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이재봉 2020. 1. 9. 10:22

한반도 대전환과 위기, 한국의 길


                                 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평화학 교수)


한반도 대전환과 위기

 

  난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 및 6월 북미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대전환 시대가 열렸다고 주장해왔다. 네 가지 커다란 변화가 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첫째, 1945년 해방과 함께 들어선 73년짜리 분단체제가 무너지고 통일의 길이 열리는 듯했다. 둘째, 1948년 북한 정부수립 때부터 지속된 70년짜리 북미 적대관계가 ‘새로운 관계’로 바뀌는 것처럼 보였다. 셋째, 1950년 전면전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이 68년 만에 완전히 끝날 것 같았다. 1953년 7월 맺어진 정전협정으로 어정쩡하게 유지돼온 65년짜리 휴전체제가 허물어지고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이 맺어질 듯한 분위기였다. 넷째, 199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 (NPT) 탈퇴 선언으로 불거진 25년짜리 북핵문제가 풀리는 듯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한반도에 금세 평화가 정착되고 머지않아 통일이 이루어질 것 같았다.

 

  그러나 2019년 2월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한반도 안팎에 불안과 위기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크게 다섯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북한과 미국 사이에 2월 하노이 정상회담뿐만 아니라 10월 스톡홀름 실무회담도 결렬되면서 2017년 말폭탄을 주고받은 때처럼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둘째, 남한과 북한 사이엔, 북미관계 교착에 따라, 대화가 단절되고 관계가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셋째, 미국과 중국 사이에 무역전쟁을 비롯한 패권경쟁이 격렬해지면서 한국이 몹시 곤란한 처지에 빠져들고 있다. 넷째, 한국과 일본 사이엔 역사와 영토 문제에서 무역과 군사 문제로까지 갈등과 분쟁이 상존할 모양이다. 다섯째, 한국과 미국 사이에 주한미군 유지비 분담 문제로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1. 북미관계 교착

 

  1950년 일어난 한국전쟁을 69년이 지나도록 끝내지 못하고, 1953년 들어선 정전협정을 66년이 흐르도록 평화협정으로 바꾸지 못하는 것은 북미 적대관계 때문이다. 전쟁 주요당사국인 남한과 북한 그리고 미국과 중국 가운데 미국과 중국은 1979년, 남한과 중국은 1992년 국교를 정상화했다. 남한과 북한은 1991년부터 2018년까지 다양한 협정과 정상회담 등으로 적대관계를 종식했다. 북한과 미국만 수교하지 못하고 있다.

 

  북미 사이에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은 주한미군 때문이다. 1990년대 초 냉전이 종식되면서 주한미군의 실질적 역할이 급속도로 떠오르는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북한과 한국전쟁을 완전히 끝내고 평화협정을 맺으면 주한미군을 유지할 법적 근거나 정치적 명분이 약해지거나 사라진다. 중국을 지속적으로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해서는 주한미군을 유지해야 하고, 주한미군 유지를 위해서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미루어야 하는 것이다.

 

  북한과 미국이 2018년 6월 제1차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대로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고자 2019년 2월 제2차 정상회담을 가졌지만, 그게 결렬되면서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졌다. 문제의 핵심은 ‘북핵문제’다. 북한 비핵화의 내용과 절차 그리고 미국의 상응조치에 관해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2020년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만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두 사람 서로의 필요성 때문이다. 트럼프는 김정은과 협상을 통해 크게 두 가지를 얻고 싶은 듯하다. 노벨평화상을 받고 대통령에 재선되는 것이다.

 

  첫째, 트럼프는 2018년부터 노벨평화상을 받기 원했다. 얼마나 평화상을 원하면 체면 사납게 아베 일본총리에게까지 자신을 후보로 추천해달라고 부탁했겠는가. 2019년까지는 실패했다. 1950년 일어나고 1953년 중단된 한국전쟁을 완전히 끝내면 된다. 무려 70년짜리 전쟁을 끝내는 것은 노벨평화상감으로 충분하다. 2020년 10월 수상자로 발표되면 11월 대통령 재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둘째, 트럼프는 2020년 11월 대통령 재선을 원한다. 언제든 미국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경제다. 먹고사는 문제가 후보 선택의 제1 결정요인이란 말이다. 2017년 1월 트럼프 집권 이후 2019년 12월 현재까지 미국 경제는 괜찮은 편이다. 그가 큰소리치는 대로 경제성장률과 실업률 등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선거에서 더 유리해지려면 이른바 ‘플러스 알파’가 필요하다. 경제업적에 안보성과를 덧붙여야 백악관에 다시 들어가는 길이 더 넓어진다는 뜻이다. 안보성과를 가장 얻기 쉬운 곳이 한반도다. 앞에서 얘기했듯, 한국전쟁을 완전히 끝내고 북핵문제를 풀면 되기 때문이다.

 

  한편, 2019년 12월 현재 트럼프 탄핵 문제가 진행되고 있는데 실현되지는 않을 것이다. 민주당이 다수인 하원에선 탄핵안이 과반수 찬성으로 통과될 수 있었지만, 공화당이 다수인 상원에서 2/3 이상 찬성으로 통과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김정은 역시 트럼프와 협상을 통해 꼭 얻고자 하는 게 있다. 우선 미국의 제재에서 벗어나기 원한다. 북한은 2016년부터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목표연도 2020년까지 성과를 내야 한다. 게다가 2017년 9월 수소폭탄 시험 및 11월 대륙간 탄도미사일 (ICBM) 시험에 성공하면서 ‘핵무력 완성’을 선포하고, 2018년 4월 ‘경제건설 총력집중’ 정책을 선언했다. 미국이든 남한이든 북한을 침공할 수 없도록 군사건설을 끝냈으니 경제건설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것이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적대관계를 끝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과 유엔의 대북제재를 풀 수 없고, 제재가 풀리지 않는 한 남한이든 중국이든 러시아든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이나 협력을 추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제재가 풀리면 미국이 직접 투자하지 않더라도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 (IMF)을 통해 북한에 싼 이자로 투자가 들어가고, 일본의 식민통치 보상이나 배상금도 들어갈 수 있게 된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서로를 필요하면서도 쉽게 협상에 나서지 않는 것은 협상전략 때문이라 생각한다. 협상이란 주고받는 것이기에 자신은 될수록 적게 주고 상대로부터 가능한 많이 받기를 원한다. 트럼프는 회담을 취소하거나 뒤엎는 등 ‘미친놈’처럼 굴며 상대의 양보나 굴복을 받아내는 ‘미치광이 협상술 (madman theory)’을 구사한다. 김정은은 수시로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상대를 ‘벼랑끝’으로 몰고 가며 양보나 굴복을 받아내는 ‘벼랑끝 협상술 (brinkmanship)’을 펼친다. 서로 협상의 유리한 고지를 차지해 상대로부터 조금이라도 더 얻기 위해 밀고 당기기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와 김정은 둘 다 2020년까지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머지않아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 트럼프는 아무리 늦어도 11월 선거 이전에 성과를 얻어야 하지만, 김정은은 국가목표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정해진 임기가 없다. 트럼프가 먼저 손을 내밀지 않을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참고로, 남한에는 ‘북핵문제’ 또는 ‘비핵화’에 관해 오해나 왜곡이 적지 않다. 남한-북한-미국 사이에 논의된 ‘한반도/조선반도 비핵화’는 ‘미국의 핵위협’과 ‘북한의 핵무기’가 함께 없어지는 상태다. 북한 핵무기의 완전 폐기를 원하면 주한미군 철수를 준비해야 하고, 주한미군 유지를 원하면 북한 핵무기 보유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2. 남북관계 후퇴

 

  2018년 9월 평양에서의 남북정상회담은 매우 뜻깊었다. 한반도 전 지역에서 전쟁 위험을 제거하고 적대관계를 해소하기로 합의함으로써 ‘실질적 종전’을 이루었다. 1950년부터 1953년까지 3년간 치렀던 한국전쟁을 65년 동안 어정쩡하게 멈추거나 (정전, 停戰) 쉬고 있는 (휴전, 休戰) 비정상에서 벗어나 완전히 끝내자고 (종전, 終戰) 약속한 것이다.

 

  그러나 2019년 12월 현재 남북관계가 전혀 진전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첫째, 군사적 적대관계를 끝내기로 했지만, 남한은 국방비를 크게 늘리며 미국과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하고 미국의 최첨단 전투기 수십 대를 도입한 반면, 북한은 2019년 거의 매달 한두 번 미사일이나 대포를 쏘아 올렸다. 둘째, 남북 사이에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고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을 정상화하며 서해 경제공동특구와 동해 관광공동특구를 추진하는 등 교류와 협력을 증대시키기로 했지만,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셋째, 금강산 지역 이산가족 상설면회소를 곧 열고 이산가족의 화상상봉과 영상편지 교환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준비모임조차 갖지 못하고 있다. 넷째,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가까운 시일 내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했지만, 북한은 남한을 향해 조롱과 비난만 보내고 있다.

 

  남북관계의 정체나 후퇴는 남한 탓이 크다. 남한은 북한이 2019년 미사일을 비롯한 새로운 무기 시험발사를 10번 이상 하며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킨다고 비난하지만, 먼저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며 약속을 지키지 못한 쪽은 남한이다. 남한은 1990년대부터 적어도 20년 이상 최소한 10배 이상 북한보다 군사비를 더 많이 써왔으면서도 문재인 정부 들어서 더 크게 늘리고 있다. 특히 미국의 첨단무기를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들이고 있다. 해마다 미국과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을 벌여온 가운데 2019년까지 완전히 끝내지 못하고 있다. 남북 사이에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겠다고 했지만 미국의 허락을 받지 못해 전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을 재개하겠다고 했지만 역시 미국의 눈치만 볼 뿐이다. 미국의 동의나 허가를 받지 못해 북한과 약속한 사항을 전혀 이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을 적대시했던 이명박+박근혜 정부보다 북한과의 화해협력을 강조하는 문재인 정부가 군사비를 크게 늘리며 미국의 첨단 전투기를 많이 도입하는 것은 남한이 1970년대부터 추구해온 자주국방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미국이 갖고 있는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돌려받아야 하고, 나아가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에 대한 준비도 해야 한다.

 

  그렇다하더라도 남한의 군비증강을 북한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북한의 군사비는 기껏해야 남한의 1/10 수준이고 많아야 미국의 1/100도 되지 않는다. 러시아나 중국에서 첨단무기를 들여오지도 못한다. 러시아나 중국과 단 한 번도 합동군사훈련을 벌이지 않는다. 남한의 군비증강과 한미군사훈련에 맞서 할 수 있는 대응이 핵무기와 미사일 시험 ‘도발’ 밖에 없지 않은가. 미국의 ‘승인’ 없이는 철도와 도로 연결은커녕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재개조차 하지 못하는 남한에 대한 실망과 좌절이 조롱과 비난 그리고 공격으로 이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남북관계는 북미관계와 맞물려 진전되는 구조다. 남한은 북한과 미국의 적대관계 사이에 끼어있기도 하다. 북미관계가 진전되면 남한은 뒤따라가면 되지만, 정체되면 앞장서 이끌어야 하는데 쉽지 않다. 북한과 평화공존 및 통일을 추구하며 화해협력을 진전시키려면 미국으로부터 동맹에서 이탈하지 말라는 압력을 받기 마련이고, 미국과의 동맹을 바탕으로 ‘한미공조’를 중시하면 북한으로부터 외세에 의존하지 말고 민족의 이익을 앞세우라는 비판을 받기 십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2008년 중단된 금강산관광과 2016년 폐쇄된 개성공단 재개는 절실하게 고려해봐야 하지 않을까. 북한경제를 어렵게 만들기 전에 남한의 영세상업인들과 중소기업인들부터 피해가 몹시 크기 때문이다. 특히 개성공단 재개는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보다 남한 경제를 살리는 길이다. 남한의 중소기업인들이 개성 말고 이 세상 어디에서 평당 15만원 이하의 공장부지를 얻어 월급 15만원도 되지 않는 노동력을 구할 수 있겠는가. 개성공단은 북한에 ‘퍼주는’ 곳이라기보다 북한으로부터 ‘퍼오는’ 곳이다.


3. 미중경쟁 격화

 

  중국은 1978년부터 개혁개방을 실시하며, 1992년 ‘사회주의 시장경제’ 또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채택하고, 2001년 세계무역기구 (WTO)에 가입했다. 1978-2018년 40년간 연평균 10% 안팎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배경과 과정이다.

 

  이에 따라 세계경제를 주도해온 ‘G7’ 국가들 가운데 미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들을 2000년대에 따라잡았다. 2010년 일본을 추월하자 미국과 중국이 세계를 주도한다는 뜻의 ‘G2’라는 말이 퍼지기 시작했다. 국내총생산 (GDP)을 시장환율 (MER)이 아닌 구매력평가지수 (PPP)로 계산하면 2014년 미국까지 추월하고 세계 제1경제대국이 되었다. 이에 앞서 2009년엔 독일을 제치고 세계 제1수출대국이 되고, 2012년엔 미국을 제치고 세계 제1무역대국이 되었다.

 

  중국은 급속하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1990년대부터 국방비를 크게 늘려왔다. 2000년대부터 경제성장률을 웃도는 연평균 12% 안팎의 증가율을 보이며, 2010년부터는 러시아, 프랑스, 영국 등 군사강국들보다 두 배 이상의 군비를 지출하고 있다. 미국에 맞서 해양전력을 본격적으로 증강시키며 대만해협을 포함한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미국의 개입을 무력화하는 작전을 세워놓았다. ‘접근반대 및 지역거부 (反介入/区域拒止)’ 전략으로, 중국과 가까운 바다에서는 미국함대의 접근을 막고, 조금 더 먼 바다에서는 미국함대의 작전을 방해하겠다는 내용이다.

 

  중국공산당은 2017년 10월 두 가지 커다란 목표를 제시했다. 중국공산당 창립 100주년이 되는 2021년까지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넘는 ‘소강 (小康) 사회’를 이루고,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 모든 인민이 함께 부강해지는 ‘대동 (大同) 사회’로 나아간다는 내용이다. 육로와 바닷길로 각각 세계를 연결한다는 야심찬 ‘일대일로 (一帶一路)’ 정책을 바탕으로 세계 제1국가가 되는 ‘중국의 꿈 (中國夢)’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러한 중국에 대해 1990년대 초 냉전종식 직후부터 견제와 봉쇄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특히 중국의 경쟁 국가인 일본을 활용했다. 1996년 일본과 안보공동선언을 발표하고, 1997년 일본과 방위협력지침을 개정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일본의 재무장을 막고 있는 ‘평화헌법’을 수정해 ‘정상국가’가 되도록 촉구하면서 일본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진출하도록 지원했다. 2015년엔 일본과의 방위협력지침을 다시 개정하고, 2016년엔 일본 안보법제를 개정하도록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2015년 한일 위안부협정과 2016년 한일 군사정보교류협정 (GSOMIA)이 맺어지고, 고고도미사일방어망 (THAAD) 한국 배치가 발표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12월 발표한 국가안보전략 (NSS) 핵심 내용은 미국이 “일본과 호주 그리고 인도와 4각협력을 증진시켜” 중국을 봉쇄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인도-태평양 전략’이다. 2011년 오바마 행정부 때 클린턴 국무장관이 중국 견제와 봉쇄를 강화하기 위해 채택했던 ‘아시아 회귀 (pivot to Asia)’ 또는 ‘아시아 재균형 (Asia rebalancing)’ 전략을 조금 수정한 것이다.

 

  트럼프가 중국을 견제하며 압박하는 데는 경제적 배경이 크다. 중국에게 1년 평균 3,500억 달러의 무역적자를 보기 때문이다. 참고로, 미국은 최근 5년간 일본에겐 연평균 700억 달러, 한국에겐 200억 달러 정도의 무역적자를 보고 있는데, 동맹국이라는 일본과 한국에도 압박을 가하며 자유무역협정 (FTA)을 다시 협상하자고 했던 터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무역적자 규모가 너무 크기 때문에 두 강대국 사이의 마찰과 분쟁이 그치기 어렵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을 제3자는 한국이다. 한국이 기술을 바탕으로 반제품을 중국에 수출하면, 중국은 값싼 노동력으로 마무리한 완제품을 미국에 수출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한국의 제1 수출대상국이고, 미국은 제2 수출대상국이기도 하다.

 

  미국과 중국은 무역뿐만 아니라 기술, 외교, 군사 등 모든 분야에서 패권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중 패권경쟁은 한국을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은 한국의 유일한 군사동맹이요, 중국은 한국의 최대 수출대상국이기 때문이다.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는 상황이기에, 한국이 미국과의 동맹과 중국과의 협력을 동시에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뜨거운 얼음’을 만들어보라는 모순 섞인 억지와 같다. 국제관계에서는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우방도 없다는 금언을 유념하며, ‘중립 외교’나 ‘등거리 외교’ 또는 ‘양다리 걸치기’ 정책을 펴야 하지 않을까. 상황에 따라 미국을 편들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 중국 편에 서기도 하며 국익을 최대화하는 길을 걷는 게 바람직하다는 뜻이다.


4. 한일분쟁 확산

 

  문재인 정부가 ‘촛불 민심’을 바탕으로 그리고 2017년 대선공약에 따라, 한국과 일본 사이에 2015년 맺어진 위안부협정을 2018년 사실상 파기했다. 대법원은 일제에 징용된 한국인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2018년 판결했다. 아베 일본총리는 2019년 6월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과만 정상회담을 하지 않는 등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7월부터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난과 함께 한국에 수출규제를 비롯한 경제보복을 시작했다. 한국은 민간 차원에서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전개하고, 정부 차원에선 일본과의 군사정보교류협정 (GSOMIA)을 끝내겠다고 맞섰다. 한일갈등이 역사문제와 영토문제에서 경제문제와 군사문제로까지 확산된 것이다. 미국의 중재와 압력으로, 한국이 지소미아 종료결정을 미루고 일본은 수출규제를 완화하는 등 2019년 12월 현재 한일 간의 마찰이 일시적으로 잠복하는 듯하지만, 갈등과 분쟁은 언제든 다시 불거지고 오랫동안 해소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 배경과 과정을 짚어본다.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냉전이 심화하자 미국은 일본과 1951년 안보조약을 맺었다. 1941-45년 일본과 전쟁을 벌일 때는 소련과 연합했지만, 1947년부터 소련과 냉전을 치르면서는 일본과 손잡게 된 것이다. 미국이 일본과 동맹을 맺고 한국까지 끌어들이려 했지만, 한국은 일본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난 지 겨우 6년이 지난 때여서 일본과의 적대관계를 풀기 어려웠다. 미국이 1951년부터 한일협상을 주선하고 개입하며 압력을 행사했지만 이승만의 완고한 반일정책에 막혔다.

 

  이승만이 1960년 사월혁명으로 쫓겨나고 일본군 출신 박정희가 1961년 5.16쿠데타로 정권을 잡자, 미국은 1962년부터 한일협정을 “미국정부의 최고 관심사” 또는 “가장 급선무”로 삼고 한국과 일본을 거세게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박정희 정부는 협상에 적극 응했지만 야당과 대학생들의 저항과 반발이 몹시 컸다. 이런 과정을 거쳐 1965년 타결된 한일협정은 야당과 대학생들의 주장대로 몹시 “민족 반역적이고 굴욕적이며 졸속적”인 것이었다.

 

  첫째, 일본이 35년간의 식민통치에 대한 사과나 배상을 전혀 하지 않았다. 한국에 유상과 무상채권을 포함해 모두 8억 달러를 건넸는데, 식민통치에 대한 배상이나 보상이 아니라 ‘독립 축하’ 및 ‘경제 협력’ 명목이었다. 아직도 일본의 식민통치가 한국의 발전에 도움을 주었다고 주장하는 한국의 정치인, 언론인, 학자들이 적지 않은데, 당시 일본 정치인들이야 오죽했겠는가.

 

  둘째, 독도 영유권, 징용자, 위안부, 원폭 피해자, 약탈 문화재 등에 관한 문제를 모두 덮어버렸다. 독도 문제가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고, 징용자와 위안부 문제 등이 최근 다시 불거지게 된 배경이다.

 

  한일협정이 맺어진 1965년 이후 50년이 흐른 2015년 박근혜 정부가 아베 정부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위안부 협정을 맺었다. 1965년 한일협정에서처럼 일본의 사과는 전혀 없었고, 일본이 10억엔 (약 100억원)을 건네기로 했는데, 배상이나 보상 명목이 아니라 ‘인도적 지원’ 명목이었다. 나중에 문제가 될까봐 위안부 문제를 마지막으로 그리고 되돌릴 수 없이 해결한다고 선언하고, 앞으로 유엔이나 국제사회에서 이를 빌미로 비난이나 비판을 자제하자고 합의한 것이다.

 

  반세기가 흐른 뒤에 이렇게 또다시 “민족 반역적이고 굴욕적이며 졸속적”인 한일협정이 되풀이된 것은 여전히 미국의 압력 때문이었다. 급속도로 떠오르는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해서다. 미국이 2015년 일본과 방위협력지침을 다시 개정하고 2016년 일본 안보법제를 개정하도록 이끌며 미일동맹을 강화하자, 중국은 러시아와 손잡고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을 벌이는 등 군사협력을 강화했다. 이런 배경과 과정에서 미국은 다시 한국+미국+일본의 삼각공조를 강화하기 위해 한국에 압력을 행사했다. 독도 문제나 위안부 문제 등 껄끄러운 문제를 털어버리고 일본과 협력을 강화해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는 데 적극 동참하라는 것이었다. 크게 세 가지가 추진되었다.

 

  첫째, 앞에서 얘기한대로 2015년 한국과 일본 사이에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위안부 협정이 맺어졌다. 둘째, 2016년 미국과 한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망 (THAAD) 배치를 발표했다. 겉으로는 북한을 겨냥한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중국을 봉쇄하기 위해서다. 셋째, 2016년 한국과 일본 사이에 군사정보보호협정이 체결되었다. 이 모두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한 미국의 전략에 따른 것이었다.

 

  참고로,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후보 시절, “위안부 피해자들이 인정하고 국민이 동의할 수 있는 수준의 합의”를 이끌어내겠다고 공약했다. 군사정보보호협정의 효용성을 검토하고 연장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도 대선 공약에 포함했다.

 

  그런데 아베가 경제보복을 시작한 데는 위안부와 징용 문제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그의 불만과 분노 섞인 도발엔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반감과 증오뿐만 아니라 중국에게 추월당한 충격과 좌절, 한국에게도 추격당할지 모를 불안과 경계, 그리고 북한 및 한반도 평화 문제에서 소외당하는 두려움과 초조함이 곁들여져 있지 않을까.

 

  일본은 1970년대부터 독일을 제치고 세계 제2의 경제대국 지위를 지켜오다 2010년 중국에 추월당했다. 1945년까지 일본에 짓밟혔던 중국이 1964년 핵무기 보유국이 되고 1971년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까지 된 터에, 경제적으로도 국내총생산과 무역 규모에서 일본을 앞질러버린 것이다. 핵무기도 갖지 못하고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꿈도 이루지 못해 군사력으로나 외교력으로 중국에 밀리던 일본이 경제력에서도 뒤지게 되면서 얼마나 크게 충격 받고 좌절했겠는가.

 

  한국에도 쫓기는 상황이다. 1965년 한일수교 당시 한국경제는 일본의 1/30 또는 3% 수준이었지만, 50여년이 흐른 2018년엔 1/3 또는 30% 수준이 되었다. 일본 인구가 한국보다 2.5배 정도 많기에, 1인당 GDP는 거의 맞먹는다. 한국의 1인당 GDP는 1990년까지 일본의 40% 이하였지만, 2015년엔 90%였고, 2020년엔 95%, 2025년엔 100%로 따라 잡으리라 전망된다. 과거엔 한국에서나 세계에서나 일본의 소니와 파나소닉이 전자제품의 상징이었지만, 이젠 한국의 삼성과 LG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쫓기는 미국이 추월하려는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듯, ‘흔들리는 일본’이 의존국에서 경쟁국으로 성장한 한국을 경계하기 위해 보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덧붙여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으로 시작된 한반도 대전환 시대에 남북한 및 주변 4강대국 중에서 일본만 소외되었다. 북한을 중심으로 다양하고 활발하게 정상회담이 열리면서 김정은은 문재인과 3회, 트럼프와 3회, 시진핑과 4회, 푸틴과 1회 만났다. 아베와는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아베의 요구에도 매몰차게 거절한 것이다. 나아가 남북관계가 진전되면 한반도가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가까운 중국 대륙과 연결될 텐데, 그러면 섬나라 일본은 더욱 고립될 수밖에 없다. 아베가 한미합동 군사훈련 중단을 비난하며 남북관계 진전을 방해하는 배경이리라.

 

  일본은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한중관계 진전에도 훼방 놓을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 반한 또는 혐한 감정을 이용해 경제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한국을 경계하고 견제할 텐데, 한국은 정부 차원에서나 민간 차원에서나 다양한 대책을 슬기롭게 마련하는 게 바람직하다.


5. 한미갈등 촉발

 

  한국과 미국 사이엔 2019년 11-12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로 갈등이 불거졌다. 1조원 남짓의 2019년 분담비를 2020년엔 6조원 정도로 5배 올려달라는 미국의 요구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1년 평균 10% 안팎 올렸는데 갑자기 500% 올리라는 것이다. 2019년 9월부터 12월까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5번 협상이 열렸지만 합의를 2020년으로 미루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미국을 규탄하며 거세게 반발했다. 여기서 세 가지를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트럼프의 2016년 대선공약에 관해. 한국과 일본이 방위비 분담금을 전적으로 부담하지 않으면 미군을 철수하겠다는 게 트럼프의 대외정책 10대 공약 가운데 하나다. 미국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을 뜬금없이 압박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한국이 3년 전 트럼프 당선 직후부터 대비했어야 할 문제이지 지금 호들갑 떨 일이 아니다.

 

  둘째, 트럼프의 ‘미치광이 협상술’에 관해. 그는 교활한 사업가요 유능한 협상가 출신 대통령이다. 대개 10% 늘리던 금액을 100% 올려달라고 요구하면 서로 양보하자며 50% 정도 인상으로 합의하기 쉽다. 한꺼번에 500% 증액하라고 압박하면 줄다리기하다 200-300% 인상으로 합의할 가능성이 있다. 그게 트럼프의 노림수 아닐까. 이에 “주한미군은 북한의 남침을 막기보다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는 역할과 임무를 맡고 있으니 미국이 기지 사용료까지 내며 머물든지 아니면 철수하라”고 맞서는 한국의 협상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셋째,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에 관해.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은 냉전시대에 한반도 평화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극우 세력은 탈냉전시대에도 여전히 한맹동맹 강화와 주한미군 유지를 국가 ‘목표’처럼 간주한다. 한미동맹이 약화하거나 흔들릴까봐 북한과 전쟁을 끝내면 안 된다는 한 국회의원의 반민족적이고 반평화적인 망언까지 들린다.

 

  이제 한미동맹의 필요성과 주한미군의 존재 이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게 바람직하다. 발상의 전환도 좋다.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이 북한을 겨냥하는 것이라면 언제까지 필요할까? 2018년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공동선언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남과 북은 비무장지대를 비롯한 대치 지역에서의 군사적 적대관계 종식을 한반도 전 지역에서의 실질적인 전쟁위험 제거와 근본적인 적대관계 해소로 이어나가기로 하였다.” 이와 같이 “한반도를 항구적인 평화지대로” 만들어 남북 사이에 더 이상 전쟁을 없을 것이라고 한 터에 북한을 겨냥한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이 왜 언제까지 필요할지 의문이다.

 

  중국을 겨냥하는 것이라면 필요하고 바람직할까? 한국과 중국의 경제적 관계는 1992년 국교정상화 이후 눈부시게 발전해왔다. 한중 교역량은 2003년부터 한일 교역량을 넘어섰고, 2004년부터는 한미 교역량을 초과했다. 2009년부터는 한미 및 한일 교역량을 합친 것보다 많아졌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역의 내용이다. 일본에겐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단 한 해도 흑자를 기록해본 적이 없는 가운데 2018년 250억 달러의 적자를 보았다. 미국에겐 1982년부터 흑자를 기록하면서 2018년 140억 달러의 흑자를 냈다. 중국에겐 수교 다음해인 1993년부터 흑자를 기록해온 가운데 2018년 540억 달러의 흑자를 보았다. 세계에서 무역의존도가 가장 높은 나라 가운데 하나인 한국의 전체 교역량 가운데 1/4 이상을 중국이 차지하고, 전체 무역흑자 가운데 60% 이상을 중국에서 거두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을 겨냥해 한국이 미국과 군사동맹을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겠는가.

 

  게다가 미국과 중국은 패권경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미국은 중국을 봉쇄하는 군사정책을 전개하고 중국은 미국의 접근을 거부하는 군사정책으로 맞서며 무력충돌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만에 하나 미국과 중국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중국의 제1폭격 지역과 대상은 중국에서 가장 가까운 미군기지가 있는 평택이 되지 않겠는가. 주한미군 때문에 한국이 전쟁터로 변할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한미동맹 약화나 해체 또는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로 한국의 안보가 불안해질 것을 우려한다면 미국과 중국이 포함되는 동북아시아나 동아시아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 이는 2000년대 초부터 추진되었지만, 미국의 견제와 반대에 부딪혀 진전되지 못했다.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주변 강대국들이 보장하는 한반도 중립화를 구상해볼 수도 있다. 이는 미국이 과거 주한미군 철수를 고려하면서 구상한 정책이기도 하다.

 

<국가전략연구> 2020/01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