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꽁이의 찬양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해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인생의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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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2019. 2. 2.

관악하나로교회 설교(2001. 1. 14.)

 

인생의 건축

 

성경 마 7:24-29

 

"그러므로 내 말을 듣고 그대로 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다 자기 집을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고 할 것이다.

25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서, 그 집에 들이치지만, 무너지지 않는다. 그 집을 반석 위에 세웠기 때문이다.

26 그러나 내 말을 듣고서도 그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고 할 것이다.

27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서, 그 집에 들이치면, 무너진다. 그리고 그 무너짐은 엄청날 것이다."

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니, 무리가 그의 가르침에 놀랐다.

29 예수께서 그들의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 있게 가르치셨기 때문이다(표준새번역 마 7:24-29).

 

서론:

미국의 19세기 대중적 시인 롱펠로(Henry Wadsworth Longfellow, 1807-1882)는 이런 명언을 남겼습니다.


“인생은 시간의 울타리 안에서 집을 짓는 건축자이다.”

간단히 설명하면, 인생이란 주어진 시간 안에서 자기를 건축하는 건축자라는 말입니다. 롱펠로의 이 말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말씀을 달리 표현한 말입니다.

 

본론:

1. 인생은 미완성으로 태어난다.

 

모든 동물들은 태어날 때 거의 완성되어 태어납니다. 태어나자마자 일어서서 걷고, 주어진 본능대로 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인생은 미완성으로 태어납니다. 태어나는 그 순간만 놓고 평가한다면, 인간이 가장 열등한 동물로 태어납니다. 주어진 본능도 다른 동물에 비하여 미미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만물의 영장인 것은 하나님을 닮은 영혼을 가지고 있으며,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교육과 스스로의 부단한 결단에 의해서 완성되어 가는 존재입니다.

 

이 시간에는 <인생의 건축>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태어날 때>

세상에 출생할 때 모든 인간은, 하아얀 백짓장처럼 텅 빈 상태로 태어납니다. 말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는, 앞서 말한 대로 동물 중에서 가장 열등한 상태로 태어납니다.


컴퓨터를 예로 든다면 아무런 파일이 없이, 사용 가능한 명령어 폴더만 있는 상태입니다. 이 백짓장에, 이 텅 빈 폴더 안에 하나하나 그림을 그려 넣고, 각종 자료를 입력하여 좋은 컴퓨터를 만드는 것은 교육이며 스스로의 결단에 의한 취사선택입니다. 그리하여 인간이 독립적으로 인간 구실을 하는데는 20여년이란 오랜 세월이 걸립니다.


가정교육-학교교육-사회교육 등 오랜 기간 동안 교육을 받아야 하고, 

그 기간 동안 스스로의 결단에 의해 자기를 완성해 가는 게 인생입니다.


예수님은 이 과정을 집을 짓는 건축에 비유하셨습니다. 기초를 모래에다 놓고 지은 집은 아무리 호화스럽게 지어도 비가 오고 바람이 불 때 무너져 버리지만, 기초를 반석 위에다 놓고 공을 드려 잘 지은 집은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넘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지은 집도 심판 날에 없어지는 집과 영원히 남는 집이 있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주의 말씀 듣고서 준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터 닦고 집을 지음 같아.

비가 오고 물 나며 바람 부딪칠 때

반석 위에 세운 집 넘어지지 않네.

<후렴>

질 짓고 잘 짓세. 우리 집 잘 짓세.

만세반석 위에다 우리 집 잘 짓세.

 

주의 말씀 듣고도 행치 않는 자는

모래 위에 터 닦고 집을 지음 같아.

비가 오고 물 나며 바람 부딪칠 때

모래 위에 세운 집 크게 무너지네.

 

<가정교육>

인생의 첫번째 건축은 가정에서 이루어집니다. 백지 상태의 인간이 가정이란 공동체 안에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말과 예절과 선-악을 배웁니다. 흔히들 양심대로 산다고 하지만, 양심은 환경과 교육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마다, 민족마다, 종족마다 다릅니다. 그 가정에서 어떤 가치관에 의해 어떤 교육을 받고 자랐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선-악을 판단하는 양심이 생성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① 엄격한 도덕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와, 

사창굴에서 막 자란 아이의 양심이 같을 수 없습니다.

② 이슬람 세계에서 자란 아이의 양심과 

기독교 세계에서 자란 아이의 양심과 

식인종 사회에서 자란 아이의 양심이 같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곳곳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렇게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개역한글판 신 6:4-9).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피공로로 새 이스라엘이 된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가정에서 철저한 신앙교육을 통하여, 자손 만대에 하나님 신앙을 계승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내가 먼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주께서 내게 명하신 말씀을, 내 마음에 새기고...

실천을 하여 자식들에게 본을 보이며, 

부지런히 주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학교교육>

가정에서 유아기(乳児期)를 보낸 아이들은 공교육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학교교육이 잘못되었음은 뜻 있는 사람이라면 다 통탄하는 바입니다. 

사회가 산업화되면서, 물질주의 일변도로 나가기 때문에 배금사상으로 가득 찼고, 

따라서 학교교육은 기업에 취직하기 위한 예비교육 같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전인교육’이니, ‘열린교육’이니 하는 말들을 하며 

인격교육을 하자고 아우성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학교는 하나님이 주신 복음,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기 위해 세워진 학교로서 

전인교육-인격교육-신앙교육을 해왔으며, 앞으로도 더욱 그럴 것입니다.

 


<사회교육>

학교교육이 끝나면 사회인이 되어 사회로 나갑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회가 어떤 사회입니까? 

무한 경쟁사회요, 물질만능 사회요, 향락위주의 사회가 아닙니까.

일찍이 사도 요한은 요한 I서 2:16-17에서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개역한글판 요1 2:16-17).

 


타락한 인간들은 첫째 육신의 정욕을 위해 삽니다. 갑자기 많은 돈을 벌면 먼저 하는 짓이 무엇입니까. 정욕을 채우는 것입니다. 정욕이란 흔히 Sex만으로 오해하고 있지만, 국어 사전의 뜻풀이를 보면 이러합니다.

 

정욕(情欲) ①마음속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욕구(欲求). 

인간의 대표적인 욕구는 세 가지입니다.

① 식욕(食慾)

② 성욕(性慾)

③ 자기 과시욕(誇示慾)

 

그래서 돈을 벌었다 하면, 식욕을 채우기 위해서 차를 몰고 헤매 다니고,

성욕을 채우기 위해서 온갖 추태를 부리기는 동서고금, 상하유무식이 다를 바 없습니다.

 

다음에는 자기과시를 위해 얼마나 많은 돈들을 씁니까? 큰집을 자랑하고, 큰 차, 비싼 차를 자랑하고, 한끼 먹는데 수십 만원을 펑펑 쓰며, 자기가 잘났다고 자기과시를 합니다.

 

안목의 정욕은 눈을 즐겁게 하려는 욕구입니다. TV프로를 보면 온통 안목의 정욕을 채워주려고, 벗기기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인물만 훤하면 떼돈을 버는 세상입니다. 안목의 정욕 때문입니다. TV에서 큰돈이 생긴 사람에게 무얼 하겠느냐 질문하면 관광을 간다, 세계 일주를 한다, 이게 흔히 듣는 대답이 아닙니까? 안목의 정욕을 채우려는 것입니다.

 

사회가 이러하니 학교를 갓 졸업한 햇병아리들이 사회에 처음 발을 디디면, 우선 술집으로 끌고 가서 신고식이랍시고 폭탄주를 퍼 먹여, 신고식 하다가 죽는 사례도 생기지 않았습니까.

사회 초년병이 회사에서 곧이곧대로 일을 처리하면 노회(老獪)한 상사는 핀잔을 주고, 편법과, 뒷거래와, 온갖 부정한 방법을 가르치는 세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선을 행하면 바보가 되어 출세에 지장을 받고, 참말을 하면 미움을 받아 왕따를 당합니다. 의를 위해 싸우다가는 희생을 당하고 맙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위로를 받으십시오.

 

11 너희가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으면, 너희에게 복이 있다. 

너희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하늘에서 받을 너희의 상이 크기 때문이다. 

너희보다 먼저 온 예언자들도 이와 같이 박해를 받았다."(마 5:11-12).

 

이 나라를 이끌어간다는 소위 지도자란 사람들이 모인 정치판은 어떻습니까. 이전투구(泥田闘狗), ‘진흙 밭의 개싸움’이란 말이 부족하여, 이전투광견(泥田闘狂犬), ‘진흙 밭에서 미친개들이 싸우는 것’ 같지 않습니까. 누가 말리겠습니까? 아무도 못 말립니다.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만이 처리하실 수 있습니다.

 

2. 지혜로운 건축자

 

바울은 고린도 전서 3:10-17 이하에서 본문에서 주님이 하신 말씀을 부연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함께 교독해 봅시다. 275 쪽입니다.

 

10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를 따라,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놓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이가 그 위에다가 집을 짓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집을 지을지 각각 신중히 생각해야 합니다.


11 아무도 이미 닦아 놓은 터 

곧 예수 그리스도 밖에 또 

다른 터를 놓을 수 없습니다.

 

12 누가 이 터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집을 지으면,


13 각 사람의 업적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 날이 그것을 밝히 보여 줄 것입니다. 

그 날은 불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불이 각 사람의 업적이 

어떤 것인가를 검증하여 줄 것입니다.

 

14 어떤 사람이 지은 작품이 그대로 남으면, 그는 삯을 받을 것이요,

15 어떤 사람의 작품이 타 버리면, 그는 손해를 볼 것입니다. 

그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지만, 

마치 불 속을 거쳐서 살아나오 듯 할 것입니다.

 

16 여러분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성전이요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가운데 계시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멸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건축의 기초, 터전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를 따라, 

지혜로운 건축가와 같이 터를 닦아 놓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이가 그 위에다가 집을 짓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집을 지을지 각각 신중히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추구할 인격의 기초는 이 세상의 가치관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두어야 합니다. 

이 세상 기준이 아니라, 

예수님의 기준으로 우리 스스로를 살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내 말을 듣고 그대로 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다 자기 집을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고 할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 

이 사람이 지혜로운 건축자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파스칼의 말대로 ‘생각하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내 가정의 환경이 나에게 영향을 주지만, 

그것을 받고 안 받고는 내 스스로의 결단에 있습니다.


노름꾼의 자식이 크게 깨닫고 화투장을 손에 안대는 것을 나는 친히 보았습니다.

가정이 아이에게 영향을 주지만, 아이 스스로의 판단이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은 ‘내 말을 듣고’라고 말씀했습니다. 

가정의 부모나 형제의 말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면, 반석 위에 집을 지을 수 있어, 

심판 날에 구원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또 학교교육만 나무랄 게 아닙니다. 

잘못 가르치면 역(逆)으로, 반대로 깨달으면 되는 것입니다. 

공산 사회에서 아무리 공산주의를 가르쳐도 

민주주의 신봉자는 나오게 마련입니다. 


물론 이런 선각자의 수는 아주 적습니다.

따라서 내가 태어난 환경, 받은 교육만 나무랄 게 아니라, 

인생의 건축에 어떤 좋은 자재를 써서 지을 것인가를, 

나 스스로가 순간순간 결단하고 취사 선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건축자재를 무엇을 쓰느냐에 따라 좋은 집이 되기도 하고, 

허술한 집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돼지 3형제(영국 동화)>


 

세 명의 아기 돼지들을 키우는 나이 많은 엄마 돼지 한 마리가 계셨어요. 

그녀는 세 아이를 키울 만큼 재산이 넉넉지 못했어요. 

그래서 아가들을 밖으로 보내 제 살 길을 찾게 했죠.

 

밖으로 나간 첫째 아기 돼지는 짚 한 다발을 이고 계신 농부를 만나자 이렇게 말했어요. 

“아저씨, 부디 그 짚을 제게 주셔서 제가 집을 지울 수 있게 해주세요.” 

농부 아저씨가 준 짚으로, 아기돼지는 집을 한 채 지었답니다.

 

이윽고 늑대 한 마리가 오더니 문을 똑똑 하고 노트하며 말했어요. 

“아기 돼지야, 아기 돼지야, 나를 들여보내주렴.” 

이 말 같지도 않은 말에 첫 번째 아기 돼지가 대답했어요. 

“안 돼요, 안 돼. 내 터(←겁이 나서 ‘턱’을 잘못 발음한 거) 턱 턱 수염을 걸고 안 돼요.”

 

그러자 늑대가 이렇게 말했어요. 

“그렇담 내가 휴~하고 세차게 바람을 불어 네 집을 날려 보낼 테다.” 

그래서 늑대는 힘껏 숨을 들어 마신 다음 휴~하고 세차게 바람을 불어 

집을 날려 보낸 후 아기 돼지를 잡아먹어버렸어요.


 

두 번째 아기 돼지는 한 보따리의 ‘가시금작화’(줄기에 가시가 많은 녹색 식물. 가시나무와 비슷. 가시금작화=울렉스 링크 ▶ http://goo.gl/1MtRd1 )를 짊어진 농부를 만나자 이렇게 말했어요. 

“부디, 농부 아저씨, 제게 그 가시금작화(가시나무)를 주셔서 제가 집을 지을 수 있게 해주세요.” 

그래서 농부 아저씨는 아기 돼지에게 가시금작화를 주었고요, 그걸로 아기 돼지는 자신의 집을 지었답니다.

 

그러자 곧 늑대가 나타나더니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아기 돼지야, 아기 돼지야, 나를 들여보내주렴.” 

“안 돼요, 안 돼, 제 터 턱 턱(←겁이 나서 턱을 여러번 발음한 것임)에 난 수염을 걸고 맹세하건데 절대 안 돼요.”

 

“그렇담 내가 휴~하고 세차게 바람을 불어 네 집을 날려 보낼 테다.”

 

그렇게 늑대는 힘껏 숨을 들어 마신 다음 휴~ 휴~ 하고 세차게 두 번 바람을 불어 마침내 집을 쓰러뜨린다음 아기 돼지를 잡아먹어버렸어요.


 

세 번째 아기 돼지는 한 무더기의 벽돌들을 옮기고 있는 일꾼 아저씨를 만났을 때 이렇게 말했어요. 

“부디, 일꾼 아저씨, 제게 그 벽돌들을 주셔서 제가 집을 지을 수 있게 해주세요.” 

그래서 일꾼 아저씨는 자신의 벽돌들을 아가 돼지에게 주었답니다. 

아기 돼지는 그 벽돌들로 자신의 집을 지었어요.

 

그러자 늑대가 도착해, 다른 아기 돼지들에게 했듯 이렇게 말했어요. 

“아기 돼지야, 아기 돼지야, 나를 들여보내주려무나.” 

“아뇨, 안 돼요, 제 터 턱 턱(←겁을 먹어 떨려서 ‘턱’이라는 말을 여러 번 발음하는 것임)에 난 수염을 걸고 안 돼요.” 

“그렇담 내가 휴~하고 세차게 바람을 불어 네 집을 날려 보낼 테다.”

 

그런데, 늑대가 힘껏 숨을 들어 마신 다음 휴~하고 불어도, 또 휴~하고 불고, 또 휴~하고 불고 훅~ 훅~하고 불고 또 불어도, 도무지 그 집을 날려버릴 수가 없었던 거예요. 

도저히 숨이나 입김으로는 그 집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늑대가 이렇게 말했어요.

 

“아기 돼지야, 나는 맛있는 무(먹는 무. 원문→순무) 밭을 알고 있단다.” 

“그게 어딘데요?”라며 아기 돼지가 말했어요. 

“오, 김 씨네(원문→스미스. =대장장이) 안마당이란다, 네가 내일 아침 가겠다면 내가 널 바래다줄게. 같이 가서 근사한 식사를 하자꾸나.”

 

“아주 좋아요,”라며 아기 돼지가 말했어요. “준비할게요. 몇 시에 가실 건가요?” 

“오, 6시가 좋겠구나.”

 

그런데, 아기 돼지는 아침 5시에 일어나 무(원문→순무)를 캐왔답니다. 

그건 늑대가 오기 전이였어요. 

늑대는 6시에 왔거든요.

 

늑대가 말했어요. 

“아기 돼지야, 준비 됐니?” 

아기 돼지가 말했어요. 

“준비요! 벌써 거길 다녀온 걸요, 냄비 한 가득 근사한 ‘무’(먹는 무)로 식사도 마쳤답니다.”

 

이 말에 늑대가 아주 화가 치밀었어요.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아기 돼지를 잡아먹을 생각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했답니다. 

“아기 돼지야, 맛있는 사과나무가 있는 곳을 내가 알고 있는데.” 

“거기가 어딘데요?”라며 아기 돼지가 말했어요.

 

“과수원 아래쪽에 있지.”라며 늑대가 대답했어요.

 “네가 나를 속이지만 않는다면 내일 내가 거기까지 데려다주게, 내일 아침 다섯 시에 같이 가서 사과를 먹자구나.”

 

그렇지만, 아기 돼지는 다음날 아침 4시에 부지런히 일어나 사과를 따러 갔답니다. 

늑대가 오기 전에 집으로 돌아올 작정이었거든요. 

그런데 길이 좀 멀더라고요 그리고 사과나무를 타고 올라가야 해고요, 

그 바람에 막상 사과를 따고 내려오려는데 저기서 늑대가 오고 있는 게 보이지 않겠어요.

 

그건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사태였어요. 

늑대가 다가오더니 아기 돼지(사과나무 위에 있음)에게 말했어요. 

“아기 돼지, 어! 나보다 먼저 왔네? 그래 사과는 익었니?” 

“네, 잘 익었어요.”라며 아기 돼지가 말했어요. 

“제가 하나 아래로 던져드릴게요.”

 

아기 돼지는 저 멀찍이 사과를 던졌답니다. 

늑대가 가서 주어오는 동안, 아기 돼지는 

사과나무에서 풀쩍 뛰어내려 집으로 뛰었어요.

 

다음날 늑대가 다시 나타나 아기 돼지에게 말했어요. 

“아기 돼지야, 오늘 오후에 ‘읍내’(원문→샨크린. 마을이름 같음)에서 시장이 열리는 데 너도 갈거니?”

 

“아 네,”라며 아기 돼지가 말했어요.

 “저도 갈 거예요. 아저씨는 몇 시에 가실 건데요?”

 

“3시(오늘 오후 3시)에,”라고 늑대가 말했다.

 

그래서 아기 돼지는 평상시와 같이 늑대보다 더 일찍 집을 나서 

읍내 시장에 도착한 다음 ‘버터를 만드는 큰 양철통’을 샀다. 

아기 돼지가 그걸 집에 가져가려는데 아뿔싸 

저기서 늑대가 오고 있는 게 보이는 게 아닌가.

 

아기 돼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앞이 깜깜했다. 

그래서 일단 ‘버터를 만드는 큰 양철통’ 속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는데, 그 바람에 양철통이 자체적으로 구르기 시작해, 아기 돼지를 그 속에 가둔 채 언덕 아래로 데굴데굴 굴러 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늑대를 아주 기겁하게 만들었고, 늑대는 시장에 가지 않고 곧장 집으로 도망갔다.

 

얼마 후 늑대가 아기 돼지의 집에 와, 언덕 아래로 굴러 내려오는 엄청 큰 원통형을 보았다며 그것이 자신을 아슬아슬하게 비껴 지나가는 바람에 기겁을 했다는 말을 했다.

 

그러자 아기 돼지가 이렇게 말했다.

 

“하, 내가 당신을 놀라게 했군요. 때마침 시장에 갔다가 ‘버터를 만드는 큰 양철통’을 샀는데 당신이 오지 뭐에요. 그래서 그 안에 들어가 언덕 아래로 굴러 내려갔던 거예요.”

 

그러자 늑대는 아주 길길이 화가 나서는 “반드시 아기 돼지 너를 잡아먹고 말겠다!”라고 큰 소리로 말한 다음, 아기 돼지를 잡기 위해 굴뚝을 타고 내려오기 시작했어요.

 

아기 돼지는, 늑대가 무슨 생각인지 확인하자마자, 곧장 굴뚝 아래에 물을 한 가득 채운 솥(=큰 냄비)을 걸고는 불을 붙여 맹렬히 태웠어요.

 

늑대가 내려오자, 아기 돼지는 솥의 뚜껑을 벗겼고, 늑대는 풍덩하고 빠지고 말았어요.

 

그러자 아기 돼지는 즉시 솥의 뚜껑을 다시 닫았고, 늑대를 팔팔 끓인 다음, 저녁식사로 맛있게 먹었답니다.

 

아기 돼지는 그 후로 계속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끝-

 

 

 

<건축가의 통곡>

 

어느 건축회사에서 평생을 건축가로 일하다가 은퇴를 하게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사장이 그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회사에 와서 평생동안 많은 집을 짓느라 수고가 많았습니다. 

이제 은퇴하는 마당에 나를 위해서 아주 좋은 저택을 한 채 지어주시오. 

예산과 설계와 규모 모두 맘대로 하시오. 

내가 살 저택이라 생각하고 최고로 지어주시오.”



그 사람은 기분이 상했습니다.

(아니, 은퇴하는 사람더러 또 집을 지으라고?)

기분이 상한 그는 겉만 번드르르하게 집을 지어놓았습니다.

은퇴식 날, 사장은 그 사람의 공로를 치하하고는, 

그에게 새집 열쇠를 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집은 당신의 집입니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정성을 드려 최고로 잘 지은 이 집에서 

여생을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그 건축자는 통곡을 하였습니다.

 

3. 어떤 집을 지을까?

 

우리의 인생 건축은 나의 인격을 건축하는 것입니다. 최고의 자료로 최선의 방법으로 건축을 해야 합니다. 이 건축물은 하나님의 평가를 받게 되는데 불로 평가를 받는다 했습니다. 바울은 그 날이 온다며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2 누가 이 터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집을 지으면, 

각 사람의 업적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 날이 그것을 밝히 보여 줄 것입니다. 

그 날은 불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불이 각 사람의 업적이 어떤 것인가를 검증하여 줄 것입니다.

 

4. 잘못 지은 건 고쳐야

 

자기 인생의 건축을 잘못 한 사람은 고쳐야 합니다. 

가정 환경 때문에, 철이 덜 들어서, 사회의 영향 등등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에, 내 인생의 건축이 맘에 안 들 때가 있습니다.


(나라는 인간은 왜 이럴까?)

하고 회의가 들 때는 없습니까? 그 때가 바로 재건축을 해야 할 때입니다. 

이런 재건축을 성경은 <회개>란 말로 표현합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많은 재산을 가지고 아버지를 떠나 

온갖 향락에 다 탕진하고, 돼지 목장에서 

꿀꿀이죽을 핥으며 아버지를 생각한 것, 


이것을 덴마크의 실존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현실적인 자아가 본질적인 자아를 발견하는 순간이라고 말하며,

탕자가 부끄럼을 무릅쓰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회개>라고 말합니다.


내 지나온 나날들이 후회스럽지는 않습니까? 

현실적인 자아가 본질적인 자아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되돌아서야 합니다. 회개하고 아버지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Builder>

① 집이 너무 맘에 안 들어 집수리를 시작

② 해도해도 끝이 없어 낙담하고 있는데

③ 나사렛 목수가 와 보더니

④ ‘다 헐고 신축을 해야겠군!’

⑤ 다 짓고 나서 ‘이제부터 이 집 주인은 나다!’

 

그렇습니다. 내 집을 내가 다시 짓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주님이 도와주셔야만 하는데, 

완성이 되면 그 집의 주인은 

예수님이시고, 나는 그의 종이 되어서 

주님을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내 몸에 주님이 계시니 

내 몸은 주의 전입니다. 

바울은 결론으로 말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성전이요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가운데 계시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멸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고전 3:16-17).

 

<208장/개편 찬송가 가사로)

 

1.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변하여 새사람 되고

내가 늘 바라던 참 빛을 찾았네. 주 내 맘에 오신 후에.

<후렴>

주 내 맘에 오신 후에, 주 내 맘에 오신 후에

물밀듯 내 맘에 기쁨이 넘치네. 주 내 맘에 오신 후에.

 

2.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망령된 행실을 끊고

머리털보다도 더 많던 내 죄가 눈보다 더 희어졌네.

 

내 몸과 마음은 주님이 계시는 성전입니다. 깨끗하고 거룩하게 보전합시다.

 

결론:

새해에는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좋은 재료만을 써서 우리 인생의 집을 지읍시다.

 

① 생각도 좋은 생각만 하고,

② 말도 좋은 말만하고,

③ 노래도 좋은 노래만 부르고,

④ 가는 곳도 좋은 곳에만 가고,

⑤ 행실도 착한 행실만 하고,

⑥ 얼굴 표정도 기쁨과 웃음이 넘치게 삽시다.

 

이 모든 것이 우리 인생의 집은 짓는 자료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짓는 인생의 집이 하나님께 칭찬 받고 상 받는 집이 되도록, 슬기로운 건축자가 됩시다.

마지막으로 내가 쓴 <하나님이 주신 그림책>이란 동화를 소개하고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동화] 하나님이 주신 그림책

 

재작년 성탄절 날이었어요. 

세리는 싼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가지고 오시기를 

기다리느라 졸린 눈을 비비고 있는데, 

갑자기 천사님이 나타나셨어요.


"세리야, 하나님이 주시는 새해 선물이다."

싼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기다리는데, 

난데없이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니, 

세리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하고 선물을 풀어 보았어요. 

예쁜 노트였는데, 그림은 하나도 없고 

페이지만 적혀 있었어요. 365 페이지였어요.


세리가 실망하는 표정을 보이자. 

천사님이 웃으며 말했어요.

"이 365 페이지의 그림책에는 

네가 그림을 그려야 한단다. 

그림 그리기는 아주 쉽지. 


착한 일을 하면 아주 예쁜 그림이 그려진단다. 

네가 365일 동안 착한 일을 하면, 

이 그림책에 아주 아름다움 그림이 그려지고, 

그러면 내년에 내가 새 그림책을 가지고 와서 네게 주고, 

네가 그린 그림은 하나님께 갖다 드릴 거란다. 

어때? 너 그림 그리기 자신 있지?"


세리는 그림 그리기보다는 노래하는 게 자신 있었지만, 

착한 일을 하면 예쁜 그림이 그려진다니까 자신 있게 대답했어요.

"예, 자신 있어요. 매일 매일 착한 일만을 할 게요."

 

새해 첫날부터 세리는 착한 일만을 하였어요. 

착한 일을 하니까 기분도 좋았고, 

칭찬도 받아서 아주 좋았어요.

 

새 학기가 되자 세리는 초등학교에 들어갔어요. 

숙제도 많고, 새로 만난 친구 사귀기도 힘들고 하여 

착한 일 하는 것을 잊고 살다 보니, 

어느덧 12월 25일이 되었어요.


천사님이 오셨을 때에 세리는 아차! 했어요. 

착한 일보다는 나쁜 일을 더 많이 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지요.

 

"어디 보자. 우리 세리가 지난 한 해 동안 얼마나 착한 일을 했을까?"

천사님은 그림책을 넘기시면서 미소를 지으셨어요. 

세리가 흘낏 보았더니 거기에는 아주 

아름다음 그림들이 있었어요. 세리는 기분이 좋았어요.


(저런 그림이라면 하나님도 기뻐하시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어요.

 

그런데 몇 장을 넘기던 천사님의 얼굴에 주름이 졌어요. 

세리가 다시 흘낏 보았더니 이게 웬 일이지요? 

거기에는 아주 더러운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이에요.


"이게 웬 일이냐? 이런 그림을 어떻게 하나님께 갖다 드리느냐? 

안 되겠다. 가지고 온 새 그림책은 도로 가지고 가야겠다. 

너는 그림을 그릴 자격이 없어."

 

세리는 너무 놀라 천사님에게 매달렸어요.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새 그림책에는 예쁜 그림으로 가득 채우겠어요."


그러자 천사님은

"그래, 한 번 뿐이다. 

이 그림책에도 더러운 그림을 그리면 

다시는 새 그림책을 하나님이 안 주신다."

그러고는 새 그림책을 주시고, 

헌 그림책을 가지고 가시는 것이었어요.

 

"그건 가지고 가지 마세요. 

너무 부끄러워서 하나님께 드릴 수가 없어요."

세리가 말했지만, 천사님은

"아니다. 네가 그린 그림은 하나님이 다 보셔야 한다."

그리고 하늘로 올라가셨어요.

 

올해 하루하루를, 여러분은 무슨 그림을 그리며 사시렵니까?

여러분이 짓는 인생의 집이 반석 위에 지은 아름다운 집이 되기를 빕니다.

여러분이 매일매일 그리는 행실의 그림이, 아름다운 그림이 되어서 365일 내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게 되기를 빕니다.

 

우리 찬송가 379장을 뜻을 생각하며 힘차게 부르십시다.

[1절]

주의 말씀 듣고서 준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터 닦고 집을 지음 같아

비가 오고 물 나며 바람 부딪칠 때

넘어지지 않은은 반석 위 셈일세

[후렴

잘 짓고 잘 짓세 우리 집 질 짓세

만세 반석 위에다 우리 집 질 짓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