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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대사 산책` 개정판 23년만에 다시 읽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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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 11.

`한국고대사 산책` 개정판 

23년만에 다시 읽는 이유

  • 이문영 기자입력 : 2017.04.10 15:01:05


[물밑 한국사-42] 1994년 3월에 역사비평사에서 <문답으로 엮은 한국고대사 산책>이라는 책이 나왔다. 당시 점점 더 기승을 부리고 있는 유사역사학에 대한 학계의 반격으로 나온 책이었다. 책 서문에 이런 내용이 있다.

- 고대사의 영역에는 `사실` 자체를 판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은 만큼, 여러 가지 의문이 제기되고 또 논란도 많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사실`에 기초해서 판단해야 하고, `과거`와 `현재`의 관계성 속에서 올바른 역사 이해의 방향을 찾아야 한다. `영광스러운 고대사`나 `광대한 영토`에 선뜻 이끌리기 쉬운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막연한 환상이나 바람에서 출발하고 있지는 않은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즉 이 책은 잘못된 방향으로 끌리고 있는 시민들에게 제대로 된 역사상을 보여주고자 만들어진 책이었다.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책이 아니라 3년간의 긴 기획으로 만들어졌다. 책을 집필한 한국역사연구회 고대사분과에서는 교사, 학생, 직장인들에게 설문조사를 벌여서 일반인이 궁금해하는 문제를 조사하여 그것들을 집중적으로 다뤄서 이 책을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고대사에서 총 44가지의 항목이 결정되었다. 이 항목들은 대체로 지금 보아도 흥미로운 것들이다. 또한 당대의 문제점으로 다루기 껄끄러워 보이는 것들에 대해서도 정면승부를 펼쳤다.

<환단고기>는 위서라는 점을 밝히고, 위만의 출자 문제, 광개토왕비의 변조 문제, 일본 천황가의 기원이 백제인가, 백제가 중국에 영토를 가지고 있었는가와 같은 문제를 역사학계가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다루었다.

1994년 이 책은 나오자마자 한 달 만에 2쇄를 찍을 만큼 호응을 받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23년의 세월이 지났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학문의 세계도 당연히 변한다. 역사학은 사료 해석의 발달, 새로운 사료의 발견, 그리고 주변 나라의 변화에도 영향을 받는다. 그에 따라 시민들의 관심사도 변화한다. 과거의 지식은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잘못된 것으로 판명될 수도 있다. 역사라는 학문은 실제에 있어서는 현대인들의 해석에 의지한 것이다. 이 때문에 역사학에 과연 `사실`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의문이 던져질 때도 있다. 당연히 `사실`은 존재한다. 우리가 어제 밥을 먹고 TV를 본 것처럼.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를 역사학자가 주목하면 역사의 한 장면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다만 고대의 경우에는 그 사료가 제한되어서 단편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역사학자에 따라 각기 다른 해석이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해석이 객관성을 잃고 목적성에 사로잡혀 고의적으로 왜곡된 해석을 행한다면 학문이라 부를 수 없게 된다. 유사역사학이 바로 그런 것이다.

역사비평사에서는 오랜 세월이 지난 <문답으로 역은 한국고대사 산책>을 오늘날의 관점에서 다시 한 번 펴내기로 했다. 그리하여 전면개정판 <한국 고대사 산책>으로 새롭게 선보이게 되었다.

이 책은 과거보다 조금 줄어든 38개 항목을 다룬다. 그중에서 네 가지 항목은 새롭게 들어온 것이다. 동북공정에 대한 문제, 화랑세기 필사본에 대한 문제 등을 추가했다. 이러다보니 아쉽게도 빠진 부분이 있는데, 가야 관련 항목이 대거 누락되었다. 그렇기는 해도 대부분의 항목들은 과거의 책보다 더 서술이 길어져서 항목은 줄어들었지만 책은 더 두꺼워졌다.

<환단고기>와 같은 경우, <환단고기>가 위서인 이유도 상세하게 설명하고 특히 최근에 발견된 <삼국유사> 파른본을 들어 `환국`이라는 착오가 발생한 부분도 잘 다루고 있다.

서동과 선화공주 설화는 기존의 설이 1994년 판에 소개되어 있다. 동성왕과 신라 왕족의 딸이 결혼한 이야기가 변형된 것이란 설, 미륵사의 연기설화일 뿐이라는 설, 마를 캐는 평민들의 꿈이 투영된 설화라는 설, 무왕이 즉위 후에 실제로 결혼한 것이란 설 등이 다양하게 거론되고 있다. 그리고 미륵사 연기 설화 부분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런데 2009년 1월에 미륵사지 석탑이 해체되면서 그 안에서 사리봉안기가 나왔다. 이 사리봉안기에는 무왕의 왕비가 누군지 나온다. 좌평 사택적덕의 딸이라고 되어 있는 것이다. 이로써 무왕과 선화공주의 로맨스는 성립이 불가능해진 것이라는 이야기가 한참 나돌았다. 새로운 사료가 발굴된 것이다. 개정판에서는 이 발굴의 의미와 이로써 나오게 되는 새로운 해석들을 다루고 있다.

1994년 판에서는 의미 있게 다른 광개토왕비 변조설의 경우는 개정판에서는 간단하게 언급하고 넘어간다. 그보다는 광개토왕비의 명칭을 중국이나 일본은 왜 호태왕비라고 부르는가와 같은 오늘날 양국의 역사 왜곡 문제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나 당시 고구려인들의 천하관 문제와 같은 부분에 더 집중해서 서술하고 있다.

임나일본부설과 같은 경우도 일반인들은 거의 인식하지 못하는 2010년 제2기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에서 임나일본부의 용어를 폐기한다는 합의부터 소개하고 있다. 참고 자료로 2001년 일본 후소샤의 <새로운 역사 교과서>의 임나 서술을 소개하기도 한다. 임나일본부를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에 대한 결론 부분은 과거와 달라지지 않았는데, 그것은 물론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1994년 판은 나라별, 시대별로 작성이 되었는데 개정판은 주제별로 항목을 묶었다. 기록, 공간, 소속, 인물, 함정, 흔적으로 장이 나뉘어 있는데 이런 주제별 제시는 역사를 단지 개별 국가 단위로 이해하는 현상을 넘어설 수 있는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보면서 안타까운 점은 책의 내용이나 구성이 아니고 1994년에 걱정하던 일들이 20여 년이 흐른 지금 시점에서도 전혀 개선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아니, 더 나빠진 것 같다. 개정판에서도 우려를 표하고 있다.

- 최근 한국 사회에는 고대사에 관한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인 목소리가 유례없이 커졌다.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황당한 주장을 앞세워 학계를 공격하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때로는 폭력이 행사되기도 한다.

 심지어 권력의 핵심부가 이 같은 목소리를 지원하며, 일부 정치인이 이에 편승하였다.


역사학에도 비판은 언제나 필요하다. 그런데 비판하고자 한다면 이미 수십 년 전에 쓰인 이병도의 책 같은 것을 떠나 오늘의 학자들이 쓴 책을 가지고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고대사에 관심을 가진 분들은 이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이문영 역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