇 가지 변화들을 추가하여 3판을 만들었으나 4판에서는 이러한 변화들을 일부분만 남겨두고 거의 대부분 원래대로 돌아갔다. 지금 대부분 연주되는 것은 이 마지막 판이다.

 

요한 수난곡은 마태 수난곡보다 먼저 작곡되었는데 두 작품은 같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다룬 곡이면서도 그 분위기가 서로 많이 다르다. 이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근본적인 원인은 두 복음서의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마태복음은 본래 유대인들을 위해 쓰여진 복음서이며, 중심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인들의 왕으로서 이 세상에 오신 분임을 강조한다. 그래서 마태복음의 첫 시작구절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는 선언으로 시작한다 (다윗은 유대인의 왕으로서 영원한 왕권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따라서 자신들의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유대인들이 스스로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는 것을 강조하게 되고 이는 구세주의 고난이 인간들로 말미암은 것임올 역설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마태 수난곡의 전체를 꿰뚫는 정서가 구세주의 고통올 바라보는 슬픔과 비통함인 것은 바로 이러한 기본전제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한 복음은 그 대상이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들까지 포함하는 것으로서 중심 사상은 '예수 그리스도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다'라는 것이다. 따라서 요한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은 단순히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신의 아들인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구원올 위해 친히 죽음의 고난을 감수하셨다는 선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복음서의 차이로 말미암아 두 수난곡의 분위기와 내용도 많은 차이를 보이게 된다고 생각한다. 마태 수난곡은 '오라 딸들아, 와서 슬픔을 나누라'라는 합창으로 시작하여 '상처난 주님의 머리'에서 절정을 이루어 '주님의 죽음 앞에 나 슬퍼합니다'라는 내용으로 마무리하지만, 요한 수난곡은 '주여, 주님의 수난으로 영원토록 영광 받으소서'라는 합창으로 시작하여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는데서 절정을 이루며 '당신올 영원히 찬양합니다'라는 내용으로 끝을 맺는 것올 비교해 보면 이와 같은 차이는 극명히 드러난다. 그러므로, 마태 수난곡에서는 극적인 긴장감과 비통함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는 반면, 요한 수난곡에서는 오히려 구세주의 수난을 조용히 명상하고 기도하며 자신을 성찰하는 분위기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요한 수난곡은 마태 수난곡에 비해 구조적인 통일성의 상대적 결핍 대본의 빈약함둥의 단점이 보이므로 후자에 비해 음악성이 떨어지는 작품으로 취급되는 경향이 있다.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단순성과 자연미가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와 같이 평가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래서인지 이 곡은 마태 수난곡만큼 많이 연주되거나 녹음되지 않으며 뛰어난 명반을 고르기도 쉽지 않다.

 

최근 마이너 레이블인 BIS에서 마사키 스즈키라는 생소한 이름의 일본 지휘자와 일본 바흐 콜레기움이라는 연주단체가 녹음한 바흐의 요한수난곡 전곡이 발매되었다. 마사키 스즈키는 l954년 일본 고베에서 태어났으며 l2살 때부터 교회의 오르간 반주자로 활약하였다고 한다. 동경대학교를 졸업한 다음 그는 암스테르담으로 유학하여 톤 쿠프만과 피에트 키에게서 각각 쳄발로와 오르간을 사사하였으며, 몇몇 고음악 경연대회에서 입상한 경력도 있다. 이후 그는 고음악 분야의 지휘에도 소질을 나타내었으며, 1990년 일본에서 Bach Collegium Japan이라는 고음악 연주단체를 결성하여 지휘를 맡아 지금까지 활동해오고 있다.

 

처음 이 연주를 들은 것은 레코드 가게 매장이었다. 음반을 고르면서 매장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이 것 저 것 듣고 있던 중 갑자기 기존의 요한 수난곡 분위기와는 많이 다른 참신한 연주가 흘러나와 '제법 괜찮은 연주네 하면서 CD 자켓을 보여달라고 하자 주인이 보여준 것은 처음 듣는 일본 지휘자와 성악가들이라 깜짝 놀랐다. 언듯 들어서는 동양인들의 노래라고는 짐작하기 어려운 완벽한 독일어 덕션과 섬세한 세부의 표현 고악기를 사용한 정격연주의 세련된 테크닉 등은 유럽의 어느 악단과 비교해도 처지지 않는 수준이라고 생각되었다. 독창자들도 소프라노와 에방겔리스트를 제외하고는 모두 일본인이 었다. 평소 일본문화를 경시해오던 필자로서는 이 음반을 처음 접했을 때의 당혹감은 뭐라 말로 표현하기 곤란할 정도였다.

 

이 연주는 전체적으로 평가하자면 매우 깔끔하며 담백하다. 또한 절제된 표현과 명상하는 듯한 분위기의 해석이 요한 수난곡의 본질적인 종교성에 매우 근접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사실 드라마틱한 감정의 물결이 넘치는 멩겔베르크나 클렘페러류의 해석은 마태 수난곡에는 어울릴지 몰라도 요한 수난곡에서는 오버 액션이라고 밖에는 평가하기 어렵다. 따라서 거대한 스케일의 연주보다는 오히려 정격연주가 더 잘 어울리는 것이다. 마사키 스즈키의 연주에서는 칼 리히터 (DG)와 같은 절대적 권위를 느끼기는 어렵다. 게다가 성악가들도 리히터 판의 혜르만 프라이 키스 앵겐, 에른스트 헤플리거 등이나 칼 포스터가 지휘한 음반의 (EMI) 피셔 디스카우, 프리쪼 분덜리히 등과 비교하면 그 이름이 주는 엄청난 카리스마 앞에서는 주눅이 들 정도로 무명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 음반의 연주자들은 자기들끼리 나름대로의 훌륭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최소한으로 절제된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투명한 울림을 배경으로 독창진의 섬세한 스토리 전개를 듣고 있으면 마치 옛날 바흐가 라이프치히 교회에서 음악예배를 드리는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비슷한 소규모 구성의 연주로서 몇 년전 NAX0S에서 발매된 스콜라스 바로크 앙상블의 연주도 상당히 잘된 연주였는데, 이와 비교해본다면 스즈키 판의 연주는 좀더 담백하며 동양적인 여유로움이 가미된 것이 특징이라 하겠다.

 

그러나 음반사에서 이 CD의 포장 겉면에 첨부한 '요한 수난곡의 최고 명연' 운운하는 가소로운 광고 문구에 대해서는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을 금치 못한다. 그네들이야 판매수를 높이는 게 목적이니 무엇인들 못하랴만 자화자찬도 유분수이지, 낯뜨거워서라도 이런 식의 문구를 어떻게 집어넣올 수 있는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며, 과연 이때까지 발매된 요한 수난곡의 절반이라도 다 들어보고 하는 말인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이 문구가 없었으면 차라리 좋았올 것을, 이 구절 때문에 오히려 이 음반에 대한 반발심이 생기는 것은 필자의 비뜰어진 성격 때문일까?

 

마사키 스즈키의 요한 수난곡 연주는 상당히 잘된 연주인 것은 사실이며 고음악 특히 성악부문에서 동양인이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해오던 상황에서 단연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는 하나, 그렇다고 요한 수난콕올 완벽하게 소화했다고 보기에는 문제가 있다. 기악에 비해 성악진 특히 독창진의 기량이 떨어지며 깔끔함과 담백함이 약간은 지나쳐서 때때로 거북한 느낌을 줄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합적으로 볼 때 요한 수난곡의 정격연주로서는 수준급의 연주이며 특히 서구 연주자 일색인 음반시장에서 동양인에 의한 동양적 분위기가 가미된 연주라는 점에서 나름대로의 가치를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 곽규호

 

글쓴 날짜: 1999/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