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꽁이의 찬양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해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Again 항공 강국 KOREA"...'비거' 비공인 세계 첫 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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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런 대한민국

2016. 9. 1.

우리가 우주로 보낸 이 위성들은 모두 미국, 프랑스, 러시아 등 우주항공 선진국들의 원조를 받아 발사됐다. 또 이 위성들은 근래들어 발사됐다.

항공산업은 경제적, 군사적 등 면에서매우 중요한 분야이기 때문에 세계적으로도 블루오션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내항공산업은 걸음마 수준이지만 사실 오래 전 한국은 항공강국이었다. 중간에 그 명맥이 끊어져 현재 초보단계부터 다시 시작하고 있는 셈이지만 과거에 화려했던 항공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기록이 있다.

공군 고등훈련기 T-50 News1

최초로 비행기를 만든 사람은 미국의 라이트(Wright) 형제라고 알려져 있다. 이들은 1903년 동력비행기를 조종해 공식적으로 첫 비행에 성공한 이들로 기록돼 있다.

라이트 형제가 비행에 성공하면서 인류는 동력장치가 장착된 비행기를 소유하게 됐다. 그리고 제1·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비행기 중요성은 더욱 부각됐고 항공산업도 빠르게 발전했다.

국내 상공에 처음 비행기가 나타난 것은 1913년이다. 일본군 나라하라 중위가 몰고 온 비행기가 최초로 우리나라 하늘을 날아다닌 비행기로 기록돼있다.

이후 미국 등에서 시범비행을 잇따라 보여주면서 일반인에게도 비행기가 점차 알려지기 시작했다.

◇ 오랜 옛날 우리는 하늘을 날았다

세계 최초로 하늘을 날았다는 라이트 형제. 그러나 우리가 라이트 형제보다 300년 앞선 조선시대 때 비행기를 만들어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고 또 공식적으로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다.

조선시대 비행기에 관한 기록은 남아 있지만 이를 고증할 만한 상세한 설계도, 실물 등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학계와 항공학계에서는 조선시대 비행기를 비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우리가 만들었다는 비행물체는 임진왜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시대 실학자 이규경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진주성에서 하늘을 나는 물체가 사람들을 구해 내고 군수물자를 날랐다고 적혀있다.

하늘을 날았다는 이 물체는 ‘비거(飛車)’라고 불렸고 이를 만든 이는 발명가 정평구라는 사람이다.

이규경뿐만 아니라 실학자 신경준도 비거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기록에 따르면 정평구가 만든 이 비거는 평균 30리(12㎞), 최대 50리(20㎞)까지 날았으며 공중으로 300m 가량을 떴다. 그러나 모양과 비행원리에 관한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그렇다면 실제 이 같은 비거가 조선시대 때 존재했을까?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나라는 라이트형제보다 훨씬 이전에 비행기를 만들어낸 셈이다.

비거 존재 검증에 앞서 정평구라는 사람이 실존했던 인물인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평구는 전북 김제 출신인 실존인물이다. 김제문화원이 보관중인 문헌에는 정평구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김제문화원 문헌에는 ‘정평구라는 사람은 그의 재주(당시 발명가로 그의 이름이 알려졌음을 감안하면 이 ‘재주’는 희귀한 발명품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추측됨)를 이용해 임진왜란 때 쳐들어온 왜구를 농락했다’고 기록했다.

특히 정평구는 ‘비거’라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기구를 이용해 진주성에 있던 사람들을 구해내고 식량과 군사무기들을 운반했다고 적혀있다.

또 화약제조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손으로 던지는 화포(화약통)와 같은 무기를 만들고 이를 비거에 실어 적진을 초토화시켰다고도 한다.

김제지역 향토사학자들은 “정평구에 관한 기록은 대부분이 구전으로 내려왔고 이를 일제시대 때 정리한 것”이라고 전한다.

정평구의 직계후손들은 현재 김제시에 살고 있다. 이 후손들이 소장하고 있는 족보와 조상들에 관한 기록에서도 정평구와 그 활동내용이 나온다.

후손들이 소장한 기록을 보면 정평구의 호는 ‘유연’이고 어린 시절부터 학문과 병법에 능했다. 특히 하늘을 나는 ‘비거’라는 것을 발명해 임진왜란 때 왜구를 혼내줬다고 전한다.

정평구는 재주가 뛰어났던 인물로 기이한 발명품들을 많이 만들었다고 한다. 정평구의 묘는 현재 김제시 부량면 대평리에 남아있다.

정평구가 ‘비거’라는 엄청난 기구를 만들었지만 후손들과 지역문화원 등에만 기록이 남아 있고 왜 조선실록 등에는 공식적으로 기록되지 못했을까?

이에 대해 후손들과 김제 향토사학자들은 “(비거는)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물건이었기에 그 당시로서는 믿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에서 정평구와 비거의 활약을 본 사람들은 선조 임금에게 상소를 올려 공을 치하하려 했다.

그러나 선조와 대신들은 이 상소의 내용을 믿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늘을 나는 기구를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조정은 정평구의 비차를 헛소문으로 취급해 버린 것이다.

비행물체를 만들었다는 인물은 정평구 외에도 또 있다. 바로 원주 출신의 윤달규라는 사람으로 1778년에 태어나 1851년까지 살았던 인물이다. 이규경의 문헌에서는 윤달규에 관한 내용이 기록돼 있다.

윤달규가 만든 비행물체의 모습은 따오기새 모양을 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현재 행글라이더와 비슷한 구조, 모양 등을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문헌에 따르면 윤달규가 만든 비행물체의 원리는 큰 바람을 일으켜 공중으로 부양했다. 4명 정도가 탈 수 있었고 강풍을 만나면 앞으로 나가지 못하거나 추락한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정평구, 윤달규 등은 실존 인물이었고 이들은 하늘을 나는 물체를 만들었다.

또 조선시대 당시 이 비행물체는 백성들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이 때문에 비행물체에 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전해져 내려왔다는 사실을 알 수있다.

정평구, 윤달규가 살았던 시대에 서양에서도 하늘을 나는 기구의 상상은 지속됐다. 서양의 일부 과학자들과 미술가들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물체의 조감도를 상상력에 의존해 그리곤 했다.

그러나 당시 우리나라는 비행물체를 실제로 만들어냈다. 이는 엄청난 일이지만 공식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정확한 설계도, 비행원리 등 기록이 부족해 비공식 비행으로만 남아 있는 게 아쉬운 부분이다.

1953년 제작된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기 '부활호' News1

◇ 우리나라 최초의 공식 비행기 ‘부활호’

근대들어 국내최초 비행은 안창남에 의해서 이뤄졌다. 한국의 첫 비행사였던 안창남은 1921년 영국에서 비행면허를 취득하고 다음 해 영국 육군기를 한국 상공에서 비행했다.

한국의 최초 항공사는 1926년 이기인이 세운 ‘경성항공사업사’다. 그러나 이기인은 다음 해 비행사고로 사망했고 회사도 없어졌다.

경성항공사업사가 폐쇄됐지만 국내항공산업은 1930년대로 이어진다.

신용욱이라는 사람이 1930년 ‘조선비행학교’를 설립했다. 또 1936년에는 ‘조선항공사업사’를 세워 서울-이리(익산)-광주(光州)를 운항했다.

1944년 신용욱은 일본 육군과 합작해 ‘조선항공공업주식회사’와 ‘조선비행기공업주식회사’를 설립했지만 다음 해인 1945년 광복으로 폐쇄됐다.

우리나라가 최초로 항공기를 만들어 낸 것은 1953년이다. 한국전쟁으로 국산 항공기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이승만 정부가 경비행기 제작에 돌입한 것이다.

1953년 6월28일 공군은 사천공군기지에서 경비행기 제작에 들어가그 해 10월10일 완성했다. 성공적으로 시험비행을 마친 이 경비행기는 1954년 4월3일 명명식을 가지게 된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이 비행기의 이름을 ‘부활’이라고 직접 짓고 친필 휘호를 내렸다.

탑승인원 2명인 부활호는 몸체 길이 6.6m, 날개 길이 12.7m, 높이 3.05m이다. 최대 85마력, 자체 무게 380㎏, 최대 무게 600㎏이다. 엔진은 4기통이며 속력은 최대시속 180㎞, 순항시속은 145㎞이다.

부활호는 관측, 연락, 초등훈련용으로 사용되다가 1955년 한국항공대학교 전신인 국립항공대학이 인수해 1960년까지 연습기로 사용했다.

그 이후 행방을 알 수 없었는데 2004년 초 대구에 위치한 경상공업고등학교 지하창고에서 발견됐다.

공군군수사령부는 2004년 말 부활호를 복원해 냈고 이를 토대로 올해 7월 다시 개량복원해 비행에 성공했다.

2011년 개량복원한 부활호 News1

국내최초의 비행기 부활호는 여러가지 면에서 많은 의미를 지닌다.

특히 이 비행기는 우리 항공기술을 세계에 과시한 것으로 이전에 우리도 항공선진국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러나 1950년대 중반 이후 항공산업에 대한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항공기 제작기술이 진전되지 못했다.

항공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1926년 ‘경성항공사업사’에서부터 꾸준히 명맥을 이어왔다면 지금쯤 한국은 어느 나라 못지 않은 항공선진국이 됐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한다.

과거 우리는 라이트 형제보다 앞서 하늘을 날았다. 또 이미 1950년대에 자체적으로 경비행기를 제작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근대 항공산업은 미국, 프랑스 등에 의해 급속도로 발달했다. 이들 나라가 주도하고 있지만 우리도 항공선진국에 오를 수 있는 역량은 충분하다.

이제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기업들의 아낌없는 투자, 그리고 국민들의 관심이 항공산업에 모아진다면 이 블루오션을 우리도 한 몫 차지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