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찬송가 해설

맹꽁이 2014. 4. 23. 16:37

 

 

 

220장/사랑하는 주님 앞에

(오꾸노 마사쓰나 작사 ․ D. B. Towner 작곡)

《통일 찬송가, 1983》278장

  

 

한국 성도로서 이 찬송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애창하는 이 찬송은 비슷한 시기에 두 가지 번역으로 한국교회에 들어왔다. 첫 번째는「장로교 전용 찬송가」《신편 찬송가, 1935》456장에 처음 실렸고, 이어서 현제명 박사가 편찬하여 대한예수교장로회 종교교육부에서 발행한《아동 찬송가, 1936》85장에 실렸던 것이다.

먼저《아동 찬송가, 1936》85장을 살펴보자.

 

「천국백성 모두 나와 주의 이름 찬양하라」로 시작되는 이 찬송은, 다니엘 브링크 타우너(Daniel Brink Towner, 1850~1919) 작곡인 'With Love' 를 번역한 찬송으로 되어 있는 이 찬송은 「사랑하는 주님 앞에」(278장) 곡조를 쓰고 있는데 가사원본을 찾을 수가 없다. 가사를 「사랑하는 주님 앞에」와 비교해보면 너무 비슷함을 알 수가 있다.

 

 

《아동 찬송가, 1936》85장  

 

 

《아동 찬송가, 1936》85장                         《통일 찬송가, 1983》278장  

<1절>                                                   <1절>

천국 백성 모두 나와 주의 이름 찬미하라      사 랑하는 주님 앞에 형제자매 한 자리에

우리 임금 예수 앞에 모두 나와 경배하라      크신 은혜 생각하여 즐거운 찬송 부르세

주안에서 하나 되어 사랑으로 서로 도와       내주 예수 본을 받아 모든 사람 내 몸같이

빛난 강산 이 땅 위에 하늘 복이 차게 하세    환난근심 위로하고 진심으로 사랑하세    

<2절>                                                    <2절>

이 땅 위에 사는 사람 서로 미워하지 말라     사랑하는 주님 앞에 온갖 충성 다 바쳐서

주안에서 하나 되어 형제자매 이 아닌가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님만 힘써 섬기세

화목하고 일심하라 삼천리의 성도들아         우리 주님 거룩한 손 제자들의 발을 씻어

거룩하신 주의 앞에 사랑으로 하나 되세        남 섬기는 종의 도를 몸소 행해 보이셨네 

<3절>                                                    <3절>

나 해하는 원수라도 사랑하라 하셨거든        사랑하는 주님 예수 같은 주로 섬기나니

하나님의 자녀 되어 사랑 않고 어이 하리      한피 받아 한몸 이룬 형제여 친구들이여

서로서로 사랑하고 서로서로 용서하여         한몸 같이 친밀하고 마음조차 하나 되어

이 땅 위의 모든 사람 사랑으로 하나 되세     우리 주님 크신 뜻을 지성으로 준행하세

 

참으로 좋은 찬송이다. 어른 찬송가에 채택하여 불렀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사랑하는 주님 앞에」 작사자 문제

 

이 찬송은 일본《讚美歌, 1931》에서 채택하여《신편 찬송가, 1935》456장에 처음 실린 것이다. 일본《讚美歌, 1931》작사자 난에 'Shinsen sambika, MS., c 1896' (아마도 1896년 신센삼비까에서)라고 적혀 있는 것은, 당시 일본인도 작사자를 몰랐기 때문이다.

 

초기 일본 찬송가에는 작사 · 작곡자는 물론 영문 가사 첫줄도 밝혀놓지를 않았기 때문에《신편 찬송가》에서 이를 채택하면서 그대로 적어 놓았던 것이다. 1962년 장로교(고려파)와 장로교(합동측)에서 출판한《새찬송가》470장에 이 찬송을 채택하면서, 영문 가사 첫줄로「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묶인 형제」'In one Fraternal Bond of Love' 라고 표기하였는데, 작사자는 못 찾고 종래 대로 표기하였다. i

 

《통일 찬송가, 1983》편찬 때, 나는 'In one Fraternal Bond of Love' 를 근거로 줄리앙의《찬송가학사전》'A Dictionary of Hymnology' 에서 출처를 찾아내었다. 그 가사는 영국이 자랑하는 시인 제임스 몽고메리(James Montgomery, 1771~1854) 작사로 되어 있어서 그렇게 수정해 놓았다. 그런데 한국찬송가공회의《찬송가(시제품),2001》 232장과《21세기 찬송가, 2004》217장에는 도로 'Shinsen sambika c. 1896' 이라고 고쳐놓았다.

 

나는 다시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존 줄리앙(John Julian)의《찬송가학사전, A Dictionary of Hymnology, 1907》1,149 쪽에 보면 'In one Fraternal Bond of Love' 는, 분명히 몽고메리의 작사로 되어 있다. 이 찬송은 엘리자베스 파슨(Elizabeth Parson, 1812~1873) 양과 그의 친구들이 공동 편집한 'Selections of Hymns, Compiled and original, 1822' 829장에, 몽고메리의「성도의 교제」'Communion of Saints'  책에 실린 'Glorious universe around' 란 제목의 5절 찬송시 중에서 4절과 1절만을 발표한 게 처음이다.

 

 

'Our own Hymnbook, a collection of Psalms and Hymns' 표지 

 

그 후 몽고메리가 1825년에 펴낸 찬송가 'Christian Psalmist' 476장에, 먼저 시를 수정하고 「지구 ․ 바다 ․ 하늘」등으로 2절을 추가하여 총 6절로 발표하였고, 이어서 낸 그의 'Original Hymns, 1853' 에서도 앞의 가사를 그대로 실렸다.

 

유명한 부흥사 찰스 스펄존(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 목사는 1866년에《우리들의 찬송가》'Our own Hymnbook, a collection of Psalms and Hymns' 를 내었는데, 이 책은 시편가를 220편, 찬송가를 910편이나 실린 방대한 찬송가이다. 이 책에 몽고메리의 'Glorious~ ' 를 'Christian Psalmist' 476장에서 4~6 절만을 채택, 4절의 첫줄인 'In one fraternal bond of love' 를 제목으로 하여 실었던 것이다.

 

미국 인터넷 책방(Amazon.com)으로 'Our Own Hymnbook' 을 주문하였다. 송료를 아끼느라 선편으로 하였더니 한 달 만에 책이 도착하였는데 1975년 판이었다. 실망스럽게도 무곡이요 증보 재 편집판이었다. 총 1,060장인데, 시편가가 150편, 나머지는 찬송가였고 장수도 달랐다. 


곡조에 대한 지시는 없이 운율(Meter)만 적혀 있다. 890장에 있는 가사 'In one fraternal bond of love' 를 옮겨 적어본다. 「사랑하는 주님 앞에」와 운율(C.M.)이 일치한다. 곡조 운에 맞추어 적당히 의역해본다. 후렴은 없다.

 

 

In one fraternal bond of love                                   

 

<1절>

In one fraternal bond of love,               사랑으로 매인 우리

ne fellowship of mind,                      주 안에서 형제 되니

The saints below and saints above         땅과 하늘 모든 성도

Their bliss and glory fine.                    영광과 행복 누리네

 

Here, in their house of pilgrimage          순례 길을 가는 동안

Thy statutes are their song                할렐루야 찬송하니

There, through one bright, eternal age,    영원하신 주의 빛이

Thy pra순ises they prolong.                  우리들을 이끄시네

 

Lord, may our union from a par             우리 모두 하나 되게

Of that thrice happy whole,                주여 항상 도우소서

Drive it's pulse from Thee, the heart,      주의 피가 내 심장에

It's life from Thee, the soul.                 영원히 쉬게 하소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19세기 일본 초기 찬송가 번역자들 중에는, 영어 몇 단어를 중심으로 가사를 만드는 이들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303장 「날 위하여 십자가에」를 들 수 있다. 이 찬송은 로버트 로우리(Robert Lowry)가 작사 ․ 작곡한 「'How Can I keep from singing' 을 번역한 것인데, 일본 홀리네스교단 창설자로서,「지금까지 지내 온 것」작사자인 사사오 데쓰사부로(笹尾鐵三郞, 1868~1914) 목사는 「어찌 찬양 안 할까」(How Can I keep from singing) 라는 구절을, 「うたわざらめや」로 번역하고 나머지는 이에 맞춰 창작을 하여 자기 작사로 발표하였던 것이다. 말씀사에서 펴낸 언더우드 선교사의《한영 찬송가, 1983》에는 로우리 작사 ․ 작곡으로 되어 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위의 'In one Fraternal Bond of Love' 번역자는 첫줄만을 살리고 새로 창작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영어 찬송가에서「사랑하는 주님 앞에」곡조를 찾기 위해 미국과 캐나다 영국 등의 헌책방에 여러 권의 타우너의 편집 찬송들을 주문하였다. 무작위로 주문한 타우너 편집 찬송가 7권 중에《복음의 안내자 찬송가》'The Gospel Pilot Hymnal, 1899' 에 내가 간절하게 찾던 「사랑하는 주님 앞에」곡조가 149장에 있었다. 기뻐한 것은 잠시 뿐, 가사가 딴 가사인 것을 본 나는 적이 실망하였다. 곡명 겸 제목은「더 좋은 땅」'The Better Land.'

 

Better land의 악보와 원문을 실리고, 곡조에 맞춰 번역해본다.

 

The Better Land 영어 가사                        번역문                

1절                                                    1절                     

There is a land mine eye has seen             멀리 뵈는 하늘나라

In visions of enraptured though,                아름답고 황홀하다

So bright, that all which spreads between    찬란하게 빛나는 곳

Is with its radiant fraught.                        천국은 나의 옛 고향

 

Chorus.                                         후렴                     

O land of love, o joy and light                   사랑의 땅, 기쁨과 땅 

Thy glories gild earth's darkest night;          주의 영광 가득하다

Thy tranquil shore, we, too, shall see,         생명강가 거닐면서

When day shall break, and shadows flee.         모든 성도 찬양하네

 

2절                                              2절                  

A land upon whose blissful shore                 늘 흐르 생명강물

There rests no shadow, falls no stain;           맑고 맑은 강가에서

There those who meet shall part no more,         앞서 간 이 모두 만나

And those long parted meet again.                다시는 이별 없으리

 

3절                                                3절                     

It's skies are not like earthly skies,              하늘 광채 빛나누나

With varying hues of shade and light;            예전 하늘 아니로다

It hath no need of suns, to rise                    해와 달이 쓸데 없네

To dissipate the gloom of night.                   주님의 영광 뿐이라

 

4절                                               4절                              

There sweeps no desolating wind                 주 예비한 새 집에서

Across the calm, serene above;               사랑의 주 모시옵고

The wond'rer there a home may find            감사하며 찬양하며

Within the paradise of God.                      영원히 우리 살리라

 

 

 'The Gospel Pilot Hymnal, 1899' 149장


오소운 목사 번역 찬송 《The Better Land》

 

19세기 미국 교회는 이른바 세대주의(世代主義, dispensationalism)1 신학이 점점 세를 이루면서 「시한부 종말신앙」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20세기돠 되는 날에 주님이 오신다고 난리들이었다. 위의 찬송도 이런 환경에서 태어난 [천국 소망 찬송]이다. 그래서인지, 이 찬송은 어느 영어 찬송가에도 채택되지 않았다. 


너무 잘 살면 하늘나라 생각을 않는 게 인간이다. 지금 북한의 성도들은 주님 오실 날만 기다리며 천국의 소망으로 참고 살고 있건만 남한에서는 "주님, 조금만 더 있다 오세요!" 하고 있지를 않는가?

 

세대주의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교는 「내가 다시 오리라」하신 주님의 재림을 믿는 신앙에 기초해 있다. 우리나라 초기 선교사들도 대다수가 세대주의를 믿고 있었다. 오늘 한국 성결교회는 세대주의 신앙에 기초해 있다고 표방하고 있다. 다만 예수님의 재림의 날짜를 계산해 내는 「시한부 종말론」이 문제일 뿐이다.

 

하나님이 도우셔서 기적이 일어났다. 일본에도 없는「신센 삼비까」《新撰讚美歌(신찬찬미가), 1890》2 책을 미국 헌책방에서 구입한 것이다. 이 책은 개정판으로서 초판은 1888년인데 곡조찬송가였다. 이 찬송가는 어떤 사람이 성탄 선물로 보낸 것이라고 책 판권 뒤에 다음과 같은 글이 달필로 씌어 있었다. 책을 보낸 이의 이름은 없다. 

' Chrisrmas Greetings to Mr. & Mrs. E. R. Heedle, 1892 '

       뜻 ; ‘1892년 성탄을 축하하며 히들 부부에게‘


 일본《新撰讚美歌, 1890》표지

 

 

이 찬송가 237장에「사랑하는 주님 앞에」가 있는데, 사용 곡조는 'BARNBY'로 되어 있고, 영문 가사 첫 줄은 'In one Fraternal Bond of Love' 였는데 별표(*)를 달아놓았다. 영문 가사 첫줄 찾아보기에 들어가 보니, 별표를 달아 놓은 것에 대한 다음과 같은 주해가 있었다.


'The subject only is indicated in the lines marked by an ASTERISK.'  그러니까 'In one Fraternal Bond of Love' 는 가사 첫 줄이 아니라 제목이라는 말이다. 작사자가 영국의 찬송가 작가 몽고메리의 찬송 'In one Fraternal Bond of Love' 의 제목에서 영감을 받아 새로 작사한 것이란 말이다. 작사 · 작곡자 이름은 하나도 넣지 않았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19세기 일본 초기 찬송가 번역자들 중에는, 영어 몇 단어를 중심으로 가사를 만드는 이들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303장 「날 위하여 십자가에」를 들 수 있다. 이 찬송은 로버트 로우리(Robert Lowry)가 작사 ․ 작곡한 「'How Can I keep from singing' 을 번역한 것인데, 일본 홀리네스교단 창설자로서,「지금까지 지내 온 것」작사자인 사사오 데쓰사부로(笹尾鐵三郞, 1868~1914) 목사는 「어찌 찬양 안 할까」(How Can I keep from singing) 라는 구절을, 「うたわざらめや」로 번역하고 나머지는 이에 맞춰 창작을 하여 자기 작사로 발표하였던 것이다. 말씀사에서 펴낸 언더우드 선교사의《한영 찬송가, 1983》에는 로우리 작사 · 작곡으로 되어 있다.

   

마침내 작사자를 찾았다! 

 

일본에서도 이 찬송 작사자를 알지 못해 그 동안 별의 별 억측이 나돌았는데, 다행히도 최근 일본에서 찬송가와 창가(唱歌) 연구자로 크게 활약하고 있는, 오오쓰까 노유리(大塚野百合) 교수가 이를 찾아냈다. 작사자는「신센 삼비까」편찬 책임자인 오꾸노 마사쓰나(奧野昌綱, 1823 ~1910) 목사였다. 오꾸노 목사는 일본교회의 초대 목사 중의 하나다.

 

 

<贊美歌와 唱歌 이야기> 표지

 

 

저자 노유리 교수

 

 

가사 첫줄은「그리스도의 앞에서」'Kirisuto no Maeni' (キリストのまえに).

그 가사를 인용하고 곡조에 맞춰 직역을 해본다. 

 

♬ ․ キリストの前に                                                  

<1節>                                        <1절>

キリストの前に                            그리스도 주님 앞에

よろこびつどいて                         기쁨으로 함께 모여

そのいつくしみと                         그의 은혜 그의 사랑

惠みをおぼえよ。                         기쁨으로 찬양하세

キリストの我を                            주님께서 우리들을

いつくしむ如く                            사랑하심 본을 받아

共ににいつくしみ                         서로서로 사랑하며

互いにかたれよ。                         그 사랑을 전파하자

 

<2節)                                            < 2절>

キリストの爲に                             그리스도 주님 위해

おのが身をわすれ                          나의 생명 다 바쳐서

力をつくして                                있는 힘을 다하여서

榮えをあらはせ。                          주의 영광 나타내자

キリスト我らを                             주님께서 우리들을

導き來たりて                                인도하여 주심으로

我らと供にぞ                                우리 모두 한데 모여

集まりたまへる。                          주께 찬양 드립니다

 

<3節>                                            <3절>

キリストをおのが                           그리스도 예수님을

かしらとあがめて                           두령(頭領)으로 섬기면서

その枝となりし                              포도나무 가지 된 자

はらからよ友よ                              겨레여 친구들이여

たがひに親しみ                              서로서로 친밀하게

ともに喜びて                                 항상 함께 기뻐하며

キリストのみ名を                           우리 주님 그 이름을

ほめたたえよ。                               높이 찬양 드립시다

 

 

 

오꾸노 마사쓰나 목사 

 

 작사자 오꾸노 마사쓰나(奧野昌綱, 1823~1910) 목사는, 1823년 에도바꾸후(江戶幕府)의 하급 사무라이의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4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 밑에서 자라면서, 반항아가 되어 아무도 그를 당해낼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10살에 절에다 맡겼다. 그러나 그는 불교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계속 반항만 하였다. 주지가 검도 · 창술 등의 무예를 가르치자 열심히 따라 했다. 주지는 냬친 김에 예능으로 단가(短歌) · 한시(漢詩) · 피리불기 · 꽃꽂이 등과 서예 교육까지 하였다. 그는 15살에『4서5경』을 시작하여 2년 만에 통달하였다.   

오꾸노는 이런 재능을 인정받아 에도바꾸후의 유력자 오꾸노(奧野)라는 부자 사무라이 집의 양자로 들어가 명치유신(明治維新)의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바꾸후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다가 완패하자, 그는 다시 절로 쫓겨 들어가 중에게 살길을 알려 달라 했다. 반항자를 색출하여 죽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중은 한 주간동안 금식 기도를 한 후, 매일 아침 1,000 번씩「물 끼얹기(みずあび)」를 50일 동안 계속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죽을 힘을 다해 그리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신도(神道)의 어떤 사람은 1만 곳의 신사(神社)를 참배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오꾸노는 자신이 1,000 곳의 신사를 참배하고, 사람을 동원하여 모두 1만 4천 곳의 신사를 참배하며 소원을 빌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속았다는 생각이 든 오꾸노는 불상들을 때려 부수겠다, 신사에 불을 지르겠다, 난리를 쳤다는 것이다.

 

명치유신 이후 개항(開港)을 앞두고 일본의 국론은 양분되어 난세를 이루었다. 명치정부는 ‘누구든지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묘방이 있으면 의견서를 제출하라, 제출자에게는 과거를 묻지 않고 중용하겠다’ 하고 아이디어를 공모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오꾸노는 「의견17조」라는 문서를 관계기관에 내었는데, 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ㅡ 개항을 주장하는 자는 서양의 도(道)를 주장하고, 쇄항(鎖港)을 주장하는 자는 화한(和漢)을 주장한다…. 서양의 도에 들어서면 반드시 사소종(邪蘇宗)에 귀의(帰依)하게 된다. 사소(邪蘇 = 예수)가 신도(神道)를 해침은 유불(儒仏)에 비할 바 아니다….



이와 같이 오꾸노는 아주 반 그리스도교적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를 바울과 같은 복음의 사역자로 크게 쓰시려고 계획을 진행하고 계셨다.

 

1871년 요꼬하마(横浜)로 간 오꾸노는, 사위의 친구인 오가와 요시야스(小川義緩, 1831~ 1912)를 만난다. 독실한 그리스도인인 오가와는 오꾸노를 미국 의료선교사 제임스 헵번(James Curtis Hepburn, 1815~1911)에게 소개한다. 오꾸노는 헵번 선교사의 일본어 교사가 되면서부터 주님의 일꾼으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오가와 요시야스 목사 

 

오꾸노는 헵번을 도와 일본 최초의『화영사전』(和英事典) 편집을 도왔다. 헵번은「헵번 안약」으로 유명하다. 의사이기도 한 그는 성경번역으로 일본인들의 영의 눈을 뜨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안약을 만들어 일본인의 육신의 눈도 고쳐주었고,「헵번식 로마자 (ヘボ―ン式ロマ字) 표기법」을 고안하여 일본인들의 지식의 눈도 뜨게 해주었다. 이 표기법은 지금도 일본에서 공식으로 통용되는 외래어 표기법이다.

 

 

 

제임스 헵번 선교사 

 

헵번이 중국 상하이로 출장 간 후, 오꾸노는 새뮤얼 브라운(Samuel Robinson Brown, 1810~1880) 선교사를 도와 일어로 신약성경 번역을 하였다. 그러는 동안 오가와와 함께 요꼬하마에 있는 일본 최초의 교회인「일본기독공회」(日本基督公會)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세례는 안 받고 있었는데 때가 찼다. 제임스 발라(James Hamilton Ballah, 1832~ 1920) 목사가 어느 주일「베드로의 부인(否認)」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하였는데, 베드로가 예수를 세 번 부인한 후 예수의 시선과 마주치자, 밖으로 나가 통곡하며 회개한 이야기를 눈에 보는 듯이 설명하였다. 그 순간 오꾸노는 자기 자신이「베드로와 같은 자」라고 통회하며 세례 받을 결심을 하였던 것이다.

 

그 후 오꾸노는 입을 열기만 하면 베드로 얘기를 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은「베드로 얘기를 들으려면 오꾸노에게 가라」할 정도였다는 것이다.

 

1872년, 오꾸노는 브라운(Samuel R. Brown, 1810~1880) 선교사에게 일본에서 27번째로 세례를 받았다. 그의 나이 49세 때였다.

 

헵번이 상항이에서 돌아오자 오꾸노는 그를 도와 신약성경 번역을 계속하였다. 1873년 2월 일본 정부가 기독교「금교령(禁教令)」을 해제하자, 오꾸노는 기다렸다는 듯이 오가와와 함께, 8개월간에 걸쳐 전국순회 전도여행을 떠났다. 마침내 오꾸노와 오가와 두 사람은 1878년 나란히 목사 안수를 받아 둘 다 일본인 최초의 목사가 되었다.

 

1883년 5월 8일부터 한 주간 동안 도꾜에서 일본 최초로 대부흥집회가 열렸다. 오꾸노 목사는 갑신정변(甲申政變)으로 일본에 망명해 와서 그리스도인이 된 후, 미국 선교부에 한국에 선교사를 보내달라고 여러 번 편지를 하여 허락을 받은 조선인 크리스천 이수정(李樹廷, 1842~1886)을 이 집회에 초청하였다.

 

일본식 발음으로「리쥬떼이」로불리는 그는, "Boys, be ambitious for Christ!" 로 유명한 삽뽀로농학교의 클라크(W. S. Clark, 1826~1886) 박사의 제자로서, 일본 교회는 물론 일본 근대농업의 선구자요 농학박사인, 쓰다 센(つた せん, 津田仙, 1837~1908) 목사를 만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이듬해 동경제일장로교회 목사 야스가와 도오루(やすかわ とおる, 安川亨, ?~1908) 목사에게 세례를 받았다.

 

 쓰다 센( 津田仙) 목사

 

이수정은 이 해부터 동경 외국어학교에서 조선어 강의를 맡았으며, 요꼬하마(橫濱) 주재 미국성서공회 총무 루미스 목사와 함께 성경번역에 착수, 한문 성경에 이두(吏讀)식으로 토를 단,《현토한한신약성서》를 간행하고 이어서 한글로《마가복음》을 출판하였다.

 

한편 조선이 살길은 예수를 믿는 갈밖에 없음을 깨닫고 1884년 3월 미국선교사에게 대필시켜 미국 선교잡지에 「한국의 사정」이라는 호소문을 두 차례 보냈으나 아무런 소식이 없자 그 해 12월에는 한국전도의 중대성과 긴박성을 강조하는 글을 자기 이름으로 직접 써 보냈는데 이 편지가 1885년, 선교잡지(The Missionary Review of the World)에 실렸다.

 

이 편지를 보고 아시아 선교에 지원했던 젊은이들이 한국으로 가기로 결정하고 배를 탔는데, 그들이 다름 아닌 아펜젤러 부부, 스크랜턴 부부와 그의 어머니 스크랜턴 대부인, 언더우드 선교사 일행이었다.

 

이수정은 요꼬하마 항구로 이들을 마중 나갔다. 이수정은 이들에게 조선어를 가르쳐주고 한글을 가르쳤다. 그리고 자기가 번역 출판한《마가복음》을 선물로 주어 초대 장감 선교사들이 제물포에 입항할 때 한국어 성경을 들고 입항하게 했던 것이다.

 

          [사진설명] 앞줄 오른쪽에서부터 동지사대학(同志社大學) 2대총장

에비나단 죠, 구리하라, 후에 일본 중의원 의장이 된 유하사찌로,

한복의 이수정, 이수정에게 성경을 가르친 쓰다 목사,마쓰야마, 오꾸노 목사.

제2열 오른쪽에서 4번째가 동지사대학 창설자 니지마 죠(新島襄), 다섯 번째가

무교회주의자 우찌무라 간조(內村鑑三).

 

오꾸노 목사는 이러한 이수정의 믿음에 감동받아 이수정에게 집회 시작 때 기도를 부탁하면서 조선어로 기도를 하라 하였다. 오순절 날에 임하신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모두들 알아들을 것이라는 오꾸노 목사의 생각이었다.

 

오꾸노 목사의 예견은 적중하였다. 이수정의 조선말로 드리는 간절한 기도를 일본 형제들이 모두 알아듣고 우렁차게 아멘으로 화답하였다고 한다. 이에 감동한 오꾸노 목사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부흥회 기간에 이수정에게 간증집회를 열게 하였는데, 명필인 이수정은 한지에 간증 내용을 적어 가지고 나가서 유창한 일본어로 간증하여, 이수정은 일약 일본 전국에 유명해졌다. 약삭빠른 장사치는 이수정의 이름을 딴 가게를 내고, 제과업자는「리쥬떼이 과자」를 만들어 팔았는데 불티나게 팔렸다고 한다.  

 

무술과 문필 · 서화 · 음악 등 다방면에 조예가 깊은, 격정적이며 쉴 줄 모르고 기회를 만들어 전도하는 오꾸노 목사는「일본의 사도 바울」이라 불렸다.

그는 찬송가 번역 · 창작 · 편집에도 힘을 쏟아 계속 찬송가를 출판하였다.


《교훈의 노래》(敎えの歌, 1874)를 시작으로《讚美歌全, 1881》·《讚美歌幷樂譜, 1882》․《新撰讚美歌, 1888》·《新撰讚美歌 1890, 개정판》등을 공동발행자가 되어 내었는데, 여기에는 오꾸노의 번역 ․ 창작 찬송이 많이 들어 있다.

 

《新撰讚美歌 1890》편집을 보자.

《新撰讚美歌, 1890 개전판》 표지에는 그림에서 보는 대로 Shinsen Sambika, 新撰讚美歌라고 금박으로 찍었다,


안표지에는 版權所有 新撰讚美歌, 編輯 讚美歌委員 明治二十三年十一月이라 씌어 있고,

영문 안표지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HYMNS AND SONGS OF PRAISE. PREPARED BY A COMMITTEE, 1888.

REVISED 1890. TOKYO AND OSAKA, 1890.

판권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明治二十三年十一月二十八日印刷,

明治二十三年十二月一日出版,

著作兼發行者 東京府平民 植村正久,

仝 東京府平民 奧野昌網,

仝 新瀉縣平民 松山高吉,

印刷者 神奈川縣士族 須原德義

定價金二十五錢

   

신찬찬미가 서문 첫머리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 찬미가집은 명치19년(1886년-필자 주) 봄 一致組合兩會가 선거한 위원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조합교회에서는 松山高吉, 宮川經輝, 田村初太郞, 조지 올친(George Allchin) 제씨들이, 일치교회에서는 奧野昌綱, 植村正久, 瀨川淺, G. F. 베르벡(G. F. Verbeek) 제씨들로 그 위원을 삼았다….” (영문명 필자 추가.).

4×6판에 총 289장을 수록하였는데, 십계명 · 주기도문 · 사도신경도 장수에 포함시켰다. 오른쪽 열기다.

 

오꾸노 목사는 1910년 88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세 차례에 걸쳐 일본 전국을 순회 전도하였다. 오꾸노 목사가 작사한 찬송 6편이《讚美歌, 1954년》에 수록되어 있는데, 모두가 심금을 울리는 걸작이다.

 

오꾸노 목사 작사의「사랑하는 주님 앞에 가사는,《讚美歌全, 1881》을 시작으로,《新撰讚美歌, 1888》에, 그리고 1954년판까지 계속 채택되면서 수정을 거듭하여 원 가사와 많이 달라졌다. 당초의 가사는 위에 소개한 대로「그리스도 주님 앞에 기쁨으로 함께 모여」(キリストのまえに よろこびつどいて) 였다.

 

오꾸노 목사가 작사한 「사랑하는 주님 앞에」는《讚美歌全, 1881》,《讚美歌幷樂譜, 1882》등에서는, 「내 기도하는 그 시간」 곡조(SWEET HOUR)로 불리었다. 그러다가《新撰讚美歌, 1890》237장에서는, 요셉 반비(Joseph Barnby, 1838~1896)가 작곡한 곡조 BARNBY에 맞춰 불렀다. 현행 타우너 곡이 채택된 것은,《讚美歌, 1903》 454장부터였다. 그 수정된 일어 가사와 번역 가사를 보자. 언더우드 목사의 번역도 함께 보자.

 

わが主のみまえに    현재 번역 가사                우리말 번역 가사를 영역한 것

 1                                  <1절 >

わが主のみまえに        사 랑하는 주님 앞에       In one fraternal bond of love

よろこびつどいて、     형제자매 한 자리에        To Christ the Lord of love we sing,

うえなきみめぐみ        크신 은혜 생각하며      Think on that grace all grace above,

うたいたてまつれ。     즐거운 찬송 부르네     And praise with joy our Lord and King

 

わが主にならいて        내주 예수 본을 받아       As Jesus did, so Lord, may we

ひとおばへたてず、     모든 사람 내몸 같이       Love as ourself all these in need,

かたみになぐさめ        환난 근심 위로하고        Comfort who grieve, Even as He,

たがいにたすけよ。     진심으로 사랑하세       And learn to love in heart and deed.

 

2                               <2절>

わが主のためには        사랑하는 주님 앞에       To Christ the Lord of love, we give

その身をわすれて、     온갖 충성 다 바쳐서     Soul, spirit, strength, mind, heart, and nerve

ちからのかぎりに         괴로우나 즐거우나       In grief or joy, for Him to live,

つかえたてまつれ。      주님만 힘써 섬기네      And Him alone as Lord to serve.

 

わが主は御弟子の      우리 주님 거룩한 손        Lord, help us serve as love commands,

足をもあらいて、      제자들의 발을 씻어         As towel girt our Savior show'd,

もべの道をば         남 섬기는 종의 도를        Washing soil'd feet with Holy Hands!

しめさせたまえり。   몸소 행해 보이셨네         Help us to walk that servant road.

 

3                              <3절>

わが主をおのれの      사랑하는 주님 예수         If Jesus Christ be Lord indeed

かしらとあがめて、   같은 주로 섬기나니         To you as He is Lord to me,

ひとつとなりにし      한피 받아 한몸 이룬    Then comrade! friend! oh, be assur'd!

友よ、はらからよ、   형제여 친구들이여          One blood, one body all are we.


いよいよしたしみ      한 몸 같이 친밀하고        Shall we not then draw closer still,

心をあわせて、         마음조차 하나 되어   Heart, hand and hope and service one?

わが主の大御代        우리 주님 크신 뜻을         Beloved, come! Our Father's will

ことほぎまつれや。  지성으로 준행하세           In and through us may yet be done!

 

참으로 한역과 영역이 모두 잘 되었다.

 

The Hymnal: Sol-Fa Edition(1903)3

 

 

《讚美歌, 1954년》537장

 

 

그런데 일본《讃美歌21》에는 옛곡을 버리고 일본 형제가 새로 작곡한 것을 싣고 있다.

《讚美歌と大作曲家たち》저자 오오쓰까 노유리(大塚野百合) 교수는 106쪽에서 이런 말로 아쉬움의 결론을 맺고 있다.

 

― 《讃美歌21》을 처음 보고, 543장에 있는 「사랑하는 주님 앞에」를 보았더니, 수정 채택되었는데, 원작의 향기가 다 사라져버렸다. 일본인 작사에는 일본인이 곡을 붙인다는 원칙 아래, 우리가 애창하던 타우너의 곡조를 버리고, 다까나미 싱이찌(高浪晉一)의 곡조를 채택하였다. 나는 심장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끼며, "오꾸노 마사쓰나가 사라져버렸구나!" 「奥野昌綱が消えてしまった!」하고 탄식을 하였다."  

 

하지만 일본 그리스도교단 찬미가위원회에서 편찬 발행한《讚美歌21略解, 1998》 336쪽 이하에는, 새로 작곡한 것을 이렇게 자랑스럽게 해설하고 있다.

 

― 프로테스탄트 선교초기에 일본인이 창작한 찬미가로서, 예부터 애창되어왔는데,《讚美歌21》에서 처음으로 일본인의 곡조가 배당되었습니다. (중략). 《讚美歌, 1903》에 채용할 적에 2절 후반에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이야기를 삽입하여, 이 찬송의 커다란 특색이 되었습니다.《讚美歌21》에서는 가사 첫줄을 창작 당시의 가사에 가깝게 되돌리고, 파격적으로 구어체로 바꾸어 내용도 현대에 맞게 수정하였습니다. 이 가사는《讚美歌, 1881》에서는 SWEET HOUR OF PRAYER (459番의 곡조), 《讚美歌, 1903·필자 주/위의 [Sol-Fa Edition]을 말한다》이후에는 TOWNER의 곡조가 배정되어 왔습니다. 《讚美歌21》에서 高浪晉一 (154番參照) 의 신곡이 붙여져, 작사 후 약 110년 만에 일본인의 작사 · 작곡의 찬미가로 되었습니다.

 

 

  

일본《讚美歌21》543장 

 

위의 글에는 중대한 착오가 있어 여기 지적해둔다. 그 대목은 다음 구절이다.


“《讚美歌, 1881》에서는 SWEET HOUR OF PRAYER (459番의 곡조), 《讚美歌, 1903》이후에는 TOWNER의 곡조가 배정되어 왔습니다. ”

 

내가 이번에 구입한《新撰讚美歌, 1890》237장에는 BARNBY 곡조가 사용되고 있으니까 그 동안 두 번 바뀌었는데, 아마도 일본 형제들은《新撰讚美歌, 1890》가 없기 때문에 위의 글대로 곡조가 한 번 바뀐 것이라고 해설한 것이라 생각된다.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곡조 TOWNER는, 앞서도 말했지만, 다니엘 타우너(Daniel Brink Towner, 1850~1919) 교수가, 거든 로빈스(Gurdon Robins) 작사인 'The Better Land' 를 위해 1897년에 작곡하여 판권을 등록한 것이다.

 

엘더킨(Elderkin), 스웨니(Sweney), 커크패트릭(Kirkpatrick), 길모어(Gilmour) 그리고 하딘(Hardin) 등이 공동 편집한《세기의 찬송》'Songs of the Century, 1900' 제10장에 처음 실렸고, 타우너가 1901년에 출판한《복음 안내자 찬송》'Gospel Pilot Hymnal' 149장에도 실려 있다.

 

 

 

작곡자 다니엘 타우너(Daniel Brink Towner, 1850~1919)교수는 펜실베이니아의 타우너힐(Towner Hill)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음악을 공부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유명한 성악가로서 교육자였다. 후에 하워드(John Howard)와 루트(George Frederick Root, 1820~1895) 그리고 웹(James Webb)에게서 공부하였다. 1870년부터 12년 동안, 뉴욕의 빙햄턴(Binghamton)에 있는 감리교100주년교회의 음악감독으로 섬겼다. 1882년부터 신시내티에 있는 요크스트릿 감리교회, 유니언감리교회 등에서 음악감독으로 일하고, 1893년 시카고의 무디성경학교 교수로 부임하여 죽기까지 26년 동안을 가르쳤다. 1900년 테네시주 해리만에 있는 미국절제대학(The American Temperance University)에서 음악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작품을 발표할 때 'Robert Beverly' 라는 아호도 사용하였다.

 

 

작곡자 타우너 교수

 

 

 타우너의 작곡으로서 우리 찬송가에 있는 곡조는 다음의 4편인데 모두 우리의 애창곡이다.

 

①「사랑하는 주님 앞에」(220장),

②「놀랍다 주님의 은혜」(251),

③「행군 나팔 소리에」(360장,

④「어디든지 예수 나를 이끌면」(44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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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1830년 경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시작된 전천년주의자들의운동. 플리머드형제단에서 유래되었으며, 대표적인 지도자는 다비(J.N.Darby)였고 그들의 사상을 전파하는 매체는 스코필드관주성경이었다. 그들은 성경의 문자적 해석을 고집하고, 구약의 이스라엘과 신약의 교회의 무관계성을 주장했으며, 전천년왕국설을 주장했고 시대를 일곱 경륜으로 구분했다. 즉 무죄시대,..

각주 2

《新撰讚美歌(신찬찬미가), 1890》초판은 2년 전인 1888년에 내었는데 무곡이었고, 2년 후에 곡조 찬송을 낸 것이다.

각주 3

Sol-Fa Edition(1903)은 위에서 보는 대로 악보 5선 위에 숫자악보를 넣은 것이다. 동남아 찬송가들 중에는 지금도 Sol-Fa Edition을 쓰는 곳이 있다. 총485장의 이 책 마지막에는 일본 국가 <기미가요>가 실려 있는데 명치유신 이후 국가가 찬송가 편집에도 관여한 느낌이 든다. 청일전쟁, 노일전쟁 때의 찬송가이기 때문이다.

  1. 1830년 경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시작된 전천년주의자들의운동. 플리머드형제단에서 유래되었으며, 대표적인 지도자는 다비(J.N.Darby)였고 그들의 사상을 전파하는 매체는 스코필드관주성경이었다. 그들은 성경의 문자적 해석을 고집하고, 구약의 이스라엘과 신약의 교회의 무관계성을 주장했으며, 전천년왕국설을 주장했고 시대를 일곱 경륜으로 구분했다. 즉 무죄시대, 양심시대, 인류통치시대, 약속시대, 율법시대, 은혜시대, 왕국시대로 구분했는데, 이러한 각 시대에는 서로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교리는 복음주의적 교회에 널리 전파되었으나 성경과 교회와 하나님의 구원의 단일성에 큰 손상을 주며, 지나친 문자주의로 성경의 일부분만 취사선택함으로써 결국 비성경적이 되어버리는 문제를 안고 있다.(→경륜론) [본문으로]
  2. 《新撰讚美歌(신찬찬미가), 1890》초판은 2년 전인 1888년에 내었는데 무곡이었고, 2년 후에 곡조 찬송을 낸 것이다. [본문으로]
  3. Sol-Fa Edition(1903)은 위에서 보는 대로 악보 5선 위에 숫자악보를 넣은 것이다. 동남아 찬송가들 중에는 지금도 Sol-Fa Edition을 쓰는 곳이 있다. 총485장의 이 책 마지막에는 일본 국가 <기미가요>가 실려 있는데 명치유신 이후 국가가 찬송가 편집에도 관여한 느낌이 든다. 청일전쟁, 노일전쟁 때의 찬송가이기 때문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