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꽁이의 찬양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해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자연 재앙과 하나님의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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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

2018. 1. 29.

 

문재인 정부 들어와 전국적으로 지진이 일어나고 화재가 발생하여

인명 사고가 급증하고 있는데...이게 예삿일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경고인가? 지진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경주에서 일어난 지진 현장 사진

 

 

 

일본 관서지방 대지진

이 때 일본인들은 이 지진은 하나님이 내리시는 재앙이라며

회개하자고 모두 난리를 쳤는대...우리 나라는?

 

자연 재앙과 하나님의 경고

 

김영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신학위원장·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원장)

 

 

 미국 시카고 대 화재

 

 

 

미국 토네이도에 파괴된 모습

 

 

 

2005년 8월 말 풍속 233km의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의 멕시코만을 삼켜버렸다. 그리하여 수만 명의 사망자와 수십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같은 해 9월 풍속 193km의 리타는 이 지역 보몬트 시를 전쟁터로 만들어버렸다. 이에 앞서 2004년 12월 25일 동남아지역에 지진에 이은 해일이 일어나 약 20만 명이 희생됐다. 2005년 10월 9일에도 파키스탄과 북인도의 국경지역에 7.9도의 강진이 발생하여 2만여 명의 주민이 목숨을 잃고 그 지역은 폐허로 변했다.

 

 

21세기에 들어와 자주 일어나고 대규모로 일어나는 자연 재앙을 우리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환경주의자들은 인간이 자연을 착취하고 황폐하게 만든 탓에 기인한다고 말한다. 이에 반하여 기독교 근본주의자는 성경이 예언한 종말에 가까웠다고 말한다.

 

 

 

 

 

 

 

이에 대하여 개혁주의적 전통에 선 우리 복음주의자들은, 이 두 견해가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역사 섭리 안에서 서로 연결점을 가지면서 자연 재앙 속에서 우리 인류에게 보이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1. 환경주의적 측면

 

 

카트리나에 의한 뉴올리언스의 황폐화의 원인을 미국의 좌파 사상가요 환경주의자인 제레미 리프킨은 미국인이 범한 환경오염과 수탈에 대한 계산서라고 지적하였다; “살인 폭동 카트리나는 늘어난 이산화탄소 방출과 지국온난화의 엔트로피 계산서라는 비밀을” “워싱턴 관리들은 비밀이 새나갈 것을 두려워하며, 입을 다물고 있다.”(제러미 리프킨, '지구 온난화와 카트리나', <조선일보> 9월 7일자 A35면) 리프킨에 의하면 카트리나 재앙은 전 세계인구의 5%도 안 되는 미국이 화석연료 세계 소비량의 4분의 1을 소모한 자연의 보응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번 재앙은 미국이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한 교토협약에 서명하지 않은 자연의 분노라고 말한다. 독일의 위르겐 트리틴 환경장관이 “미국이 카트리나로 엄청난 피해를 입은 것은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알려진 온실가스를 줄이려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미(美) 지구 온난화 방치한 벌’, <조선일보> 9월 26일자 A14면)이라며, 미 행정부의 교토의정서 비준 거부를 비판한 것은 적절한 논평이라고 생각한다.

 

 

뉴올리언스는 초기에는 고지대에 초승달 모양의 도시가 형성되었다. 19세기에 들어 면화생산, 노예무역 등으로 번창하였다. 게다가 뉴올리언스는 멕시코만에 위치해 교역의 요충지였다. 20세기에 들어와 늪지대에 주택단지를 확장하는 등 난개발로 시 중심부가 해수면보다 0.3~3미터 낮아졌다.(‘고지대→늪지대 도시 팽창이 화 불렀다’, <조선일보> 9월 8일자 A16면) 그리하여 바닷물 유입을 막는 방파제가 무너지면서 시 중심부가 물에 잠긴 것이다.

 

 

지구촌에 들이닥치는 자연 재앙은 이처럼 인간의 난개발에 의한 자연파괴에 기인한다. 우리 삶의 스타일을 바꾸어야 한다. 에너지 소비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화석연료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서 지구 온난화를 촉진하는 이산화탄소의 소모량을 줄여야 한다. 지속가능한 재활용 에너지와 수력 에너지 활용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미국은 이번을 계기로 방만한 에너지 사용을 깊이 반성하고 자연과 에너지를 아끼는 환경친화적 삶의 방식을 만들어야 한다. 미국만이 아니라 한국인을 비롯한 지구의 모든 사람들이 환경친화적 삶을 살아야 한다. 자연의 질서를 거역하는 삶을 사는 것을 피해야 한다.

 

 

미국 서부도 쓰나미 위험에 노출돼 있다. 수마트라 섬 일대에서 알래스카로 이어지는 환태평양 화산대는 지진의 ‘잠재 위험 지역’이다. 일본에서 발생한 지진이 동해안을 덮칠 수 있기 때문에 한국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뉴질랜드에서는 “남쪽의 섬 지층이 5백 년마다 지진을 일으키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5백여 년 전에 마지막 지진이 일어났기 때문에 가까운 시기에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또한 자연 재해에 대한 경각심 갖고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 인도·스리랑카 등은 자연 재해 예방체제가 충실하지 않은 데다, 해일 피해 경험이 적어 둔감한 상태였다. 지진 발생 뒤 해일이 닥칠 때까지 적어도 2시간 정도의 시차가 있었지만 경보체제가 없어 피해를 줄일 수 없었다. 남북한과 미국·일본 등 태평양 연안 26개국은 ‘국재해일경보체제 협력그룹’에 가입해 있지만, 인도양 연안의 이들 나라는 그렇지 못하다.

 

 

 

스리랑카에서는 2004년 해일로 2만1천 명 가량이 숨진 것으로 집계되었으며, 얄라에서만 외국인 관광객 등 약 2백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나타났다.

남부 아시아를 강타한 거대한 해일에도 스리랑카 내 최대 야생동물 보호구역인 얄라국립공원에서는 동물의 사체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는 동물들이 해일이 닥쳐오는 것을 미리 감지하고 고지대로 대피했음을 암시한다.

 

 

 

 

2. 신학적 측면

 

 

자연 재앙이 주는 신학적 측면에 관해서는 다음의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해답의 실마리를 제시해준다: 누가복음 13장 4~5절.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로 아느냐. 너희에게 이로노니,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당시 바리새인들이 가진 인과응보사상에 의하면 예루살렘 망대가 무너져 죽은 사람들의 희생은 어떤 특별한 죄로 말미암아 일어난 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죄인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일어난 일은 회개하지 않으면 모든 사람에게 일어날 것에 대한 예시적인 서막일 뿐이다. 그러므로 지난번 태국 푸켓에 있었던 쓰나미 재앙에 대하여 이들이 더 많은 죄를 지어서 형벌을 받았다고 해석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의 진의가 아니다. 재앙은 분명 하나님의 경고이다. 우리의 불순종과 죄에 대해 다가올 하나님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이다.

자연 재앙을 통한 하나님의 경고는 세 가지이다. 개인의 죄에 대한 경고와 사회와 국가의 죄에 대한 경고, 종말에 대한 징조이다.

 

 

1) 개인의 불의에 대한 경고

 

 

하나님은 자연의 재앙을 통하여 우리 개인들이 자연에 대한 바른 삶, 이웃을 향한 바른 삶을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아야 할 것을 경고하신다.

 

 

2) 사회와 국가의 불의에 대한 경고

 

 

소돔과 고모라의 재앙은 윤리적 범죄였으나 하나님은 하늘에서 유황과 불을 보내심으로써 도시를 소멸하셨다. 노아의 홍수도 마찬가지다. 그 시대에 불법이 가득 찼을 때 하나님은 홍수의 재앙으로 그 시대 사람들을 모두 쓸어가셨다. 지금 미국에서는 카트리나와 리타의 피해로 인해 ‘재난대비용품 시트’를 선물로 주는 ‘노아의 방주’ 신드롬이 번지고 있다고 한다.(강인선 컬럼, ‘노아의 방주 신드롬’, <조선일보> 9월 26일자 A14면) 9·11테러조차도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의 교만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로 받는 것은 미국과 주변의 강대국들에게도 약이 될 수 있다.

 

 

3) 종말의 징조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인자 때의 징조는 자연의 재앙과 더불어 시작한다.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까”라는 세상 종말의 징조에 관한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답변하신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마24:3하~8).

 

 

20세기에 일어난 1차·2차대전, 한국전쟁, 그 후에 1989년 공산정권의 붕괴와 1990년 초 소련연방의 해체, 2천 년대 들어와 테러와의 전쟁과 각종 해일과 지진 등은 종말의 징조임에는 틀림없다. 그럼에도 한국교회는 시한부 종말론으로 우리사회에 공포를 불어넣기보다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해석이 가미된 종말론적 설교를 통해서 우리사회가 더 투명한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맺음말: 종말론적 현실참여와 문화변혁

 

우리 기독교인들은 한편으로는 종말론적으로 살아야 한다. 항상 깨어 있으면서 다가오는 하나님나라를 선포하고 기다려야 한다. 다른 편으로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세상에 철저히 봉사해야 한다.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어야 한다. 그리고 재앙의 때야 말로 교회가 이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경고를 선포할 카이로스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현실에서 도피하거나 은둔하지 않고, 다가오는 하나님나라를 선포하고, 먼저 우리의 죄와 허물을 각성하고, 나아가 우리 시대의 죄악과 잘못을 지적하고, 우리 시대 사람들이 새로운 변화된 삶의 스타일을 갖도록 인도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기독자들이 가져야 할 예언자적 종말론이다. 이 종말론은 비판적인 현실변혁주의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