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꽁이의 찬양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해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스크랩] 예배음악과 오르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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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찬송가연구원

2014. 5. 7.

 

예배음악과 오르간

 

개신교회 예배음악에서의 오르간의 역할을 알아보기 전에 먼저 올간의 역사를 더듬어보자.

 

 

 

 

 

 

 

 

 

 

1) 오르간의 역사

 

최초의 오르간은 히드라울루스(hydraulus)로서 그리스에서 만든 것이다. 히드라울루스란 고대 그리스의 물(水) 오르간으로서, 수압을 이용하여 오르간 관에 바람을 보내는 장치인데, 그 이름은 그리스어의 물(hydro)과 관(aulos)의 합성어로 되었다. 풀무로 직접 공기를 관으로 보내는 오르간은 「프뉴마틱 오르간」(Pneumatic Organ)이라고 한다. 문헌에 이 물 오르간은, 주전 2세기에 알렉산드리아의 크테시비오스(Ktesibios, ?-?)가 제작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그 모형이 1885년 카르타고에서 발굴되어 물 오르간의 모양이 어느 정도 명확해졌다.

 

공기를 공급하는 오르간은 이보다 400 여년이 지나서야 나타났는데, 8세기경에 유럽에 등장하여 10세기부터는 교회에서 사용되면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오르간 발전에 가장 중요한 시대는 15-16세기인데, 이때 각 나라마다 오르간 악파들이 출현했고, 기계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중대한 발전을 이루었다.

 

17세기 초에 근대 오르간의 형태를 완전히 갖추게 되었고, 계속 음악적․기술적으로 세련되어갔다. 바로크 전성기 동안 오르간은 가장 큰 인기를 누렸으며, 중요한 오르간 작곡가로 요한 세바스티안 바하(1685-1750) 등이 활동했다. 당시 주요한 두 오르간 악파가 있었는데, 하나는 프랑스 악파로서 다채로운 리드와 뮤테이션(mutation)이 특징이었고, 또 하나인 독일 및 네덜란드 악파는 합창음악이 뛰어났다.

 

바하가 죽은 뒤에 오르간 음악은 점차 쇠퇴했고, 1800년 이후 특히 독일과 영국에서 작곡된 오르간 곡들은 스톱을 사용하여 관현악을 모방하는 기법이 더욱 강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빈약해져갔다. 이러한 쇠퇴 현상은 예배의식의 변화와 더불어 19세기 기간 동안 줄곧 계속되었다. 당시에 오르간을 사용한 것은 연주자 한 사람이 관현악단 전체의 기능을 하면서 다양한 곡을 연주할 수 있기 때문이었는데, 그러면서도 일류 오르간 작곡가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20세기에 와서는 오르간 작곡에 대해 가졌던 고전적 이상이 부활하여, 오르간은 고유한 음악 어법을 구사하는 독립 악기로서 재등장하게 되었다.

 

1935년 로렌스 해먼드(Laurens Hammond, 1895-1973)가 미국에 도입한 전자 오르간속칭 해먼드 오르간은 경제성과 간편한 크기 때문에 기존 오르간을 대체시켰지만, 이것의 모방음은 원래의 기계식 오르간을 따르지 못했다.

 

2) 가톨릭과 오르간

 

가톨릭도 중세 초기에는 예배에 오르간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배 이외의 모임에서는 자주 사용되었다. 일찍이 교황 요한 8세(John VIII, 872-882)는 ‘음악적 조화의 학문에 필요한 보조교구(補助敎具)로서 악기를 설치하라’는 지침서를 내려, 초기 오르간은 예배에 사용한 것이 아니라, 야외행렬 때나 사람들을 모으는데 오늘날의 종처럼 사용되었다.

예배에 오르간이 사용된 것은 12세기부터이며, 15세기에 이르러서는 보편화되었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오르간은 찬송가의 반주용이 아닌 찬양대와는 별도의 독주악기로 사용되었다. 아래에서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찬양할 때 찬양대와 오르간이 번갈아 연주하였던 것이다.

14세기에 파리 노틀담 대성당에 처음으로 대형 오르간이 설치되어, 예배 때 이 음악을 들은 어느 작가는 이런 글을 남겼다.

 

ㅡ “우리는 놀라운 음악적 재능을 풍부히 가진 성직자들을 본다. 그들은 즉흥곡을 만들고, 오르간으로 가장 어려운 멜로디, 인간의 목소리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가락을 연주한다.”

 

종교개혁 당시, 가톨릭의 화려한 예배에 오르간은 필수적인 것이 되었고, 개혁자들은 이를 파괴하기도 했다.

 

3) 칼빈파와 오르간

 

가장 가톨릭적인 것을 모두 제거하려 했던 제네바의 칼빈주의 교회에서는 엄청난 돈을 들여 만든 오르간을 닥치는 대로 부숴 버렸다. 일부 남아있는 오르간은 세속적인 음색을 낸다 하여 다음 음색을 내는 것들은 모두 일소시켰다.

 

①베이스 소리를 내는 숌(shawm)

이 악기는 춤과 의전 음악에서 널리 사용되었기 때문에 배제되었다.

②테너 소리를 내는 크룸호른(crumhorn)

이것은 음색이 갈대소리, 콧소리와 비슷하여 퇴폐적인 소리라고 배제되었다.

③바이올린의 전신인 비올(viol)

이것은 이교도의 춤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배제되었다.

 

이런 불경건한 소리를 내는 오르간 음악은 음색 자체에도 문제가 있지만, 회중의 입에서 찬양을 빼앗아가기 때문에 배제한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오르간이나 전자 악기를 사들일 때, 음색 문제는 신중히 참고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된다.

 

칼빈파에서도 초기에는 완전히 배제했지만, 세월이 흐름에 따라 즐거운 공중 모임에서의 사용은 허락하였다. 그러나 장례식이나 탄원기도 때, 그리고 이단을 처형할 때에는 절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하지만 프랑스 칼빈파 교회에서는 신앙고백(Credo) 때와 아침기도(Matins)에 오르간을 사용하였다.

 

4) 루터파와 오르간

 

루터파는 오르간 사용에 있어서 유동적이었다. 엄격하지도 않았고, 법적인 제재도 하지 않았다. 대다수 큰 교회들은 부활절이나 성탄절 같은 교회 잔치에는, 오르간과 찬양대와 회중찬송이 한데 어우러져 즐거운 예배를 드렸다. 한 때 예배에서 오르간이 제외된 일도 있었지만, 16세기 말부터는 예배에 찬양 반주로 사용함은 물론, 묵상기도를 드릴 때에도 오르간이 연주를 하게 되었다. 따라서 루터파 교회에서는 오르간 연주자의 지위가 향상되었다. 그들은 찬양곡의 전주나 간주로 연주하였고, 성찬식 때에 특히 성찬의 떡을 목사가 높이 들어 올릴 때(elevation of the host)에 연주하였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의 오르간의 위치는 루터파의 전통을 따른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루터파 교회에서 다른 악기를 사용한 증거는 수도 없이 많다.

 

5) 영국국교회와 오르간

 

칼빈주의를 수용한 영국에서는 오르간 사용의 논쟁이 오래 지속되었다. 1561년, 존 녹스(John Knox, c1514-1572)가 칼빈주의를 들여온 스코틀랜드에서는 오르간 사용이 엄히 금지되었다. 그러나 어느 사회나 획일적인 것은 오래 못 간다. 성 바울 성당(St. Paul's Catherdral)에서 쓰기 위해 발행된《멀리너의 책, Muliner Book》이라 불리는 오르간 악보 사본 모음을 보면, 예배시에 오르간이 독주악기로 사용하는 단 하나의 악기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왕실 예배당 오르간 연주자인 존 레드퍼드(John Redfford, c.1486-1547), 작곡가요 오르가니스트인 윌리엄 블라이트먼(William Blitheman, c.1525- 1591), 그리고 전술한 탤리스 등의 곡들이 수록되어 있고, 또 종교개혁 전후의 오르간 악보를 수록하고 있다. 이렇게 영국 교회에서는 대형교회에서만 오르간을 사용하였을 뿐 지방 교회에서는 오르간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출처 : ..........오소운 목사의 [찬송가 블로그]
글쓴이 : 오소운 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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