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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꽁이 2019. 12. 23. 09:12

한국교회의 「부림절」

글: 오소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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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교수님, 지난 시간 언더우드 선교사의 《찬양가, 1894》 강의를 마치시고, 그 시대에 《찬양가, 1894》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알아와 발표하라고 하셨는데, 제가 ‘한국인의 부림절’이란 제목으로 발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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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서에 보면, 하만이 유대인들을 몰살하라는 아하수에로 왕의 어명을 받아 시행 직전에,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목숨을 건 충정으로 사태가 역전된 이야기가 있는데, 그 날을 유대인들은 지금도 《부림절, Purim》로 지키고 있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났는데 그때 일을 발표하겠습니다.

 

때는 100여년 전인 1896년 9월2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종황제의 탄신일이 되자 언더우드 목사는 그가 담임한 새문안교회 교인들을 중심으로, 당시 수용인원이 가장 큰 서대문 밖 모화관(慕華館)에서 황제 탄신축하 모임을 준비했습니다.언더우드 목사의 초청으로 정부의 고관들이 모여들었고, 기독교학교 학생들과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일반 시민 등 1천 여명이 모였습니다.

 

예배는 기도로 시작됐고 강연과 찬송가 제창,주기도문 암송의 순서로 진행되었습니다.이 때 일을 언더우드 부인이 쓴 《한국에 온 첫 선교사 언더우드(Underwood of Korea), 이만열 역》(172쪽)에서 발췌해보겠습니다.

 

[독립신문] 제작 팀


“언더우드는 왕의 생신을 기념하는 그리스도인들의 기도 및 찬양 집회가 열릴 것이라고 널리 선전하였다. 단을 만들고 건물은 만국기로 장식되었다. 내각 중 몇 명과 뛰어난 한국인 연설가 두 세 명이 연설을 하도록 초청되었다. 단상에는 수많은 귀빈들을 위한 의자와 함께 오르간이 놓여졌다. 아무도 왕의 생신을 소홀히 한 사람으로 지목되고 싶진 않을 터이므로, 평민들뿐만 아니라 대신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한 모두 참석하였다. 물론 선교사들도 대부분 참석하였다.

 

건물 안에는 사람들로 꽉 찼고, 건물 밖에도 유리창문마다 사람들로 빽빽하게 둘러 차 있었다. 이전의 어떤 모임도 이만큼 그리스도교를 선전해준 일은 없었다. 때문에 언더우드는 밤새 몇 가지 전도 소책자 수천 부를 인쇄하여, 젊은 그리스도인들과 (기독교학교) 학생들에게 자신이 준비한 찬송가와 함께 하루 종일 서울 전역에 배포하도록 하였다. 건물 둘레의 군중들은 서로 먼저 받으려고 아우성을 쳤다. 그 책자는 복음을 간략하고 명쾌하게 설명해주고 있었다. 찬송가는《America》(피난처 있으니 곡조)에 맞춘 황제 축복 애국가였다. 그 가사는 다음과 같다.

 

<1절>

높으신 상주(上主)님 자비론 상주님 긍휼히 보소서.

이 나라 이 땅을 지켜주옵시고,

오 주여 이 나라 보우하소서.

<2절>

우리 대군주 폐하 만세 만세로다. 만만세로다.

복되신 오늘날 은혜를 내리사

만수무강케 하여주소서.

 

[3-4절 생략]

<5절>

홀로 한 분이신 만 왕의 왕이여 찬미 받으소서.

상주님 경배하는 나라와 백성들

국태민안 부귀영화 분명 받겠네.

 

미션스쿨 학생들의 연합 찬양대가 이 노래를 부를 때, 글을 아는 사람들은 속으로 따라 부르고, 모르는 사람에게 가사를 읽어주기도 하였다는 것입니다.

다음 날 《독립신문》은 논설에서 이 대회를 논평하였는데, 논설 전체가 한 문장으로 되어 있으나 편의상 적당히 끊고, 현대 맞춤법과 현대용어로 바꿔 그 요지를 인용합니다.

 

“어제 모화관에서 서울 예수교회 신자들이 대군주 탄신 경축회를 하였는데, 사람들이 거의 천명이나 모였다. 애국가를 부르고,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조선을 불쌍히 여기사 서양 나라와 같이 복을 받게 하여주소서’ 라고 머리 숙여 기도하는 것을 보니, 하나님이 이 기도를 응답하실 것이라. 무엇보다 고마운 것은 예수교인들이 나라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런 대회를 열고, 만방에 이를 알리고, 애국가를 지어 교회학교 학생들이 불러 감동을 주었는데, 이 대회가 조선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은, 첫째 위국위민(爲國爲民)하자는 것이요, 둘째는 이런 마음을 온 국민에게 알리고 세계에 알리는 것이요, 셋째는 예수를 믿어 서로 사랑하며 도와주어 상하귀천 없이 평등하게 살자는 것이라. 하나님 앞에 가장 귀한 사람은 정의롭게 사는 사람으로서, 이런 사람은 금생과 내생에 복을 받을 것이라. 바라기는 예수 믿는 사람들은 교회에서 가르치는 대로 행하여 이웃의 본이 되어 온 국민이 바른길을 가도록 힘써주길 바라는 바이라.

 

그런데 이 고종황제 탄신 축하모임에 [한국의 모르드개]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는 황해도 은율(殷栗) 고을에 사는 홍성서(洪性瑞)라는 부자였는데, 벼슬을 하나 사려고 서울에 왔다가 우연히 이 행사에 참여하여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한 것입니다. 그는 벼슬을 사려고 가지고 온 거금을 몽땅 털어서 언더우드가 만든 기독교서적과 [찬양가, 1894] 책, 그리고 이 많은 책을 싣고 갈 나귀를 사 가지고 고향에 돌아가 전도하여 [은율읍교회]를 세웠고 초대 영수(領袖)가 되었습니다.

 

4년이 지난 1900년. 홍영수는 이해 겨울에 일어난 이용익(李容翊)과 김영준(金永準)의 그리스도인 박멸 음모 사건 때, 이 엄청난 음모를 사돈에게서 미리 연락받아, 때마침 순회 전도여행으로 해주에 와 있는 언더우드에게 알려, 엄청난 비극을 막아낸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기묘하기도 합니다. 그 때 일을, 《조선예수교장로회사기》에 기록된 기사를 간추려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문장부호와 괄호 안의 글자는 제가 추가한 것입니다.

 

"이 해(1900년) 겨울에 미국인이 경성 시내에 전차를 부설하니 승객이 많은지라. 경무사 김영준(金永準)과 내장원경 이용익(李容翊)이 (전하께) 건의하되 ‘전차를 그대로 두면 재원이 반드시 고갈하리라’ 하여 시민으로 하여금 차를 타지 못하게 하니, 미국인이 (이를) 탐지하고 황제 폐하에게 아뢰어 (전차 타는 것을 금지하지 말라는) 엄한 칙령을 내렸더니, 두 대신이 앙심을 품고 서양인과 기독교를 함께 멸할 계획으로, 이 교(기독교)의 폐해를 황제 폐하께 거짓으로 아뢰고, 칙교를 내려 같은 해 섣달 초하루에, ‘국내에 거주하는 선교사와 예수교인들을 일시에 도륙․소탕하라’는 밀지를 각 도에 비밀리에 포고하였으니, 당시 교회의 운명이 곧바로 위급에 처해 있었느니라. 은율군 향장(鄕長) 조 아무개(趙某)가 군의 사무를 겸임․처리하더니, 이 향장은 은율읍교회 영수 홍성서(洪性瑞)와 사돈간이라. 혼인한 집이 변을 당함을 긍휼히 여겨, 홍성서의 백부에게 비지를 밀고하여 ‘화를 면할 방책을 생각하라’고 간절히 권하였더니, 홍성서가 이 말을 듣고 그 아들 명기(洪明基)를 해주에 파송하여 선교사 언더우드에게 급보를 전하니, 어더우드는 급보를 받고 경성 제중원 의사 에비슨(魚丕信)에게 라틴어로 전보를 치고, 에비슨은 미국 공사 알렌에게 이를 전하니, 미국 공사 알렌은 폐하를 알현하고 상주하여 엄준한 칙전(勅電)을 각 도에 급히 발하여 ‘외국인과 교도(敎徒)를 보호하라’ 함으로 잔혹한 화를 면하였으니, 이는 옛날 페르시아 시대에 하만이 모르드개와 이스라엘 민족을 소멸하려던 흉악한 책모와 비슷하니라…."(161-162쪽)

 

그 때 일을 언더우드 부인이 쓴 《Underwood of Korea](204쪽 이하》에서 인용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서울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소래에서 해주로 갔으나, 며칠 기다려야만 했다. 그러나 우리가 해주에 도착하자마자 은율로부터 한 사람이 급히 달려와, 한국 정부가 각 지방의 여러 수령들에게 보낸 비밀 서신이 도착하였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하였다.

그 서신에는 ‘모든 유생들은 보름 후인 다음달 초하루에 각 지방의 가장 가까운 사당에 모여, 거기서부터 집단적으로 서양인들과 서양 종교를 추종하는 사람들을 죽이러 가고, 그들의 학교와 집과 교회를 파괴하라’는 명령이 적혀 있다고 하였다.…

 

언더우드는 이 위급한 소식을 서울에 있는 선교부에 알려야 하는데, 영어나 일어 등 일반인이 아는 말로 하면 비밀이 누설될 염려가 있었으므로, 라틴어로 에비슨 박사에게 전보를 쳤습니다. 에비슨 박사는 고종황제의 주치의이며 당상관 벼슬에 있는 당시 주한 미국 공사 알렌 박사에게 알려, 먼저 보낸 칙령을 취소시킬 뿐만 아니라 선교사들과 그리스도인들을 보호하라는 칙령을 내림으로써, 초기 한국 그리스도교의 엄청난 대량학살을 미리 막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부림절이라 할 만한 한국교회 역사에 아주 중요한 사건인데, 간접적으로 《찬양가, 1894》와 관련된 사건이라 생각하여 에피소드로 보고를 드립니다. 이상입니다.”

 

“우와! 대단하다!”

“박수! 아주 좋은 에피소드를 소개해 주었어요.”

“그런데 교수님, 앞서 제가 인용한 책에 보면 고종황제 몰래 두 사람이 칙령을 내렸다고 언더우드 부인은 썼는데, 과연 그게 가능할까요?”

“암, 가능하고 말구. 1900년이라면 명성황후가 왜놈들에게 시해당한지 4년 후야. 고종황제는 언제 당신도 독살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궁중에서 만든 음식은 안 드시고, 언더우드 부인이 만들어 남편을 통해 보낸 음식만 드셨다는 거야. 밤이 되면 황제는 언더우드에게 ‘형제’라 부르며 ‘가지 말고 침전 옆방에서 짐을 지켜주오’라고 간청하여, 언더우드는 다른 선교사들과 교대로 권총을 차고, 매일 밤 황제를 지켰다는 거야. 불쌍한 황제시지.”

“교수님, 그리스도인들을 몰살시키려 했던 [한국판 하만]에 대해서 아시는 대로 말씀해주십시오.”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므로 H. B. 헐버트가 쓴 《대한제국 멸망사(The Passing of Korea, 신복룡 역주》란 책에서 그 두 사람에 대한 기사 일부를 읽어주고 마치지. 저자 헐버트 박사는 고종황제의 초청을 받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관립학교인 [육영공원(育英公院)] 교수로 내한한 교육자로서, 한국을 위해 너무나도 큰 일을 많이 한 분이지. 1949년 7월 29일, 이승만 대통령의 초청으로 86세의 노구를 이끌고 왔지만 기관지염으로 7일 만에 별세하여, 이땅에 묻어 달라는 그의 유언을 따라, 한국 최초의 사회장으로 양화진 묘지에 묻힌 분이야.

그 책에 보면 [한국판 하만] 두 사람에 대한 평은 이러해.”

 

◇김영준

1900년은 김영준(金永準)이라고 하는 벼락부자의 전성시대였다. 그는 엄청나게 파렴치하다는 것 이외에 아무런 자산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능력으로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엄청난 돈을 모을 수 있는 힘을 얻었다.…(209쪽)

◇이용익

이용익(李容翊)이라는 인물은 전에는 어느 고위관리의 집에서 청지기를 하던 사람이다. 그는 설사 파렴치한 일일지라도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 그는 1880년대부터 수천 명에 이르는 송도의 인삼 재배인들을 등치는데, 탁월한 수완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무식한 시골뜨기였기 때문에, 돈을 많이 벌어 풍족한 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에도, 의관을 제대로 하는 법을 몰랐고, 범절도 말이 아니었다.…(21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