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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헷 2007. 11. 12. 13:32

출처: 학생역갤 블로그 http://blog.naver.com/ggacn/90019388703

 

<스페인 테르시오>

17세기 초반 보병 방진 전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졌습니다. 첫 번째는 스페인에서 개발되어 카톨릭군이 주로 사용했던 테르시오 전술이었고, 두 번째는 네덜란드에서 개발되어 신교도군이 주로 사용했었던 선형 전술이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테르시오 전술을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테르시오 (Tercio)라고 하는 것은 스페인어로 ‘연대(聯隊), regiment’ 뜻하는 말입니다. 15세기에서 16세기 초반에 걸쳐서, 이탈리아를 놓고 스페인군과 프랑스군이 격돌하면서 곤잘로 페르난데즈 데 코르도바 (Gonzalo Fernandez de Cordoba)가 개발한 전술입니다. 파이크의 방진과 머스킷, 아르퀘부스 총병 진형을 적절하게 조합하여 적을 상대하는 방진을 뜻하지요. 이것은 1530년대에 거의 정형화 되어가고 있었고, 뒤로 갈수록 총병 비율이 높아지기는 했지만, 17세기 초반에 이르기까지 거의 무적의 전술로 군림하게 됩니다.

 


(테르시오를 개발한 위대한 장군, 곤잘로 페르난데즈 데 코르도바 (1453-1515).테르시오 전술을 개발하여 스페인군이 200년동안 무적 시대를 여는 토대가 된다.)

 

이 방진의 중심은 바탈리온 (대대(大隊), battalion)이라고 불리는 창병대의 전열입니다. 지금 현대 군대에서는 소대-중대-대대-연대의 순으로 올라가지만, 17세기에는 보병 연대의 하부 직속 단위는 중대(company)였습니다. 대규모 회전 당시, 몇몇 중대들이 모여 형성하는 파이크병의 전열을 대대라고 했고, 이 규모가 중대와 연대의 중간 규모 정도 되었기 때문에 현대 군대의 체계에 도입된 듯 합니다. 이 바탈리온의 중앙부에는 장교들이 보호를 받으면서 지휘했으며, 파이크병은 마케도니아의 팔랑크스스위스의 파이크 방진과 마찬가지로 방진을 형성하여 기병대의 돌격을 막아내었지요.

이 때 테르시오의 전방에는 주로 중갑주를 갖추어 입은 정예 파이크병을 주로 배치시켰고, 그 뒤에는 갑옷 일부만을 갖추어 입은 파이크병, 마지막으로는 가죽 갑옷만을 입거나 갑옷을 입지 않은 파이크병 (주로 신병)을 배치시켰습니다. 이 때문에 테르시오는 정예병력만이 적의 기병대를 상대하였으며, 뒤쪽의 신임 파이크병은 점점 경험과 돈이 쌓여 가면서 갑주를 갖추어 입고 앞쪽 전열로 시간이 지나면서 승진해 갔지요.

  

(테르시오의 파이크병의 모습)
 
이러한 방진을 중심으로, 총병들이 사방에 느슨한 형태로 둘러싸면서 사격을 하게 됩니다. 사정거리가 길지만 장전 시간이 오래 걸리는 머스킷병들은 주로 파이크병과 가까운 쪽에 배치되었고, 빠른 속도의 사격이 가능한 아르퀘부스 병력들은 좀 더 먼 쪽에 배치되었습니다. 총병들은 적에게 사격을 가하다가, 적이 가깝게 접근하면 파이크 병의 뒤로 숨거나, 파이크병 주변을 돌면서 사격을 계속했지요. 이러한 파이크 방진과 총병의 결합은 사면에서 공격하는 적에 대해서도 매우 강력한 저항력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스페인 테르시오의 모습. 가운데 파이크의 바탈리온이 보이고, 그 주위를 총병들이 둘러싸고 있다. 총 3,000명 정도의 전술 단위이다.)

 

<독일 테르시오>

이 스페인 테르시오가 독일로 들어와서는 약간의 변형을 겪게 됩니다. 약 3,000명의 전술 단위 방진이었던 테르시오는 독일에서는 좀 더 기동력을 살리기 위해 작은 단위의 테르시오로 구성되게 됩니다. 이것은 독일의 연대들의 정식 정원 역시 3,000명이었으나, 대부분 1,000-2,000명 선밖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지요.

카톨릭 리그의 총사령관이었던 틸리 백작이 주로 선호했던 것은 2,000명의 전술 단위 방진이었습니다. 스페인 테르시오에서는 총병들이 사방에 분포되어 있어서, 전면에 집중되는 화력은 떨어지게 됩니다. 이 때문에 틸리 백작은 파이크병의 뒤쪽에 배치된 총병을 줄였고, 양 옆 (슬리브(sleeve)라고 부름)과 파이크 방진 앞쪽에만 총병을 배치하였지요.

 


(17세기 초, 독일에서 변형된 형태의 테르시오. 카톨릭 리그군의 2,000명 단위의 테르시오, 제국군의 1,000명 단위의 테르시오가 있다. 크게 보려면 클릭)
 
 

이에 반해, 신성로마제국군의 연대는 대부분 1,000명을 조금 웃도는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주요한 전술 단위는 1,000명 단위의 테르시오였습니다. 테르시오의 규모가 커질수록 기민한 움직임은 힘들었지만, 대신 그 규모 때문에 적의 공격에 대한 저항력은 매우 강했습니다. 원래 전투 중에는 군중 심리에 휩싸이기 마련인데, 적은 규모의 전술 단위는 적의 공격이 가해지면 빨리 무너졌지만, 큰 규모 전술 단위는 강한 공격에도 상당 기간 저항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틸리 백작은 화력과 기동력보다는 사기와 쇼크 효과를 더 중요시했기 때문에 큰 전술 단위를 선호했다고 전해집니다. 


<테르시오의 진격과 사격>

테르시오와 상대편 방진이 접촉했을 때 물론 파이크 밀치기 (Push of Pike; 파이크병 사이의 전투)로 전투가 결정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전 편에도 말씀 드렸다시피 당시의 주요 화력은 총병이었습니다. 이 총병들이 여러 횡열로 서 있었기 때문에 총병들이 전면에 나서서 화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반대 행진 (countermarch)라고 불리는 전술이 필요했습니다. 이것은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총을 쏜 병사가 횡열의 뒤쪽으로 돌아가는 행진을 말합니다.

 


(카운터 마치(반대 행진)의 모습. 사격을 한 총병은 뒤로 돌아가 장전한다.)

 

물론 테르시오의 총병들은 한 개 횡열이 일제히 사격한 후 뒤로 돌아가고, 한 개 횡열이 일제 사격 후 뒤로 돌아가는 것 같은 형태의 정교한 집단 사격은 하지 않았습니다. 각각의 병사들이 스스로 준비되는 대로 발포하고, 다시 뒤쪽으로 돌아가서 장전하고 했지요. 이 때문에 총병들은 그리 많은 훈련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인 경우, 계속된 사격을 위해서는 1분에 5열 정도의 사격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계속된 카운터마치를 통해 1열이 12초당 한 발씩을 쏘아대는 것이었지요. 그럼, 계산을 해 보겠습니다. 아르퀘부스의 경우, 분당 1회 사격이 가능했으니 만약 연속적으로 사격하기 위해서는 

 5 (열/분) / 1 (회/분) = 5 (열)

즉, 연속된 사격을 위해서, 아르퀘부스는 5열이 필요했습니다. 같은 계산법으로, 3분당 1회 사격이 가능했던 더블 머스킷의 경우에는

 5 (열/분) / 0.333 (회/분) = 15 (열)

이 필요했지요.


 

(테르시오의 장교. 주로 할버드나 파르티잔을 들고, 바탈리온의 안쪽에서 지휘했다.)

 

즉, 제국군의 테르시오는 얼추 15열에 맞아 떨어지고, 카톨릭 리그 테르시오는 26열이므로

15/26 = 58% 정도의 화력이 발휘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쉬는 사람 없이 계속해서 발사한다면 15열으로 족하고, 나머지 11열은 일종의 화력 완충 역할을 했습니다. 테르시오의 파이크병이 전진하게 된다면 분당 60m 정도의 속도로 전진했다고 하는데, 15열의 총병들로만 이루어진 전열이 쏘면서 전진할 때에는 분당 30m 정도의 밖에 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카톨릭 리그 테르시오는 40% 정도의 잉여 화력이 있었기 때문에, 파이크병과 같은 분당 60m 정도의 속도로 전진하면서 계속해서 총을 쏘아댈 수 있는 이점이 있었지요.
 
 

(독일 파이크병이 형성한 테르시오의 모습)

 

<테르시오의 약점과 강점>

1. 테르시오는 화력의 60%만 발휘한다 (화력 효율이 떨어진다) 
         <-> 빠른 속도로 전진하면서도 계속된 사격이 가능하다.

 


2. 규모가 커서 움직임이 둔중하다 
         <-> 사기 효과가 커서 전열이 잘 무너지지 않는다.

3. 전후 좌우에 총병을 배치시킴으로써 전면 화력이 떨어진다. 
         <-> 포위 공격 당할 시에 유리하다.

4. 병력의 밀집도가 커서 대포에 약하다.
         <-> 적과 접촉했을 때 이러한 밀집도로 강력한 파괴력을 발휘한다.

5. 사격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자유로운 사격으로, 총병들이 철저하게 훈련받지 않아도 빨리 익숙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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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헷 2007. 11. 12. 11:59

출처: 학생역갤 블로그 http://blog.naver.com/ggacn/90019388703

 

이글은 학생역갤님의 허락을 받고 퍼온 글입니다. 근세 유럽군대의 특징과 용병 그리고 전투사례 순으로 올려보겠습니다.

 

 

 

 

 

 

<근접 무기>


 

이번 편에서는 17세기 초반 보병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합니다. 우선, 보병대의 무기부터 알아보기로 하지요. 보병대의 무기는 근접 타격 무기와 원거리 무기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중세를 특징짓는 보병대의 무기가 검, 창, 할버드와 같은 근접 무기와 활로 대표되는 원거리 무기라고 한다면, 근세에 이르러서는 근접 무기에 있어서는 , 원거리 무기로는 머스킷이 그 역할을 맡게 됩니다.

 


(중세 말기 잠깐 인기가 있었던 검/버클러(둥근 방패) 조합은 17세기에는 사라졌다.)
 
 
근접 무기로서의 창(spear)은 파이크(pike)라는 형태로 살아남았습니다. 파이크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긴 창을 말한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약 18피트 (5.5m) 가 표준 길이였지만, 일부는 15피트 (4.6m), 혹은 12피트 (3.6m)짜리도 있었지요. 파이크는 그 길이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휘둘러서 적을 치는 무기는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주로 기병대의 돌진을 막아내기 위해 파이크 방진을 만드는 데 쓰였지요. 즉, 고대 그리스의 팔랑크스(phalanx) 대형과 유사한 고슴도치와 같은 방진을 짜서 3m 정도의 랜스를 들고 돌격을 감행하는 기병대로부터 보병대를 보호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스위스 파이크병. 이 병종은 중세 당시 기병대조차 무찌르는 무적의 보병대로 명성이 높았다. 이제 주력은 아니었지만, 파이크는 17세기에도 살아남았다.)
 
 
물론 17세기의 근접 무기가 파이크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보병 장교나 혹은 하사관의 경우 할버드 (halberd), 파르티잔(partisan-삼지창과 같은 형태의 창), 하프-파이크 (짧은 단창)을 들고 방진을 지휘했지요. 또한 대부분의 보병 (총병 포함) 들은 허리에 단검을 차고 있는 경우가 많았지만, 거의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할버드의 창날. 도끼창으로 불러야 하려나?)
 

(이것이 파르티잔의 창날이다. 삼지창과 유사한 면이 있다.)
 
 

이들의 방어구는 여러 종류가 있었습니다. 몸통 갑옷 (corslet), 가슴 갑옷(breastplate), 등 갑옷 (backplate), 넙적 다리 갑옷(thigh-pieces), 팔받이 (brassard), 엉덩이 갑옷 (tasset), 투구(helmet)을 완전 착용한 파이크병부터 시작하여, 가슴 갑옷과 투구만 착용한 병사, 아니면 헬멧과 가죽 갑옷만을 입은 병사까지 다양했지요. 주로 앞 열에 서는 정예 병력이 중갑주를 입고 있었으며, 오래된 부대일수록 갑옷을 입은 비율이 높았습니다.


 

 


(어느 정도 갑주를 갖추어 입은 파이크병. 하지만 갑주가 없는 파이크병도 많았다.)
 
 
 
<원거리 무기, 머스킷 – 격발 방식에 따른 분류>

이제 활의 시대는 저 멀리 가버렸고, 야전 보병대는 총병이 그 화력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었습니다. 위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파이크’ 는 방어형의 무기였지 실제 적을 향해 휘두르면서 돌격하는 무기가 아니었습니다. (5미터 이상의 무기를 휘두르면서 돌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죠) 즉, 적을 타격하는, 적에게 실제 피해를 입히는 무기는 총이었지요.
 
 
 
(이것이 화승총)
 

당시의 총은 격발 방식에 따라 주로 세 가지 방식으로 나뉘었습니다. 가장 원시적인 것이 화승총 (matchlock) 이라고 부르는 것이었지요. 화승총은 말 그대로 화승(천천히 타는 심지)를 이용하여 화약에 불을 붙이는 형태였습니다. 화승총은 높은 불발율(20%), 다음 사격까지의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점, 화승을 계속 적당한 길이로 유지시켜 주어야 한다는 점, 또 야습에 불리하다는 점 (타는 화승의 불빛이 위치를 노출시킴), 주변의 화약에 불이 붙기 쉽다는 점 (따라서 화약 경비병은 이 총을 사용할 수 없었음) 등의 많은 단점이 있었으나, 싸고, 만들기 쉽고, 튼튼하다는 점 때문에 당시의 보병총은 대부분 이 형태였습니다.

 

 

(위쪽이 화승총. 불붙은 심지가 화약에 불을 붙이는 간단한 방식이고, 아래쪽이 회전식 격발 장치이다. 방아쇠를 당기면 아래쪽의 바퀴가 작동하여 화약 접시의 뚜껑을 열면서, 황철광이 그곳을 때리면서 발화하게 한다.)
 
 
 
두 번째가 회전식 격발 총(wheellock) 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스프링이 달려 있는회전식 장치의 끝에 붙어 있는 황철광 (pyrite)이 강하게 강철을 두들길 때 나는 불꽃을 이용하여 화약을 격발하는 총이었습니다. 이 회전식 격발 총은 화승총에 비하여 절반 정도의 불발율 (10%) 을 보였으며, 발사 시간도 절반 정도였습니다. 이 형태는 화승총의 많은 단점들을 보완할 수 있었습니다만, 비싸다는 단점 때문에 엘리트 병력 혹은 기병총으로 주로 사용되었지요. 또 이 회전식 격발 총은 상당히 복잡한 형태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기계적으로 민감하여, 개머리판으로 적을 두들긴다든지 하면 망가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당시 기병용 권총. 회전식 격발 장치로 되어 있다.)
 
 

세 번째는 부싯돌식 격발 총(flintlock) 이라고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이 형태의 가장 초기 버전인 스냅펀스 (snaphance)라고 하는 형태였는데, 이것은 부싯돌을 철과 마찰시켜 내는 불꽃으로 점화시키는 형태였는데, 회전식 격발 총에 비해 좀 더 간단한 구조였고, 가격도 약간은 싼 편이었지만 이 ‘고급’ 기술은 오직 기술 선진국인 네덜란드에서만 이용되었습니다. 그러니, 30년 전쟁 당시의 대부분의 보병총은 화승총, 기병총은 회전식 격발 총으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스냅펀스. 왼쪽의 새 머리처럼 생긴 것에 부싯돌이 꽂혀 있고, 이것이 강철을 내리치면서 불꽃을 튀긴다. 신기술로, 네덜란드 이외에는 거의 쓰이지 않았다.)
 
 
 
<원거리 무기, 머스킷-구경과 구경장 등에 따른 분류>

당시의 총은 비교적 구경이 작고 사정거리가 짧은 아르퀘부스(arquebus) (임진왜란 당시의 조총을 생각하시면 될 듯) 에서 구경이 크고 멀리 나가는 머스킷으로 진화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초기 전투에서 아르퀘부스가 사용되기도 했었습니다만, 30년 전쟁 후기에 접어들게 되면 대부분이 머스킷만을 사용하게 되지요. 당시의 머스킷의 제원은 다음과 같습니다. 


(왜군들의 아르퀘부스.빠른 속도의 사격이 가능하지만, 사정 거리가 짧고 약하다)
 
 
                          탄환(g) 길이(m) 중량(kg) 발사 속도(분/발) 사정 거리(m)
Heavy Musket         57     1.65         9.1            3 (1.5)             230
Standard Musket     38     1.40         7.2            2.5 (1.25)         210
Half Musket            30     1.22         6.4            2 (1)                180
Caliver                   28      1.14        5.5            1.5 (0.75)         140
Arquebus               19      1.02        5.5             1 (0.5)              90
 
이 중 발사 속도는 화승총을 기준으로 한 것이며, 회전식 격발이나 부싯돌식 격발의 경우에는 2배 정도 빨랐습니다. (괄호 안의 발사 속도) 또한, 숙련된 사수의 경우에는 아르퀘부스를 분당 3발 정도로 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머스킷은 상대적으로 무거웠으므로, 레스트 (rest)라고 부르는 지지대를 사용하여 사격하였다.)

 

스페인군과 카톨릭군은 주로 강력한 화력과 긴 사정거리를 위주로 하는 스페인형 머스킷(중 머스킷 Heavy Musket)과 빠른 속도를 중요시하는 아르퀘부스를 함께 사용했지요. 반면 신교도들은 주로 표준 머스킷(Standard Musket) 이나 하프 머스킷(Half Musket)으로 통일하여 사용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형태의 머스킷 내에서도 워낙 많은 변종이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구교도와 신교도 사이의 보병 병기의 차는 그다지 크게 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정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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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헷 2007. 4. 23.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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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풍문고 종로점과 강남점, 반디앤 루디스 삼성동에도 없더군요... 혹시 이 책을 파는 곳을 보신 분게선 제보좀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