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꽁이의 찬양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해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착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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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연구

2019. 12. 10.

착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

 

*내용이 조금 길지만 재미있게 봐주세요.

 

숭실대에 소장된 ‘연행도’ 일부.

 

조선 시대 상류층들은 청계천을 중심으로 하여 북쪽에 주로 모여 살았고, 그 아래 선비들이 사는 곳을 남촌이라고 불렀어. 그 가운데 청계천 일대는 중촌이라고 불렀는데, 요즘으로 치면 전문직종인 의원과 각종 기술자 및 역참 등이 주로 모여 살았어. 헌데 양반들은 이 당시 실리콘밸리인 중촌에 사는 중인들을 무시하고 차별했는데, 양반들이 허세를 부리며 사는 동안 중인들은 전문 기술을 더욱 연마하며, 무시 못할 재산도 축적을 하며 살고 있었어.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 중촌에 살던 역관 홍순언洪純彦의 이야기야.

 

채널A '천일야사' 中

 

조선 시대 역관은 과거가 있을 때마다 합격자 수를 20명 내외로 제한했어. 주 업무가 외국과의 통역 업무이기 때문에 《논어》, 《맹자》 등의 기본 학문은 물론이요. 중국어, 일본어, 몽골어, 만주어 등의 제2외국어 실력이 네이티브급이 아니면 합격 근처에도 가기 힘들었다고 해. 비록 신분은 낮지만 굉장히 똑똑한 사람들이란 게 유추 가능해. 나랏일을 하다 보면 ―백성 따위는 알 필요가 없는― 특수 활동비(?)가 필요하잖아. 그런데 이 역관들에게는 나라에서 특수 활동비를 그냥 지급하는 게 아니라 무이자로 대출만 해주었다고 해. 이러니 역관들은 외국 출장 시에 인삼을 주로 챙겨나갔어. 외교 업무뿐만 아니라 인삼 팔아서 자기 출장비도 셀프로 현지 조달해야 했기 때문이야. 이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역관들 중에는 비상한 머리와 다양한 해외시장 정보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 자도 많았다고 해. 이렇게 적은 숫자의 인력들이 특수 직에 종사하다 보니 그 들만의 끈끈한 네트워크와 의리가 존재했겠지? 마치 개성상인들이나 보부상들처럼 말이야. 나라에서 특수 활동하라고 빌려 준 돈을 다 날려버리고, 공금 횡령죄로 감옥에 있던 홍순언을 동료 역관들이 보석금을 내주고 마련한 술자리로 같이 가 보자고.

 

SBS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中

 

“순언이 자네, 미친 거 아닌가? 그 많은 돈을 도대체 어디다 쓰고 온 건가? 그리고 뭐? 출처를 밝힐 수 없다고? 자네가 사대부 집 아들이라도 되는 줄 아는가? 우리 같은 중인 역관에게 그런 말이 통할 줄 알았나? 도대체 어디다 쓰고 온 게야? 자네가 평소 호방하다고 소문난 성격인 건 알지만 투전판에다 쏟아붓고 올 사람도 아니고. 우리끼리니 이야기나 해보게.”

 

“우선 다들 고맙네. 내 이 신세는 따블로 갚을 날이 반드시 올 것이네. 그러니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화들 내지 말게나.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지금도 모르겠네. 그래도 후회는 없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조선 시대 외교에 관해 기록된 《통문관지通文館志》 중 홍순언 에피소드 편에 실린 이야기야. 조선 건국 후 200년 동안 해결하지 못한 ‘종계변무’라는 특수 임무를 맡고, 명나라에 간 홍순언은 역시나 일이 잘 안 풀린 어느 날 연경에 있는 잘나가는 기생집을 찾게 되었어. 이런 데 사용하자고 익힌 제2외국어가 아니었건만 역관들도 외국에서 저녁이 있는 삶을 찾아갔다고 눈감아주자고.

 

이미지 출처 http://blog.naver.com/jungyoupkim/220948717721

 

“오잉! 이보게, 잠깐 이리 좀 와보시게. 저기 저 여인네는 이름이 뭔가? 못 보던 얼굴인데? 딱 내 스타일이야. 내 방으로 좀 보내주게.”

“저… 나리… 그게… 저 아이는 아직 일할 준비가 안 되었습니다. 사연이 있는 아이라.”

“아, 진짜 왜 이러나. 알았네, 알았어. 여기 내 작은 성의니 받아두게. 잠시 이야기만 할 터이니 꼭 저 아이를 좀 보내주게. 사랑하네!”

 

잠시 후 홍순언이 콕 집어 요청한 아름다운 여인이 그의 방으로 들어서는데 홍순언은 기겁을 하고 말았어.

“아씨, 뭐냐! 이건 소복 아니냐? 아 놔! 일을 하기 싫으면 싫다고 말할 것이지. 사람 놀래게 어인 소복이냐? 사연이 있다더니 정말이구나. 무슨 일인지 이야기나 들어봅시다.”

 

범상치 않은 분위기와 외모의 여인을 가까이서 보고 홍순언은 하대를 그만두었어.

 

이미지 출처 http://bigdaws.tistory.com/8

 

“나리, 제 아비는 사실 명나라의 관리인데 억울한 일을 당하여, 얼마 전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 소녀는 하루아침에 고아가 되었고, 오직 부모님의 시신을 고향으로 모셔 가기 위해 여기서 일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두 분이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아. 상복을 입고 있는 중입니다.”

‘어쩐지 분위기가 고급스럽다 했다. 그나저나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앞으로 혼자 어찌 살아갈꼬?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괜히 신경 쓰이네.’

“나리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시옵니까?”

“아! 아니요, 됐소이다. 상중인 줄 모르고 내가 결례를 했소이다. 그만 나가보시오.”

 

홍순언은 그녀가 떠난 후 밤새 잠을 못 이루고 다음날 아침 그녀를 다시 불렀어.

 

“내가 생각을 좀 해봤는데, 이런 곳에서 돈을 벌어 부모님을 고향으로 모신다고, 댁의 부모님이 좋아하실 거 같진 않소이다. 조금 더 천천히, 적게 벌더라도 다른 일을 찾아보시오. 내, 고향 가는 돈은 마련해주리다. 최고급 장례 서비스까지 덤으로.”

“나리, 처음 본 저에게 어찌? 제가 지금 당장 보답 할 길은….”

“어허, 왜 이러시오. 나 그럼 사람 아니오. 내가 해주고 싶어서 그러오. 그냥 살아가면서 조선의 어느 정신 나간 놈이 우리 부모님 장례 치러줬구나 하면서 가끔 생각이나 해주시오. 난 마음이 변할 거 같아서 이만 떠나오.”

“그럼. 나리 성함이라도 알려 주시옵소서. 제가 이 은혜는 평생을 다하여 반드시 갚도록 하겠나이다.”

“거참, 다시 만나지도 못할 것인데 이름은 알아서 뭐하려고 하시오. 난 홍가요. 조선의 역관 홍순언이요.”

 

이미지 출처 http://bigdaws.tistory.com/8

 

이 이야기를 들은 다 듣고 난 역관 동료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그러니까, 우리가 처음 만난 명나라 여자한테 돈을 다 주고, 감방에 있던 놈을 꺼내온 거네? 너보다 우리가 미친 놈들이었네. 에라이, 이 정신 나간 작자야.”

“나도 내가 정신 나간 거 알고 있네. 그런데 어쩔 수가 없었네. 뭔가 막 불가항력적인 힘이 나를 그리 만들었네.”

“됐다. 문디 자슥아, 한 번만 더 그런 소리 나불거리면, 주둥아리를 확 찢어삔다.”

 

자, 그럼 홍순언에게 주어졌던 미션! 조선 외교부가 200년간 풀지 못한 난제! 종계변무에 대해서 이제 알아보자고. 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라가 들어선 후 새 정부의 TF팀은 명나라가 태조 이성계의 종계를 잘못 기록한 것을 확인하고 경악을 금치못했어. 태조 이성계가 노발대발할 수밖에 없는 충격적인 내용이야.

“이런!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이냐? 기록을 잘못해도 분수가 있지. 내가 이인임의 아들이라고? 명나라가 나를 물 먹이려고 의도적으로 저지른 실수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냐?”

 

 

이미지 출처 http://blog.naver.com/jungyoupkim/220948717721

 

이인임이라 하면 고려 우왕의 최측근 중 한 명이야. 이것은 흡사 조지 W 부시가 사담 후세인의 아들이라고 기록된 꼴이야. 그러니 조선 정부에서는 당연히 난리가 났지. 하지만 명나라는 거듭되는 기록 수정 요구에도 불구하고, 만만디 전력으로 대응했어.

 

“알았다 해. 곧 고쳐 주겠다 해. 그만 재촉하라 해. 그런데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냐 해?”

“당연히 중요하지요. 만일 명나라 황제의 아버지를 라이벌로 기록해도 이리 태평하실 작정입니까?”

 

 

하지만 조선의 이 요구 사항은 무려 200년이 지난 선조 때까지 수정되지 않았어. 역관 홍순언도 이 종계변무를 위해 명나라에 갔다가 역시나 임무는 해결하지 못했고, 공금횡령으로 감옥에만 다녀왔던 길이었어. 그렇게 다시 10년의 세월이 지난 어느 날 홍순언에게 다시 명나라를 다녀오라는 상부의 지시가 떨어졌어.

 

“역관 홍순언은 이번에 종계변무 TF팀에 합류되었음을 알린다. 사신 팀과 합류하여 이번에는 반드시 미션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만일 이번에도 실패할 시에는 종계변무 TF팀은 목숨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자세한 일정 숙지 후 본 서찰은 불에 태워 흔적을 남기지 말라.”

 

“아, 나 참. 미치고 환장하겠구먼. 그 잘난 사신들이 200년 동안 못한 일을 나 같은 역관이 어찌 해결하라고 죽이네, 살리네 협박까지 하고 있어. 실질적인 일은 우리가 다 하고 공적은 사대부 다 가져가면서. 어휴, 여차하면 그냥 명나라에서 잠적해서 눌러 살던지, 다른 방도를 찾아야지. 죽을 각오로 간다고 명나라에서 갑자기 힘없는 우리 조정의 일을 들어줄 턱이 있나.”

 

이렇게 홍순언은 사신단에 별 의욕도 없이 합류를 하여 명나라와 다시 향하게 되었어. 조선의 외교사절단은 명나라에 올 때마다, 자신들이 임무를 완성하게 해달라고 북경에 있는 동악묘에 들러 예를 올렸는데, 이곳에서 홍순언은 사신단 내에서 돌고 있던 찌라시를 듣고 기겁을 하게 되었어.

 

“선조 임금님께서 이번에는 정말 단단히 벼르시는 모양이야. 이번에도 미션에 실패하면 수석 역관의 목을 자르겠다고 했다네. 일이 잘 안 되는 것은 역관들의 통역이 부족해서라고….”

“아니, 공은 대신들이 다 가져가고 책임은 역관들한테 다 뒤집어씌우는 구먼. 환장할 노릇이네. 근데 그 찌라시 사실인가?”

“아무래도 정부 입장에서도 희생양이 필요하겠지. 대신을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니 중인들인 역관 중에서….”

 

숙소로 돌아와 낙담하고 있던 홍순언에게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으니, 그는 바로 명나라의 예부시랑 이었어.

 

“이보게 홍 역관. 자네 혹시 무슨 큰 사고 쳤나? 지금 명나라 외교부 차관이 찾아왔네. 홍씨 성을 가진 역관을 찾는데 이번 사신단에 홍가는 자네 한 명이네.”

“뭔 소린가? 명나라의 외교부 인턴 직원도 아니고, 차관이 지금 우리 숙소를 찾아왔다고? 자네 헛것을 본 게 아닌가? 난 현지 소녀들이나 말단 여직원을 상대로 성추행 같은 거 한 적도 없는데?”

 

조선의 사신단 일행은 그야말로 발칵 뒤집어졌어. 명나라의 외교부 차관이 조선의 사신단을 직접 찾아오는 것은 그간의 외교 절차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야. 어쨌거나 그를 기다리게 할 수 없었기에, 서둘러 그가 기다리던 곳으로 찾아갔어.

 

“제… 제가 이번 사신단 중에 홍씨 성을 가진 유일한 자이옵니다. 헌데 어쩐 일로 차관님께서 저 같은 역관 나부랭이를 찾아 계신지. 제가 원래 좀 호방한 성격에 사고도 치고 하였습니다만 명나라 외교부에 책 잡일 일은 없는 걸로 압니다만. 외람되오나 제가 요즘 스트레스가 심하여 몹시 불안한 상태이오니 질책할 일이 있으시면, 빨리 말씀해주시면 목을 내놓던지, 손목을 내놓던지 하겠습니다.”

“홍 대인. 고개를 드세요. 대인은 제 부인의 평생에 은인입니다. 우리 부부는 그 동안 조선에서 역관이 올 때마다 대인을 찾았는데, 이렇게 10년 만에 만나게 되는군요. 우리 둘은 초면이지만 나의 아내와 대인은 구면일 겁니다.”

 

홍순언은 명나라 외교부 차관의 말에 고개를 들어 그의 부인을 보았지만, 어디서 본 것도 같은데 누군지 도대체 기억이 나질 않았어.

 

“이런 대단한 미인께서 저와 안면이 있다니요? 소인은 당최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저는 홍 대인을 그날 이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는데 섭섭합니다. 대인께서 10년 전 연경에 있는 술집에서 저에게 가진 돈을 모두 털어주신 덕분에 저는 부모님의 장례도 무사히 치르고 고향에서 지금의 서방님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대인은 제 인생의 은인입니다. 이래도 기억이 안 나십니까?”

“헐, 대박! 그… 그러고 보니 그 때 그….”

 

사람 인연 참으로 알 수 없어. 홍순언을 평생의 은인으로 생각한 이 부부는 조선이 200년 동안 풀지 못한 난제인 ‘종계변무’를 해결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고, 마침내 두 달 후 명나라가 잘못된 기록을 수정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어.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이들 부부는 사신단이 조선으로 돌아갈 때 배웅까지 나와서 홍순언에게 귀한 선물을 전달했어.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성계는 이자춘의 아들이다.’ 이 한 문장을 수정하는 데 200년이 걸렸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차관님의 덕입니다. 저는 이제 산 목숨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조선의 크나큰 경사입니다.”

“홍 대인께서 진심으로 기뻐하시니, 우리 부부가 이제야 마음의 빚을 갚은 거 같습니다. 여기 우리 집 사람이 대인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10년을 하루 같이 준비한 선물이 있으니 사양하지 말고 꼭 받아주세요.”

 

그 선물은 100필의 비단에 부인이 손수 한 땀 한 땀 ‘보은’이라는 글자로 수를 놓은 선물이었어. 사신단 이 200년간 해결하지 못한 외교 문제를 말끔히 해결하고 귀국을 하니 조정에서도 북 치고 장구 치고 난리가 났어. 정철과 유성룡이 포함된 사신단 19명에게는 ‘광국공신’이라는 칭호가 내려졌는데, 홍순언이 역관으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어. 또한 선조는 홍순언을 역관으로서는 법적으로 오를 수 없는 지위인 우림위장에 임명을 하였는데, 대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밀어붙였다고 해. 선조도 어지간히 기뻤나봐. 홍순언에게 파격적으로 당릉군이라는 군호까지 하사했는데, 이것은 임금님과 친구는 못 먹어도 먼 친척은 먹을 수 있다는 의미야. 명예만 주고 물질적 보상이 부족한 거 아니냐고? 그에게 부동산도 내려주었는데 지금의 을지로 입구 일대의 땅이야. 홍순언의 기묘한 이야기는 그 당시에도 센세이션을 일으켰어. 그래서 사람들이 홍순언의 땅 일대를 명나라 외교부 차관의 부인이 은혜를 갚아서 받은 땅이라는 의미로 ‘보은단동’ 또는 ‘보은담골’ 등으로 불렀다고 해. 세월이 흐르면서 한자음이 변하고 변해, 오늘날의 미동이라는 지명까지 왔다고 해.

 

어때? 인생 한방이라는 생각이 들어? 난 지금 당장의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주면, 언제가 나에게도 기대하지 못했던 복이 굴러들어올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말이야. 로또보다 확률이 높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