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꽁이의 찬양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해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七十生男非吾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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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3. 28.

   


七十生男非吾子

 


옛날 어떤 영감이 어미 없이 딸만 키우다가 늦게야 후실을 얻어서 아들을 낳았다. 꼭 칠십에 아들을 낳았으니 말할 수 없이 사랑스러웠다. 연로해서 기력이 쇠약해지자 어린 아들이 걱정이 되었다. 평소 딸과 사위의 행실로 보아 아들을 잘 돌볼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궁리 끝에 사위를 불러 일렀다.

 

“내 나이 칠십에 후처 몸에서 아들을 낳았다고는 하지만 그 아이가 내 아들이라고 믿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너는 내 사위가 틀림없지 않으냐? 내게 돈푼이나 있는데 이것을 위탁할 아들이 없으니 너한테 맡기겠다. 그러니 이것을 잘 관리해서 편안히 살거라. 만일 저 자식이 죽지 않고 자라 열댓 살이 되거든 글이나 가르쳐 줘라.”

 

“예, 장인어른.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네게 아무 증거 없이 이 재산을 줄 수는 없으니 너한테 문서를 남겨 주마.”

 

“그럼, 그렇게 하시지요.”

 

장인은 죽기 전에 사위에게 유서를 써주었다.

 

七十生男非吾子 家藏之物付之婿君 外人勿論

 

칠십에 아들을 낳았으니 내 아들이 아니다. 재산을 사위에게 맡기나니 다른 사람은 왈가왈부하지 마라.

 

사위는 이 유서를 보고 좋아했다.

 

이 글을 사위는 내 자식이 아닐지도 모르니 아들이 아닌 사위에게 전 재산을 맡긴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어쨌든 영감은 그렇게 써주고 나서 다시 단단히 일렀다.

 

“이만하면 표가 되지 않겠나?”

 

“좋습니다.”

 

“다시 부탁하는데, 그 아이가 열댓 살 먹거들랑 글공부라도 시켜 제 밥벌이를 하도록 해주게나.”

 

이렇게 말하고 그 노인은 얼마 안 가서 죽고 말았다. 노인이 죽자 그 아이는 자형에게 얹혀 살며 공부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아이의 총기가 대단해서 한번 본 것은 다 기억하며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았다. 그래서 몇 해 안 가서 공부가 거의 끝나 가는데, 같이 공부하는 학생들 여럿이 모여 앉아 “쟤는 아무개의 친 처남이 아니라고 그르던데?”라고 수군거리는 것이었다. 이 아이가 그 말을 한두 번 들었을 때는 무시했으나, 여러 번 듣자 의심이 생겼다. 그래서 자형에게 물었다.

 

“자형, 서당 아이들이 대관절 왜 나를 자형의 친 처남이 아니라고들 하는 겁니까?”

 

“그런 쓸데없는 말에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착실히 해라.”

 

“아버지 유산을 나한테는 한푼도 안 주고 자형 혼자 물려받은 것을 보면 분명히 뭔가 있어요. 아버지의 재물을 나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증명이 될 것이 아닙니까?”

 

“네가 달라고 해도 줄 처지가 못된다. 이 다음에 장가도 보내 주고 보살펴 줄 것이니 공부나 열심히 하거라. 지금은 네가 달라고 해도 내가 내줄 수 없는 사정이 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내가 관가에 가서 송사를 해도 좋다는 말입니까?”

 

“네가 송사를 할 테면 해봐라.”

 

이렇게 말하고는 나가 버렸다.

 

그러니까 이 아이는 정말로 관가에 가서 고소해 버렸다.

 

“아무데 살던 아무 노인이 내 선친인데 일찍이 연세가 높으셔서 세상을 버리고, 칠십에 얻은 저는 의탁할 데가 없어서 자형 집에 있는 처지입니다. 아버지 재산을 자형이 다 가지고 있으니 재산을 찾아 주십시오. 평소 저를 사랑하시던 아버지의 태도로 보아 제게도 재산을 남겼을 것입니다. 원님께서 부디 찾아 주십시오.”

 

원님이 물었다.

 

“그러면 그 문서를 가져와 봐라.”

 

원님은 그 문서를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아, 이놈아. ‘七十에 生男하니 非吾子라. 家藏之物을 付之婿君하노니 外人은 勿論하라’ (칠십에 아들을 낳았으니 내 아들이 아니다. 재산을 사위에게 맡기나니 다른 사람은 왈가왈부하지 마라.) 이렇게 쓰여 있지 않느냐? 그러니 네 자형의 재산이 분명하다.”

 

“원님, 그게 아니올시다. 그렇게 읽으시면 안 됩니다. ‘七十에 生男한들 非吾子리오. 家藏之物을 付之하니 婿君은 外人이니 勿論하라’(칠십에 아들을 낳았으나 어찌 내 자식이 아니리요. 재산을 그 아들에게 맡기나니, 사위는 타인이니 상관하지 마라.) 이렇게 읽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원님이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참, 듣고 보니 네 말이 옳다. 글자는 그대로 두고 해석할 때 끊고 붙이기를 새로 하고 토도 다르게 다니 전혀 다른 뜻이 되는구나."

 

그래서 원님이 다시 판결을 내렸다.

 

“글을 다시 해석해 보아도 그렇고, 네 아버지가 평소에 너를 무척 아꼈으니 네 이야기가 맞구나. 그만하면 네 아버지 재산을 지킬 만큼 공부도 무르익었으니 그 재산을 가지도록 해라.”

 

이래서 그 아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되찾고 명예도 찾고 목숨도 부지하였다고 한다.

 

한일합방을 반대한 대신들 가운데 한 사람이 한 규설이다. 이 사람은 한일합방이 맺어진 후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不可不可”

 

한 규설을 옹호하는 사람과 그 집안에서는 이렇게 해석한다.

 

“不可하고 또 不可하다.”(절대로 불가능하다)

 

철저하게 반대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不可不 可하다.”(어쩔 수 없이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한일합방을 대세에 밀려 허락했다는 뜻이 되고 만다.

 

글 한자에 역적이 되고 충신이 되고 하는 것이다.

 




[ 칠십생남 비오자리오 ]

***추포 : 류 희 걸***

 

 남매의 송사(訟事) 

<역옹패설>

 

 고려 때 손변(孫 )이 경상도 안렴사(지방장관)으로 있을 때 일이다. 어떤 남매가 관가에 와서 재판을 청하였다. 남동생이 말하기를 딸 하나와 아들 하나가 다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났는데 어찌해서 누나만 혼자 부모의 재산을 얻고, 아들에게는 나눔이 없습니까? 라고 하였다.

 

누나는 말하기를 아버지가 유언으로 집 재산을 모두 나에게 물려주시고 동생 몫으로는 옷 한 벌, 갓 하나, 신 한 켤레, 종이 한 권뿐입니다. 아버지가 쓰신 증서가 모두 여기 있는데 어찌 어길 수 있겠습니까? 라고 하여 송사는 여러 해가 되어도 미결로 남아 있었다.

 

공이 두사람을 불어놓고 묻기를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어머니가 살아 계셨느냐?

 

남매는 아버지보다 먼저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너희들은 나이가 각 각 몇 살이었느냐?

 

누나는 출가하였고 아우는 어릴 때 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공은 그들에게 타이르기를

 

부모의 마음은 아들이나 딸에게 똑같은 것이다. 부모의 마음이 어찌 장성하여 시집간 딸에게는 후하고 어미도 없고 나이 어린 아들에게는 박하겠느냐? 돌아보건대 아들을 맡길 곳은 누나뿐인데 만약 누나와 똑같이 재물을 준다면 혹 사랑이 지극하지 못할까, 양육하는 것이 혹시 온전하지 못할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아들이 장성하면 그 종이에 글을 쓰고 의관을 갖추어 입고 관에 고하면 장차 이일을 판별(判別)하여 줄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오직 네 가지 물건만 어린 아들에게 내린 것이다.

 

남매는 깊이 깨달아 감동하여 서로를 붙들고 울었다. 공은 드디어 두 오누이에게 재산을 반씩 나누어주었다.

 

※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아버지가 나이가 많아 아들을 얻고 죽으면서 어린 아들을 딸에게 맡기며

 

 

'七十生男非吾子家産傳之女息外人勿侵'(칠십생남비오자가산전지여식외인물침)

 

라는 유서를 남겼다.

 

처음에는 전 재산을 딸에게 주었으므로 '70에 아들 낳으니 아들이 아니다. 가산을 딸에게 전해주노니 외인은 침범하지 말라.'

 

 

[ 七十生男 非吾子 家産傳之女息 外人勿侵 ]

 

라는 의미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들이 장성한 후 관가에 소송을 제기하니 관가에서는 다음과 같이 판결해 주었다.

 

즉 '70에 아들 낳았다고 내 아들이 아니랴, 가산을 전해주노라. 여식은 출가 외인이니 침범하지 말라.'

 

 

[ 七十生男非吾子 家産傳之 女息外人 勿侵 ]

띄어 읽기에 따라서 뜻이 달라진 것이다.

 

아버지는 우선 장성한 딸에게 어린 아들을 의탁시키고 나중에 아들을 위한 배려가 글속에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출처 : ★♪♡ MⓐΝⓘJⓤ ♡♪★ | 글쓴이 : simhae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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