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꽁이의 찬양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해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윤동주 시 / 호주모니

댓글 0

가슴으로 읽는 시

2016. 12. 22.

국립국어원에서 발행하는 <쉼표 마침표>에서 퍼온 글입니다.

여기서 <호주머나>는 조끼나 양복에 붙은 주머니를 말하고,

옛날 허리에 차고 다니던 <주머니>와 구분해서 썼습니다.

<갑북갑북>이란 시어는 확길치는 않지만 <가득가득>이란 말 같습니다.






동시 사용설명서 동시 사용설명서 02

_ 윤동주 동시 다섯 편

By 이안 . May 27. 2016 동(冬) 섣달에도 꽃과 같은, 얼음 아래 한 마리 잉어 같은

 

‘서시’라는 제목을 달지 않았으나 한국인들에게 절대 유일의 ‘서시’처럼 각인된, 동주의 〈서시〉를 읽는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에서 나는 언제나처럼 그만 칵, 숨이 막히고 만다. 그다음, 그다음, 그다음이 다 그렇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니, 살갗이 벗겨진 자가 아니고선 앓을 수 없는 통증이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세상 모든 것은 죽어가는 모든 것이니,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겠단 마음이겠다. ‘별’은 영원성, 동주의 시에 여러 번 등장하는 ‘하늘’과 같은 절대성을 포함하는 한편으로, 〈팔복(八福)〉의 ‘슬픔’(“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을 머금은 듯 눈길이 젖은 말이다. 사랑[慈]이 사랑인 것은 모든 죽어가는 것을 향한 슬픔[悲]을 입고 있어서다.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한 마디 한 마디 끊어 읽게 된다.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 가야겠다. 그러고 보니 그 앞도, 그 앞도, 그 앞도 다 이렇게 끊어 읽어야 조금이라도 더 동주의 뜻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스친다’ 아니고 “스치운다”란 말은 묘하다. 마치 별의 슬픔 같고 울음 같은 것이 이 말에 걸려 가늘게 떠는 듯하다. 과거-미래-현재(시제의 배치가 과거-현재-미래가 아닌 것은 의미심장하다)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랐기에, 그렇게 걸어갔기에,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그리스도에게/ 처럼” “허락된”(“주어진”) “십자가”(“길”)(〈십자가〉)의 삶을, 시를 동주는 끝내 이루었을 것이다. 동주의 삶과 시는 “마치 누군가 짜놓은 듯 신화적”(김응교, 《처럼》, 431쪽, 문학동네 2016)이다.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를 향해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마침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쉽게 씌어진 시〉)에 이른 사람.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의 한 장면윤동주(1917~1945)가 남긴 동시는 서른일곱 편(홍장학 엮음, 《정본 윤동주 전집》, 문학과지성사 2004, 다음부터 《정본》)이다. 연구자에 따라 시로 볼 것인지, 동시로 볼 것인지가 조금씩 다르다. 가령 마지막 작품(〈봄 2〉)을 김응교는 동시로 보았지만, 홍장학은 시로 보았다. 이런 점은 동시의 고유한 특성에 대한 합의가 그만큼 쉽지 않다는 뜻도 될 것 같다. 나는 윤동주 동시를 《귀뚜라미와 나와》(겨레아동문학선집 10권, 겨레아동문학연구회 엮음, 보리 1999)로 처음 만났다. 이 책에는 〈겨울〉 〈호주머니〉 〈굴뚝〉 〈버선본〉 〈해바라기 얼굴〉 〈귀뚜라미와 나와〉 〈산울림〉 이렇게 일곱 편이 실렸는데, 어디선가 읽은 듯한 〈굴뚝〉 〈해바라기 얼굴〉 〈버선본〉을 빼면 처음 보는 작품들이었다. 이 네 편이 특히 좋아서, 나는 두근두근, 혼자서 몰래 설렜다. 나중에 〈눈〉 〈반딧불〉 두 편과, 〈새로운 길〉 〈눈 감고 간다〉 〈못 자는 잠〉(《정본》에선 시로 분류해 놓았지만) 세 편을 내 동시 목록에 추가했다. 1936년 겨울에 쓴 것으로 되어 있는(윤동주는 많은 작품에 퇴고 시점을 기록했다) 〈겨울〉은, 내 유년의 시간과 공간을 증명하는 한 장의 사진처럼 내게 바짝 다가든다. 표기가 책마다 조금씩 다른데(“추워요”/“춥소”, “얼어요”/“어오”, “다래미”/“다람이”, “동그램이”/“동그라미” 등), 여기서는 《정본》의 표기대로 옮겨 본다.

 

 

--------------------------------------------------------------------------------

 

 

처마 밑에

시래기 다람이

바삭바삭

춥소.

 

 

길바닥에

말똥 동그라미

달랑달랑

어오.

 

 

(전문)

 

 

--------------------------------------------------------------------------------

 

 

집 안과 마을로 스미고 에이는 추위를 시각과 촉각, 청각적 심상으로 실감나게 그려냈다. 동시의 특질 중 하나인 짧고 단순한 말로, 대상의 핵심을 날렵하게 붙잡았다. 1연에 주로 사용된 ‘ㅁ’과 ‘ㅂ’은 사각형으로 엮어 매단 시래기 모습 같아 보이고, 2연에 주로 사용된 ‘ㅇ’은 말똥의 동그라미 모양 같아 보인다. “춥소”와 “추워요”, “어오”와 “얼어요”의 거리는 가깝지 않다. 《정본》 표기대로 “춥소” “어오”가, “추워요” “얼어요”보다 추위를 좀 더 가까이, 직접 느끼게 하는 말 같아서다. 요즘 아이들은 어떻게 느낄지 몰라도 흔히 쓰지 않는 말투에 더 재미있어 할지도 모르겠다. 시인이 고심 끝에 선택한 언어감각의 습득이야말로 시 교육의 핵심 중 하나인데, 그 점이 간과되는 것 같아 아쉽다. 〈귀뚜라미와 나와〉(1938년경으로 추정), 〈산울림〉(《소년》 1939년 3월호)은 구조가 단순하면서도 단단하고, 내용도 매우 내밀하다.

 

 

 

--------------------------------------------------------------------------------

 

귀뚜라미와 나와

잔디밭에서 이야기했다.

 

 

귀뚤귀뚤

귀뚤귀뚤

 

 

아무게도 알려주지 말고

우리 둘만 알자고 약속했다.

 

 

귀뚤귀뚤

귀뚤귀뚤

 

 

귀뚜라미와 나와

달 밝은 밤에 이야기했다.

 

 

―〈귀뚜라미와 나와〉 전문

 

 

 

까치가 울어서

산울림,

아무도 못 들은

산울림.

 

까치가 들었다,

산울림,

저 혼자 들었다,

산울림.

 

 

―〈산울림〉 전문

 

 

--------------------------------------------------------------------------------

 

 

“아무게도 알려주지 말고/ 우리 둘만 알자고” 한, “달 밝은 밤”의 “약속”은 무엇일까. “아무도 못 들은”, “까치가” “저 혼자” 들은 산울림의 내용은 무엇일까. 내밀하게 봉인된 말이어서 자세히 알 순 없지만, 은은한 자랑처럼 시인의 내심에 떨어져 언젠가 싹을 틔울 비밀의 씨앗인 것만 같다. 무겁지 않게, 유쾌하게 읽으면 전연 다른 맛이다. 이 두 편이 시인의 내면 풍경이라면, 〈호주머니〉(1936년 12월~1937년 1월 사이 추정)와 〈해바라기 얼굴〉(1938년 추정)은 이웃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인의 눈이고 마음이다.

 

 

 

--------------------------------------------------------------------------------

 

 

옇을 것 없어

걱정이던

호주머니는,

 

 

겨울만 되면

주먹 두 개 갑북갑북.

 

―〈호주머니〉 전문

 

 

 

누나의 얼굴은

해바라기 얼굴

해가 금방 뜨자

일터에 간다.

 

해바라기 얼굴은

누나의 얼굴

얼굴이 숙어 들어

집으로 온다.

 

―〈해바라기 얼굴〉 전문

 

 

 

--------------------------------------------------------------------------------

 

 

호주머니에 넣을(“옇을”) 것이라곤 도무지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집 아이에게, 시인은 말한다. 너에겐, “주먹 두 개”가 있다고. 힘들 때마다 “갑북갑북”, 아무도 몰래 호주머니 속 두 주먹을 쥐어 보라고. 기죽지 말고, 힘을 내라고. 〈호주머니〉는 “해가 금방 뜨자/ 일터에” 갔다가 “얼굴이 숙어 들어/ 집으로” 오는 “누나”를 향한 응원이기도 하다. 윤동주의 이 다섯 편은 동시의 기율을 모범적으로 실현한, 우리 동시 태동기의 명편이 아닌가 싶다.

 

 

윤동주는 시에서는 백석과 정지용의 영향을, 동시에서는 정지용과 윤석중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상에서는 그리스도와 맹자, 민족주의를 수혈 받았다. 윤동주 동시가 정지용과 윤석중을 비롯한 당대의 동시와 고금의 사상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라서 그럴까. 윤동주는 그 어느 때보다 우리 앞에 바짝 다가와 있다. 올 들어 《윤동주 평전》(송우혜, 푸른역사 2004, 최근 개정판은 서정시학 2014) 이후 최고 성과라는 《처럼》이 나왔고,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는 “동(冬) 섣달에도 꽃과 같은, 얼음 아래 다시 한 마리 잉어와 같은 조선 청년 시인”(정지용)의 내면을 매우 섬세한 영상으로 그려내었다. 2016년 4월 19일, 문득 우러른 푸른 하늘에 그의 얼굴이 비친다. 너무 맑아서, 나는 또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