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꽁이의 찬양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해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한 통의 편지

댓글 0

퍼 옴

2019. 5. 8.


한 통의 편지

한국에 온 최초의 호주선교사 데이비스가 한국으로 오게 된 결정적 동기는 한 통의 편지였다.


120년 전인 1889년 10월 2일, 호주의 한 선교사가 한국 땅에 발을 내디뎠다. 그의 이름은 조셉 헨리 데이비스(Joseph Henry Davies. 한국명 덕배시. 1856-1890). 한국에 온 최초의 호주 선교사였다. 그는 한국에 선교사가 필요하다는 편지를 접하고 한국 행을 택했다. 
데이비스 선교사는 한문 성경과 전도지, 판매용 마가복음, 요리문답서 등을 들고 제물포에서 부산으로 선교답사여행을 떠났다. 한국에 온 지 6개월, 목적지인 부산을 코앞에 두고 천연두와 급성폐렴으로 33세 젊은 나이에 순교한다. 그 이후, 그의 순교에 영향을 받아 호주 선교사들이 속속 한국에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경남 부산 일대에 의료선교, 교회개척, 교육사업, 고아원사업 등을 활발하게 펼쳐 나갔다.
한국에 파송된 첫 호주선교사인 데이비드가 한국으로 오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받은 편지 한 통이 발견됐다. 이 편지에 관한 내용을 이상규 교수(고신대)의 기고로 게재 함으로서 데이비스 선교사의 선교 이야기를 듣는다. 사진은 데이비스가 읽었던 월프 선교사의 편지 내용.

이 편지는 중국에서 일하고 있던 영국성공회 소속 월푸(John Wolfe)의 편지였다. 월푸는 1887년 힘들게 부산을 방문하고 선교지인 중국으로 돌아갔고 선교사 없는 부산에 선교사를 보내주도록 여러 곳에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이렇게 되자 월푸목사는 부산 방문기와 한국선교사가 필요하다는 편지를 호주 멜버른의 매카트니목사(H. B. Macartney)에게 보냈다. 이 편지를 받은 메카트니는 이 글을 자신이 발간하는 선교잡지 '국내국외선교'(The Missionary at Home and Abroad)에 게재했다. 당시 호주 멜버른에 머물던 32세의 데이비스는 인도 선교사로 갈 생각이었다. 인도로 돌아가고자 했던 데이비스는 바로 이 편지를 읽고 한국이 인도보다 더 시급한 복음전도지라는 점을 인식하고 인도를 포기하고 한국으로 가기로 결단하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이 한통의 편지가 호주의 젊은 청년 데이비스로 하여금 한국으로 그리고 부산으로 오게 했던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 한통의 편지는 후일 호주의 1백20명의 선교사들이 한국과 부산, 경남지방으로 향하게 만든 동기가 된 것이다.
(임성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