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꽁이의 찬양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해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宇野正美(Unomasami, 우노마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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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4. 10.


宇野正美(Unomasami, 우노마사미)



우노 마사미








이 분은 오사까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고등학교 선생으로 있으면서 그리스도에게로 회심하게 된다. 성령이 은혜를 주셔서 전도사로서 큰 은혜가 나타나 오사까에 복음교회를 세웠다. 예수 믿기 힘들어하는 일본 젊은이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내가 방문했을 때 300여명의 형제자매들이 모이는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는 귀한 사역자로 존경받을 만한 분이었다. 그러다가 1967년 이스라엘과 아랍세계와의 6일 전쟁이 일어나면서 이스라엘의 회복과 주님의 오심, 



그리고 세상종말 신앙이 세계적으로 퍼지면서(擴散) 이 분이 종말사상에 깊이 빠지게 된다.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하는 중동의 긴박한 시사환경의 변화는 우리 모두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 우노는 일본에서 이 방면에는 아주 전문가가 되다. 그는 이스라엘에 가서 베긴 수상을 여러 차례 만나 수상 직에서 사임하지 말 것을 권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당신이 사임하면 중동에 거짓평화가 이루어져서 불행한 시대가 오게 된다는 논조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주장은 부질없는 것이 되면서 같은 계통 교회에서 왕따를 당하게 된다. 그러나 그 뒤로 그는 유대인과 세계, 유대인과 일본 등 책을 내면서 지금까지 국제정세 전문 강사로 사회활동하고 있다. 


    

81년 제주도 캠프 때 우노는 여러 형제들을 데리고 왔었다. 그는 한국에 오면 귀빈 대접을 받고 있었다. 선동적인 거짓 설교와 일본 사람이라는 친근감 때문이었다. 내가 영국에 가기 전에 그는 미국 국무부 장관이었던 키신저가 666일 것이라고 떠벌리고 있었다. 제주에서 나는 그에게 지금은 누가 666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좀 놀란 듯이 지금은!!? 하고 나에게 되묻더니, 지금은 오스트리아의 수상을 들먹였다. 나는 그때 왜 나는 그의 그릇된 망상을 좀 더 심하게 비판해 주지 못했는지 후회가 되었다. 그때 우리의 어려움은 말이 통하지  않아서 직접 의견을 나누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었고 누가 통역하면 잘 번역해 줄 것 같지 않는 마음과 함께 외국 손님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그저 참고 있을 뿐이었다. 어쨌든 우리는 지금 그런 종말론에 미쳐 있는 우노 형제의 본집에 온 것이다. 



그 때 그는 이스라엘의 베긴 수상이 물러나면 중동에 거짓 평화가 이루어진다는 허황한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어서 베긴 수상을 두 번이나 방문하여 사임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고 그는 말했다. 그 후 그러나 베긴은 물러났고 우노가 우려하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앉게 되자 그의 인기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일본 형제교회로부터 비판이 가해지면서 그는 자숙하게 되었다. 그런데 한국 모임에서 그와 가까웠던 형제들은 한국 모임에서 어떤 충고와 비판이 있었는가? 허긴 그때 그렇게 말할만한 소양을 갖춘 인물이 한국에는 없었다. 나는 우노의 선동적인 말을 그의 모임에서 들으면서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꼈다. 일본 형제자매들 앞에서 그들의 지도자를 내가 비판적인 언사로 토론을 일으킬 수는 없었다. 한심한 일이었다. 



그때 그의 모임은 우노의 사상으로 의식화되어 있어서 아무리 옳은 말을 하더라도 따라줄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심지어 이런 예도 있다, 


“휴거 때 우리 통장에 돈이 남아 있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하는 말을 한국에서 들은 적이 있다. 마치 이단들이 재물을 거두어들일 때 쓰는 말과 같았다. 문덕무 노형은 아들의 일로 네기시 형제와 나가셨고, 우리는 저녁을 식당에서 먹고 아꾸 호텔에서 여장을 풀었다. 모두 편안한 호텔에 들자 모두 좀 심란해지는 것 같았다. 나가서 밤거리를 돌아보았다. 와까야마 교회에서 10,000엔씩 선물을 보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