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꽁이의 찬양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해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Silk의 어원은 신라비단 'Serica-시라기(新羅)'에서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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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연구

2018. 8. 21.




[스크랩] <역사산책>Silk의 어원은 신라비단 `Serica-시라기(新羅)`에서 유래


- 오두의 역사산책 -

 

Silk의 어원은 신라비단 'Serica

    '시라기(新羅)'에서 유래  

 

- 해양 실크로드(Silk Road)는 신라비단 '시라기 로드(Siraki Road)' -

- 미추왕릉의 로마 스타일 장식보검은 신라의 비단과 바꾼 로마 교역물 -

- '시라기'와 '구다라'는 일본인들이 신라와 백제에 대한 종교적인 숭상의 칭호였다 -

- 미인의 눈썹을 아미(蛾眉)라고 하는 것은 누에가 나방이 되는 '선녀같다'는 의미 -

- '날개옷' 또는 '옷이 날개'라는 말은 누에 대신 나방이 되는 비단옷을 의미 -

 

 

일본어에는 한국 고대어가 많이 남아 있다. 일본인들은 신라(新羅)와 백제(百濟)를 시라기, 구다라 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 뜻을 명쾌하게 풀이한 것은 없다.

 

구다라(百濟)는 일본불교가 백제불교에 영향을 받은 것에서 나온 명칭으로 필자는 해석한다. 일본 최초의 사찰인 아스카사(飛鳥寺)는 백제 불교가 건너간 최초의 일본 불교 사찰이다. 그런 면에서 '구다라'는 불교를 전해준 백제의 의미에서 그 뜻을 찾을 수가 있다. 

 

百濟를 구다라 라고 하는 것은 다라(陀羅)라는 말이 다라니경(陀羅尼經)이나 만다라(曼陀羅) 등에서 보듯이 불교 경전에 나오는 다라(陀羅)에서 그 뜻을 찾을 수가 있다.

 

구다라의 '다라'는 인도와 고대 그리이스 문화의 완충지재의 문화였던 간다라(Gandara)의 다라(dara)에서나 고대 인도의 불교 이전의 타라(Tara) 여신과 관련이 있을 수가 있으나 일본에서 '다라'는 구나발다라(求那跋陀羅)의 준말인 '구다라(求陀羅)' 즉 불법을 구한다는 뜻에서 백제를 구다라 라고 불렀을 수가 있다는 것이 필자의 해석이다.

 

구나발다라는 5세기 때 인도의 바라문 가문에서 출생한 불교에 입문한 사람 이름인데 한자로 번역할 때 구나발다라(求那跋陀羅)로 번역한 것이다. 그가 쓴 불경 중에는 능가아발다라보경(楞伽阿跋多羅寶經)이 있다. 이때 역시 다라(多羅)가 경전 이름으로 등장한다.

 

일본이 신라(新羅)를 시라기(新羅)라고 발음한 데는 특별한 배경이 있다. 신라(新羅)의 라(羅)의 음운은 이집트의 태양신인 Ra(라)에 연결되었을 수 있다는 것을 앞선 글에서 논했지만, 그런데 그 신라의 '라(Ra)'에 대한 한자를 왜 羅로 택했을까?

 

그것은 비단 때문이다. 특히 신라비단은 특별한 양질의 비단으로서 중국의 사서들에서도 여러 기록들을 볼 수 있다. <남사(南史)> 79 이맥전(夷貊傳)에는 신라에는 합사 비단이 있다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新羅... 國有
啄評 五十二邑勒 土地肥美 宜植五穀多桑麻作縑布服

 

신라는 .... 나라에는 6 탁평이 있고, 52 읍륵이 있었다. 토지는 비옥하여 오곡을 재배했고, 뽕나무와 () 많았다. 합사 비단으로 옷을 입었다...

 

 

뿐만 아니라 신라 땅에는 뽕나무가 많았고 신라인들은 비단옷을 해 입었다는 중국 사서들의 기록은 그 외에도 신라비단과 누에에 대한 특별한 이야기까지 기록하고 있을 정도이다.

 

당나라 태종때 태상(太常)으로 있던 하성식(成式)이 쓴 <유양잡조전집(酉陽雜俎前集)>는  44권으로 된 책인데 그 1 지낙고상(支諾皐上)편에는 신라가 비단의 나라라는 숨은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新羅國有第一貴族
哥其遠祖名旁. 有第一人甚有家財其兄旁. 因分居乞衣食國人有與其隙地一乃求蠶穀種於弟弟蒸而與之知也. 至蠶時有一蠶生焉. 目長寸餘居旬大如牛食數樹葉足其弟知之
. 伺間殺其蠶經曰四方百里內蠶飛集其家國人謂之巨蠶意其蠶之王也

신라의 제일 귀족에 김가()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조상은 방이()이다. 그는 집의 재산에 대한 악착같기가 제일이라고 할만했다
형은 방이로 인해 집에서 나가 걸식을 했다. 나라사람들이 남아도는 1두를 주었다이에 동생에게서 누에와 곡식의 종자를 구했다동생은 쪄서 그에게 주었는데 방이는 이를 알지 못했다.


누에 때가 되어 누에 마리가 살아났다. 길이가  1촌쯤 되고 열흘쯤 되자 소처럼 나뭇잎을 수없이 먹어치워도 부족했다. 동생이 이를 알고 누에를 죽일 기회를 엿보았다. 그러나 날이 지날수록 사방 백리 안에 있는 누에 나방들이 집으로 날아들었다. 나라사람들은 그를 거잠(巨蠶)이라 일컬었다. 누에의 왕이라는 뜻이다.

이 기록을 보면 신라의 누에가 눈이 1촌이나 되는 큰 누에이며 자라면 소처럼 나뭇잎을 먹어치웠다는 기록은 신라 누에가 특별했으며 백리 안에서 누에 나방들이 날아 올정도라는 것으로 신라비단에는 막강한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신라비단은 비단이라는 천이기 이전에 환골탈태의 풍뎅이 토템으로 대표되는 곤충인 누에고치에서 나온 실크이다. Silk의 어원은 지금까지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다. 실크가 중국과도 전혀 관련이 없는 음운이다. 그런 '실크'는 신라를 의미하는 '시라기' 음운에서 나왔을까? 시라기는 신라를 의미하면서도 본래는 '신라 비단'이라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비단은 특히 비단치마로 그 힘을 발휘했다. 그것은 치마가 누에가 나방이 되어 날아가는 날개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다.

 

경주 금관총에서 발굴된 비단벌레 장식의 치마는 신라의 비단치마의 역사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풍류신선도를 바탕으로 비단치마에는 비단벌레 날개를 달았던 풍속이 있었다. 신라인들의 신선풍류도에서 비단벌레 풍뎅이가 이성을 유혹하는 미약(眉藥)의 효과에서 대단히 중요한 보물과도 같은 것이었디.  

 

유명한 김유신과 김춘추의 만남의 비사에 등장하는 <삼국유사>의 기록에는 비단치마가 그 중심에 있다. 비단치마는 비단벌레 장식을 단 치마로서 김춘추의 누이 동생 문희가 그 언니 보희의 꿈을 비단치마로 샀다는 것은 김춘추를 마음에 둔 것으로 문희가 이성인 김춘추에 대하여 언니 보희에게 실물 이성과 '호감 거래'를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비단 라(羅)자가 벌릴 라(羅)자로도 불리는 것은 비단 치마 이미지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치마는 펼쳐지기 때문이다. 과연 신라는 '새로운 비단'이라는 의미가 신라(新羅)라는 한자에 숨어 있는 것은 羅가 비단 라(羅)자라는 것에서도 그렇거니와 일본인들이 신라를 시라기라고 하는 '기(綺)가 비단기, 비단기(綺)자'인데서도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시라기'의 '시라(斯羅)'는 신라를 국호로 하기 전의 사로국의 '사로(斯羅)'에 대한 일본인들의 발음이었다.

 

신라(新羅)의 羅는 한자의 뜻이 '벌릴 라(羅)'자로 많이 알려져 있으나 '비단 라(羅)'자이기도 하기 때문에 新羅란 '새로운 비단'이라는 뜻이 되기도 한다.

 

사전에 찾아보아도 羅는 "명주실로 짠 피륙의 하나. 가볍고 부드러우며, 조금 성긴 구멍이 있어 사(紗)와 비슷하다. 흔히 생라(生羅)와 숙라(熟羅)로 구분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紗(나사) 또는 羅(능라) 그리고 

 

일본 고대어인 신라에 해당하는 시라기(しらぎ)는 초기에 한자를 '斯羅綺'라고 쓴데서 그 발음이 '시라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 斯羅綺'의 綺가 비단 기(綺)자이다. 斯羅는 초기의 신라 국호의 하나였는데 일본에서는 '시라'로 읽은 것이다. 시라기와 관련하여 신라에 대한 일본인들의 일반적인 설명은 다음과 같다.

   

当初の「斯蘆」という文字の発音は現代日本語では「しろ」現代韓国語では「サロ」だが、漢字の上古音では「シラ」である。日本では習慣的に「新羅」を「しらぎ」と読むが、奈良時代までは「しらき」と清音だった。万葉集(新羅奇)、出雲風土記(志羅紀)にみられる表記の訓はいずれも清音である。

 

처음에 '사로'라고 하는 문자의 발음은 현대 일본어에서는 '시로' 현대 한국어에서는 '사로'이지만, 한자의 상고음에서는 '시라'이다. 일본에서는 습관적으로 '신라'를 '시라기'로 읽지만, 나라시대에서는 '시라키'라고 발음했다. <万葉集>에는 '新羅奇'로, <出雲風土記>에는 '志羅紀'로 나타나는표기의 그 발음하는 훈(訓)은 탁음이나 반탁음이 아닌 '시라키'이다. 

 

지금은 '시라기(しらぎ)'라고 읽지만 본래는 '시라키'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실크(Silk)와 유사한 발음이 나는 것이다. 그 뜻은 앞서 언급한대로 '신라 비단'이라는 뜻 斯羅綺이다.

 

신라는 당나라를 넘어 서역의 여러 먼 나라들과 무역을 했다. 드라마 <선덕여왕>을 통하여서 이제 신라와 로마가 교역을 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신라 비단은 가장 선호하는 비단으로 알려졌다. 그 배경에는 신라 비단이 가지는 신라의 종교 문화적인 의미까지 곁들여져 있었다.

 

'비단벌레' 의미를 가지는 누에가 들어가는 고치집을 사람이 대신 비단을 입고 날개를 달고 신선이 되어 하늘을 날아오른다는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당나라나 다른 나라들의 비단보다는 신라가 고유의 우화이등선(羽化而登仙)하는 풍류신선도를 특히 깊게 뿌리로 하는 누에의 비단을 만들어내기 때문이었다.

 

누에는 단순히 비단실을 만드는 벌레가 아니라 고치집을 지어 날개가 나와(羽化) 하늘로 날아오르는 신선(登仙)이 되는 존재로 여긴 그 시대의 신선풍류도에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 신라 비단의 품질과 그 종교적 배경까지 있었던 것이다.

 

신라는 여러 국호를 가졌던 나라였다. 그 이유는 여러 국호 변경이 있었던 이유 외에도 해양세력으로서 인도양까지 뻗어간 배경에서 먼 나라들이 여러 다른 의미로 신라를 불렀을 수가 있었던 배경도 있다.

 

혜초가 천축국(인도)에 갔을 때 그는 조국 신라를 '계림(鷄林)'이라 표현했다. 그런데 인도에서는 신라를 닭울음 소리인 '구구타'라고 불렀다. 구구타는 한자로 矩矩咤(구구타)로 표현했으며 그것은 신라를 의미했다. 닭 울음 소리 '구구타'는 신라의 국호 鷄林(계림)과만 단순히 연결된 것이 아니라 '닭이 울면 해돋는 동방의 나라'의 의미로 불려졌기 때문이다.   

 

신라비단은 신라인들의 풍류신선도의 우화이등선(羽化而登仙)에 연결된 정신적인 면도 포함된 의미를 가졌기 때문에 신라비단은 비단을 의미하면서도 신라 나라 자체의 의미를 가지는 '시라키'라고 불려진 것이다.

 

신라비단은 그래서 비단벌레(누에)가 입을 고치로 만든 비단을 입으면 누에 대신에 날개를 달고 신선이 되어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는 우화(羽化登仙) 하는 신선옷으로 여겨졌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적인 바탕은 신라인들이 특히 누에치기와 비단생산에 물적 정신적인 배경을 특별히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더 좋은 생산품을 만들었음을 의미한다. 동시에 서역인들에게 신라비단이란 입으면 '날개' 의미를 가진다는 기분좋은 또는 그렇게 의미깊은 뜻으로 대할 수 있는 배경이 있는 것이다. 

 

'날개옷'이라든지 '옷이 날개다'라는 말은 단순한 말이 아니다. 풍류신선도를 바탕한 비단을 입으면 나방 날개처럼 날개가 나온다는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따라서 신라비단은 비단 그 자체를 말하면서도 그런 비단 상품을 만들어내는 신라라는 나라의 나라 이름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신라(斯羅) 비단(綺)의 뜻인 '시라키(斯羅綺 ,Siraki)'는 '실크(Silk)'로 음운화하면서 'Silk'는 '신라비단'의 의미를 가지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국제적으로 유명한 코리아 브랜드의 상품이 유명하면 그 상품이 그 상품을 만든 나라 이름처럼 브랜드 칭호가 나라 대신에 불려진 것은 신라비단이 신라라는 이름으로 시라기(新羅)로 남아진 것에서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유명한 그 나라의 상품이 그 나라 이름으로 표현된 것은 '차이나'에서도 볼 수 있다. '차이나(china)'는 근대역사에서 유럽인들이 중국의 도자기를 수입하면서 'China' 나라 이름 그 자체를 도자기 그 자체 이름으로 차이나(china)라고 칭한 것이다.

 

Silk는 'Siraki'로서 '신라비단' 칭호이면서도 신라 그 자체의 나라이름으로 불려진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방증을 로마인들의 '세리카'라는 말에서 볼 수 있다.

 

로마인들은 실크로드를 따라 로마로 비단 교역을 하러 온 동방의 상인들로부터 비단의 나라를 'Serica'로 칭했다. '세리카(Serica)'는 '실크(Silk)'와 유사한 발음을 낸다.

 

'크'가 '카'로 된 것은 라틴어에서 권역 또는 땅을 의미하는 '-아'화 하는 음운 체계에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메리카라는 말은 아메리고라는 사람 이름에서 땅의 이름으로 아메리카가 된 것과 같은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세리카(Serica)'는 '세리크(Seric 또는 Serik)'에서 비롯한 것일 수가 있으며 중동과 지중해권에서 L 발음과 R 발음이 교차화 하는 현상에서 Silk는 Serik에서 비롯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그대로 Siraki가 와전된 발음이 되는 것이다. 

 

신라 외의 바깥나라인 일본에서 신라를 '신라비단' 이라는 뜻으로 '시라키(Siraki)'라고 발음한 것은 결국 실크(Silk)라는 영어로 비단이라는 뜻으로 사용된 것이다. 

 

해양 실크로드(Silk Road)는 사실상 신라인들이 막강한 항해력을 발휘한 신라비단의 길(Siraki Road)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당나라 때에 동아시아 해양 항해력은 신라의 장보고가 신라의 청해진만이 아니라 당나라의 산동반도 적산원에도 그 지휘부를 두고 있을 정도였을 정도로 해양권은 신라인들의 항해로 인도양까지 뻗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당나라인들도 신라의 장보고 함대의 도움을 받았을 뿐만이 아니라 일본인들도 바다에 나서면 신라배를 빌려 탔다.

 

당나라에 조공을 바치러 가는 일본인들은 신라배를 타고 갔다는 사실을 그 시대의 일본 승려 엔닌(圓仁)이 당나라 유학을 가면서 신라 배를 타고 갔다 오는 과정을 여행기로서 쓴 <入唐求法巡禮行記>에서도 볼 수 있다.   

 

<왕오천축국전>으로 유명한 해양 실크로드 길을 따라 간 것은 분명 신라의 해양항해술을 바탕하고 기록되지 않은 많은 신라 상인들의 서역행 그래서 이집트 로마까지 왕래했던 바탕을 하고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로마인들이 비단에 대해서 말할 때 'Sina'라는 표현을 하기도 했다. 'Sina'라는 것은 중국인들이 대륙 실크로드로 비단을 팔러다닌 영향이 있다는 것만으로 중국을 의미한다고만 풀이할 수는 없다. Sina(시나)는 '신라(新羅) - 신나' 음운과도 무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시황의 진(秦)나라에서 '지나'가 'Sina'로서 서역인들에게 불려졌다고 하지만, Sina는 '신라'의 실크로드로 '동방의 나라'에 대하여 혼용되어 불려졌을 수도 있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비단 교역에서 신라를 'Siraki(斯羅綺)'로도 'Sina(新羅)'로도 불려졌을 것이다. 그러니까 신라와 오래된 서역의 무역인들은 오래된 신라 국호인 'Siraki'를 더 선호하여 더 많이 불려져 나중에 Siraki가 Silk로 불려지게 되었을 것이다. 

 

Siraki에서 신라는 'Sira'로도 불렸을 것이고 Silla로도 불렸을 것이다. 근간에 한국이 원전수주를 받은 아랍에미레이트를 비롯하여 중동지역에는 Silla라는 지역 이름이 여럿 존재하는 것은 신라와 아랍의 신라비단 교역의 역사를 말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신라의 비단은 특히 시라+키(綺=비단)의 의미로 '시라키(Siraki)'로 불려져 Silk로 발전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로마인들은 신라 비단 또는 신라를 Serica로 불렀을 것이고, 대륙으로 오는 비단 생산지를 막연히 Serica로 함께 칭했을 것이다. 

 

Serica는 로마인들이 중앙 아시아 천산산맥 서쪽의 지역을 칭했다는 학설은 실크로드를 대륙실크로드에서만 조명했기 때문이다. 해양실크로드를 통해서 건너간 신라비단의 루트는 '시라기 - Serica' 즉 신라 사로국 비단을 의미하는 시라키(斯羅綺)에서 비롯했다고 보아야 한다.

 

신라가 로마와 교역을 했다는 그 무역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미 상당히 논의되어 오고 있다. 그 중심에 신라 미추왕릉에서 발굴된 로마스타일의 장식보검과 유리 유물들이다. 

 

로마를 한자로 라마(羅馬)로 표현하는데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재미있게도 '비단 싣는 말'이 된다. 그러한 라마(羅馬)에 항상 새로운 비단을 가져가는 나라가 '신라(新羅=새로운 비단)'인 것이다.

 

로마와 신라는 그래서 주고 받은 물품들이 경주 미추왕릉에서 로마의 교역품으로 보이는 유물들이 발굴된 것이다. 금제장식 보검이나 금제팔찌 및 로마 스타일의 유리병과 유리그릇 등이 신라에서 발견된 것은 신라는 신라 비단으로 이들 로마 물품들과 교역을 했다는 증거들이 되는 것이다.

 

 

*로마 스타일로 알려진 장식 보검과 금제팔찌.

(경주 미추왕릉지구 계림로 14호분에서 출토된 5~6세기 장식보검 (국립경주발물관 소장 보물 635호)·

경주 황남대총 북분에서 출토된 5~6세기 금제팔찌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해양실크로드.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로마 양식의 유리 제품들.

황남대총 출토. 국보 624호 (중앙의 유리병)

신라인들은 무엇으로 교환했을까? 신라 비단 Serica - Silk 였을 것이다.

 

*상원사 동종에 새겨진 선녀 의상.

누에가 나방이 되어 날아 올라 신선이 된다는 의미의 날아오르는 비단옷을 그린 것.

 

 

따라서 해양 실크로드(Ocean Silk Road)는 신라비단 '시라키 로드(Siraki Road)' 무역로였다. 해양 실크로드는 장보고의 청해진에서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신라시대에 일본의 기록들을 보면 신라비단을 많이 수입한 내용들이 나온다.

 

시라키(しらき, 斯羅綺)는 그렇게 일본으로부터 '한류' 바람을 불러 일으켰으며, 그러한 신라 사로국의 비단 시라키(Siraki, 斯羅綺)는 서역의 이집트 로마로 뻗어가 Serica로 칭해지면서 해양 Silk Road를 만들어낸 것이다.  

 

*실크(silk)는 해양 실크로드를 통해서 '시라기'에서 유래했을 것

  

백제 구다라(百濟)가 일본에 처음으로 불교(佛敎)를 전해주어서 불경을 구할 수 있는 나라로 여겼던 것에 연유한 칭호였다, 반면에 신라가 시라기로 불린 것은 비단을 구할 수 있는 비단의 나라로서 '시라기'였던 것이다. '시라키'는 국호가 斯羅에서 新羅로 바뀌어 가면서 신라를 시라기(新羅)로 칭한 것이다.

 

신라를 시라기라고 한 것은 단순한 직물 비단만을 의미한 시라키(斯羅綺)가 아니라 일본에 신도(神道)의 뿌리가 되는 나라로서 신선(또는 神)이 되는 누에와 비단을 인식했던 것이다.

 

신라와 일본의 고대 신관(神觀)은 사람이 죽으면 신선이 되듯 신(神)이 된다고 보았다. 오늘날 일본의 신사들에는 살아있던 사람들을 신으로 모신 전통은 이러한 전통의 신도(神道)의 신관을 바탕하고 있는 것이다.

 

구다라(百濟): 佛敎를 전해준 나라 = 구다라(求陀羅) = 불경을 구할 수 있는 나라

시라기(新羅): 神道를 전해준 나라 = 시라키(斯羅綺) = 사로(斯羅)국 비단의 나라

 

다시 말해 신라를 비단의 나라로 본 것은 비단이라는 상품만이 강조된 것이 아니라 누에와 비단이 의미하는 신선풍류도의 신선이 되고 신이 되는 비단옷의 신비한 의미가 포함되어 잇는 것을 의미한다. 시라기라는 말은 그래서 대단히 종교적인 표현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일본인들의 신라에 대한 '시라기' 표현은 신라가 상대적으로 풍류신선도적인 신국의 나라였기 때문에 백제가 불교를 전해준 나라로 보는 상대적인 의미에서 누에와 비단의 의미를 가진 신도(神道)를 전해준 나라로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라기'와 '구다라'는 일본인들이 한반도의 신라와 백제에 대한 종교적인 숭상의 뜻으로 칭해진 나라 이름들이었던 것이다.

 

특히 신라비단에 대한 의미는 비단이 종교를 넘어 상품으로서 서역까지 퍼져나가 신라비단이라는 이름으로 시라키(斯羅綺 Siraki)로 불려지면서 Silk(실크)로 불려지게 된 것은 신라 비단 뿐만이 아니라 신라의 신선풍류도의 종교적 비단옷의 정신적인 전파이기도 했던 것이다. 해양 실크로드(Silk Road)는 그래서 신라인들의 Siraki Road이면서 신라문화라는 의미의 라틴어 의미의 Siraka(시라카)가 Serica(세리카)로 전이되어 갔을 것이다.  

 

누에가 나방이 되기 위하여서 고치인 '비단옷'을 입어야 하는 것은 신라의 신선풍류도의 종교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신라의 신국의 도에서 여신적인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누에 나방의 눈썹을 아미(蛾眉)라고 하는데 미인의 눈썹을 아미(蛾眉)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누에 눈썹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선녀같다'는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이다.

 

아미(蛾眉)는 신라의 신선풍류도의 신화적인 여신을 의미한 것을 불교가 들어온 뒤에 서역의 Amitabha(아미타바)가 아비타불(阿彌陀佛)로 표현될 때 아미(阿彌) 음운은 누에나방의 눈썹만을 의미하는 아미(蛾眉)로 전락했지는 않았을까? 아미타불을 조각할 때 그 눈썹은 지금까지 누에나방의 눈썹 즉 아미(蛾眉)처럼 그리고 있다.

  

 

*날개를 달고 나방이 되는 누에의 모습과 누에 눈썹 아미(蛾眉).

 

비단은 단순히 옷을 만드는 것을 넘어서서 종교적인 의미가 들어 있었던 증거는  신라 금관총(金冠塚)에서 발굴된 비단치마에 수많은 비단벌레 날개로 장식한 것에서 드러났다. 비단을 입고도 비단벌레 날개를 달아 장차 나방이나 아름다운 비단벌레와 같은 풍뎅이로 하늘을 날아오르는 신선이 된다는 의식이 '비단벌레 장식의 비단치마'의 의미에 숨어 있는 것이다.

 


*경주 금관총(金冠塚)에서 발굴된 비단치마

2003년 국립박물관에서 전시된 바 있는 복제품

단순한 치마가 아닌 많은 비단벌레 날개를 장식한 신선의식이 들어있는 '신선의 옷'의 의미를 지녔다.  

 

서역에서 그리고 로마에 이르기까지 비단이 유행한데는 단순한 그 부드러움만이 아니라 이와같은 신비한 신선의 옷으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신라가 아랍과 로마로로 뻗어간 배경에는 물품 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신비한 신선의 옷의 이름으로 비단벌레와 비단옷 입은 신선의 의미가 전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신문화사적인 배경에서 로마와의 실크 비단교역을 했던 신라는 앞선 글에서 논한대로 고대 이집트 파라오의 풍뎅이(scarab) 신화와 신라 황남대총의 비단벌레 풍뎅이의 역사와도 이어져 있는 것이다. 

 

여담으로 말하자면 아라비아 숫자의 8(팔)은 누에고치를 닮아 있다. 신라말로 '비단팔'자라고 나는 서양인들에게 죠크를 한다.

 

해양 실크로드(Silk Road)는 신라인들의 신선풍류도의 '곤충신화'를 바탕한 신라비단의 역사를 말해준다. 그러한 영향으로 로마로 가는 내륙의 실크로드도 이러한 신라의 실크로드(Silk Road)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말이 된 것이다. 

 

따라서 실크로드(Silkroad)란 세계사적인 의미의 '신라의 길'이며 '신라비단의 길'로서 Siraki Road에서 비롯한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황남대총의 '비단벌레'라는 말은 비단을 만드는 벌레의 뜻을 가진 '누에'의 다른 말이었다. 그 '비단벌레' 누에가 만드는 비단은 신화적으로 신라 왕실에서 누에 나방을 포함한 광의적인 풍뎅이 신선의 의미를 지닌 '신선의 옷'으로 여겼던 것을 말한다.

 

그 신라 비단 Siraki의 뜻은 실크로드(Silkroad)와 함께 오늘날 영어의 Silk의 근원이 되어 있는 것이다. (01/20/11 오두 김성규 odunamsan@hanmail.net )

 

출처 : 오두막 위에 서린 무지개 | 글쓴이 : 오두 |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