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여행 (박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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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이야기

2020. 8. 15.

박혁거세 왕의 62세손 박훤일(朴烜日, 1953 -  )은 2013년 초 3박 4일의 회갑 기념 형제들과의 남도여행을 하였다.

학자로서 화갑(華甲)기념논문집을 만드는 대신 형제, 자매들과 함께 고향인 전주를 비롯하여 남도로 회갑(回甲)여행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매달 한 번씩 모이는 형제들의 점심식사 모임을 확대하여 마침 한국에 다니러 오신 누님 내외를 포함한 모든 식구들을 초대하였다. 개인사정이 있는 분을 제외하니 필자를 포함하여 모두 9명이 되었다.

 

* 전남 담양 죽녹원 입구에서 대나무호떡을 손에 든 우리 일행

왼쪽부터 김민홍, 김삼중, 은희, 정희, 경희, 숙희, 태용, 김혜경, 훤일

형제들과 함께 한 남도 맛 기행

아래의 여행기[1]는 필자의 블로그에서 사진과 함께 볼 수 있다.

첫째날 (2013.1.18 금)

금요일 아침 일찍 우리 일행은 각기 편리한 대로 하나투어 본사 앞(종각역 공평동), 압구정동 공영주차장, 죽전 간이휴게소에서 버스에 올랐다.

첫 행선지는 진안 마이산이었다. 전주에서 오래 살았던 형제들도 직접 마이산 석탑을 가본 사람은 몇 안 되었다.
우리 일행은 공원입구 식당에서 산채비빔밥과 흑돈목살구이로 점심식사를 마치고 아직 얼음이 채 녹지 않은 길을 걸어갔다. 그 끝에는 이갑룡 옹이 정성을 기울여 쌓았다는 석탑과 절벽 아래 부처를 모신 탑사가 있었다.

다음 행선지는 우리의 고향 전주였다.
우선 이씨 왕조가 유래한 곳이기에 경기전에는 이성계의 어진(御眞)을 모신 사당이 있고, 임진왜란 당시 조선왕조실록을 무사히 지켜낸 기념관이 있다. 가이드로부터 한옥의 겹처마(아래는 원, 위는 사각형)의 유래를 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한옥마을에 있는 우석대 부설 한방문화센터를 찾아가 자기 몸에 좋은 한방약재를 꾹꾹 눌러담아 향낭을 만들었다. 내가 전에 1년 여 살았던 교동의 한옥마을이라 더욱 감회가 깊었다.

동학혁명 기념관이 새로 들어섰지만 은행나무가 있는 전주 최씨 종가집은 그대로 있었다. 누님들이 다니셨던 전주여고 자리에는 큰길 가에 호텔이 생겼고 측백나무만이 교문이 있었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다음 행선지인 새만금 방조제로 향했다. 옛날에는 인프라 면에서 "호남 푸대접"을 말했으나 지금은 고속(화)도로가 사통팔달로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가 탄 버스는 김제를 지나 군산쪽 새만금 방조제에 도달했다.

마침 서해 바다 위로 저녁해가 지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방조제가 완공된 만큼 앞으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게 되기를 빌었다. 날이 어두워진 다음에 우리는 부안의 특식인 바지락 요리를 먹었다.

둘째 날(1.19 토)

부안 대명리조트 호텔(Cloud Nine) 룸에서 편안 밤을 보낸 우리는 이웃 채석강을 찾아갔다.
바다 위에는 아침안개가 덮여 있었으나 날씨는 별로 춥지 않고 미풍이 상쾌하였다.

9시에 부안 대명리조트를 출발한 우리는 변산반도의 고찰 내소사로 향했다.
내소사에는 영험이 있다는 느티나무 거목이 일주문 바깥과 사찰 경내에 한 그루씩 서 있었다.
김우연 가이드로부터 사천왕의 내력을 듣고, 또 부처님의 '주특기'에 따라 제대로 (예컨대 건강은 약사여래한테) 빌어야 한다는 주의말을 들었다.

내소사에서는 템플 스테이도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단청공사를 하느라 여기저기 비계가 세워져 있었다. 배경이 된 산세(skyline)에 맞춰 사찰 건물의 층고를 달리한 조상의 안목이 놀라웠다. 새해를 맞아 소원을 비는 점에서는 외국인도 우리와 다름이 없었다.

내소사에서 나오는 길의 곰소 마을은 젓갈로 유명하다. 곰소 젓갈이 맛있는 이유는 부근에 있는 천일염전이 양질의 소금을 생산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음 행선지는 담양이었다.
우선 점심으로 담양의 명물 떡갈비를 먹고 나서 우리는 대나무 정원 죽녹원을 구경했다.

모처럼 포근한 주말을 맞아 죽녹원에는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죽죽 치솟은 대나무 아래에는 야생 차나무가 우거져 있었다. 뿌리가 옆으로 뻗는 대나무에는 다른 나무는 뿌리를 내리기 어려우나 뿌리가 밑으로만 내려가는 차나무는 공존이 가능하다고 했다.

우리 일행은 죽녹원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잎 호떡을 사먹고 목포로 향했다.

 

"목포" 하면 유달산이고 옛날에는 이순신 장군, 현대에는 김대중 대통령이다. 일제 강점기 때에는 "목포의 눈물"을 부른 이난영이 있었다. 김우연 가이드의 말로는 "장명조"라는 희대의 봉이 김선달이 살았다고 한다.

새천년을 맞아 목포 시민들이 기념 종각을 세우자,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시민종각"이라는 휘호를 내걸었다.
유달산에서 내려다 보니 일본 영사관 자리 앞에는 서울을 거쳐 신의주까지 가는 1번 국도의 원점 비가 서있었다.

우리 일행은 날이 어둑어둑해질 즈음 목포 국악원에서 열리는 토요 공연을 보러 갔다.
젊은 국악인들이 열정을 바쳐 신명나게 1시간 20분 동안 국악 공연을 펼쳤다.

우리 일행은 저녁식사로 전복구이와 전복죽을 먹고 영산강 하구언을 건너 대불공단에 있는 숙소 목포현대호텔로 갔다. 현대삼호중공업 바로 이웃에 있었다. 조선소에 일보러 오는 외국인을 위한 숙소로 건립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무선(WiFi) 인터넷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마침 대불공단에 있는 직장을 다니는 조카사위가 장인과 친척어른들을 뵙는다고 숙소로 찾아 왔다.

셋째 날(1.20 일)

아침에 짙은 안개가 낀 것이 날씨가 상당히 포근할 것을 예고했다.
호텔에서 뷔페식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8:30 보성으로 출발했다. 보성의 차밭을 보기 위함이었다. 곡우 전에 딴 차잎으로 우려낸 우전차를 마시고 심한 경사면에 조성한 차밭을 보러 나갔다.

우리는 곡우 전에 딴 차잎으로 만든 우전 차를 마신 뒤 차 밭을 보러 나갔다.
봄이 무르익어 신록이 우거질 때면 빛깔이 더욱 아름답겠지만 한겨울에 보는 차밭은 무채색이었다.
이곳은 여러 편의 드라마와 영화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보성 차밭에서

우리 일행은 보성 차밭을 떠나 순천의 민속촌 낙안읍성으로 갔다.
옛날 초가집이며 기와집이 세월이 수백 년 정지해 있는 듯 했다.

시간이 점심 때가 되었으므로 우리는 순천의 특식 보리굴비를 먹으러 갔다. 조기가 맛있기야 하지만 너무 비싸므로 부서를 보리 속에 넣어 꾸덕꾸덕 말린 굴비를 구워 내놓은 것이라 했다.

그리고 하동을 거쳐 우리나라 최초로 건설된 현수교인 남해대교를 건너 이순신 장군의 전몰지인 관음포의 이락사 사당을 찾아 갔다. 공원조성 공사가 한창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쓴 "큰 별이 진 바다"라는 뜻의 대성운해(大星隕海) 현판이 걸려 있는 이락사(李落祠)에는 철갑을 두른 듯한 소나무가 서 있었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이자 가장 뛰어난 숙소인 남해힐튼 스파&리조트에 여장을 풀었다.
골프장 클럽하우스에 프런트데스크가 있었다. 저녁 식사 시간까지는 다소 여유가 있었으므로 우리 일행은 일몰을 구경하러 해변가로 내려갔다.

마지막 날(1.21 월)

밤 사이에 내린 비가 가랑비가 되어 계속 내렸다.
우리 일행은 리조트 Breeze Hall에서 함께 아침식사를 마치고 버스에 올랐다. 아침 9시부터 운행하는 금산 보리암행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조금 일찍 출발한 것이다.

남해의 독일인 마을에 이어 새로 개장한 미국인 마을(입구에 조그마한 '자유의 여신상'이 서 있음)을 지나갔다.
다도해 경관과 일출을 보기 위해, 또 기도를 하러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하는데 오늘은 비가 오는 탓에 관광객은 우리 일행 뿐이었다.

보리암은 낙산사, 강화 보문사와 함께 해수관음상이 서 있는 한반도의 유명한 기도처이다.
고려 말에 이성계가 왕이 될 수 있는지 하늘에 묻기 위해 기도를 했던 곳이다. 그가 기도응답을 받으면 이 산을 비단으로 두르겠다고 서원했다는데 실제로 조선 왕조를 개창한 다음 비단을 하사하려고 했다. 그러자 정도전 등이 백성에게 엄청난 부담을 주는 일이라며 반대하고 그 대신 금산(錦山)이라는 이름을 하사하라 했다고 한다.

우리 일행 중의 유일한 불교신자인 숙희 누님이 대표로 우리 모두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건강을 지켜주십사는 기도를 하셨다. 나머지 사람들은 "나를 다스리는 법"이라는 말씀을 소리내어 읽었다.

산에서 내려와 창선도에서 삼천포로 가는 3개의 연륙교를 건넜다. 다리 아래에는 멸치를 잡기 위한 죽방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죽방멸치는 멸치가 잡힐 때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때문에 맛이 좋아 최고의 품질로 친다.

 

그 다음 행선지는 점심식사를 하고 서울로 가는 고속도로를 탈 수 있는 진주였다.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민이 함께 먹었다는 육회를 조금 넣은 비빔밥과 쇠고기 무국, 불고기로 이번 여행의 마지막 식사를 하였다. 같은 비빔밥이라도 전주 비빔밥이 그 고장 소산의 풍성함을 즐기는 것에 비해 최소한의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만들어 먹었던 음식이라고 가이드가 설명했다.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우리 일행은 남강변의 촉석루와 논개 사당을 찾아갔다.
왜군이 진주성 함락을 축하하는 연회를 촉석루에서 열었을 때 논개가 왜장을 의암으로 유혹하여 그를 껴안고 남강에 투신하였다. 의기(義妓) 논개의 이야기는 어느 선비의 문집에 소개되어 세상에 널리 퍼졌다.

그러나 논개가 진주의 일개 기생이 아니라 장수현감 최경회의 나이 어린 첩으로 진주성 전투에 참여한 부군을 따라온 논개가 패전 후 낭군의 원수를 갚기 위해 한 행동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오늘날 일본에서는 논개 이야기가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위해 강물에 투신한 연인'으로 각색이 되었다 한다.

여행을 마치고

이번 남도여행을 결산해 보니 그 비용에 비해 몇 곱의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동기간의 유전인자(DNA)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알았다. 함께 살았던 기간은 10-20년에 불과하였지만 생각이나 습관, 취향의 공통점이 한 둘이 아니었다. 하늘나라에 가신 부모님을 비롯하여 형제들끼리의 공통된 추억을 나누는 것도 가슴 뭉클하였다.

1월 20일 마지막 밤 숙소의 한 방에 모여 함께 포도주를 마시면서 잊혀졌던 옛날 이야기를 나누며 동기간에 우애를 다졌다. 무엇보다도 이번 여행 자체가 볼거리와 잠자리가 좋았을 뿐만 아니라 각 고장의 특색있는 먹거리가 우리 모두를 즐겁게 해주었다고 말했다.

"사랑은 가슬 떨릴 때 하고, 여행은 다리가 떨리기 전에 해야 한다"는 말처럼 우리 형제들이 이렇게 여행을 함께 다닐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은 셈이다. 그래서 미국에 사는 형님 내외가 한국에 오시는 금년 가을에도 남해안 일주를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2]

 

* 2013년 10월 대전 경희 집 정원에서 형제들이 모였다.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훤일, 김민홍, 훤용, 이홍구, 훤장, 권광일, 경희, 숙희, 김미자, 정희

Note

1] 하나투어의 내나라여행(서부권 일부 3박4일) 패키지투어를 이용하였는데 우리가 가보고 싶었던 남도여행을 하면서 볼거리, 먹거리, 잠자리가 매우 훌륭하였다. 게다가 버스 좌석도 앞뒤로 널찍하였고 특히 가이드(김우연 총각)의 이야기거리도 풍성하여 형님, 누님들도 만족스러워 하셨다.

2] 2013년은 필자의 결혼 30주년이기도 해서 여름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백야(白夜)의 북유럽 여행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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