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의 번역서

오즈 2006. 9. 3. 10:30

 

 

 

 

 

 

 

<마스터 앤드 커맨더> <포스트 캡틴> <제국전함 서프라이즈 호>

 

앞서 밝혔듯 내 번역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 준 장편 시리즈물이다.

비록 세 권만 사진을 올렸지만,

미완성본인 유작까지 합치면 무려 스물한 권에 달하는 초대형 시리즈이다.

만약 내가 이 시리즈를 전부 번역한다면

최소한 마흔한 살 이전에는 완역이 불가능할 것이다.

이 세 권의 번역도 까마득한 산봉우리였지만,

남은 작품들을 생각하면 말 그대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저자 오브라이언 영감님은 이 소설을 쓰다가 생을 마감했다.

보라, 이것이 바로 진짜 소설이다.

단순히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일생을 걸고 써내려간 글.

나는 이 책들을 번역하며 소설의 진정한 가치와 그 힘을 알게 되었으며

작가와 작품이 혼연일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느꼈다.

또한 번역가가 어떤 자세로 번역에 임해야 하는지도 확실히 깨달았다.

필설로는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는 위대한 작품이다.

 

<마스터 앤드 커맨더>는 우리나라에 영화로 개봉된 바 있다.

감독은 <죽은 시인의 사회>로 잘 알려진 피터 위어였다.

비록 흥행 성적은 시원치 않았지만 작품의 완성도는 높은 편이었다.

다만 생소한 시대 배경과 너무 무거운 분위기 때문에 썩 주목받지는 못했다.

번역자인 내가 보기로는 원작의 분위기를 그런대로 잘 살렸다.

또한 핵심 인물인 오브리와 머투린의 캐스팅도 적절했다.

아쉬운 점이라면, 원작의 에피소드를 여기저기서 가져다 끼워맞춘 탓에

본래 <마스터 앤드 커맨더>와는 내용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이렇게 난해하고 깊이 있는 작품의 분위기를 잘 살린 점은 높이 살 만하다.

후편이 제작된다는 소문이 있던데 과연 어떤 내용이 펼쳐질지 사뭇 궁금하다.

 

내가 처음 이 책을 황금가지에서 의뢰 받은 것은

번역회사와 막 인연을 끊고 가벼운 에세이를 받으려고 기다리던 2004년 초봄이었다.

그 번역 의뢰가 무산되고 얼마 후,

이 시리즈를 번역해 볼 생각이 있냐는 편집자의 메일을 받았다.

당장 일이 급했던 나로서는 마다할 이유도 여유도 없었다.

당장 책을 받아 샘플 번역을 시작하긴 했는데.... 너무 어려웠다.

정말 너무 어려웠다.

chapter 1을 몇 페이지 정도 하는데 무려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이제껏 했던 번역서들과는 글의 수준과 깊이가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번역자인 나의 능력이 형편없이 모자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다시 봐도 문장의 길이와 난해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게다가 문학자요 의학자요 과학자인 저자의 머릿속에서 튀어나오는 온갖 말과 지식들,

과연 내가 영어 번역자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수시로 등장하는 각종 언어,

우리에게는 무척 생소한 아일랜드와 잉글랜드, 그리고 유럽의 세부적인 역사,

현대 영어와는 사뭇 다른 18~19세기 영어,

그 모든 것이 첩첩산중 가시밭길이었다.

더욱이 소설 번역이 처음이었던 내게 문학적 표현은 여간 곤욕스럽지 않았다.

과연 내가 번역을 하는 건지 수수께끼 모음집을 보는 건지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다.

 

어찌어찌 부끄러운 번역을 해서 보내자 며칠 후 다시 연락이 왔다.

중간 부분을 조금만 더 해서 보내 주지 않겠냐고.

사실 요맘때 난 이 시리즈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차였다.

헌데 다시 해 달라는 말을 듣자 불현듯 오기가 생겼다.

이번에는 chapter 4에 등장하는 전투 훈련 장면을 번역해서 주었다.

다행히 그 번역에 만족한 편집자가(달리 할 사람이 없어서였는지는 모르지만)

번역 계약을 하자고 연락을 해 왔고

나는 며칠 후 출판사를 찾아가 계약서에 서명했다.

본래 마감 시한은 2004년 12월 15일, 그러니까 딱 9개월이었다.

각 권 당 대략 3개월 씩.

책을 세 권이나 받았다는 생각에 우쭐해진 나는 주저없이 서명했다.

집에 와서는 아내에게 '고생 끝이다'라고 겁없이 장담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은 '고생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2년 하고 보름이 지난 2006년 3월.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기나긴 여행이 잠시 끝나 항구에 정박할 시기가 찾아왔다.

도무지 2년이라는 세월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감이 안 왔다.

과연 번역을 끝내긴 한 건지조차 의심스러웠다.

중간에 몇 번이나 마감 연기를 요청했고,

경제적 압박에 못 이겨 다른 책도 몇 권 했지만,

내 마음은 빨리 이 여행을 끝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늘 사로잡혀 있었다.

1권인 <마스터 앤드 커맨더>가 8개월로 가장 오래 걸렸다.

초반에는 한 챕터마다 꼬박 한 달씩 걸렸다. 미칠 지경이었다.

어떤 날은 정말 단어 하나 고민하다가 끝나기도 했다.

하지만 점차 글의 분위기에 익숙해지고 글을 보는 눈이 생기면서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물론 일반적인 번역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느린 속도였지만.

<포스트 캡틴>은 6개월 <제국전함 서프라이즈 호>는 4개월 정도가 걸렸다.

보름 만에 끝낸 원고지 1000매짜리 <엔드하우스의 비극>과 비교하면

느려도 한참 느린 속도였다.

아마 다음 작품을 하게 되어도 최소한 3개월은 필요할 것이다.

그만큼 이 책은 번역자에게 일종의 도전이자 헤어나기 힘든 늪이다.

지금 돌이켜봐도 다시는 생각하기 싫을 만큼 고된 여정이었다.

하지만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어쩌면 이 시리즈가 번역가 오즈의 정체성을 깨닫게 해 주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의 내용은 결코 어렵지 않다. 오히려 단순하다.

잉글랜드 출신 해군 장교 오브리와

아일랜드 출신 과학자 머투린의

파란만장한 모험담이다. 그뿐이다.

그걸 이토록 긴 소설에 담은 오브라이언 영감님의 역량에 그저 탄복할 따름이다.

하지만 그 단순한 모험 속에 담긴 작가의 인생관과 가치관,

전 세계를 무대로 하는 방대한 스케일,

혼돈의 시기를 최전선에서 살아가는 두 주인공의 짜릿한 인생 여정,

삶과 자연과 존재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

그리고 그 바탕에 깔린 생명에 대한,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

나는 그런 것들을 보았고, 그런 것들을 단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몸부림쳤다.

이 책은 단순히 저자의 글을 역자가 옮긴 것이 아니라,

번역자 오즈에게는 모호한 인생에 대한 아름다운 해답과도 같았다.

그것들이 가슴 속으로 몰려들 때마다 낯선 전율에 몸을 떨면서

무의미하게만 여겨졌던 나의 인생을 다시 치열하게 살고픈 욕망을 느끼곤 했다.

나의 글이 형편없지만 않다면, 독자도 그런 아름다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나는 두 주인공 오브리와 머투린을 지극히 사랑한다.

번역이 끝나갈 무렵에는 마치 내 이중성을 대변하는 분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또한 이 찬란한 아름다움을 선사해 준 오브라이언 영감님께 가슴 깊이 감사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인생에 대한 사랑을 배웠다.

 

과연 이 책이 언제 출간이 될지는 아직도 미지수이다.

현재 1권의 초교가 끝난 상태고,

2권과 3권의 교정이 시작되긴 했지만,

분량이 워낙 커서 과연 언제 끝날지 장담하기 어렵다.

하지만 올해건 내년이건 반드시 나올 것이다.

<다빈치 코드> 류의 흥미본위 소설들과

말초신경만 자극하는 값싼 통속소설들이 난무하는 출판계에

한 인간이 일생을 걸고 써내려간 이 값진 소설들은

비록 많은 독자의 사랑은 받지 못한다 해도

참된 소설을 갈망하는 진실한 독자들에게는

무엇과도 바꾸기 힘든 행복한 독서 경험이 되리라 장담한다.

 

예전에 아내가 승무원으로 일할 때

값비싼 샴페인 한 병을 가져온 적이 있다.

그 술은 지금도 우리집 냉장고에서 고이 잠자고 있다.

나는 <오브리-머투린 시리즈>가 출간되는 날,

그 술을 따기로 마음먹었다.

오브라이언 영감님의 영전에 술 한 잔 바치지 않고서는

그 책을 받아 읽을 엄두가 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다려라, 샴페인이여

네 영혼을 바칠 곳은 이미 정해져 있다.

오브리-머투린 시리즈의 첫 편, 마스터 앤 커맨더 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시리즈라는 걸 알고, 뒷편은 언제 나오나 출판사에 직접 문의까지 했을 정도랍니다. 인터넷에서 이렇게 생생한 역자 후기를 만나게 될줄은 몰랐네요. ^^ 이 재미있는 시리즈가 아직 20권이나 더 남아있다니, 행복하긴 하지만 정말 목빠지게 기다려야 할 것 같네요. 조바심이 나서 포스트 캡틴 원서를 직접 구했는데 한 50쪽 읽고 손 놨습니다. ㅎㅎ 한국어로 읽어도 소화 안되는 배 관련 용어들이 많았는데, 자연과학용어와 라틴어 문구까지 등장하는 원서는 뭐 ;; 역자님의 노고를 잠시나마 이해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친절한 역자주에도 고마웠구요. 근데, 번역을 끝내신 포스트캡틴과 서프라이즈호의 출간일정은 대체 어떻게 되나요? 특히 서프라이즈호는 영화에서 배경이 됐던 갈라파고스 제도가 서술되지 않을까 해서 매우 기대하고 있습니다. *_* 부디 마스터 앤 커맨더가 대박을 쳐서, 역자님이 이 시리즈 전부 완역해주셨으면 하네요. 번역은 역시 애정이 곁들어져야 하니까요. ㅋ
반갑습니다. 이 책을 좋아하시는 분이 계시군요. 정말 좋은 작품인데 아무래도 우리나라 정서와 잘 맞지 않아서인지 반응이 썩 좋지 않네요. 일단 3권까지는 나온다고 들었습니다. 아마 올 겨울방학 시즌일 거예요. 원서로 읽을 수 있는 분은 거의 없을 겁니다. 워낙 난해한 단어가 많이 나오고 문장도 길고, 온갖 항해 용어들이 난무하니까요. 저도 이 시리즈를 모두 번역하고 싶은데, 출판사 입장에서는 잘 팔리지 않는 책을 계속 내기가 부담스러울 거예요. 물론 앞날은 아무도 모르지만요... 그리고 3권까지는 갈라파고스 제도에 관한 내용이 나오지 않습니다. 영화는 이 시리즈의 10권을 바탕으로 만든 거거든요. 훌륭한 작품이 판매량 부진 때문에 나올 수 없는 우리나라의 열악한 출판 풍토가 아쉬울 따름입니다.
그렇군요...친절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 부끄럽지만 -_- 게임 대항해시대를 하면서 영국 해군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당장 길드 사람들한테라도 다 추천해야겠어요! 6개월간 네이버 책 리뷰어 활동을 하고 있는데, 꼭 추천 올리겠습니다. 썩 반응이 있는 편은 아니지만, 출간이 앞당겨지는데 조금이나마 일조하고 싶네요. -_ㅠ
고맙습니다!!!!!!!!
아! 지금이 한 오전 2시 30분 정도 되었네요~ 방금 다 읽었습니다. 낼 출근해야 하는데 조마조마 하면서요! 이제 막 잭의 진정한 활약이 시작되는데... 책이 없네요! 정말 힘든 작업 하셨어요! 혹시 후속작 없나? 하면서 인터넷 뒤지는데, 역자님의 블로그에 글을 남길줄은 몰랐네요! 책을 읽어보면 저 위에 쓰인글이 아니더라도 얼마나 힘든 작업이였는지를 짐작케 합니다. 멋지세요~! 저희 동네에 전혀 장사가 않되는데도 엄청나게 큰 서점을 여신 분이 있습니다. 왠지 그분의 향기가~ 인터넷으로 사면 싼거 아는데,
그분 보고 싶어서 거기서 주문하고 다시 찾아가고 하거든요! 하여간 이런 멋진 번역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후속작이 나왔나요? 인터넷으로 검색해도 계획만 있지, 출간은 않된것 같은데요?
반갑습니다. 이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을 뵈면 저도 무척 기쁘답니다. 곧 출간된다고는 하는데 언제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저도 빨리 나오기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어요~~~
아,정말이지 이 책 미친듯이 읽었습니다.
1,2권을 우연히 서점에서 발견해서 밤 새면서 읽었어요...
정말 제가 지금까지 읽어본 해양 소설중 단연 최고네요..
책에서 라틴어에 여러 외국어, 선박 용어들이 막 나오더라구요..
정말 수고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1,2권 이외의 시리즈는 그 서점에서 찾아 볼수가 없더라구요.
2권 결말을 보고 3권에서 어떻게 이어질까 궁금해서 3권을 찾고있는데
못찾겠더라구요, 3권 출간 된건가요.?
글을 이제야 봤습니다. 재밌어 하는 분들도 있고 지겹다는 분들도 있고... 물론 저는 무쟈게 좋아합니다^^ 다음주에 후속편인 <포스트캡틴>이 출간된다고 합니다. 아마 두 권으로 분권되어 나올 거예요. <마스터 앤드 커맨더>보다 더 길거든요.
영화를 보고나서 너무 감동한 나머지, 그길로 영풍문고에 가서 2만원이나 주고 원서를 샀었드랬습니다. 이래뵈도 수능영어는 만점 나오는 실력이었는데, 원서를 보니 그만 앞이 까마득 하더군요. 한페이지 읽는데 10분이 훌쩍걸리는데다, 내용이 맞는지 알수도 없고; 그래서 그냥 포기한채 2년이 흐른 지금, 이렇게 양장본으로 아름답게 번역되어 나온 책을 보니 너무 감사할 따름입니다. 책이 영화보다 훨씬 재밌더군요! 독자 입장에서는 너무 즐거웠지만, 난무하는 전문용어들과, 갖가지 묘사들을 보니 번역자님께서 너무 고생하셨을것 같습니다. 앞으로 2, 3권이 꼭 나왔으면 좋겠어요!!!!
20권까지 다 나와야 하는데 이런 추세로 봐서는 제가 죽기 전에는 다 못 나오겠네요. 어쨌거나 다음주에 <포스트캡틴>이 나온답니다.
오즈님 <포스트 캡틴>도 너무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다음권이 기다려지는데 또 언제 나올지 ㅠㅠ
이렇게 재밌는 소설이 이렇게 힘겹게 나와서야 원...............
4부 부터는 그렇다치지만 번역하신 3부도 영영 볼 수 없는 건가요? -_-
3부는 나올 겁니다. 언제 나올지 기약은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