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꽁이의 찬양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해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허균의 한문소설 5편

댓글 0

깨알 지식

2014. 10. 29.

 

허균의 한문소설 5편

 

 

허균(許筠, 1569∼1618]은 조선시대 중기의 문신이자소설가이다. 그의 작품인 사회모순을 비판한 《홍길동전(洪吉童傳)》은 최초의 한글소설로서 우리나라 고전소설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허균의 작품인 홍길동전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으나, 그가 한문으로 된 5편의 소설도 남겼다는 것은  그리 알려져 있다. 그의 문집인 《성소부부고(惺所覆부藁)》에 전하는 한문소설은 다음과 같다.

 

1. 남궁선생전 (南宮先生傳)

 

그의 한문 작품 중 가장 긴 것으로 <홍길동전>과 더불어 허균 소설의 쌍벽을 이루는 작품이다. 또한 작품 속에 허균 자신이 등장하는 1인칭 시점이기도 하다. 소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전라도에 사는 부호 남궁두(南宮斗)는 서울에 가서 진사 벼슬을 살게 된다. 그 사이에 고향에 남아서 농장을 관리하던 애첩은 그의 당질과 간통한다. 고향에 갔다가 그 사실을 알게 된 남궁두는 격분한 끝에 활로 두 남녀를 쏘아 죽인 뒤 서울로 돌아온다.

 

그러나 이 사실이 탄로나자 남궁두는 체포되어 갖은 악형을 받는다. 부인의 주선으로 겨우 풀려난 그는 세상에 뜻을 잃고 금대산에 들어가서 중이 된다.

 

남궁두는 금대산에서 한 장로(長老)를 만나서 수련을 쌓은 후 신선의 경지에 이른다. 그는 스승의 명에 의해 다시 속세로 돌아와서 부인을 새로 얻고 안락한 생활을 한다.

 

그 무렵 허균(자신이 작중 인물로 등장)은 공주에서 파직당하고 부안에 살고 있었다. 그 때 남궁두가 찾아와서 선가(仙家)의 비결을 전해준다.


2. 엄처사전 (嚴處士傳)

 

사회제도의 모순을 파헤친 작품으로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엄처사는 효도가 지극하고 청렴하기로 이름이 높았다. 그가 벼슬을 맡게 된다면 경국 제민의 뜻을 펼칠 수 있는 큰 그릇이었다.

 

그러나 엄처사의 재능을 알아주는 이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궁벽한 처지에서 허송세월을 하고 있다.

 

 

3. 손곡산인전 (蓀谷山人傳)

 

작자인 허균의 스승이자 삼당시인으로 이름이 높았던 손곡 이달에 대한 실명 소설이다. 뛰어난 시재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서자라는 신분 때문에 불우한 생애를 보내야 했던 스승에 대한 애절한 마음을 예리한 필치로 그리고 있다. 허균이 홍길동을 서출로 그린 것은 스승에 대한 동정의 발로로 보는 시각도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당대에 삼당시인으로 이름을 떨쳤던 손곡이지만 서출인 탓에 벼슬의 길은 막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세속적인 예법에 얽매이지 않고 시국을 비판하는 글과 말로 권력층에 비난을 받는다.

 

권문세가에서는 손곡에 대한 질투와 분노가 극에 이르렀으나 민중에게 명망이 높은 손곡을 해치지는 못한다. 그는 유유자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신분 차별로 인한 비극의 주인공으로 기구한 삶을 살아간다.

 

*삼당시인 : 조선 선조 때의 최경창(崔慶昌) ·백광훈(白光勳) ·이달(李達)을 가리킴. 이 중에 이달이 가장 이름이 높았음

 

* 이달 : 조선 중기 선조(宣祖) 때의 한시인(漢詩人)이다. 본관은 홍주(洪州)이고, 자는 익지(益之), 호는 손곡(蓀谷)이며, 동리(東里)·서담(西潭)이라고도 한다. 충청남도 홍주(지금의 홍성)에서 매성공(梅城公) 이기의 후손인 이수함(李秀咸)과 홍주 관기 사이에서 태어났다. 한시의 대가로 문장과 시에 능하고 글씨에도 조예가 깊었으나, 신분적 한계로 벼슬은 한리학관(漢吏學官)에 그쳤다.

 

 

어려서부터 책읽기에 힘써 이백(李白)과 성당십이가(盛唐十二家)의 작품들을 모두 외울 정도였다. 시문에 뛰어난 정사룡(鄭士龍)과 박순(朴淳) 등의 문인(門人)으로, 특히 당시풍(唐詩風)의 시를 잘 지어 선조 때의 최경창(崔慶昌)·백광훈(白光勳)과 함께 삼당파 시인으로 이름을 떨쳤다.

 

 

사화(士禍)와 당쟁, 임진왜란 등의 전란으로 어수선한 시대적 상황과 신분적 불만까지 겹쳐 젊은 시절의 시세계는 주로 방랑과 이별, 슬픔 등 인간 감정의 자연스런 발로를 중시하는 당풍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불우한 자신의 처지를 시적으로 승화시켜 초월의 경지를 보여주는 《산사(山寺)》 《강행(江行)》과 같은 명시를 남겼으며, 당시 서민들의 누추한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습수요(拾穗謠)》 등의 정감어린 시를 지어 오늘날에도 공감을 얻고 있다.

 

 

서얼 출신이라는 신분적 제약으로 벼슬길이 막힌 울분을 시문(詩文)으로 달래며 지금의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손곡리(蓀谷里)에 은거해 호를 손곡이라 하고 제자교육으로 여생을 보냈다. 말년에는 허균(許筠)과 허난설헌(許蘭雪軒)을 가르쳤는데, 특히 허균에게는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졌다. 허균은 스승의 전기로 《손곡산인전(蓀谷山人傳)》을 집필했다.

저서에 문집 《손곡시집(蓀谷詩集)》이 전한다. 이 문집은 제자 허균이 저본(底本)을 수집하고, 아들 이재영(李再榮)이 편차해 1618년경 간행한 초간본으로 한시(漢詩) 330여 수가 실려 있다.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손곡리에 그의 시정신을 기리는 손곡시비(蓀谷詩碑)를 세웠다.

 

4. 장산인전 (張山人傳)

 

주역에 통달하여 각종 방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인물의 생애를 그린 소설로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장산인은 귀신을 능히 부릴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부친으로 부터 옥추경(玉樞經)이란 비서를 물려받는다. 그는 그 책을 수만 번이나 독파한 끝에 귀신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경지에 이르른다.

 

장산인이 하루는 산길을 가다가 호랑이를 만났다. 그가 큰소리로 꾸짖으니 호랑이는 꼬리를 흔들며 엎드렸다. 장산인은 호랑이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 뒤 돌려보낼 경지에 신통력을 지녔다.

 

장산인은 산중에 머문지 18년 만에 서울로 돌아와 산다. 서울에서도 이웃집 흉가의 뱀을 잡아서 죽이기도 하고, 죽은 물고기를 살리기도 하는 등 신통력을 발휘했다. 임진왜란 때는 그를 만난 왜병이 칼로 찔렀으나 흰기름 같은 피가 튀자, 오히려 공포에 떨며 도망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신선에 머물렀을 뿐 세상의 일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5. 장생전 (蔣生傳)

 

분량이 길지는 않으나 허균의 문학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는 소설이다. 허균의 생애나 홍길동의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작품으로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장생은 비렁뱅이 행세를 하고 있고, 기생집을 들락거리는 오입쟁이다. 그는 음주가무 등 잡기에 능하고, 입으로 모든 악기와 짐승의 소리를 흉내낼 수 있는 재주를 지녔다.

 

장생은 남의 억울한 일을 보면 위험을 무릅쓰고 해결해 주는 등 의리에 사는 인물이다. 그러던 중 동해 가운데에 있는 이상향인 섬나라를 찾아간다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자 벌레로 화해서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