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꽁이의 찬양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해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 오두의 동양학 강의 - 주로 물고기를 방생(放生)하는 숨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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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관계

2014. 10. 6.

- 오두의 동양학 강의 -

 

불교에서 물고기를 방생(放生)하는 숨은 이유

- 물고기 사서 방생(放生)하는 법회는 폐기되어야 한다 -

- 용왕신앙을 제어했던 불교문화가 어류를 주로 방생하는 이유 -

 

 

불살생계(不殺生戒)가 방생의 기본 의미인데 잡아다가 놓아준다? 괴롭히거나 죽음의 위험을 조장한 후에 놔준다는 것은 병주고 약주기다. 뭔가 잘못되었다.

 

물고기를 놔주는 방생법회는 그 방생에 참여하려 물고기를 사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에게 팔기 위하여 물고기를 잡아다가 파는 행위는 아직도 바뀌어지지 않는 관행으로 남아 있다. 이런 경우 방생에 대한 어떠한 실제 놔준다는 '방생법회'는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근본 대책이다. 

 

불교에서 살생을 금하라는 기본 교리는 윤회사상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을 만큼 중요한 이론이다. 그러나 그것을 '시범' 보이는 행태는 그야말로 '방생행태' 조장이나 다름 아니다. 생명경시풍조에 대하여 보다 폭넓은 설법을 할지언정 방생법회를 열고 방생의 시범을 행하거나 대량 방생문화를 방조하는 것을 크게 떠벌리도록 하는 것은 없어져야 한다.

 

팔리 캐논의 하나인 수타 니파타(Sutta Nipata)경은 수타 피타가(Sutta Pitaka) 경전의 한 부분인데 방생의 오랜 원천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산 생명을 죽여서는 안된다.  또 남을 시켜 죽이게 해서도 안된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방생법회라는 것이 남을 시켜서 물고기를 잡아 팔고 사게 한 후에 법회를 열게하는 것은 수타 니파타경의 원천적인 의미를 부정하는 것이 된다.

 

불교사에서 살생을 금하기 위한 홍보는 인도의 아쇼카왕이 가장 큰 영향력을 미쳤다. 전쟁으로 적의 생명을 살해하거나 종족을 멸하는 행위들은 그래서 특히 불교의 불살생계를 강화시키는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백제 29대 법왕은 조서를 내려 살생을 금지시키고 민가에 기르는 매나 새매를 놓아주고 물고기 잡는 도구를 불사르도록 명했다. 살생에 대하여 사람만이 아니라 동물에게도 금하게 하고 특히 물고기 잡는 도구를 폐기하도록 했다는 것은 오늘날 '물고기 방생'을 위하여 물고기를 잡지 말도록 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만하다.  

 

신라시대 원광법사는 세속오계를 통해 살생유택(殺生有擇)을 화랑도들에게 가르쳤다. 유교에서는 효를 앞세워 살생이 좋지 않음을 강조했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 불감상해면 효지시야라 고 한 것은 자신의 몸을 상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남의 몸도 상해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중국 연지대사는 살생하지 말기를 바라는 날짜까지 예시하여 강조법을 썼는데 생일날, 자식을 낳은 날, 혼인날, 제사하는 날, 연회 등의 잔칫날에는 살생을 못하게 했다. 제한적이나 강조법에 해당한다.

 

살생을 금하는 가르침을 강조하기 위하여 윤회사상이 강화된데는 동물토템 숭배시대의 인간과 동물의 호환환생사상에 닿아 있다. 동물이 윤회하여 사람이 되고 사람이 부처가 된다는 것은 동물도 인간과 동등한 생명의 가치가 있다는 믿음을 바탕하는 것이다.

 

원시 동물토템 숭배에서 동물을 인간보다 우위의 신으로 믿고 사람이 죽어 동물신이 된다고 믿었다. 사람은 죽어 날개를 단 새가 되거나 바다의 고래(해룡)가 되는 것을 희원했다. 그런데 비하여 불교에서는 똑같이 사람이 죽어 동물이 될 수 있는 역윤회가 될 수도 있다고 믿었지만, 그것은 징벌적인 의미로 받아들였다.

 

고대 인도 불교에서 환생과 윤회에 대한 여러 수트라(Sutra) 경전들이 있지만 뚜렷하게 환생의 일치되는 견해로 통일된 것은 없다.

 (While all Buddhist traditions seem to accept some notion of rebirth, there is no unified view about precisely how events unfold after the moment of death).

 

불교 특히 팔리 불교에서 인간이 무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깨우치지 못하면 나쁜 카르마(Karma)를 쌓아 동물로 윤회한다고 보았다. 윤회는 재수육 또는 환생(rebirth", "metempsychosis", "transmigration" or "reincarnation)을 의미하는 것으로 결코 최고의 경지가 아닌 반복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한 생명이 다른 생명으로 환생하는 것을 산스크리트어에서는 푸나르바바(punarbhava)라고 하고 팔리어에서는 푸나빠바(punabbhava)라고 하는데 보통 '바바(bhava)'라고 한다. 생각컨대 나는 우리 말 '바보'라는 말은 이러한 '바바(bhava)'에서 유래한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바바'가 다른 생명으로 환생하여 죽음에 이어진 의미라면 이 세상에 다시 다른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을 삼사라(samsara)라고 하는데 '사람'이란 그런 의미에서 태어남과 관련한 뜻에 이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바보'는 '사람'과 구분된 종교적인 구분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고 하겠다.

 

카르마는 고대 불교 코스몰로지에서 삼사라 세상 즉 이 세상의 삼계(三界, three worlds)에 다시 태어나는 업보를 말한다. 이러한 카르마 업(業)에 의하여 다시 태어나는 세상을 무색계와 색계로 나누어 그 외곽을 욕계(desire realm, 欲界)라고 한다.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와는 달리 욕계는 욕계육천(欲界六天)이라 하여 마하야나 불교에서는 여섯 층의 하늘(six domains or six realm)로 구분했다. 데라바다 불교에선는 다섯으로 구분하여 욕계오천으로 보는 것은 도교에서 음양오행사상에 의한 다섯 세계로 보기 때문으로 보인다. 거기에 부처가 더하여 육계가 되었을 것이다. 

 

동물토템시대의 동물신이 인간보다 상위에 존재했던 것을 불교의 카르마에서 짐승이 되는 것은 인간보다 못하다고 본 것은 이 세상 자연의 격조가 저 세상보다 하위로 믿은 그 시작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신천지 개념이 점차 기독교의 천국계념으로 변화하여 사후의 세계가 강조되어 현세상의 자연을 폄하하는 결과를 낳았던 것과 같은 지나친 반현세적 반자역적인 신앙을 강조했다.  

 

인간 이하의 위치로 격하된 동물이나 자연계는 불교문화에서 급격히 푸대접을 받아 그 우월한 개념이 제거되기 시작한 것이다. 용토템이 불교에서 '무찔러야 할 짐승'으로 묘사된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단지 용만이 아니라 자연 자체를 거스르고 영겁의 니르바나에 부처가 된다는 것은 자연에 대한 의식을 약화시켰다. 동물은 그래서 불교문화에서 짐승으로 격하되거나 정복대상이 되었다. 

 

동물신들은 부처의 설법에 감복하고 굴복하여 칠보를 바치거나 보주를 바친다고 하여 동물도 인간에게 보은을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동물신을 부처신앙의 산하에 두었다. 그래서 동물을 살생하지 말도록 하는 교훈담으로 사용되어 왔다. 치악산 전설에는 선비가 뱀에 물린 꿩을 살려주어 보은을 받았다든지, 술취한 주인을 화재로부터 구한 의로운 개 이야기, 호랑이와 싸워 밭가는 주인을 구해낸 황소 이야기 등이 그런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어떤 예화 담론을 넘어 인간은 물론 동물을 포함하는 모든 생명 그 자체의 신성함이 강조되어 오늘날 기독교권인 서양에서도 동물보호단체들이 부각되고 있는 것은 인류의 지적인 능력이 발달할수록 자연동물 생명의 가치에 대한 의미가 자연스럽게 강조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 하겠다.

 

그런데 오늘날까지 방생을 실현해보여 가면서까지 살생을 하지 말라는 시범을 보여주려는 것은 오히려 생명을 경시하는 동물을 노리개감으로 전락시키는 모양이 되고 있다. 특히 땅짐승이나 날짐승보다 물고기를 방생하는 것을 강조하려는 방생법회의 내면에는 어딘가 알게 모르게 불교 이전의 토착적인 용왕신앙의 바탕이 되는 바다의 어류토템을 배경하여 무속신앙을 제어하기 위한 것으로 비치기까지 한다.

 

불교가 고래의 무속신앙을 배제하고자 '물고기 방생'이라는 허명(虛名)으로 물고기를 자꾸 잡아 방생하도록 하는 것을 시범보이는 '방생법회'라는 것을 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기독교가 불교세력을 누르기 위하여 '우상숭배' 주제를 너무 지나치게 강조하여 오히려 불교문화재에 대한 파괴행동을 유발시키는 것과 유사한 면이 있다는 것에서 나의 이 글은 좀더 입체적인 우리의 종교적인 공존에 대한 조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 아직도 방생법회(放生法會)라는 이름으로 주로 강물에서 물고기들을 주로 놓아주는 행위는 바람직한 종교행사가 아니다. 겉으로는 '잡은 물고기를 놓아준다'는 의미를 강조하는듯 하지만, 사실은 부처의 이름으로 물고기를 정복하여 관대하게 놓아준다는 승리자를 강조하려는 의도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교문화의 관행은 오랜 세월동안 있어온 저의가 있다. 그것을 유수(流水) 장자 설화에서도 보여준다.  

 

<금광명최승왕경(金光明最勝王經)>에는 유수(流水) 장자라는 사람이 물이 말라가는 연못에서 몸이 물밖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는 물고기들을 살려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연못에 물이 말라가면서 물고기들은 땅짐승들에게 잡아 먹힐까봐 유수 장자는 코끼리를 동원하여 그 연못에 물을 부어 살려낸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설화라기보다 상당히 조직적으로 꾸며진 불교의 우월감을 강조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고 보여진다.

 

물고기의 상징은 해신신앙 즉 용왕신앙을 의미한다. 그들 물고기들을 땅짐승들의 먹잇감이 되지 않도록 땅짐승들 중에서 가장 큰 코끼리가 말라가는 연못에 물을 부어주어서 물고기들을 살려냈다는 것이다. 결국은 물고기들은 부처의 상징 동물인 코끼리의 '자비'로움에 의하여 구원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물고기는 불교 이전 바다의 고래를 중심한 해신신앙 즉 '용'으로 상징되어 있었던 물고기이다. 불교의 탱화나 설화에서 용이나 고래는 자주 격하되고 폄하되어 단지 '물고기'로 표현된 경우가 많다.

 

불교는 일종의 산악종교이다. 툰황이나 아잔타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절벽에 동굴을 파고 그 안에서 득도하여 부처가 된다는 종교는 바다의 해신과 바닷가의 산신의 음양교합적인 전래의 무속적인 종교와 갈등을 겪은 잔재들이 '용과 부처의 대결 구도'로서 많은 설화들에서 전해지고 있다.

 

동물토템은 결국 조직화된 국가단위의 기독교나 불교문화에 의하여 약화되어 갔다. 인간을 보다 강조하여 왕권을 통한 국교 파워를 가졌던 기독교나 불교문화에서 토속적인 무속과 그 동물토템은 미신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오늘날 전 세계의 자연사랑과 동물보호운동은 오히려 원시동물토템 숭배의 이론에 근접하는 지구생명체 의식을 확대시키고 있다.

 

과거 역사 속에서 순전히 미신적인 동물숭배는 가히 불교나 기독교 문화에서 밀려날 수 밖에 없었던 면이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역사적 과정을 제대로 분석하고 해석할 수 있어야 오늘날 고등종교들의 시행착오나 과거 미신스러웠던 동물토템 종교의 좋은 점을 살려내 인류문화에 도움이 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서양에서 황소토템과 연관한 미드라교가 어떻게 기독교문화에서 사장되어 갔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오늘날 자연생태보호와 그 발전적인 이론토대 구축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동양의 불교문화가 그 이전 전통 토착 동물토템 문화를 어떻게 정복하고 융합시키고 어떤 부작용을 만들어 왔는지 그 역사적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 때에 오늘날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방생법회'에서 오히려 물고기 생명들을 조롱하는 행태를 막을 수가 있을 것이다. 

 

엄격히 말하여 불교가 '산사'라는 말에 걸맞는 자연보호 정신이 오히려 세속의 자연보호와 동물보호보다 뒤지는 면이 있다는 것을 불교계에서는 제대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목탁소리 내는 소에 대한 호기심보다 소들이 겪는 집단매장에 보다 관심을 보여야 할 것이다. 물고기 방생보다 일본인들이 불법으로 고래를 살해하는 것에 더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다.

 

바닷가에서 강력한 종교심을 불러일으켜온 바다의 여신은 사실상 용왕신으로 고래 특히 암고래토템신앙이었다. 그러한 배경의 여해신 신앙이 불교문화에서 11세기 전후에 관음보살로 변이시켰다. 관음보살상은 그래서 여신적인 모습을 많이 띄고 있다. 과거 우리 민족사에서 토속적인 자연보호 동물토템들은 오히려 종교적이기보다 문화적으로 생태보호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면에서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불교가 국가의 왕들의 종교문화에 도입되면서 동물토템들 신앙은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 한 예가 <삼국유사>에 문무대왕이 죽어 고래(용)가 되어 호국신이 되겠다고 한 것을 당시의 지의법사가 '용(고래)은 짐승에 불과하다'고 반대한 내용에서도 볼 수 있다.

 

민간에 오랫동안 남아져 온 용왕신앙이나 바다에 대한 고래토템을 비롯한 물고기토템 무속신앙은 불교문화에서 배척하고 정복하여 '용을 무찔렀다'는 직접적인 표현이 <삼국유사>에서 많이 보인다.

 

그러나 그런 용과의 싸움은 부처의 자비나 불살생계에 모순적인 행태가 되기 때문에 때로는 '용을 굴복시켜 설법을 듣게 하여 부처에게 보주를 바치게 했다'는 식으로 정복대상임을 강조한다. 이것은 국가로 말하면 제국주의 제왕들이 약소국가들에게 조공을 바치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용녀, 용왕을 굴복시켜 보주를 바치게 하거나 부처의 설법을 듣게 했다는 표현은 <삼국유사> 어산불영편 기록의 기조를 이루고 있다. 용왕이나 용녀신앙에 대한 폄하적인 표현들은 그래서 생겨난 것이며, 용의 상징인 물고기에 대한 정복의식은 그렇게 나온 것이다.

 

방생에 물고기를 놓아준다는 것은 일반인들이 잡아들인 물고기를 놓아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본래 불교문화가 정복하고 '죽이기도 한' 용에 대한 '자비'로의 재해석의 과정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적인 저의가 방생문화의 내면에 깔려 있는 것이다. 

 

땅짐승이나 날짐승은 별로 방생에 등장하지 않고 물고기 방생이 많은 이유는 호랑이토템이나 까마귀 까치토템은 일찍 힘을 잃은 반면에 바닷가의 해신신앙의 물고기토템은 오늘날까지 해안지대 무속에서 강력하게 남아 있어 물고기토템신앙 무속적인 힘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것을 제어하려는 배경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문화적인 변천을 배경하여 불교가 토착종교들을 제압할 때에 어룡 즉 물고기류들을 잡아 용왕신을 배제한 역사를 되돌이켜 용왕을 놔준다는 것을 드러내지 않고 단지 물고기를 방생한다는 포용적인 의미가 방생 특히 어류를 방생하고 있는 것이다.

 

<삼국유사>나 <고려사>에 보면 온통 '용 잡아 몰아내기' 또는 '바다에서 활로 용 쏘아죽이기(작제건 신화)'가 수없이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 사찰들의 창건 유래에서도 상당수 사찰들이 '연못의 용을 무찌르고 절을 세웠다'는 식이다. 말하자면 방생이란 용잡았던 것 대신에 이제 놓아주겠다는 승자의 아량으로 물고기를 대신에 상징적으로 놓아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삼국유사>를 쓴 일연 김경명은 부처와 용왕 또는 신룡 신앙과의 공존에 대한 불교의 타협적인 내용도 포함하여 기록하고 있다.  

 

<삼국유사> 전후소장사리(前後所將舍利)편에 다음과 같이 절에 부처와 신룡이 공존함을 보여주고자 하여 1161∼1189년의 기록인 <한남관기(漢南管記)>의 팽조적(彭祖적)의 시(詩)를 소개하면서 그 내력을 첨기한다.

 

   물과 구름 조용한 절에 부처님 계신데,

   더구나 신룡(神龍) 지경을 보호하네.

   마침내 좋은 어느 누가 이어받을까,

   처음 불교는 남쪽에서 전해왔네.

 

       <한남관기(漢南管記)>의 팽조적(彭祖적)의 시(詩)

 

절간에 부처와 신룡신앙이 공존한다는 것을 강조하여 기존 신룡신앙자들에게 절간에 와서 불공을 드리면 함께 그 신앙이 습합 융합될 것이라는 의도가 있다. 동시에 그런 과정에서 전통 신룡신앙이나 산신 해신신앙을 불교에서 보존하는 결과를 남긴 면도 있었다. <삼국유사>는 고래토템 즉 용토템이 불교에서 수용한 배경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옛날 보요선사(普耀禪師) 처음으로 남월(南越)에서 대장경(大藏經) 구해 가지고 돌아오는데 바닷바람이 갑자기 일더니 조각배가 물결 사이에서 뒤집힐 같았다.  선사는 말하기를, "이것은 신룡(神龍) 대장경을 이 바다에 두고 가게 하려 것이 아닐까"하고 염려했다. 그리하여 주문(呪文)으로 정성껏 축원하여 ()까지 함께 받들고 돌아오니, 바람도 자고 물결도 가라앉았다.  

 

"본국에 돌아오자 산천(山川) 두루 구경하면서 대장경을 안치할 곳을 구하다가 산에 이르렀는데 갑자기 상서로운 구름이 위에서 일어나는 곳을 보고 이에 수제자(首弟子) 홍경(弘慶) 함께 연사() 세웠으니, 불교가 동방으로 전해 것은 실로 이때에 시작된 것이었다." <삼국유사> 전후소장사리(前後所將舍利)

 

대장경을 가져오면서도 바다의 풍랑에서 신룡신앙이 있는 보요선사의 자세를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용까지 함께 받들고 돌아왔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구름이 산위에서 일어나는 곳"이란 '용'을 의식한 것이다. 그리하여 만들어진사찰의 이름도 부처의 이름보다 해룡왕사((海龍王寺)라 하고 용왕당(龍王堂)을 따로 모신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해룡왕사(海龍王寺)에는 용왕당(龍王堂) 있는데 자못 신령스럽고 이상한 일이 많았다.  당시 용왕은 대장경(大藏經) 따라와서 여기에 머물러 있었는데, 용왕당((龍王堂)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삼국유사> 전후소장사리(前後所將舍利)

 

9세기 일본승려 엔닌이 <입당구법순례행기>에서도 기록하고 있듯이 그가 당나라 유학에서 불경을 구해오면서도 해신신앙인 신라명신사당을 일본에 세웠다는 것도 같은 맥락의 불교와 용왕신(명신)의 공존을 보여주는 거이다.

 

당나라 유학을 다녀와서 의상대사가 세웠다는 신라 초기의 사찰 가운데 하나인 부석사의 선묘당은 고래해신을 모시는 용왕당인데 같은 구조의 불당과 용왕당의 공존을 보여주고 있다는데서 일본의 엔닌의 신라명신사당과 같은 연맥을 가진다고 하겠다.

 

일본에서는 의상대사와 신라 부석사 선묘(善妙) 신화에 대한 그림을 국보로 삼고 있다. 교토 고산지(高山寺)에 소장하고 있는 의상대사와 선묘에 대한 그림들로서 8세기의 의상대사의 당나라 유학과정을 13세기 <송고승전>을 읽고 화엄종 승려 묘에쇼닌(明惠上人)이 원효와 의상에 대한 <華嚴緣起>를 썼다. 그 내용을 화가들에게 그리게 한 그림들 교토 고산지의 선묘설화 그림들이다. 선묘여신은 일본에서 모셔지는 신라명신의 하나로 '선묘명신(善妙明神)'으로 불려진다.

 


* 일본국보로 지정되어있는 선묘와 의상대사 설화를 그린 그림. 카마쿠라시대, 교토 고산지. 

http://59155480.at.webry.info/200808/article_1.html

 


* 일본국보로 지정되어있는 선묘와 의상대사의 사랑을 그린 그림들. 鎌倉時代 高山寺 

관련글: <코리안 신대륙발견> 신라 범종에는 왜 유두(乳頭)가 있을까?

 

 


* 일본국보로 지정되어있는 선묘와 의상대사의 사랑을 그린 기쇼우에(義湘絵) 그림들 

게곤슈소시에덴(華厳宗祖師絵伝)기쇼우에(義湘絵). 13세기 일본

 

*영주 부석사 선묘각에 그려진 선묘설화의 선묘여신상.

일본의 여신상 강조와는 달리 한국의 여신상들은 불교화된 모습으로 표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관련글: <신화이야기 171> 부석사(浮石寺)의 선묘(善妙)는 선도성모(仙桃星母) '선모(仙母)'였을까?

 

나는 불교문화에서 인도의 부처신앙 외에 동아시아 토착적인 용왕당 또는 해신당 및 산신당 또는 북두칠성 또는 태양신 숭배의 잔재인 칠성각의 공존이 가지는 그 의미를 대단히 높게 평가한다. 그러나 불교문화 역사에서 용왕신과 부처에 대한 신앙은 공존하면서도 애매한 갈등적인 내면을 숨기지 않는다. 김경명은 <삼국유사>에서 불교의 포용력을 다음과 같이 시로 쓰고 있다.

 

  불교는 넓어서 바다와 같이 끝이 없어서,

  백천(百川) 유교(儒敎) 도교(道敎) 모두 받아들이네.

  가소롭다.   여왕(麗王) 웅덩이를 막고,

  바다로 와룡(臥龍) 옮겨가는 알지 못하네.

 

   <삼국유사> 보장봉로(寶藏奉老) 보덕이암(普德移庵)편

 

연못 또는 우물의 용은 바다로 오가는 것으로 이해되었던 것은 고래해신이 용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점차 <삼국유사>의 기록의 경향은 용은 불교편에 서서 부처에 순응하고 굴복하는 형태로 전이시켜 표현했다.   

 

"자장이 오대산에서 받아 가져온 사리(舍利) 100알을 기둥 속과, 통도사(通度寺) 계단(戒壇) 대화사(大和寺) 탑에 나누어 모셨으니, 이것은 못에 있는 용의 청에 따른 것이다(대화사大和寺 아곡현阿曲縣 남쪽에 있다.  지금의 울주蔚州이니 역시 자장법사慈藏法師 세운 것이다)." <삼국유사> 전후소장사리(前後所將舍利)

 

여기에서 "용의 청에 따른 것"이라는 표현은 <삼국유사>의 선도성모(仙桃聖母) 수희불사(隨喜佛事)편에서 불교 이전 신라의 고유 해신과 산신 신앙에 이어져 있었을 선도성모가 불교 사찰을 짓는데 꿈에 나타나 도와주었다는 설화와 같은 방법의 선전교리 예화라 할 수 있다. 신라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의 의미인 신라인들의 대자연의 어머니 선도성모가 불교에 호응적이라는 것을 그렇게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그만큼 선도성모 신앙이 막강하게 고려시대까지 남아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처럼 불교 이전 종교신앙의 신들이 불교의 불사를 위하여 도와주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오늘날 '물고기 방생'과 같은 불교의 종교적인 권위를 강조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물고기로 상징되는 고래토템의 해신신앙은 신라시대에 수많이 등장하는 '신성한 우물'에 이어져 있다. <삼국유사> 원성대왕편에 용이 물고기로 변화시켰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당나라에서는 불교를 강조하여 신라인들에게 불교유학을 강조했다. 그래서 신라의 해룡신앙을 약화시키려 한 흔적을 여기에서 볼 수 있다.

 

분황사 우물에 대한 삼룡변어정 설화에 당나라 사신이 신라에 와서 동지와 청지 샘의 용과 분황사 석정 우물에 있는 용까지 모두 세 마리 용을 물고기로 변화시켜 가져가는 것을 원성왕이 사람을 보내 되찾아와 우물에 넣어 되살려주었다고 했다. 

 

왕이 즉위한 지 11년 을해(乙亥; 795)에 당(唐)나라 사자가 서울에 와서 한 달을 머물러 있다가 돌아갔는데, 하루 뒤에 두 여자가 내정(內廷)에 나와서 아뢴다. 

 

"저희들은 동지(東池)·청지(靑池; 청지靑池는 곧 동천사東泉寺의 샘이다. 절에 있는 기록을 보면 이 샘은 동해東海의 용龍이 왕래하면서 불법佛法을 듣던 곳이요 절은 진평왕眞平王이 지은 것으로서 오백五百 성중聖衆과 오층탑五層塔과 전민田民까지 함께 헌납했다고 했다)에 있는 두 용(龍)의 아내입니다. 그런데 당나라 사자가 하서국(河西國)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우리 남편인 두 용(龍)과 분황사(芬皇寺) 우물에 있는 용까지 모두 세 용의 모습을 바꾸어 작은 고기로 변하게 해서 통 속에 넣어 가지고 돌아갔습니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그 두 사람에게 명령하여 우리 남편들인 나라를 지키는 용을 여기에 머무르게 해 주십시오."

 

원성대왕은 하양관(河陽館)까지 쫓아가서 친히 연회를 열고 하서국 사람들에게 명령했다.  

 

"너희들은 어찌해서 우리 나라의 세 용을 잡아 여기까지 왔느냐.  만일 사실대로 고하지 않으면 반드시 사형(死刑)에 처할 것이다."  

 

그제야 하서국 사람들이 고기 세 마리를 내어 바치므로 세 곳에 놓아 주자, 각각 물 속에서 한 길이나 뛰고 기뻐하면서 가 버렸다. 이에 당나라 사람들은 왕의 명철(明哲)함에 감복했다." <삼국유사> 원성대왕(元聖大王)

 

신라시대에 시조신화를 비롯한 김유신장군 집의 재매정은 물론 작제건의 아내인 용녀가 우물로 사라져 바다로 갔다든지 수많은 신비한 우물들은 동해의 용들이 왕래하는 곳이라고 위에서도 설명하고 있다. 고래해신 신앙이 우리 민족사의 모든 부인들에게 이어져 있는 것이다. 고래가 미역을 먹는 것을 배워 우리민족의 모든 어머니들은 산후에 미역을 먹은 것과 같은 의미가 어머니들의 삶과 종교의 현장인 우물이 바다의 고래에 이어져 있었던 것이다.

 

분황사 우물은 그러한 여신적인 배경을 의미하고 신성하게 받들어졌던 것이다. 그러한 분황사 우물에 사는 용을 물고기로 변화시켜 가져가려던 당나라 사신은 신라의 이러한 고래토템 용왕신앙을 제어하려 한 것을 볼 수 있고 당나라불교의 영향으로 신라가 불교문화가 강해지면서 신라의 고유 용왕신앙은 이렇게 제어되어 갔다.  

 

분황사 삼룡변어정 설화를 단순하게 용을 물고기로 변화시킨 마술적인 내용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이 기록은 한국 고유의 고래토템신앙인 신라의 해룡신앙이 당나라에 의하여 '물고기'로 폄하당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바다의 나라 우리 민족의 고래토템의 나라의 종교문화로서 동지와 청지의 우물이나 샘은 "동해(東海)의 용(龍)이 왕래하는 곳"이라는 개념을 확실하게 기록해 주고 있는 것이 분황사 삼룡변어정 설화이다.  

 

 


*분황사 '삼룡변어정' 석정.

당나라 사신이 '용을 물고기로 변화시켰다'는 우물

신라 고유의 해신신앙이 당나라의 의도에 의하여 비하된 현장이 되고

당나라에서 강조된 불교문화는 신라 고유의 해신신앙을 화석화시켜 나갔다.

이러한 내용을 전하려 우리 선조들은 경주 분황사에 남아 있는 그 우물은 당나라 사신이 용을 물고기로 변화시켰다고 하여 '삼룡변어정'이라는 별칭을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물고기'는 빼앗아 다시 우물에 넣었다고 했지만 당나라와 당나라 불교에 대한 사대주의와 불승 유학생들이 불어나면서 신라는 불교문화가 강렬해지면서 용왕당은 그저 '물고기'로 격하되고 목어나 목탁 등으로 그 희미한 흔적의 '물고기 이미지 신앙'만 남아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과 함께 물고기를 잡아 다시 방생하는 '방생법회'는 매년 초파일마다 큰 행사처럼 보여주는 것은 참으로 불교 본래의 자비도 아니고 제대로 된 생명보호도 아닌 조롱행위나 다름 아니다. 놓아주는 장면을 보여주는 조롱거리 요식행위를 보여줄 것이 아니라 지금은 있는 그대로 생명들을 사랑하고 보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의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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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생보다 동물보호장면을 보여주는 것이 좋다.

 

오늘날 방생법회라고 하여 물고기들을 방생하는 이상하게 불합리한 행태는 이제 그만하는 것이 옳다. 물고기 특히 자라나 거북을 방생하는 것은 특히 용왕신 즉 고래토템신에 대한 배격문화에 대한 과거 역사를 보여주는 것과 같다. 그것은 자비가 아니라 '거드름'에 가깝기 때문이다. 

 

방생(放生)은 글자 그대로 생명을 놓아준다는 것이다. 생명을 놓아주는 것은 불교문화만이 아니라 다양한 뿌리를 가지고 있다. 유명한 <삼국지 연의> 소설에서도 놓아준다는 방생의 극치는 제갈공명의 남만 두목을 일곱번 잡았다가 일곱번 놓아주었다는 이른바 칠종칠금에서 볼 수 있다.

 

기독교 문화에서 방생(放生)은 '용서'에 해당한다. 예수가 '일곱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한 것은 제갈공명의 칠종칠금과 같은 뜻이라 할만하다.

 

'놓아주다'는 것은 오늘날 낚시꾼들이 물고기를 낚은 뒤에 물에 다시 놓아주는 경우가 많은 낚시문화에서도 볼 수 있어 방생(放生)의 뜻에 이어져 있다. 

 

나는 <코리안 신대륙발견> 시리즈글의 하나인 <마오리족은 신라인들이었을까>라는 글에서 같은 고래잡이 전통이 이어져 온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들의 언어가 우리 민족의 말과 유사한데가 있다는 것을 비교하면서 방생(放生)에 대해서 소개한 바 있다.

 

우리말에서 '놓아주다'는 말은 마오리족에거서 '노아(noa)'는 흥미롭게도 "신들린 사람이나 사물에서 신(tapu)을 쫓아내주는 의미"로 사용한다.  

 

Noa: free from tapu or any other restriction.

        Non-sacred. common, profane, opposite of tapu.

 

마오리족의 '노아'는 우리말 '놓아'와 유사하다는 것은 어쩌면 바이블에 나오는 노아방부의 '노아' 신화의 뜻과도 유사하다.

 

노아방주는 홍수에서 동물들을 구제한 의미가 있어 일종의 방생이다. 방생의 본래 개념 자체가 "방생이란 죽음에 직면한 生物을 살려주는 일"이라고 말하듯이 사다가 놓아주는 것이 아니라 위험에 직면한 생물을 구해주는 것이다. 신들러리스트가 가장 위대한 방생이었을 것이다.

  

방생에 대하여 이제 물고기에 한해서만 불살생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대자연 자체 지구 자체를 보호하고 생명사상의 그 근원적인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불교신앙에서 방생법회를 위하여 미리 방생할 많은 생명들을 잡아다 놓고 있다가 그것을 사서 방생을 하는 것은 생명을 오히려 동물을 괴롭히는 것이다. 잡혀 있는 것은 놓아주되 그것을 보여주지 말라. 집단 방생장면은 집단으로 생명을 잡아들여 매생(賣生) 행위를 조장하여 오히려 잡아들이는 것을 조장하는 것이 된다.

 

생명을 잡아들여놓게 하고 그것을 신도들이 사서 놓아주면서 얼마나 많은 물고기들이 죽음을 당하거나 상처를 입겠는가. 놓아주는 실제 방생행위는 없어져야 한다. 오늘날 국제협약으로 1986년이래 고래사냥을 금지하도록 되어 있는데도 이웃나라 일본이 고래를 계속 사냥하게 하는 것은 한국불교에도 책임이 있다.

 

물고기를 물에 풀어주거나 그런 법회를 하는 것은 없어져야 한다. 단지 법회에서 생명을 구속하지 말고 자연생명들을 보호해야 된다는 것을 가르치면 되는 것이다. 불교문화가 제대로 다른 종교문화와 공존하려면 이것부터 고쳐야 한다. (05/10/11 오두 김성규 odunamsan@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