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꽁이의 찬양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해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성경은 진정 하나님의 말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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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고고학

2015. 4. 6.

성경과신학

성경은 진정 하나님의 말씀인가?

by admin posted Apr 18, 2009

  서론 - 성경에 대한 논쟁 


  성경은 과연 하나님의 말씀인가? 인류 역사상 이 질문만큼 다양한 논란을 불러일으킨 질문이 또 있을까? 종교계와 고고학계, 그리고 역사학자들을 포함한 수많은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해 왔다. 중세 시대를 지나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본격적인 합리주의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을 시점에 이르러서 이 명제에 대한 수많은 반론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을 인간의 이성이라는 가위로 자르고 오려 붙이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임마누엘 칸트는 "사람들을 위한 책으로서 성경의 존재는 인류가 지금까지 경험해 온 최고의 유익이다. 그것을 하찮게 보려는 모든 시도는 인류에 대한 범죄이다."라 고 말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에 대해 회의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도, 한쪽에서는 그것을 변호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성경의 신빙성이나 계시에 대한 증거들은 다양하다. 그것을 입증하는 것이 나의 임무이며,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이다. 하지만 성경에 대해 고찰하기 전에 한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사실이 있다. 인간이란 모름지기 각자의 나름대로의 '선입견'을 안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따라서 나름대로 들어서있는 굳센 판단들이 어떤 창도 막아내는 방패처럼 진리에 대한 그 어떤 항변이라도 무마시키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국에  '믿음'이라는 벽 앞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계시의 책으로서의 성경의 위치


  일반적으로 계시라는 뜻은

"감추어져 있던 것이 드러나다"이다. 마찬가지로 신학에서 사용하는 계시라는 단어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을 찾아 발견할 수 있게끔 자신을 의식적으로 드러내 보여주시는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는 셈이다. 이 계시 개념이 전제하고 있는 바로는 [계시를 전달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그러한 계시 없이는 알 수 없는 초월적인 지식들, 그 계시를 수령하는 이성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이 있다. 계시의 주체는 하나님이시고, 인간은 수동적인 존재에 불과하다. 이렇듯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주시는 행위인 '계시'에 전적으로 의존되어 있다. 




                                                               ▲ '하나님'은 자신을 '인간'에게 "드러내셨다."(계시)



  계시는 
[자연적 계시 ↔ 초자연적 계시] 혹은 [일반 계시 ↔ 특별 계시]로 구분할 수 있다. 미묘한 차이는 있지만 이 두가지 구별법은 거의 비슷한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로는 '자연적 계시'(일반 계시)로 서 이 세상 만물들의 이치와 질서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신다는 것이다. 종교철학에 있어서의 '신존재증명', 특별히 '우주적 증명'과 '목적론적 증명'이 이 계시관에 기초하고 있다. 우주가 존재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자 할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인과율'(원인 → 결과)을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모든 만물의 존재의 이유와 마찬가지로, "도대체 이 세상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가?"라 는 질문에 대한 원인으로 '신'을 지목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심지어 정교한 기술로서 만들어진 컴퓨터조차도 만든 '설계자'(인간)가 있거든, 하물며 놀랍도록 정교하고도 일관된 법칙속에 운행되는 우주를 볼 때 그 '설계자'(신)가 없겠느냐는 것이다. 아들레이드 대학교의 이론 물리학 과장인 폴 데이비스는 " 숫자를 아주 조금만 바꿔도 너무나 민감하게 반응하는 우주 구조는 아주 신중하게 고려된 것이라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외관상으로는 거의 기적같이 보이는 이 수치들의 일치는 우주가 설계되었음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거로 남아 있어야만 한다."라고 말하였다. 분석철학자 비트겐슈타인도 이 문제를 두고 "진정한 미스터리는 어떻게 세상에 사물들이 존재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세상이 존재하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이다... 시간과 공간 속에 속해져 있는 삶의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은 시·공간 밖에 놓여 있다."라 고 말하였다. 우리 이성에 비추어 자명하게 보이는 이러한 신의 설계로서의 우주는 모든 사람들이 납득할 만 하다. 그러나 이런 자연 계시는 어느 정도의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구원의 과정을 인간에게 충분히 설명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보다 더 구체적으로 인간에게 자신을 드러내시기를 원하셨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인간이 하나님에 관한 지식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자연적 계시를 초월하는 보다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지식이 필요했다.

 

 

 


▲ 하나님의 일반 계시(자연 계시)로서의 대우주(대자연)

 

 

  하나님이 자신을 인간에게 드러내시는 두 번째 계시가 바로 이 구체적인 지식에 다다를 수 있도록 돕는 '초자연적 계시'이다. 초자연적 계시를 다른 말로 하면 '특별 계시'라 고 부를 수 있다(물론 뉘앙스의 차이는 있지만). 이것은 일반적으로 인간들에게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일반 계시'(자연 계시)를 뛰어넘는다. 더 깊은 지식으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해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특별한 계시라 불리는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자신이 작정하신 구원 계획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창세기 1장 1절의 유명한 명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말은 이 세상의 기원에 대해 알려준다. 또한 구약의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인류에게 '그리스도'를 보내실 것을 예언하셨고, 4복음서(신약에서의)를 통하여서 예수에 대한 자세한 생애의 기록들을 우리에게 나타내셨다. 이후의 사도들의 활동과 장차 미래에 나타날 종말론적 사건들에 대해서도 우리에게 확고하게 보여주셨다. 성경은 인류의 [과거, 현재, 미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와 미래에 도달하게 될 종말의 사건들을 알려준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우리에게 매우 특별한 책으로서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 하나님의 특별 계시(초자연 계시)로서의 성경(LOGOS)

 

 

  지금까지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정리해보자면, 일반 계시는 자연적 계시로서 인간의 눈에 보이는 자연의 산물들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게끔 도와준다. 특별 계시는 초자연적 계시로서 기록된 말씀(성경)을 통해 하나님 자신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죄의 문제와 종말론적 문제들을 더 깊은 차원의 지식으로 우리를 안내해 준다. 그렇다면 이제 이 글의 제목이기도 한, "성경은 과연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계시의 책(말씀)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성경은 특별한 계시로서의 자격이 있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타당하게 인정받을만한 그런 증거들을 갖고 있는지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 시내산에서 십계명(율법)이 적힌 돌판을 받는 모세

 

 

 

  1. 신뢰할 수 있는 역사적 자료들 


  성경은 1,500년간 약 40여 명의 저자들에 의해 기록되어 현대에까지 전해져 온 다분히 역사성을 띤 책이다. 누가복음 3장 1절의 단 한 구절에만해도 우리는 무려 15개의 역사적 언급들을 발견할 수 있다. A. D. 30년경으로 추정되는 그 당시에 상황에 대해 누가는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 왕으로"(눅 3:1) 이것을 자세하게 분석해 보면, "디베료 가이사(1)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2) 곧 본디오 빌라도(3)가 유대(4)의 총독(5)으로, 헤롯(6)이 갈릴리(7)의 분봉 왕(8)으로, 그 동생 빌립(9)이 이두래(10)와 드라고닛(11) 지방의 분봉 왕(12)으로, 루사니아(13)가 아빌레네(14)의 분봉 왕(15)으로"로 나눌 수 있다. 다음의 언급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적어도 성경이 그것을 기록한 그 시대적 상황을 매우 사실적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누가는 예수에 관한 전기를 기록하면서 그것이 자신의 주관적인 해석이 아니라 객관적인 시각에서 기록된 것임을 강조했다.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누가복음 1:1-2) 여기에서 '붓을 든 사람이 많은 지라'라는 언급은 예수에 대한 기록들이 단순한 한 사람의 주관적인 해석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캐나다 맥마스터스 대학의 통역 교수인 클라크 피녹은 이를 반영하여, " 그렇게도 뛰어난 한 세트의 문자적, 역사적 증언들에 의해 증명되어지고 지적 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는 자료들을 그렇게도 훌륭하게 배열한 문서는 고대로부터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정직한 사람은 이런 종류의 자원을 평가 절하할 수 없다. 기독교의 역사적 신뢰성과 관련하여 회의론은 비이성적 편견에 근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라고 말하였다.

 



▲ 예수에 대한 빌라도 총독의 심문


 


▲ 아기 예수를 죽이려 했던 헤롯 대왕의 가계도

 

 

 

  2. 거부할 수 없는 고고학적 발굴들


  19세기 이후에 활발하게 실시되었던 팔레스타인 지역내에서의 방대한 발굴작업은 많은 회의론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성경의 진정성을 드러내준다.  발굴의 결과 어떤 고대 문서의 저자가 특정한 장소나 사건을 정확히 언급했음이 드러날 때, 그 문서의 신뢰성은 증가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조셉 프리는 『고고학과 성경 역사』에서 "고고학은 많은 비평가들이 비역사적이거나 모순이라고 거부해 온 수없이 많은 사건들을 확증해 오고 있다."라 고 이 학문이 지니고 있는 중요한 함의에 대해서 피력했다. 고고학으로 인하여 옛 히타이트 문명도 우리 앞에 그 모습을 활짝 드러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성경은 어떠한가? 고고학에서 실시한 방대한 발굴작업에 의해 성경의 역사성은 훼손되었는가, 아니면 더욱 확고해졌는가? 잭 커트렐은 "역사적, 고고학적 탐사에 의해 발견된 풍부한 자료를 통하여 우리는 성경의 역사적 사실성을 측정할 수 있다. 성경의 주창들이 시험되는 어떤 경우에서든 성경은 정확하고 신빙성 있는 것으로 입증된다."라 고 말하였다. 보다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무신론자인 프랭크 진들러는 예수가 유년시절을 보냇던 나사렛이라는 작은 마을이 구약이나 탈무드에서 언급된 적이 없다는 것에 의문을 가졌다. 그 지명은 A. D. 7세기경에 기록된 어느 유대 문학 작품에 이르러서야 최초로 언급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고학자들은 A. D. 70년경 유대의 멸망당시에 한 제사장의 가족들이 각기 다른 경로로 이동했다는 기록이 적힌 아람어로 된 목록을 발견할 수 있었다. 놀랍게도 그 문서에는 제사장의 가족들 중에 한 가족이 나사렛으로 이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나사렛'이라는 마을이 예수가 살아있었을 당시에 실제로 팔레스타인 땅에 존재했었음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 또 한가지 예를 들어 보자. 성경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왕의 갑옷을 보관하고 있던 장소에 대해 각기 다른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즉, 열왕기서에서는 사울의 갑옷이 '아스다롯 신전'에 보관되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 반면에, 역대기서에서는 사울의 갑옷이 '다곤 신전'에 보관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이 두 기사는 서로 상반된 내용을 흘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학자들에게조차 의문시되던 이 풀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오류'가 고고학적 발굴 작업에 의해 풀리게 되었다. 발굴의 결과, 사실은 아스다롯 신전과 다곤 신전이 나란히 세워져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열왕기서나 역대기서나 모두 사울의 갑옷에 대해 올바른 기사를 기록해 놓은 셈이다.

 

  또한 유명한 유대인 고고학자 넬슨 글릭은 성경을 지침서로 사용하여 트랜스-요르단(요단강 동쪽) 지역에서 약 1,000개 이상의 유적지를, 그리고 네게브(이스라엘 남쪽 지역) 지역에서 약 500개 이상의 고대 유적지를 발견했다고 한다. 영국의 대영박물관 관장이자 고고학계의 권위자인 로날드 J. 와이즈맨은 "성경에 나와있는 지역들의 지리와 눈에 보이는 고대의 유적들은 점차적으로 기록되어졌으며, 가장 넓게 봐서 구약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면 이 지역 안에는 오늘날까지 25,000군데 이상의 유적지들이 위치해 있다."라 고까지 이야기하였다. 아직까지도 성경에 대한 고고학계의 발굴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노력들은 18, 19세기 성서 비평학자들이나 회의주의자들이 호언장담한 것처럼 성경의 권위를 떨어뜨리기는 커녕 오히려 지지해주고 있다. 하버드 대학의 고고학자이자 고문서학자인 윌리엄 F. 알브라이트는 이렇게 확언했다. "18세기와 19세기의 주요 역사학파가 성경에 대해 보여준 극도의 회의론은 어떤 면에서 보면 지금도 간헐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점점 그 신용을 잃어가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들의 신용은 점차적으로 잃어가게 될 것이다. 성경의 증거들을 확증해주는 고고학적 발굴이 계속되고 있는 이상 말이다. 성경이 역사적인 신빙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만인에게 알려질 수 있도록 팔레스타인에서의 발굴 작업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 이스라엘인들의 포로 생활을 묘사해주는 이집트의 벽화

 

 



▲ 고대 페르시아 유적지

 

 

 

  3. 하늘의 별처럼 많은 사본들


  이이서 성경의 사본에 관한 문제로 돌입해보자.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은 원본이 아니라 베껴진 사본이다. 그렇다면 원본이 아닌 이상 성경에 오류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많 은 회의주의자들은 이렇게 질문할 것이다. 실제로 그 당시는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필로 베껴쓰다가 철자나 문장의 순서가 틀리는 오류가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성경에서도 이런 오류의 가능성은 존재하고 실제로도 그러하다. 여기에 대해서 '사본학'의 대가인 브루스 메쯔거 박사는 사본의 양에 대해 다른 저작자들과 비교하여 볼 것을 권한다. 예를 들어, A. D. 116년경 『로마 제국의 역사』를 쓴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의 책은 오늘날 단 한 권이 존재할 뿐이다. 더군다나 사본이 기록된 시대는 A. D. 850년 경으로 처음 책이 쓰여진 시대보다 무려 700년이나 지난 후에 베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메쯔거 박사는 "양을 비교해 볼 때 타키투스와 요세푸스의 사본들이 개미집처럼 소수라면 신약 성경의 사본은 가히 산더미처럼 많다."라 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플라톤은 어떠한가? 유럽 역사상 가장 원대하며, 위대한 철학자 중에 한 사람으로 칭송받는 그다. 하지만 그 역시 사본에의 검증을 피해갈 수는 없다. 플라톤의 저서는 B. C. 400년 경에 쓰여졌다. 그러나 최초의 사본이 발생한 때는 무려 1300년이나 지난 A. D. 900년 경이다. 게다가 역사상 가장 위대하다고 손꼽히는 철학자의 책에 대한 사본이 고작 7개에 불과하다. 너무나도 초라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성경은 어떠한가? 성경은 처음 원본이 기록된 지 불과 100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이미 사본들이 속속 베껴지기 시작했으며, 지금까지 발견된 사본의 숫자만 무려 5,300여개에 다다란다. 이에 대해 케넌은 " 신약 성경의 사본과 초기의 번역본 및 교회의 고대 저자들의 글에 나오는 인용문들의 수가 대단히 많아서 의심이 가는 모든 구절의 바른 내용이 이들 고대의 권위들 중 여기 아니면 저기에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 사실상 확실하다. 세상에 있는 다른 어떤 고대의 책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할 수 없다."라 고 말하였다. 사본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아서 원본에 가깝게 복원할 가능성 또한 증가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네슬은 이 오류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상당히 긍정적으로 말한다. 그에 의하면 신약성경 안의 150,000개의 오류 중 약 95%는 참 권위가 없는 것이며, 나머지 7,500개 가운데서도 95%는 성경의 의미를 전혀 바꾸지 못한다. 그는 실제적으로 성경의 의미에 변화를 주는 오류가 375개 정도 있는데, 이마저도 사소한 실수가 대부분이라고 말한다. 모제스 스튜어트에 의하면 역시 신약성서에 있어서 현존하는 변형들의 95%는 [영어 철자법에서 honour에서 'u'를 넣어야 하는가 빼야 하는가 정도의 문제 정도]일 뿐이라고 한다. 그는 말하기를, "어떤 것은 특정한 구절이나 표현의 의미를 바꾸고 특정한 단어나 어구를 빠뜨릴 수 있다. 그러나 이 변형들을 집합적으로 취할 때, 바뀔 종교상의 교리나 제거될 교훈 또는 변경될 사실은 하나도 없다."라 고 했다. 사실상 회의론자들의 질문과 같이 성서가 원문으로부터 이탈했다고 볼 수 없도록 만드는 사본에 대한 자명한 분석들은 우리로 하여금 성경에 대해 더욱 신뢰할 수 있도록 만든다. 따라서 메쯔거 박사가 이렇게 호언장담한 사실은 매우 타당하다. "고대의 다른 문학 작품들과 비교해 볼 때 신약 성경의 자료가 충실하게 전해 내려왔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세계 고대 문학 중에서 신약 성경만큼이나 본문에 대한 증거를 풍부하게 확보한 책은 없다."

 


 


▲ 고대 저작들의 사본에 관한 비교

 


 
 


▲ 히브리어로 필사된 구약 성서 사본

 

 

 

  4. 성경 이외의 역사가들의 증언들 


   이번에는 성경 이외의 저작물들의 성경에 대한 평가를 통해 역사성의 진위 여부를 가려 보자. 영국의 저명한 신약학자로 알려진 F. F. 브루스 교수는 " 여기 요세푸스의 책에서 우리는 신약성경을 통해 잘 알고 있는 많은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화려한 헤롯 왕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스, 그리고 네로, 시리아의 통치자 퀴리니우스, 유대의 총독 빌라도, 펠릭스, 베스도, 대제사장 가문 안나스, 가야바, 아나니야 등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그리고 여러 인물들 말이다." 역사가로 알려진 요세푸스는 우리에게 예수와 성경에 대한 중요한 사실들을 언급해준다. 그는 1세기에 살았던 중요한 유대인 역사가로서, A. D. 37년에 태어났는데 1세기 말경에 4개의 주요한 작품들을 썼다. 그는 그의 책에서 예수와 야고보를 직접 언급했는데, 예수에 대해서 예루살렘 교회의 순교한 지도자로서 몇몇 유대인 지도자들의 선동으로 인해 빌라도의 결정 아래 십자가에 처형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광범위하고도 지속적인 추종자들을 가진 지혜로운 선생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다른 중요한 역사가의 증언으로서는 타키투스의 기록을 들 수 있다. 그의 기록을 보면 신약 성경 이외에서 볼 수 있는 예수에 관한 가장 중요한 언급을 포함하고 있다. A. D. 115년 그의 분명한 진술에 의하면 네로 황제가 64년 로마를 황폐화시킨 대화제에 대한 의심을 딴데로 돌리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박해를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타키투스가 엄청난 군중이 신앙을 매우 견고하게 지켜서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기꺼이 죽음을 택했다고 하는 점은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이러한 증언은 사도행전에 기록된 당시 유대인들과 로마 당국의 초대 교회에 대한 핍박에 대한 언급과 기본적으로 일치하는 대목이다. 또 하나의 역사적 저작물들을 예로 들자면, '플리니의 편지'를 들 수 있는데, 그 편지는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성경과 관련된 인물이 아닌 일반 저술가들이 당시 예수 시대에 일어났던 이런 사건들을 명료하게 기록한 것은 기본적으로 성경의 내용과 일치하고 있다. 따라서 성경은 여러 다른 역사성을 띤 저서들과의 상관속에서도 그 진실성이 드러낸다.

 

 

 


▲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               ▲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

 

 

 

  

  5. 솔직담백한 내적 진실성 


  성경의 역사적 사실성을 지지해주는 또 다른 증거는 성경 스스로가 거짓된 기사를 담고 있다는 단서들을 제공해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성경이 꾸며진 책이라면, 즉 거짓을 내포하고 있다면 자연히 그 성경을 기록했던 저자들의 '치부'들을 숨겼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하고 있지 않다. 성경은 그들의 실수담이나 심지어 자신의 스승인 예수를 배신하는 기사까지 낱낱이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역사가 윌 듀란트는 그의 저서 『문명의 역사』에서 " 그들은 만일 지어낸 이야기라면 숨기고 싶었을 많은 사건들, 즉 왕국이 세워졌을 때 누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사도들이 다퉜던 것, 예수가 체포되었을 때 사도들이 다 도망간 것, 베드로의 부인, 갈릴리에서는 예수가 기적을 거의 행하지 못한 것, 어떤 사람들은 예수를 미친 사람으로 여겼다는 것까지도 기록해 놓고 있다. 이 장면들을 읽은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이것들 배후에 있는 인물의 실재성을 의심할 수 없다."라 고 말하였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예수의 생애를 기록한 4개의 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서)의 예수에 대한 기사가 각각 다른 내용을 구성하고 있다고 의심하기도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가?

 

  만약에 4명의 사람이 각기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에 대한 감상평을 쓴다고 쳐보자. 그들 나름대로 구성한 감상평의 내용이 다 같을리가 없다. 그들은 나름대로의 언어와 문체와 사상에 따라 감상평을 썼을 것이다. 하나의 'TEXT'가 주어졌음에도 그들은 각기 나름의 시각에서 그 감상평을 재구성했던 것이다. 예수에 대한 성경의 기사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대해서 크레이그 블럼버그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만약에 복음서가 단어마다 똑같았다면 저자들끼리 공모해서 이야기를 사전에 조정했다는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앵무새처럼 기계적으로 모방하는 하나의 증언만 존재한다고 말할 것이다. 사실 복음서간에는 모순이 있다. 그런데 이 모순이 오히려 저자들간의 사전협의가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긍정적인 것이 된다. 독일 학자 한스 스티어는 '기본적 자료가 일치하고 세부 사항에서 차이를 보이는 것은 오히려 신빙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거짓으로 꾸며된 이야기는 완전히 일관성과 조화를 갖추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4복음서간의 부분적인 차이가 뉘앙스의 차이정도에 불과한 것으로서 그 본질적인 내용의 차이가 아닌 이상, 4복음서를 기록한 나름의 저자들의 시각으로 예수를 평가한 역사적인 저작물로서 그 진실성을 의심할 수 없다는 말이다. 오히려 세부적인 불일치는 그들이 거짓없이 기록했음을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은 순수하다고까지 평가할 수 있다. 바보스러울 정도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낱낱이 드러내주는 성경의 이런 '진실성'은 이 책이 역사적 사실들과 사건들을 꾸밈없이 기록해 놓았음을 드러낸다.

 


 


▲ 예수에 대한 베드로의 배신(부인)

 

 

 

  6. 갑작스러운 회심과 복음의 확산력에 대한 의문들   


  어떤 회의론자는 이렇게 질문한다. "성경의 저자들은 모두들 예수의 제자들이거나 그에 관련된 사람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친분 관계가 있었던 그들의 기록은 신뢰할 수 없는 것이다."라 고 말이다. 매우 그럴싸 하게 들리는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볼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당시 예수를 추종하던 제자들과 무리들은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아무런 저항없이 처형당하자 모두 뿔뿔히 흩어져 버렸다. 제자중에 몇몇은 매우 실망하여 고향 갈릴리로 돌아가 전에 하던 어부 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그런 그들이 예수가 제시한 '유토피아적 이상론'을 따른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모험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나 매우 놀랍게도 그들은 그렇게 하기 시작했다. 모두들  예수의 부활 현현을 접하고 나서부터다. 이후에 그들이 얻은 것이 무엇이었는가? 그들이 예수를 따른 신앙의 댓가는 매우 잔혹한 것이었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12명의 사도 중에 무려 11명이 순교당했으며, 잔인한 로마의 황제 네로의 극심한 박해 이후에도 기독교에 대한 핍박은 계속되었다. 그들은 '카타콤'이라 불리는 지하무덤에 숨어들기까지 하였으며, 사회에서는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혀야 했다. 이에 대해 크레이그 블럼버그 박사는 이렇게 논증한다. " 제자들은 비난과 추방, 그리고 순교 이외에는 얻은 게 아무것도 없었다. 확실히 재정적인 이익이 없었다. 만약에 조금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그들은 예수를 부인하거나, 그를 경시하고 그를 만난 사실조차 잊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충실했기 때문에, 고난과 죽음을 무릎쓰고라도 자신들의 본 것들을 선포했던 것이다." 즉, 제자들은 그들에게 '죽음'을 무릎쓰고서라도 사람들에게 전해야 할 '그 무엇'을 목격했던 것이다. 그들이 즐거워서 했다라기보다는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그렇게 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들이 목숨을 걸고 전했던 그 '복음'(기쁜 소식)이 단단한 '그리스적 사상체계'로 뒤덮인 로마의 사상계를 뒤흔들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전했던 복음은 헬라의 유명한 철학자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대단하고 그럴싸한 사상이 아니었다. 단지 "사람들이 하나님을 자처하는 예수라는 자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었는데, 그만 3일만에 부활해 버렸다더라"가 거의 전부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기독교 운동은 로마의 전역에서 불꽃같이 일어났고 로마 정부는 이 불을 끄는데 급급했다. 별로 대단치도 않을 것같은 허무맹랑한 궤변에 놀아날만한 로마의 사상계가 아니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미스테리중에 미스테리는 아마도 오늘날의 수많은 지식인이라 자처하는 이들이 무시해버리는 성경 말씀이 놀라운 확산력을 가지고 세계로 퍼져나갔다는 것이 아닐까?

 

 

 

 


▲ 로마 원형경기장(콜로세움)에서의 그리스도인들 처형 장면

 

 


▲ 사도 바울의 로마 제국을 향한 1·2·3차 전도 여행의 경로


 

 


▲ 사도 바울의 복음 전도


 

 

 

  7. 기록의 배후를 드러내주는 일관된 통일성


  더욱 놀라운 사실은 성경이 수천년에 걸쳐 수십명의 저자들이 다양한 문화와 장소와 역사의 굴레 속에서 형형색색의 언어와 문체, 그리고 사상 체계 등과 맞물려 독특한 성격의 기록물들을 남겼는데도 불구하고 하나의 커다란 줄기(구원의 과정)가 그 면면에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성경이라는 기록물 뒤에 '하나님'께서 계셨다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성경은 1,500여년 간 40여 세대에 걸쳐 서로 다른 삶을 살았던 40명 이상의 다른 저자들에 의해 기록되었다. 정치 지도자였던 모세, 목동이었던 아모스, 왕이었던 솔로몬, 내과 의사였던 누가, 세관원이었던 마태, 어부이었던 베드로가 그 저자들이다. 성경은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세 개의 대륙에서 기록되었고, 히브리어, 아람어, 그리스어 세 개의 언어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성경은 여러 다른 장소에서 기록되었다. 모세는 광야에서, 다니엘은 왕궁에서, 예레미야는 지하 감옥에서,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누가는 여행중에 기록했다. 또한 성경은 서로 다른 시기에 기록되었다. 다윗은 전쟁시에 기록했고, 솔로몬은 평화시에 기록했다. 그리고 성경은 다른 감정 상태에서 기록되었는데, 어떤 것은 기쁨의 최고조에서 기록되었고, 또 어떤 것은 슬픔의 심연에서 기록되었다.]
 

  돈 스튜와트는 이런 사실을 두고, "이것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성경 속의 모든 책들 배후에 오직 한 사람의 저자가 있다는 사실로써만이 설명될 수 있다. 성경의 통일성은 지금까지 쓰여진 모든 다른 책들로부터 성경을 구별해 주는 단 하나의 독특한 요소이다."라고 말했다. 저자가 한 분이 라면 마땅히 그 기록이 2,000년에 걸쳐 되었든 40명에 의해 기록되었든 그것이 로마에서 혹은 시리아에서 팔레스타인에서 기록되었든, 혹은 아람어로 기록되었든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든 또는 헬라어로 기록되었든 아무런 상관이 없이 일정한 '통일성'을 갖추고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시대와 문화의 간극을 뚫고 인류사에 지속적으로 역사하셨던하나님의 장엄한 계시가 성경 곳곳에 묻어있음을 볼 때,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성경 저자는 하나님 단 한 분임이 확실하다. 그리고 하나님이 유일무이한 저자라는 그 사실로 말미암아 성경의 가치는 '인류 역사적인 문화 유산'에서 '천상적인 가치를 지닌 말씀'으로 단번에 상승하는 것이다.


                                     


                                      ▲ 성경의 '통일성'은 40여명의 기자들 배후에 한 저자(하나님)가 있음을 알려준다.



  

  8. 인류 역사에 끼친 놀라운 영향력


  성경이 인류에게 엄청난 '자산'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인류 역사에 성경이라는 책이 남긴 족적을 따라가보면 알 수 있다. 성경이 가지고 있는 기록은 무수히 많은데, 이는 성경이라는 책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엄청난 '사랑'을 받았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준다. 성경은 세계 최초로 인쇄된 책이었다(구텐베르그의 성서). 또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책이기도 하며(구텐베르그의 성서), 세계에서 가장 비싼 필사본 중에 하나도 성경의 사본이다. 역사상 가장 긴 전보는 뉴욕에서 시카고로 보내진 '개역 신약성서'이다. 그리고 역사상 어떤 책의 최다 발행 초판은 성경이었다(현대어역 성서, 백만 권). 이처럼 성경이라는 책은 인류 문화사와 함께 해왔으며, 인류 지성사의 한 획을 그으며 지금도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어 다양한 인종에 전파되고 있다. 

  
<국제 성서공회>
의 통계에 따르면, 2000년 12월 말까지 성경번역이 이루어진 언어는2261개이며, 이는 전 세계 통용언어 6500여개 중 32.4%에 달하는 것으로 1999년 보다는 28개 언어가 늘어난 것이라고 한다. 전 세계의 언어 중에 무려 ⅓이 성경으로 번역되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성경이 전 세계 방방곳곳에 많은 영향을 끼쳤음을 알려 준다. 또한 성경에 감명을 받고 자신의 분야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해왔던 수많은 위인들이 있어 왔다. 그 중에는 우리가 이름만 대면 단번에 알 수 있는 [신학자, 철학자, 경제학자, 문화인류학자, 심리학자, 의사, 과학자, 정치인, 미술가, 음악가, 소설가] 등이 대거 포함된다. 이들은 모두 성경을 사랑했던 인물들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했던 '천
재'
들이었다. 지금도 이들과 같이 '성경'을 사랑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제2의 어거스틴''제3의 파스칼' 등을 꿈꾸며 자신이 맡고 있는 분야에서 '최고'가 되려고 애쓰고 있다.

  이처럼 성경이 인류 역사에 미쳐온 영향력은 감히 '숫자'로 계산할 수 없을 정도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인류 역사의 그 어떤 위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던 책이라도 감히 성경의 '발톱의 떼' 만큼이라도 따라올 수가 있는가? 건방진 표현을 썼지만, 너무나도 당연한(압도적인) 결과 앞에서 우리는 성경이 '인류 역사의 가장 고귀한 역작'임을 인정해야만 한다. 패트릭 헨리가 "세상에 있는 모든 책을 합한 것만큼의 가치가 있는 책이 한 권이 있다."라고 성경을 추켜 세웠듯이 말이다. 

 



                                                                                              ▲ 세계 복음화 지도(영어)




  결론 - 믿음을 향한 결단


  성경은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로서 인류에게 주어졌다. 성경이 역사적인 책으로서 '하나님의 계시'라는 증거들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명확하다. 성경에 포함된 역사적인 기록들은 사실위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먼저 성경의 외적인 증거들을 살펴보자. 성경의 외적인 증거들 은 예수에 대해서 객관성있게 기록했던 다른 역사가들의 기록들, 셀 수 없이 많이 사본들, 그리고 오늘날에 활발하게 실시되고 있는 고고학적인 발굴 작업들이다. 이들은 모두 성경이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의 책임을 확고부동하게 밝혀주고 있다. 그러나 이런 외증에 의해서뿐만이 아니라 성경은 내증적으 로도 스스로를 변호하고 있다. 분명히 4복음서를 비롯한 신약 성서의 저자들은 예수의 사후에 뿔뿔히 흩어져 쥐죽은듯이 살아야했다. 그러나 그들의 태도는 예수의 부활 현현을 목격한 이후에 180도 달라졌다. 그때부터 그들은 '죽음'을 각오했고 그리스도교를 전파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변화도 놀라운 것이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렇게 단단하던 로마의 사상계를 그리스도교가 점령해버린 것에 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미스테리중에 미스테리가 분명하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치부나 실수담을 여과없이 그대로 작품에 반영하여 이 책들이 매우 솔직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4복음서가 한 가지 사건에 대해 4사람의 제각기의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기록한 작품들이라는 점도 성경의 신빙성을 보증해준다. 성경 66권은 모두 1500년의 기한을 사이에 두고서 각기 다른 장소와 다른 언어, 그리고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어 거의 '기적적'으로 쓰여진 자료들을 모은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듯이 성경의 면면에는 하나의 큰 주제를 기점으로 '통일' 되어 있다. 이는 성경이 단순히 사람의 힘으로 기록된 책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 배후에 숨어있는 단 하나의 저자, '하나님'이 계심을 드러내준다. 또한 성경은 전 세계의 3분의 1이나 되는 언어로 번역되었고, 수많은 위인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지금도 그러하고 있다. 이처럼 성경은 우리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가치를 지닌 매우 고귀한 책임이 분명하다.



             ▲ 성경은 다양한 '내적', '외적' 증거 자료들의 지원사격을 받으며 오늘날에도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장 자크 루소는 "나는 성경의 위엄이 나를 놀라게 함을 여러분에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그것이 인간의 창작이라면 그 창작은 가장 위대한 영웅적 행위보다도 더 위대한 것일 것이다."라 고 말하였다. 그의 말처럼 성경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책임에 틀림없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향력을 끼쳤던 책이기도 하며, 앞으로도 이런 영향력을 잠재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다양한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회의론자들의 태도는 여전히 바뀌지 않을 것 같다. 그들은 집요하게 과학적 검증과 날카로운 비평을 계속해서 던진다. 서두에 던졌던, 성경에 대한 일련의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결국에 가서는 자신의 '믿음'에 호소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 기억나는가? 내가 이런 말을 던졌던 이유는 회의주의자들은 성경에 대한 이런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자료들을 그들이 본래 지니고 있던 '선입견' 또는 '선이해'(무신론적)를 가지고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성경에 대한 회의적인 편향성이 성경을 올바로 볼 수 없게 만든다. 칼빈은 이를 두고, "우리의 어리석음이 크고 이들 빛나는 나타내심들에 대해 우리가 너무나 둔하여 우리는 그것들로부터 아무 유익을 얻지 못한다."라고 정확하게 기술하였다. 


 


▲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계 3:20)



그러므로 우리는 어거스틴이 했던 다음의 말을 곰곰히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는 믿기 위해서 알지 않는다. 알기 위해서 믿을 뿐이다." 결국 우리들이 회의적인 시각을 벗겨내어 버리고 '믿음'을 가지고 성경을 계시의 말씀으로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귀납적으로 접근하는 과학적인 방법이 결코 아니다. 종교는 과학적 접근방법으로 다가가서는 안 된다. 예외적으로 '창조과학'과 같은 과학적 방법론을 선호하는 종교인들이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과학적 합리주의 사고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의 입맛에 맞추어 해석해주는 '이차적인 접근법'에 불과하다. 기본적으로 성경을 접근할 때는 종교적인 접근법이 지향되어야 마땅하다. 과학과 종교는 그 성격상 각기 다른 방법론으로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종교의 기본적 지침은 언제나 그 종교만이 지니고 있는 '계시의 말씀'으로부터 시작되 어야 한다. 그러므로 현대 무신론자들이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은 그 자체로서 이미 틀렸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성경에 접근하려 할 때, 보다 겸손한 자세로서 계시의 말씀을 인정한 후에 그것에 대해 연구해야 한다. 이것이 기독교를 알 수 있고 맛 볼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프란시스 파이퍼가 했던 이 말처럼 기존에 쓰고 있던 색안경을 벗어버리고서 '계시된 말씀'에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 시대에 있어서 교회에서의 부족한 점은 성경 원문의 신빙성이 아니라, 확실하게 입증된 성경에 대한 믿음이다." - 프란시스 파이퍼

 

  

 


▲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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