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꽁이의 찬양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해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피득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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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남긴 사람들

2019. 12. 7.



 피득 선교사

[LA중앙일보] 발행 2018/12/07 미주판

 

 

 

 

지난 1일 패서디나 인근 한 공동묘지에서 피득(彼得)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진 외국인을 기리는 기념동판이 제막됐다. 주인공은 19세기 말 조선을 찾았던 러시아 출신 유대인 선교사 알렉산더 피터스(1871~1958). 구약성경 시편 일부를 처음 한글로 번역했고 나중엔 구약성서 전체 번역에도 지대한 공을 세웠던 인물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거의 잊혀 있던 사람이기도 하다. 이번 동판 제막은 지난 해 풀러신학교에 연구교수로 와 있던 연세대 박준서 명예교수가 거의 버려져 있다시피 했던 그의 묘역을 어렵사리 찾아내고 한국 교회에 기념사업을 호소해 이뤄진 첫 결실이었다.

 

기독교가 우리 역사에 끼친 영향은 다방면에서 크고 깊었다.

그 중 정말 의미 있는 일이었지만 잘 부각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한글 대중화에 끼친 역할이다.

 

알다시피 한글, 즉 훈민정음은 1443년 세종대왕이 창제했다. 세계 어느 문자와도 견줄 수 없는 창의적이고 실용적인 글이었지만 또한 그 이유 때문에 조선 내내 제대로 진가를 인정받지 못했다. 국가 공식 문서나 양반 사대부들의 소통 문자는 늘 한자였고, 한글은 언문(諺文)이라는 이름으로 속되게 불리며 상민이나 부녀자들이나 쓰는 글자로 전락해 있었다. 창제 450년이 지난 1894년 갑오개혁 때에야 비로소 한글은 나라 글이라는 뜻의 국문(國文) 호칭을 얻고 한자와 함께 조정의 공식문자로 인정받았다. 그럼에도 식자층에선 여전히 한문을 선호했다.

 

한글이 본격 빛을 보기 시작한 데는 19세기 기독교 선교사들의 역할이 매우 컸다. 조선에 온 선교사들은 양반 사대부가 아닌 백성들의 말과 글에 주목하며 한글부터 배웠다. 우리말 단어를 채록하고 한글 사전과 문법을 처음 만들기 시작한 것도 선교사들이었다. 초기 한글 성경은 선교사들의 그런 노력의 산물이었다.

 

오소운 목사의 붙임:


피득 선교사는 내 고향 용인군남사면 아리실교회의

초기 당회장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