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꽁이의 찬양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해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가야국을 세운 김수로왕과 허왕후는 흩어진 히브리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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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연구

2018. 9. 4.

가야국을 세운 김수로왕과 허왕후는 


흩어진 히브리인인가?




삼국유사의 가락국기에 나오는 김수로왕과 허왕후의 부모 신앙은 무엇인가?


가락국기에서 김수로왕은「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신성하여(朕生而頗聖)」라고 


하여 김수로왕의 부모가 세계에 흩어진 히브리인 중의 한사람일 가능성이 있다.

 

히브리인 중 유다족속인 솔로몬 왕은 이집트에서 


말을 떼로 사왔으며(왕상10:29) 당시의 무역업자들은 세계 각지로 흩어졌다. 


또 허왕후도 그 아버지 왕의 말을 인용하여 말할 때에


「상제(하나님)의 말씀이 오히려 귀 언저리에 사라지지 않았으니 


너는 이제 곧 어버이를 하직하고 저곳으로 향하여 떠날지어다」


(上帝之言 其猶在耳 儞於此以 忽辭親 向彼乎往矣)라고 하여 


부모가 흩어진 히브리인일 가능성이 있다.

 

김수로왕이 김해의 토착민인가 아니면 외래인인가 추정할 때 


대부분 외래인으로 보고 있다. 


또 기마민족의 후예로 보고 있기도 하다. 


(참고문헌: 사도도마의 이야기, 정학봉 지음)


김수로왕은 기마 민족으로서 나라를 세울 뜻을 가지고 


탁월한 무예실력과 재력을 가졌으나 


토착민에게 해결해 주어야 할 군사력과 건축 


그리고 건강 문제를 풀지 못하여 방황하고 있었다.


 

김수로왕은 김해에 도착하여 토착민인 구간과 주민에게 황금 6개를 선사한다. 이때는 서기 42년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가장 왕성하게 선교한 시기이다. 사도 도마는 인도를 거쳐 한반도의 김해지역에 도착하여서 김수로왕을 만나 군사력 증강으로는 철기생산을 지도하고 건축으로는 인도에서 왕궁을 건축한 경험이 있어 김수로왕의 왕궁건축을 도울 수 있었으며(참고문헌: 도마행전) 또한 김수로왕과 인도 공주와 국제결혼을 통하여 인도의 차를 들여와서 주민의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하였을 것이다. 이에 김수로왕은 용기를 얻어서 김해에 가락국이라고도 하는 가야국을 세웠다.

 

예수님은 이방인을 전도하기를 원칙적으로 원하셨지만 사도시대의 전도법으로써 사도 도마는 예수님으로부터 이방인이나 사마리아인의 전도보다는 흩어진 히브리인을 전도하는 것을 훈련받았으며(마10:2-6)실크로드의 땅 끝(한국)까지 가라는 명령을 받았다.

 

사도 도마와 김수로왕과의 만남은 김수로왕이 흩어진 히브리인이었기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기마민족의 대표되는 스구디아(스키타이)인 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대에 사도 안드레는 스구디아인에게 가서 전도하였고 사도 바울은 스구디아인의 교인을 만났다(골3:11). 따라서 김수로왕은 스구디아인 중의 흩어진 히브리인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김수로왕과 함께 했던 6가야의 왕이 되었던 일행 중에는 소호 김천씨(참고문헌: 가야시대에 보이는 기독교 흔적, 김도윤 지음) 가문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족보는 좀 더 분명하도록 연구 자료가 있어야 하겠으나 가락국기에 기록된 김수로왕의 신앙 형태를 보아서 김수로왕은 흩어진 히브리인의 신앙을 가졌다가 복음을 받았다.

 

일연 스님은 불교를 전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삼국유사 금관성 파사석탑 부분에서 김수로왕의 가야국 건국시기에는 불교가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가락국기 본기(本記)에는 절을 창건하는 기록이 없었다라고 하였다.

 

불교는 고구려에 서기372년, 백제 서기 418년, 신라 528년에 들어왔었다. 서기 48년에 인도에서 가야국의 김수로왕에게 시집 온 허왕후와 불교를 연결시켜서는 안 된다. 가락국기에서는 왕후사가 지어진 때는 서기 452년이며 장유사가 지어진 때는 그 후 500년 뒤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삼국유사를 변역한 강무학씨도 가락국이 설 때는 아직 불교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므로 불교에 관련된 설화나 전설은 성립될 수 없다고 하였다.

 

허왕후의 아버지는 인도 아요오디아에서 왕이었다. 흩어진 히브리인으로서 훌(출17:10-12, 31:2-4)의 후손일 가능성이 높다.(참고문헌: 다도, 장은자교수 박사학위 논문)

 

사도 도마는 서기 41년 7월(음)에 한반도 김해에 도착하여 흩어진 히브리인인 김수로왕을 만나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면서 가야국 건국을 돕다가 서기 47년 8월(음)에 인도에 도착하였고 흩어진 히브리인인 허왕후 왕족에게 총각 왕으로 허왕후를 6년을 기다린 김수로왕을 소개하였을 것이다. 허왕후는 시집오면서 차 씨를 가져왔다.

 

김해에 대엽종 차의 군락지가 지금도 남아있으며 허왕후 시대의 다기가 남아있어서 허왕후가 인도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것은 역사적 사실로 증명되었다.(참고자료: 도마박물관에 소장)


 

출처 : 도마 땅끝 성지순례  |  글쓴이 : 도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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