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꽁이의 찬양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해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고마, 내 더우 사 가소" / 거짓말도 다 보여요 "보름달 밝은 줄 몰랐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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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

2016.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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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 방언 말모이


방언으로 보는 경상도 정월 대보름 풍경


"보름밥 많이 자셨는교?

고마, 내 더우 사 가소"


정월 대보름이 되면 마주치는 사람마다 재빨리 하는 인사가 있습니다.

먼저 건네는 사람이 효과를 본다 하여 대보름날 아침이면 경쟁하듯 “내 더위 사라.” 하며 열심히 인사를 건네는데요, 정월 대보름에는 이 외에도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많은 세시 풍속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전체 세시 풍속의 20%가량이 대보름날에 치러질 정도로 절기 중 가장 다채로운 명절이기도 하지요. 각 지방마다 대보름을 맞이하는 풍습은 비슷하지만 이번에는 경상도 방언으로 정월 대보름을 맞아 볼까요?


딱딱한 추재(호두) 깨며 “아이고 부스럼이야!”




정월 대보름 새벽에는 호두, 땅콩, 잣, 밤, 은행 등의 부럼을 깼습니다.

딱딱한 열매를 의미하는 ‘부럼’과 몸에 나는 종기를 의미하는 ‘부스럼’이 비슷하게 소리 나기 때문에 한 해 동안 부스럼 없이 건강하기를 빌며 “아이고 부스럼이야!”를 외칩니다.


호두는 본래 동북아시아에 있던 것으로 추자(楸子)라 하는데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 장건(張騫)이 서역에서 새로운 추자를 들여와 이것을 호두[胡桃]라 하게 되었고, 당추자(唐楸子)라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경상도 등 여러 지역에서 호두를 ‘추자’라고 부르고 특히 경남 거창에서는 ‘추재’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렇듯 지역마다 호두를 부르는 말이 조금씩 달라 경기도에서는 ‘당추지’, 강원도에서는 ‘추지’ 등으로도 불린다고 합니다.




 

“게사리 맛 좀 보실래예?”


건너 말 저 영감 게사리 꺾으러 가세

아랫말 이 할멈아 탕근 쓰고 나감세


할멈 발꿈치에 영감이 담고

영감 다래끼에 할멈이 담고

양지쪽 게사리 꺾자 음지쪽 게사리 꺾자


- 경남 하동군 아낙네들의 노동요 「나물 캐는 소리」



대보름 풍습 중 하나가 묵은 나물을 만들어 먹는 것인데요, 지난해 말려 둔 나물 재료를 물에 삶아 불렸다가 무친 것을 경상도 지역에서는 ‘보름밥’이라고 하였습니다.

보름밥을 먹을 때는 쌈을 싸 먹는 풍습이 있는데 부잣집에서는 김을 사용했지만, 일반 가정에서는 김 대신 아주까리잎으로 싸 먹었지요. 이를 ‘복쌈’이라고 하는데 ‘복쌈을 먹으면 꿩알을 줍는다’는 말도 전해집니다.


지방에 따라 먹는 나물의 종류는 조금씩 다른데 경상도 지역에서는 무수(무), 게사리(고사리), 콩지름(콩나물), 까지(가지), 우구리(호박), 돌가지(도라지), 피마지(아주까리잎), 고매줄(고구마줄기) 등으로 나물을 만들어 먹습니다. 대보름날에 묵은 나물을 먹으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하여 꼭 챙겨 먹던 정월 대보름의 대표 음식입니다.


더 알아보기


‘콩나물’의 방언형은 ‘콩나물’계와 ‘콩지름’계로 이분된다.

이 중 ‘콩지름’계에는 ‘콩질금’, ‘콩질검’, ‘콩지름’, ‘콩지럼’, ‘콩지림’, ‘콩기름’을 비롯하여 ‘콩’을 덧붙이지 않은 ‘질금’, ‘길금’ 등의 많은 종류의 변종이 있다.

 ‘콩지름’계는 경남ㆍ북을 거점으로 하여 전남ㆍ북의 동부 일부, 강원의 남부 일부, 그리고 제주 등에 분포되어 있다.





“서숙, 수시, 퐅 넣은 찰밥 많이 자셨는교?”


정월 대보름에는 찹쌀, 서숙(조)이나 차잔수(차조), 수시(수수), 퐅(팥, 붉은팥), 유월 본디(동부) 등 5가지 곡식으로 밥을 짓는데 경상도에서는 오곡밥을 ‘찰밥’이나 ‘잡곡밥’이라 부르며, 찹쌀, 팥, 밤, 대추, 곶감 등으로 밥을 짓기도 합니다.


이번 정월 대보름에는 찰밥과 보름밥을 푸짐하게 장만하여 이웃과 복쌈도 싸 먹으며 정을 나누는 것은 어떨까요?  “내 더우 사 가소.”  인사와 함께 말이지요.


 

※ 참고자료

울릉군지, 울릉군지편찬위원회, 1989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박문각

한국언어지도, 이익섭/전광현/이광호/이병근/최명옥, 태학사, 2008, 태학사

한국민속신앙사전: 가정신앙 편, 국립민속박물관, 2011

하종갑, ≪진양민속지≫, 진양문화원, 1994

하동의 민요, 하동향토사연구위원, 하동문화원, 2007






거짓말도 다 보여요

보름달 밝은 줄 몰랐더냐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누가 보기에도 분명한 문제를 덮으려고 할 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어리석음을 가리켜 이르는 말이지요. 현대 사회의 정교한 시스템은 드러난 문제를 아니라고 덮기도 하고 이런 문제를 저런 문제로 둔갑시킬 만큼 발달해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쉽게 이 눈가림에 속아 넘어가기도 하지요. 그러나 언젠가는 반드시 문제는 문제로 드러나는 법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보름달 밝은 줄 몰랐더냐?”라고요.


환하게 밝은 보름달 아래 드러나지 않는 진실은 없습니다. 달은 누구에게나 밝고 어디서나 밝게 빛납니다.

오죽하면 “보름달 밝아 구황 타러 가기 좋다” 는 옛말이 있겠습니까?

가난하고 배고픈 것은 서럽지만 그래도 곡식 꾸러 가는 발길을 비추는 보름달은 조금이나마 위안이 됩니다. 한편으로는 시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따뜻한, 그런 발걸음이겠지요.


‘달의 날’이라고 하면 한가위도 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대보름’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제 곧 정월대보름이네요. 환하게 밝은 둥그런 달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대명천지 어두운 구석 없이, 가리는 진실 없이 환하게 밝히는 그런 달 말입니다. 올해 달만큼은 어느 해보다도 더 밝게 떠서 온갖 세상살이의 고단함과 남루함, 어리석음과 거짓됨을 일시에 밝혀주기를 기대해 봅니다.


사실 일년 세시절기 가운데 정월 대보름은 공동체의 으뜸 절기입니다.

대보름날은 마을 공동체가 가장 바쁜 날이지요. 각 가정에서 행하는 일들도 있지만 공동체 차원에서 준비하는 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농사일을 시작하기 전 한 해 풍요를 기원하는 여러 일들을 행하는 것은 물론, 한 해의 시간이 시작되는 기점에서 온갖 액운을 몰아내고 좋은 일을 맞아들이려는 제의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날이기도 합니다. 실질적으로는 일 년 사시사철 중에 농사일이 가장 없는 한가한 때라 여러 가지 공동체적 놀이와 제의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시간을 쏟을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지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대로 대보름날에는 지신밟기를 합니다. 하지만 대보름 준비는 그보다 훨씬 일찍 시작됩니다. 대보름 때 마을 제사를 지내는 마을 공동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요즘도 제사를 지내는 마을들이 많습니다.


일제 강점기는 물론이고 새마을 운동 시기를 거쳐 많은 마을 제사들이 사라질 운명에 처했었지만 끈질기고 강인한 생명력으로 살아남아 명맥을 이어 오거나 다시 마을 제사를 복원시킨 마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일 년에 두 번 정월과 시월 상달에 제사를 지낸 곳이 많았지만 지금은 정월이나 상달에 한 번만 지내는 마을이 대부분입니다. 그나마도 젊은 사람들이 이어받지 않아 사라지는 마을들이 많지만 말입니다.


마을 제사는 동제洞祭라고도 하고 당제堂祭라고도 부릅니다. 성황제나 서낭제라 하기도 하지요.

마을에 따라서는 이를 구분해서 지내는 곳들도 있습니다. 마을에서 모시는 신은 보통 ‘당신’이나 ‘서낭신’, ‘성황당’ 등으로 부르는데 영남 일대에서는 ‘골매기’이나 ‘골막님’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당할아버지’나 ‘당할머니’처럼 친근하게 부르는 곳도 있습니다.

마을 당신은 마을 당숲이나 당산에 당집을 만들어 모신 경우도 있고 당산나무로 모신 경우도 있습니다.

 

당제를 지내기 일주일 전이나 열흘 전, 혹은 14일이나 21일 전에 이 당집이나 당나무 주변에 붉은 황토를 뿌리고 금줄을 칩니다. 당제를 지낼 때 제사상에 올리는 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을에서는 미리 날을 잡아 술을 만들기도 하지요. 당제를 주관할 사람은 이때부터 매일 아침 깨끗한 물에 목욕재계를 하고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더러운 것을 만질 때마다 다시 온몸을 씻고 새옷으로 갈아입습니다. 이를 ‘정성을 드린다’고도 하고 ‘정신을 드린다’고도 합니다.


마을 사람들이 돈을 모으거나 마을에서 공동으로 경영하는 밭에서 난 소출로 정성스레 제사상을 준비하여 정월 열나흗날 밤에 마을 제사를 지냅니다. 상당수 마을에서 제사를 지내기 전에 간단하게 산신제를 먼저 지내고 당제를 지내기도 합니다. 마을 제사를 마무리한 후 새벽녘에 마을 입구나 마을의 동서남북에 세워 둔 장승이나 솟대, 혹은 별도로 만들어 둔 서낭당에 가서 제사를 지내기도 하지요.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마을 회관이나 공터에 모여 전날 제사상에 올렸던 음식들을 나누어 먹으며 윷놀이와 지신밟기를 즐기지요.


“서낭에 가 절한다”거나 “서낭에 난 물건이냐”는 등 서낭제에 관한 속담들이 많습니다.

“지신에 붙이고 성주에 붙인다”거나 “터주에 붙이고 조왕에 붙인다” 등의 속담도 이와 같은 풍습에 연관된 말들이지요. 대보름 풍습과 풍경에 대해서는 아직 할 말이 많이 남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직 대보름 유래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지 못했네요. 못다 한 말들은 다음 호로 미룹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고요

까마귀 열두 번 울어도 까욱 소리뿐이다



5세기경 신라 임금 비처왕이 남산 그늘 아래 길을 거닐다가 어느 정자 근처에서 울고 있는 까마귀와 쥐를 만났습니다. 쥐가 말하기를 까마귀가 가리키는 길을 따라가 보라 했지요.

기이한 일인지라 왕은 쥐가 시키는 대로 하였습니다.

 

왕이 까마귀가 이끄는 곳에 이르러 만난 것은 서로 싸우고 있는 돼지 두 마리였습니다.

그 장면을 보다가 까마귀 간 곳을 놓치고 말았는데 갑자기 못에서 한 늙은이가 나와 왕에게 글이 적힌 종잇조각을 하나 내밀었지요. 그 글 겉봉에, ‘이 글을 열어 보면 두 사람이 죽고 열어 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이다’라는 글귀가 쓰여 있었습니다.


왕이 두 사람이 죽기보다는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낫다 여겨 글을 열어 보지 않으려 했으나 옆에서 나랏일에 관한 것들을 앞서 예견하는 일관日官이 죽일지도 모르는 두 사람은 뭇 백성이지만 죽을지도 모르는 한 사람은 왕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에 왕이 글을 열어 보니 ‘거문고갑을 쏘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왕이 궁궐에 돌아가 시키는 대로 하니 궁에서 머무르는 중이 궁궐의 여인과 남몰래 정을 통하고 있었습니다. 이 두 사람으로 인해 왕의 목숨이 위태로웠던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 나라 안에 정월 초 몇몇 정해진 날에는 특별히 모든 일을 삼가 조심하는 풍습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로 이 사건으로부터 정월대보름날 오곡밥을 먹는 풍속이 유래되었습니다.

 

정월 15일이나 16일을 오기일烏忌日이라 정하고 까마귀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이때 까마귀밥이라고 하여 찰밥이나 약밥을 지어 젯상에 올린 데서 정월대보름 오곡밥 먹는 풍습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경주에 가시면 남산 자락에 있는 서출지書出池라는 연못에 꼭 가 보시기 바랍니다.

이 이야기가 깃든 장소랍니다. ‘서출지書出池’는 글이 나온 못이라는 뜻이겠지요.



이 이야기를 놓고 보면 우리 풍속에 ‘까마귀’는 꼭 나쁜 징조를 암시하는 새가 아니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런데도 속담에 등장하는 ‘까마귀’는 대부분 그다지 좋지 않은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

 

 ‘삼족오三足烏’의 전통을 되새겨보아도 까마귀에 대한 이런 문화적 편견은 그 유래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궁금해지기만 합니다. 그저 다만 유학적 상징의 전통 속에 ‘까마귀’에 대한 부정적 편견의 실마리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짐작해 볼 뿐입니다.


속담에서 까마귀는 하찮고 보잘것없고 속이 시커멓고 음흉스러운 대상을 가리키는 상징적 존재로 등장합니다. ‘까마귀 열두 번 울어도 까욱 소리뿐이다’, ‘까마귀 열두 가지 소리 하나도 고울 리 없다’, ‘까마귀 하루에 열두 마디를 울어도 모두 송장 먹은 소리다’, ‘까마귀 열두 소리 하나도 들을 것 없다’ 등의 옛말 속에 까마귀는 속이 시커멓거나 속이 텅 빈 사람을 빗대어 표현하는 동물로 나타나곤 합니다.

 

 ‘까마귀 훤칠해도 백로 될 수 없다’, ‘까마귀 백로 되기 바라랴?’, ‘까마귀가 학이 되랴?’ 등의 속담에서도 까마귀는 부족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로 타고나 결코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는 대상으로 그려집니다.


이들 옛말에서 까마귀가 이처럼 부정적 존재로 그려지는 것은 까마귀의 검은색에 대한 문화적 편견에서 비롯된 관념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검다’는 말의 의미를 ‘깜깜하다’, ‘아무것도 없다’, ‘음흉하다’, ‘어둡다’, ‘부정적이다’ 등의 의미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상의 겉모습만으로 대상의 가치를 온전히 판단할 수 없듯이 까마귀 역시 검은색 피부만으로 평가 절하 되기에는 아까운 생물이지요.

 

높은 산에서 하늘을 나는 검은 날갯짓의 이 새는 때로 얼마나 근사해 보입니까?

그러니 ‘까마귀 겉이 검다고 살도 검을까?’ 라는 옛말이 오히려 새삼스럽습니다. 드러난 모습 이면의 가치를 온전히 볼 수 있는 눈이야말로 세상살이의 소중한 심미안審美眼입니다.



글_김영희

경기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구비 문학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비극적 구전 서사의 연행과 '여성의 죄'>, <한국 구전 서사 속 여성 섹슈얼리티에 대한 신경증 탐색>, <한국 구전 서사 속 '부친살해' 모티프의 역방향 변용 탐색> 등의 논문과 <구전 이야기의 현장>, <숲골마을의 구전 문화>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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