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바로 알기

이재봉 2019. 7. 23. 11:33


애꾸눈 임금의 초상화와 남한 언론에 그려진 북한

 

옛날에 한 임금이 불행하게도 한 쪽 눈이 멀었다. 사진이 없던 시절이라 자신의 모습이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궁금해 당시 초상화를 가장 잘 그린다는 화가를 불러 자신의 얼굴을 그리도록 했다. 이 화가는 큰 상을 기대하며 임금의 얼굴을 정성껏 그렸다. 아무리 솜씨 좋게 잘 그려진 그림이라도 임금에게는 한 쪽 눈이 감겨진 자신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일 리 없었다. 임금은 자격지심이 생겨 자신의 모습이 그렇게 흉하냐며 화가를 죽이고 말았다.

 

곧 두 번째 화가가 불려왔다. 임금의 얼굴을 곧이곧대로 그렸던 선배화가가 그 때문에 죽었다는 소문을 들은 터라 전혀 머뭇거리지 않고 임금의 두 눈이 멀쩡한 것처럼 그렸다. 얼굴이 찌그러진 나처럼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사람 얼굴이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멀쩡한 눈을 먼저 그린 뒤 그 눈을 다른 쪽에 포개 놓은 듯 그리는 것은 너무 쉬웠다. 이번에도 임금은 만족할 수 없었다. 언뜻 보기에는 아름다웠지만 자신의 참모습이 아니지 않은가. 그 화가는 거짓으로 그림을 그렸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었다.

 

세 번째 화가가 불려 왔다. 그는 두 선배 화가들이 억울하게 죽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한 사람은 곧이곧대로 그림으로써 흉하게 묘사했다고 죽었고, 다른 사람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렸지만 거짓으로 묘사했다고 죽었으니 어떻게 그려야 했을까?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여기서 잠시 깊이 생각해 보기 바란다. 자신이 세 번째 화가라면 어떻게 그릴 것인가. 하나 밖에 없는 목숨이 달린 문제다. 심각하게 궁리해 보라는 말이다. 내가 수업이나 강연하며 학생들에게 이렇게 요구하면 여러 가지 대꾸가 돌아온다. 대략 네 가지 유형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첫째, 안대를 끼고 있는 모습을 그리겠단다.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의 모습을 TV 드라마에서 본 듯하다. 한 쪽 눈이 없는 모습이나 안대를 낀 모습이나 비슷한데, 어쩌면 후자가 더 흉하게 보일 수도 있어서 이 화가는 죽었을 것이다. 짙은 색안경을 낀 모습을 그리겠다는 사람도 있다. 19615월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킨 다음 경호원들을 데리고 서울시내를 둘러볼 때 시커먼 선글라스를 끼었던 모습을 떠올린 것 같다. 내가 얘기하고 있는 임금이 살고 있을 때는 그런 색안경이 없었으니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익살스럽게 한쪽 눈을 찡긋 감는 듯한 모습을 그리겠다는 발상도 나오고, 잠자는 모습을 그리겠다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깜찍한 생각 같지만 까다로운 임금의 마음을 충족시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윙크하는 모습을 그렸으면 근엄해야 할 임금을 체통 없이 묘사한 죄로, 잠자는 모습을 그렸다면 멀쩡하게 살아있는 임금을 죽은 것처럼 보이게 한 죄로 죽지 않았을까.

 

둘째, 임금에게 어떻게 그려주기를 바라느냐고 물어보고 그리겠단다. 타협을 하자는 셈인데, 눈치가 없다거나 무례하다는 죄목으로 죽었을 것이다. 화가가 그림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이냐는 빈정거림이나 호통을 받으면서 죽었을 수도 있겠다.

 

셋째, 잘 그릴 자신이 없다면서 아예 붓을 잡지 않겠단다. 피의자들이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기 위해 묵비권을 사용하는 것을 떠올린 모양이다. 멀리 갈 것 없이, 자유민주주의를 자처하는 우리나라에서 얼마 전까지도 피의자들에게 회유나 협박 또는 고문을 일삼으며 자백을 강요한다는데,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과 같은 먼 옛날 왕정시대에 묵비권 같은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을까. 붓을 들지 않았으면 명령 불복으로 죽었을 것이다. 이와 달리 죽어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리겠다는 사람이 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것 같아 자포자기하겠다는 뜻일 수도 있고, 무슨 일이 있어도 화가로서의 양심이나 지조를 지키겠다는 생각일 수도 있다. 후자라면 목숨을 버리더라도 거짓으로 그리지 않겠다는 셈인데, 양심을 속이거나 불의와 타협할 수 없다는 뜻이리라. 이렇게 용감한 학생은 다른 학생들로부터 박수를 받도록 유도하지만, 학생들에게 사회의 부정과 불의를 보면 목숨까지 버리라고 충동질하는 것 같아 내 기분은 좀 찜찜해지기 마련이다. 아무튼 그런 화가는 이미 죽었다.

 

넷째, 얼굴 옆모습을 그리겠단다. 감긴 눈이 보이지 않도록 멀쩡한 눈이 있는 쪽 얼굴을 옆에서 그리겠다는 말이다. 그렇다. 드디어 살아남을 수 있는 화가가 나타났다. 이 화가는 궁리 끝에 임금의 얼굴을 정면이 아닌 측면에서 그림으로써, 거짓으로 묘사하지 않고도 흉하지 않게 보이는 초상화를 임금에게 바쳤다. 그는 목숨을 잃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높은 벼슬과 큰 상금까지 받을 수 있었다. 긍정적으로 평가하면 슬기롭고, 부정적으로 평가하면 교활하다고 할까.

 

이렇게 어설프게 꾸며본 옛날이야기는 북한에 대한 남한의 인식과 관련이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교육과 언론을 통해 애꾸눈 임금의 초상화 같이 묘사되는 북한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남한에 대해서는 멀쩡한 눈 또는 밝은 쪽만을 강조하고 북한에 대해서는 감긴 눈 또는 어두운 곳만을 부각시켜온 우리 교육과 언론의 실상을 옛날이야기처럼 꾸며본 것이다.

 

우리는 지난 냉전시기에 특히 군사독재 정권 아래서 남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배우거나 볼 수 없었다. 교육과 언론이 남한의 부정적인 측면을 들추어내려 하면 반국가적이요, 북한의 긍정적인 모습을 전하려 하면 친북적이라고 매도당하며 처벌받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화가가 그린 임금의 초상화처럼 북한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싶어도 독재자의 총칼이 무서워 가짜 그림을 그리는 경우도 있었을 테고, 교육자들이나 언론인들 스스로 북한이 싫고 공산주의를 증오해서 북한 사람들을 머리에 뿔 달린 사람처럼 터무니없이 묘사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먹고 살기 힘들고 이른바 민도가 낮았을 때는, 두 번째 화가처럼 있는 것을 없다고 하고 없는 일을 있는 것처럼 꾸며대도 순진하게 믿고 따르는 경우가 많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바깥 세계와의 교류가 늘어나자 양심적 지식인들이나 깨친 민중을 속이기 어렵게 되었다. 언론도 잔머리를 굴려야 했다. 교활해진 것이다. 첫 번째 화가처럼 남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려니 독재정권의 탄압이 두려웠을 테고, 두 번째 화가처럼 없는 것도 있는 것같이 날조해 거짓말 하자니 깨친 사람들의 눈이 꺼림칙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 번째 화가처럼 독재자의 총칼을 피하면서도 민중의 눈을 교묘하게 속이는 꾀를 부렸다.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체하면서, 남한에 대해서 부정적이거나 북한에 대해서 긍정적인 모습은 감추고, 남한에는 유리하고 북한에는 불리한 측면에만 초점을 맞추어 보도하게 되었단 말이다.

 

우리는 1980년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부터 박근혜 정권까지 조선일보를 비롯한 극우수구 신문들이 권력에 아부하며 급성장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러한 극우반공 언론의 왜곡보도를 통해 독자들은 남한이나 미국 또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측면만을 보아 왔고, 북한이나 소련/중국 또는 사회주의 체제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측면만을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어떤 유려한 설의보다도 더 귀와 눈에, 아니 머리에 쏙 들어오는 멋진 글이었습니다. 애꾸눈 임금의 초상화라는 환유 말입니다. 역시!!! 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네요. 멋지십니다.
스탈린도 옆모습으로만 사진을 찍었다고 합니다. 오른쪽 안면 일부가 마마 후유증으로 얽었기 때문이랍니다. 암튼 좋은 상 수상 축하드립니다. 희망제작소 윤석인 드림
독재정권 아웃시켰으니
왜곡보도를 일삼는 자들도 하루빨리 ~~^^
리영희는 이걸 두고 '형제 눈속의 가시, 내 눈속의 대들보'라고 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