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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군과 양민을 처참하게…‘간도대학살’ 경신참변 당시 사진 대거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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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군과 양민을 처참하게…‘간도대학살’ 경신참변 당시 사진 대거 공개




조종엽기자 조종엽기자입력 2016-02-29 20:03수정 2016-02-29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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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만주 간도의 경신참변 때 자행된 일본군의 학살 실태를 보여주는 사진들이 대거 새로 공개됐다. 

30여 년간 간도 지역 사료 7000여 점을 수집한 김재홍 규암김약연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은 최근 함경북도 회령에 주둔했던 일본군 19사단 보병 75연대가 독립군과 양민을 학살한 장면 등이 담긴 사진 수십 장을 공개했다. 김 사무총장은 1899년 북간도에 명동촌을 세운 선구자 중 한 명인 규얌 김약연(1868~1942)의 증손자다.

이번에 공개된 사진들은 김 사무총장이 2006년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살았던 맹우열 씨로부터 구한 사진첩에 담긴 것으로 김 사무총장이 수년 전 그 존재를 일부 세상에 알렸을 당시에도 공개되지 않았던 것들이다. 

75연대는 1920년 봉오동 전투에 투입됐다 홍범도 장군 등이 이끄는 독립군 연합부대에 대패한 부대다. 75연대를 비롯한 일본군은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에서 대패한 뒤 ‘독립군 토벌’을 빌미로 수개월에 걸쳐 간도의 조선인을 무차별 보복 학살한 경신참변을 일으켰다. 

사진 속 일본군의 학살 광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다. 시신 옆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비무장의 두 양민, 손이 뒤로 묶인 채 일본군에 참수를 당한 시신의 모습 등이 그대로 담겼다. 특히 땅바닥에 널브러진 주검들을 구경하는 일본 군인들 옆에 간도 주민들이 서 있는 사진도 있다. 이들은 일본군에 의해 학살 장면을 보도록 강제로 끌려나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첩에는 1920년, 1921년임을 알 수 있는 글이 포함돼 경신참변 당시 사진임을 알 수 있다. 10여구의 주검을 찍은 한 사진 아래에는 ‘하바로프스크 정거장 부근 적 사체’(哈府停車場附近敵死體)라는 설명이 달렸다. ‘시마코후카(현 헤이룽장성과 지린성에 걸친 일부 지역) 북방에서 우리(일본) 장갑차를 폭파한 빨치산의 운명’이라는 설명이 달린 주검 사진도 있다. 일본군은 이 사진첩을 만들어 제대 군인에게 전리품처럼 챙겨준 것으로 보인다. 

사진첩에는 조선인 여성의 모습이 담긴 사진도 여러 장 있다. 한복 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한문 서예를 하는 여성, 물동이를 인 여인, 댕기머리를 한 처녀의 사진, 조선 미인(鮮美人)이라는 글씨가 쓰인 사진도 있다. 사진첩이 전리품 성격임을 감안할 때 섬뜩한 느낌마저 준다.  


김 사무총장은 이와 함께 만주 독립운동의 근거지였던 간도 명동촌, 용정시의 1910~1920년대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도 다수 공개했다. 경신참변 시 일본군 방화로 불에 탔다가 재건된 명동학교, 조선은행 등 거리 풍경, 조선 독립운동가를 감시했던 일본총영사관 건물 등이다. 

사진 외에 주요 사료들도 여럿 공개됐다. 김약연이 당시 미주 대한인국민회 회장인 도산 안창호에게 하와이 군사학교의 훈련 매뉴얼과 교과서를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친필 서신, 명동학교에 많은 애국지사와 청년들이 몰려들어 공간이 부족해지자 증축을 위해 재정 지원을 요청하는 건축 의연금 위원 임명장 등이다.

김 사무총장은 그간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국가보훈처와 함께 북간도 독립운동에 관한 역사서 편찬 작업을 최근 시작했다. 그는 “우리 후손들도 민족의 정체성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독립운동의 피맺힌 역사를 객관적 자료에 근거해 계속 알려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Culture/more23/3/all/20160229/76749477/1#csidx67b973adc59b7378c0d6c251b40bf3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