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꽁이의 찬양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해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좌파들이 왜곡한 이승만 대통령의 진짜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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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

2018. 11. 27.

 

좌파들이 왜곡한 

이승만 대통령의 진짜 업적

 

 

 

- 수천년을 봉건왕조국가로 살아온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로 건국된것은 위대한 혁명이었다

 

- 6.25 전쟁은 소련 스탈린의 음흉한 계략으로 시작된 재앙이었고 이승만 대통령의 현명한 대응으로 극복했다.

 

1. 스탈린의 음흉한 계략

 

 

 

- 스탈린은 모택동의 신중국이 소련의 종주권 체제에 위협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하고는 극동정책에 대한 전면 재검토에 돌입했다. 즉 김일성의 남침전쟁을 이용하여 한반도에 미군을 끌어들이고 중공마저 한국전에 끌어들여 미국과 중국 두 나라가 맞서 싸우도록 함정에 빠뜨린다는 계략이었다.

 

 

- 그 영향으로 소련 군사고문단의 작전계획은 서울 점령에만 중점을 두었을 뿐, 그 이후의 작전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지 않았다.

 

- 북한 군 지휘관도 대부분 중국 국공내전의 경험자이므로 게릴라전에 익숙해서 전차의 특성을 몰라 보병과 같이 진군하도록 제약했다.

 

 

2. 이승만 대통령의 6.25 전쟁목표

 

 

- 한국에서 일어난 전쟁이 세계대전의 빌미를 제공하는 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 한국민은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총력전을 펼친다.

 

- 북한의 불법 남침을 남북통일의 절호의 기회로 삼는다. 38선은 북한이 먼저 침범했기 때문에 이제 필요 없어졌다.

 

- 위기를 타개하고 북진통일을 위해서는 미국과 유엔의 지원이 필요하다.

 

 

3. 대한민국의 6.25 대응

 

- 국군은 영웅적으로 싸웠다. 그렇기 때문에 소총과 수류탄만으로 북한 전차와 자주포 앞에서 며칠이나마 버텨서 낙동강 방어선을 형성하는 시간을 벌었다.

 

- 이승만 대통령의 피난은 오히려 너무 늦었다. 의정부 함락은 서울의 경무대가 자주포 사정거리에 들어와서 대통령의 안전이 급박한 위험에 처했음을 의미한다. 국가원수인 대통령의 안위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전쟁에서 대통령이 끝까지 서울에 남아 지휘를 했어야 했다는 주장은 현실을 도외시하고 적화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말과 다름없다

 

 

4. 6.25 전쟁의 결과

 

 

 

- 대한민국은 6.25 전쟁을 통해 공산주의 치하를 경험하고 그 악마성을 알게 되어 반공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또한 많은 남성들이 전쟁을 수행하며 현대적인 행정과 협동심, 극기, 기술을 배웠고 이후 산업화에 기여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 이승만 대통령은 김일성의 남침전쟁을 이용해 미국과 끈질긴 협상 끝에 한미상호방위조약이라는 큰 결실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 6.25 전쟁에 불법 개입한 중공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체제에서 완전 고립되어 20년 이상을 죽의 장막에 갇혀 자력갱생해야 했다. 수천만명이 희생된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도 한국전 개입이 몰고 온 후유증이다.

 

 

5.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가치

 

 

 

- 미국을 비롯한 참전 국가들의 거센 압력으로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 협정에 동의하는 조건으로 한국의 안보와 전후 복구에 대한 지원을 약속받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체결을 보장받고자 했다.

 

- 이승만 대통령은 한반도에 공산군이 재차 남침할 경우 미군이 자동 개입을 하도록 제4조를 추가해 주한 미군이 주둔하고 서울 북방의 서부전선에 배치하였다. 해외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이 공격받으면 미국 대통령은 의회의 승인없이 즉각적이고 자동적으로 참전하게 된다.

 

- 한미상호방위조약의 후속 조치로 총 8억 달러의 군사 원조와 경제 원조가 이루어졌다. 대한민국 국군을 유엔군 사령부의 작전지휘권 하에 두는 조건으로 한국군 10개 예비사단 추가 신설, 79척의 군함과 100대의 제트 전투기를 제공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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