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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봉 2019. 5. 13. 21:33


민주화에서 평화로:

한반도 대전환 시대, 한반도 통일과 동북아 평화를 위하여

 

 

                                                                      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평화학 교수)

 

 

1. 민주항쟁의 죄인에서 평화와 통일 운동가로

 

도쿄에서 열리는 5.18 광주민주항쟁 기념식에서 강연하게 된 게 참 죄스럽기도 하고 몹시 영광스럽기도 합니다. 먼저 일본에서까지 39년 전의 민주항쟁을 기념하시는 여러분께 존경을 표합니다.

저는 민주항쟁 또는 민주화운동의 죄인입니다. 채만식이 1947년 펴낸 자전적 소설 󰡔민족의 죄인󰡕에서 따온 말입니다. 그는 이 소설에서 해방을 두어 해 앞두고 일제의 압력을 끝내 견디지 못하고 일본에 대한 협력을 권고하는 강연에 몇 번 나섰던 자신을 민족의 죄인이라 자처하며 고해성사를 합니다. 소설 마지막 부분에, 해방을 맞아 학생들이 친일파였던 교사를 규탄하는 데모를 벌이는데, 반장이면서도 상급학교 입시준비를 핑계로 서둘러 귀가한 조카에게 데모 주동은 못할망정 슬며시 빠져 나왔느냐며, 퇴학을 맞아도 좋고 입시에 떨어져도 좋으니 당장 학교로 돌아가 데모에 참여하라고 호통치는 대목이 나옵니다.

19805월 대학가에서 민주화시위 없이 하루해가 지지 않던 이른바 서울의 봄을 보내며 저는 단 한 번도 시위에 참여해보지 않았습니다. 정치외교학과 2학년 대표를 맡았지만 데모를 주동하기는커녕 단순참가조차 해본 적이 없었지요. 채만식의 조카처럼. 5월 광주항쟁은 북괴의 사주를 받은 폭도들의 반란이고, 김대중은 내란의 수괴 빨갱이라는 뉴스를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의식 없고 개념 없는 정치학도였습니다.

1983년 미국에 건너가 공부하며 광주항쟁의 진실을 알았습니다. 광주에서의 학살을 계기로 폭풍처럼 불어 닥친 한국의 반미주의에 관해 석사논문을 썼습니다. 나아가 반미주의에 관해 박사논문까지 쓰고 1994년 귀국해 평화운동과 통일운동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습니다. 집안에서는 자식들과 조카들에게, 직장에서는 학생들에게, 민주화 시위에 동참하도록 부추기며 평화와 통일을 외쳐오고 있습니다. 채만식처럼.

20대에 진보적 생각을 갖지 않으면 가슴이 없는 사람이요 40대가 지나서도 그러한 기질을 지니면 머리가 없는 사람이라는 서양속담을 따른다면, 저는 가슴도 없고 머리도 없는 셈이니 그야 말로 새가슴에 골 빈 놈이지요. 지난날 민주화운동에 전혀 기여하지 못한 죄를 조금이나마 갚기 위해, 앞으로 죽을 때까지 평화운동과 통일운동에 힘을 보태겠다는 생각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2. 한반도 대전환

 

20184월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대전환 시대가 열렸습니다. 한반도에서 가장 비정상적인 상황이 매우 크게 변하게 된 것입니다. 네 가지만 꼽습니다.

첫째, 73년짜리 한반도 분단체제가 끝나고 있습니다. “남북 관계의 전면적이며 획기적인 개선과 발전을 이룩하기로 합의함으로써, 1945년부터 유지해온 한반도 분단 상태에서 벗어나 통일의 문턱에 이른 것입니다. 남한 정부의 통일정책 제1단계 화해협력을 통한 평화공존이 이미 시작되었고, 문재인 정부 임기 안에 실질적통일까지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둘째, 70년짜리 적대적 북미관계가 변하고 있습니다. 북한과 미국이 새로운 관계를 설립하기로 합의함으로써, 두 나라가 1948년부터 지속해온 적대관계를 끝내고 국교를 정상화할 것 같습니다.

셋째, 65년짜리 한국전쟁 정전체제가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전쟁을 종결하고 안정적 평화체제를 구축하기로 합의함으로써, 1950년부터 1953년까지 3년간 싸우고 어정쩡하게 멈추거나 (停戰) 쉬고 있는 (休戰) 비정상에서 벗어나 65년 만에 종전 (終戰) 선언과 평화협정을 불러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넷째, 25년짜리 북핵문제가 풀리고 있습니다. 남한-북한-미국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이루기로 합의함으로써, 1993년부터 한반도 안팎에서 갈등과 긴장을 불러온 북한의 핵무기개발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북한 핵무기미국 핵위협이 없어지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한반도가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죠.

한반도 대전환 시대에 한반도 평화와 통일 및 동북아 안정과 번영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이른바 북핵 문제로 얽히고설킨 북한과 미국 관계입니다. 둘째, 중국의 급성장에 따른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또는 무역전쟁입니다.

 

 

3. 북한과 미국 관계: 70년 적대 관계에서 새로운 관계로

3-1) 트럼프 대통령의 미치광이 전술: 노벨평화상과 대통령 재선을 위하여

 

2019227-28일 베트남에서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릴 때 미국 언론은 거의 모두 트럼프 대통령의 변호사였던 코언 (Michael Cohen)의 의회증언을 집중 보도했습니다. 트럼프에 관한 온갖 추문이 쏟아진 증언이었지요. 미국 일반시민들은 북미정상회담 자체를 거의 모르고 있었습니다. 북한 문제에 별 관심이 없다는 뜻입니다. 미국 주류정치세력, 군부 및 군산복합체, 여론주도세력 등은 북미관계 진전을 반대하거나 방해해왔습니다. 기득권이 침해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남한의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수구 야당과 조선일보를 포함한 극우 언론이 남북 사이의 화해협력에 반대하며 저항하는 논리와 비슷하지요.

이런 상황에서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끝나자 회담 결렬자체가 언론 톱뉴스로 떠오르고 야당은 이를 지지하거나 반겼습니다. 유권자들은 북미회담에 큰 관심을 갖지 않고 야당은 북미관계 진전을 방해하는 터에, 코언의 증언으로 정치적 곤경에 빠진 트럼프가 언론의 주목을 받기 위해 북한과의 협상에서 미미한 성과를 거두기보다는 차라리 협상을 깨트려버리는 게 낫다고 판단하지 않았을까요? 트럼프의 미치광이 전술입니다. 미친놈처럼 굴며 상대의 양보나 굴복을 받아내는 협상기술이지요.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곧 만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정은과의 협상을 통해 꼭 얻고자 하는 게 있기 때문입니다. 크게 두 가지로 보입니다. 첫째는 201912월 노벨평화상을 받는 것이요, 둘째는 202011월 대통령에 재선되는 것입니다.

첫째, 트럼프는 작년부터 노벨평화상을 받기 원했습니다. 틈만 나면 비판하는 전임자 오바마 대통령은 집권 첫해 2009년 특별한 업적도 없이 이 상을 받았습니다. 트럼프가 얼마나 수상을 원하면 체면 사납게 아베 일본총리에게까지 추천해달라고 부탁했겠어요? 후보는 매년 9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 5개월간 추천할 수 있는데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에 따르면 올해는 219명의 개인과 85개 단체가 추천되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1월 말 마감 이후 심사기간 중에도 추천할 수 있기에 더 늘어날 수 있습니다. 9월까지 심사를 마치고 10월 초 수상자를 발표하기 때문에, 트럼프가 노벨평화상을 받으려면 늦어도 8-9월까지 세계평화를 위한 획기적 성과를 거두어야 합니다. 영변핵시설 폐쇄와 제재해제 및 연락사무소 개설 정도의 작은 거래 (small deal)’는 노벨평화상감으로 족하지 않습니다. 북한과의 협상에 대한 미국 정계와 언론의 부정적 시각을 덮기도 부족하고요. 모든 핵시설 폐쇄와 평화협정 및 수교 정도의 큰 거래 (big deal)’라야 온 세계의 관심을 받으며 노벨평화상을 확보할 수 있겠지요. 트럼프가 이것을 기대하며 하노이에서의 작은 거래를 뒤집어버리는 미치광이 협상전략을 써먹은 게 아닐까요?

둘째, 트럼프는 202011월 대통령 재선을 원합니다. 민주당은 2월부터 예선을 시작해 7월 전당대회를 통해 대선 후보를 결정합니다. 공화당은 트럼프에게 큰 탈이 생기지 않는 한 8월 전당대회에서 그를 후보로 지명할 것입니다. 9월부터 불꽃 튀는 선거운동이 전개되고 113일 선거가 실시됩니다. 언제든 미국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경제문제입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후보 선택의 제1 결정 요인이란 말이죠. 20171월 트럼프 집권 이후 20195월 현재까지 미국 경제는 괜찮은 편입니다. 그가 큰소리치는 대로 경제성장률과 실업률 등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거든요. 많은 국제경제학자들의 예상대로, 이르면 2019년 후반기 늦어도 2020년부터 세계경기가 침체되어 미국 경제에 빨간불이 켜지더라도 트럼프의 잘못으로 돌리기 어려울 것입니다. 선거에서 더 유리해지려면 이른바 플러스 알파가 필요합니다. 경제업적에 안보성과를 덧붙여야 백악관에 다시 들어가는 길이 더 넓어진다는 뜻입니다. 안보성과를 가장 얻기 쉬운 곳이 한반도입니다. 선거 이전까지 주한미군 철수와 북한 핵무기 완전 폐기를 바꾸면 됩니다.

주한미군 철수는 트럼프의 2016년 대선 공약이기도 합니다. 주한미군의 가장 크고 중요한 역할은 급속하게 떠오르는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는 데 있기 때문에 군산복합체와 주류정치세력의 거센 저항과 반발이 있겠지만, 트럼프는 국방비 절감을 내세우며 밀어붙일 뚝심을 지니고 있습니다. 북한과 평화협정을 맺고 국교정상화까지 이룬 터에 주한미군이 왜 필요하냐는 주장으로 유권자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트럼프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김정은으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선물이 또 있습니다. 19681월 원산 앞바다에서 나포되어 지금까지 대동강변에 전시되고 있는 미국해군정보함 푸에블로호를 돌려받는 것이죠. 미국해군 역사상 가장 큰 치욕을 조금이나마 씻을 수 있거든요. 미국이 오래 전부터 돌려받기 원했기에 김정은이 당장 반환한다고 해도 트럼프는 거부하리라 생각합니다. 2019년 가을쯤 돌려달라면서. 대통령선거에 활용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3-2)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벼랑끝 전술: 경제집중 로선을 통한 경제발전을 위하여

 

2019227-28일 베트남에서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북한은 5월 현재까지 적어도 세 번 신형 전술유도무기 사격시험또는 화력타격훈련실시했다고 보도했습니다. 417, 54, 59, 새로운 종류의 단거리미사일을 쏘아올린 모양입니다. 흔히 북한의 도발이라고 하는데, 저는 트럼프의 미치광이 전술에 맞서는 김정은의 벼랑끝 전술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상대를 벼랑끝으로 몰고 가며 양보나 굴복을 받아내는 협상기술이지요.

그러나 김정은 역시 트럼프를 곧 만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트럼프와의 협상을 통해 꼭 얻고자 하는 게 있기 때문입니다.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미국의 경제제재에서 벗어나 경제발전을 이룩하는 것이요, 둘째는 미국과의 평화협정을 통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는 것이겠지요.

첫째, 북한은 2016년부터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을 추진해오고 있습니다. 2020년까지 성과를 내야합니다. 20179월 수소폭탄 시험 및 11월 대륙간 탄도미사일 (ICBM) 시험에 성공하면서 핵무력 완성을 선포하고, 20184경제집중 로선정책을 선언했습니다. 군사건설을 끝냈으니 경제건설에 전력을 기울이겠다는 것이지요.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적대 관계를 끝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과 유엔의 대북제재를 풀 수 없고, 제재가 풀리지 않는 한 남한이든 중국이든 러시아든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이나 협력을 추진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직접 투자하지는 않더라도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 (IMF)을 통해 북한에 투자가 들어가고, 일본의 식민통치 보상이나 배상금도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둘째, 김정은과 트럼프가 20186월 제1차 북미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핵심 내용은 새로운 조미관계 수립과 조선반도에서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트럼프는 조선에 안전 담보를 제공하기로 확인하고, 김정은은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확고부동한 의지를 재확인한 것이지요. 한반도 비핵화란 미국 (주한미군)의 핵위협과 북한의 핵무기가 없어지는 상태를 뜻합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기 시작한 것은 주한미군의 위협 때문이었습니다. 2006년부터 2017년까지 미국의 온갖 제재와 압박을 받으며 6번의 핵시험을 거쳐 핵무력 완성을 선포했는데, 미국의 경제제재 완화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까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죠.

20006월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주한미군을 용인한다고 말했다거나 200010월 평양을 방문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는 것은 일시적으로 상대를 안심시키는 협상전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김정은도 핵무기를 보유한 상태에서는 주한미군을 용인할 수 있겠지요. 주한미군 철수 없이는 핵무기를 결코 폐기하지 않을 테고, 핵무기 폐기를 통해 주한미군 철수를 이루는 게 그의 목표이리라 생각합니다.

 

 

4. 미국과 중국 관계: 무역전쟁과 패권경쟁

 

4-1) 중국의 급성장

 

중국은 1978년부터 개혁개방을 실시하며 1980년 경제특구를 설치하기 시작했습니다. 1992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채택하고 2001년 세계무역기구 (WTO)에 가입했고요. 2010년대 초반까지 30년 이상 지속적으로 연평균 10% 안팎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세계경제를 주도해온 G7 국가들 가운데 미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들을 2010년까지 따라잡았습니다. 1993년 캐나다, 2000년 이탈리아, 2005년 프랑스, 2006년 영국, 2007년 독일, 2010년 일본을 추월한 것이죠. 국내총생산 (GDP)을 시장환율 (MER)이 아닌 구매력평가지수 (PPP)로 계산한다면 2014년 미국까지 추월했습니다. 또한 2009년 독일을 제치고 세계 제1수출대국이 되었고, 2012년 미국을 제치고 세계 제1무역대국이 되었습니다.

중국은 이러한 급속하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1990년대부터 국방비를 크게 늘려왔습니다. 2000년대부터는 경제성장률을 웃도는 연평균 12% 안팎의 국방비 증가율을 보였습니다. 세계 군비지출 7대국 가운데 중국의 군비지출이 1990년대 말까지는 맨 꼴찌였지만, 2005년부터는 미국에 이어 2위를 기록했습니다. 2010년부터는 러시아, 프랑스, 영국 등 미국을 제외한 다른 군사강국들보다 두 배 이상의 군비를 지출해오고 있고요.

미국에 맞서 해양전력을 본격적으로 증강시키며 대만해협을 포함한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미국의 개입을 무력화하는 작전을 세워놓았습니다. 중국과 가까운 바다에서는 미국함대의 접근을 막고, 조금 더 먼 바다에서는 미국함대의 작전을 방해하겠다는 접근반대 및 지역거부 (反介入/区域拒止, anti-access and area-denial)’ 전략입니다. 구체적으로 미국 항공모함을 추적하여 격침시킬 수 있는 세계 최초의 중거리 지대함 (地對艦) 다탄두 (多彈頭) 탄도미사일을 개발해 2009년 공개했습니다. ‘항공모함 킬러로 평가받고 있는 미사일이지요. 2014년엔 미국의 미사일방어망 (MD)을 뚫을 수 있는 마하 10 (시속 약 12,000km) 이상의 극초음속 미사일을 개발했습니다.

시진핑 주석은 201710월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신시대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를 통해 2050년까지 세계 제1의 국가가 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중국공산당 창립 100주년이 되는 2021년까지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넘는 소강 (小康) 사회를 이루고,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 모든 인민이 함께 부강해지는 대동 (大同) 사회로 나아간다는 내용입니다. 강한 군대 건설을 유달리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2020년까지 군대의 기계화와 정보화를 실현하고 2035년까지 국방 현대화를 달성하며 2050년까지 세계 일류 군대를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전 세계를 땅길과 바닷길로 연결한다며 야심차게 추진해온 일대일로 (一帶一路)’ 정책을 바탕으로 중국의 꿈 (中國夢)’과 아울러 강한 군대의 꿈 (强軍夢)’도 이루겠다는 것이지요.

 

4-2) 미국의 견제와 봉쇄

 

미국 대외정책의 제1목표는 위와 같이 급속도로 떠오르는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여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지위를 지키는 것입니다. 1991년 소련 해체 직후부터 새로운 경쟁국의 재등장을 막기 위해 대외정책 및 국방전략 분야에서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위해 특히 중국의 경쟁국 일본을 활용해왔습니다. 1996년 일본과 안보공동선언을 발표하고, 1997년 일본과 방위협력지침을 개정했습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일본의 재무장을 막고 있는 평화헌법을 수정해 보통국가가 되도록 촉구하면서 일본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진출하도록 지원했고요. 2015년엔 일본과의 방위협력지침을 다시 개정하고, 2016년엔 일본 안보법제를 개정하도록 이끌었습니다.

트럼프가 201712월 발표한 미국의 국가안보전략 핵심 내용은 일본과 호주 그리고 인도와의 4각협력 (quadrilateral cooperation)을 증진시켜중국을 봉쇄한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인도-태평양 전략인데, 이 지역이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고 경제가 가장 역동적이거든. 2011년 오바마 행정부 때 클린턴 국무장관이 중국 견제와 봉쇄를 강화하기 위해 채택했던 아시아 회귀 (pivot to Asia)’ 또는 아시아 재균형 (Asia rebalancing)’ 전략을 조금 수정한 것입니다.

트럼프가 중국을 견제하며 압박하려는 데는 경제적 배경이 큽니다. 중국에게 1년 평균 3,500억 달러의 무역적자를 보거든요. 최근 5년간 미국이 일본에겐 연평균 700억 달러, 남한에겐 200억 달러 정도의 무역적자를 보고 있는데 동맹국이라는 일본과 남한에 압박을 가하며 자유무역협정 (FTA)을 다시 협상하자고 했던 것과 비교해보시기 바랍니다. 트럼프가 20185월 현재까지 중국에 지속적으로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유입니다.

 

 

5. 남한의 과제와 선택: 북미 사이의 중재, 미중 사이의 균형과 중립

 

남한은 북한과 미국의 70년 적대관계 사이에 끼어있으며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사이에 끼어있기도 합니다. 한반도 대전환 시대를 맞아 안으로는 평화를 정착시키고 통일로 나아가며 밖으로는 동북아 안정과 번영을 위해, 북미 사이에서는 중재를 잘 하고 미중 사이에서는 균형을 잘 잡는 게 바람직합니다.

북미관계가 진전되면 남한은 뒤따라가면 되지만, 정체되면 앞장서 이끌어야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북한과 평화공존 및 통일을 추구하며 화해협력을 진전시키려면 미국으로부터 동맹에서 이탈하지 말라는 압력을 받기 마련이고, 미국과의 동맹을 바탕으로 한미공조를 내세우면 북한으로부터 외세에 의존하지 말고 민족의 이익을 앞세우라는 비판을 받기 십상입니다. 우선 세 가지를 제안합니다.

첫째, 남북협력을 통해 남한 경제 살리기부터 힘써야 합니다. 개성공단은 북한에 대한 경제 지원보다 남한 경제를 살리는 길이거든요. 남한의 중소기업인들이 개성 말고 이 세상 어디에서 평당 15만원 이하의 공장부지를 얻어 월급 15만원도 되지 않는 노동력을 구할 수 있겠어요? 퍼주는 곳이 아니라 퍼오는 곳이지요. 미국의 대북제재로 남한의 중소기업인들이 엄청난 피해를 보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둘째, 한국전쟁부터 끝내고 한반도 평화 만들기에 나서야 합니다. 1950년 시작되고 1953년 멈춘 전쟁을 미국의 반대로 완전하게 종식하지 못하고 있는 극도로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미국-중국, 중국-남한, 남한-북한 사이의 전쟁은 끝났지만, 북한-미국 사이의 전쟁만 미국의 거부로 끝나지 않고 있잖습니까.

셋째,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통한 평화와 통일을 가로막는 한미동맹을 약화하거나 해체해야 되고, 주한미군 감축과 철수를 준비해야 합니다.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은 냉전시대에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남한의 미국의 보수/극우 세력은 여전히 한맹동맹 강화와 주한미군 유지를 국가 목표처럼 간주합니다. 한미동맹 약화나 해체 또는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를 우려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거부하거나 반대하기도 합니다.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이 평화와 통일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의 역할과 필요성을 짚어봐야 합니다. 북한을 겨냥하는 것이라면 필요 없습니다. 2018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공동선언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거든요. “남과 북은 비무장지대를 비롯한 대치 지역에서의 군사적 적대관계 종식을 한반도 전 지역에서의 실질적인 전쟁위험 제거와 근본적인 적대관계 해소로 이어나가기로 하였다.” 이와 같이 한반도를 항구적인 평화지대로만들어 남북 사이에 더 이상 전쟁을 없을 것이라고 한 터에 북한을 겨냥한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이 왜 필요할까요?

중국을 겨냥하는 것이라도 바람직하지 않고 오히려 위험합니다. 남한과 중국의 경제적 관계는 1992년 국교정상화 이후 눈부시게 발전해왔습니다. 한중 교역량은 2003년부터 한일 교역량을 넘어섰고, 2004년부터는 한미 교역량을 초과했습니다. 2009년부터는 한미 및 한일 교역량을 합친 것보다 많아졌고요. 더 중요한 것은 무역의 내용입니다. 일본에겐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단 한 해도 흑자를 기록해본 적이 없는 가운데 2018241억 달러 적자를 보았습니다. 미국에겐 1982년부터 흑자를 기록하면서 2018139억 달러 흑자를 냈습니다. 중국에겐 수교 다음해인 1993년부터 흑자를 기록해온 가운데 2018556억 달러의 흑자를 보았습니다. 세계에서 무역의존도가 가장 높은 나라 가운데 하나인 남한의 전체 교역량 가운데 약 1/4을 중국이 차지하고, 전체 무역흑자 가운데 80% 정도를 중국에서 거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을 겨냥해 남한이 미국과 군사동맹을 유지하는 게 바람직할까요?

한미동맹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로 남한의 안보가 불안해질 것을 우려한다면 미국과 중국이 포함되는 동북아시아나 동아시아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이는 2000년대 초부터 추진되었지만, 미국의 견제와 반대에 부딪혀 진전되지 못했지요.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주변 강대국들이 보장하는 한반도 중립화를 구상해볼 수도 있습니다. 이는 미국이 과거 주한미군 철수를 고려하면서 구상하기도 하고, 북한이 지금까지 연방제 통일방안에 포함하고 있기도 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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