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내음의 보금자리/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향내음(蕙巖) 2013. 12. 20. 11:56

도를 수행하는 이가 어떻게 하는 것을 지혜라고 하는가?


 

조용히 선정[寂定]을 행할 때를 분명하게 알고 마땅히 관(觀)할 때를 알며, 지혜로 살필 때를 알고 법을 받아들일 때를 알며, 마음을 안정하게 가지고 선정에 들 때를 알고 선정을 좇아 일어나는 더디고 빠른 때를 알아야 한다.

 

자기 마음에 소유하고 있는 선과 악을 분별하기를, 비유하면 마치 훌륭한 의원이 뱃속의 병을 알아내는 것처럼 해야 하고, 마땅히 그 마음을 제어하여 방자하게 굴지 않기를, 비유하면 마치 건장한 코끼리가 구덩이나 우물에 빠지려고 할 적에 그 코끼리를 기르는 이가 잘 다루어 빠지지 않게 하는 것처럼 해야 한다.

 

도를 수행하는 이도 바깥에 집착하는 것을 끊어 없애는 것 또한 그와 같이 해야 한다.


마음이, 모든 생각[想]이 받드는 인연을 아는 것이, 비유하면 마치 지혜 있는 이가 음식물의 맛있는 것을 알 듯이 하고, 또한 요리사[宰人]가 임금이 마음에 들어하는 것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것을 알 듯이 그렇게 해야 한다.

 

또 일체를 해탈하는 방편으로써 나아가야 할지 멈추어야 할지를 분명히 알되,

비유하면 마치 금을 다루는 연금술사가 금의 좋고 나쁜 것을 분별하듯이 해야 한다.


가령 도를 수행하는 이가 밝은 지혜를 여의어 도의 갈래를 뚜렷하게 알지 못하고

마음에 두려움을 품거나, 옳은 것을 그르다고 하고 그른 것을 옳다고 한다면 지혜를 이루지 못한다.


가령 도를 행하는 이가 첫 번째 선정[禪]을 얻고, 두 번째 선정에 이르면

스스로 두려워하여 선정을 잃었다고 하기도 하는데,

이는 더욱 적정해지는 이치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혼자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괴이한 일이구나. 미혹함이여'라고 한다면,

설령 본래 선(善)과 호응한 기억이 있었다 하더라도 도리어 마음에 편함을 잃어 곧 달아나고 만다. 


기쁨과 희열에 머물러 정의(定意)를 여읜다면, 스스로 마음에 한계가 생겨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의심을 품는 것이 이와 같아서 곧 선정을 잃게 되어, 이룬 것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하고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룩했다고 말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선정의 뜻을 분명하게 알겠는가?


마음을 오로지 하고 뜻을 잡고서, 첫 번째 선정에 들어 마음은 멸진정(滅盡定)에 두는 것이니,

적절하게 이 행을 닦으면, 두 번째 선정에 들어가게 된다.


미(迷)해지게 된 이유는 오랫동안 세속 일을 익혀왔기 때문에 바른 진리와 모든 번뇌의 소멸을 알지 못하고,

진리를 분명하게 알지 못하므로 마음에 번뇌가 있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선정을 구하면서도 마음을 제어할 수 없으면 선정을 원만하게 갖추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수행하는 이라면 마땅히 이와 같은 잘못을 알아야 할 것이다.


가령 수행하는 이가 지혜로워서 이와 같은 미혹한 일을 짓지 않으면,

선정을 잃지 않으리니 이것을 지혜 있는 이라고 한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가령 몸의 모든 법을 분명히 깨달아 안다면 

  곧 그 마음이 돌아가야 할 길을 알게 될 것이니 

  방편을 내어 마음이 나아가는 바를 제지하되

  마치 쇠갈고리로 하얀 코끼리를 길들이듯 하라.

  

  그 선정의 의미를 분명히 깨달아 알고 

  또한 이렇게 고요히 관하는 법을 분별하여 

  항상 지혜로써 망설이지 않고 

  도덕에 머물기를 법교(法敎)대로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