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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봉 2020. 1. 9. 10:26

트럼프 지지하며 활용하기


                                 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평화학 교수)


  2019년 말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로 한미 양쪽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1조원 남짓의 2019년 한국측 분담금을 2020년엔 6조원 정도로 5배 올려달라는 미국의 요구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1년 평균 10% 안팎 올렸는데 갑자기 500% 올리라는 것이다. 한미 협상대표들이 2019년 9월부터 12월까지 양국을 오가며 협상을 5번 벌였지만 합의하지 못했다. 한국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미국을 규탄하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평화와 통일을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트럼프를 비판하기보다 지지하며 활용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다음 세 가지를 검토하거나 고려하면서.


1. 트럼프의 2016년 대선 대외정책 공약

 

  난 2016년 가을부터 여기저기 글쓰거나 강연하면서 트럼프 대통령후보를 선호했다. 대외정책 공약 때문이었다. 1945년부터 2016년까지 71년 동안 미국의 대외정책 기조는 ‘국제주의 (internationalism)’였다.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세계경찰 역할을 맡으며 국제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정책이다. 그 결과 미국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식 이후 200번 넘게 전쟁에 뛰어들었다. 이와 달리 트럼프는 공화당이나 민주당 대선후보로는 처음으로 ‘고립주의 (isolationism)’를 내세웠다. 더 이상 세계경찰 노릇하지 않고 국내문제에 집중하는 정책이다. 해외 미군기지를 축소하며 미국이 다른 나라로부터 직접 침공받지 않는 한 될수록 무력개입을 자제하겠다고 했다.

 

  한국과 미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평화학자/평화운동가가 그토록 비도덕적이고 폭력적인 트럼프를 어떻게 지지할 수 있느냐고 비판하거나 의아해했다. 내 대답은 간단했다. “트럼프가 성차별, 종교차별, 인종차별을 일삼더라도 수천 또는 수만 명 무고한 사람이 개죽음당할 수 있는 전쟁은 한 번이라도 덜 할 사람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대외정책 10대 공약 가운데 하나는 한국과 관련되어 있다. 조건부 주한미군 철수다. 한국이 방위비를 전적으로 부담하지 않으면 미군을 철수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한국에게 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인상하라는 것은 2019년 가을 뜬금없이 들이댄 압박이 아니라 2016년 트럼프의 대선공약이었다. 한국이 3년 전 트럼프 당선 직후부터 대비했어야 할 문제이지 지금 호들갑 떨 일이 아니다. 미국의 6조원 요구가 “불법적이고 부당하다”고 비난하는데, 트럼프는 불법적이든 합법적이든 부당하든 정당하든 별로 개의치 않는다. 자신과 미국의 이익을 챙길 뿐이다. 한국은 미군이 꼭 필요하면 웃돈을 줘서라도 붙들어야겠지만, 필요치 않으면 나가라고 하면 된다.

 

  트럼프가 2016년 11월 대통령에 당선되어 2017년 1월 취임해 2019년 12월까지 3년 동안 재임하는 동안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제국주의 미국’을 스스로 크게 무너뜨린 것이다. 세계평화를 위해 얼마나 좋은 일인가. 트럼프는 지금까지 누가 뭐래도 대선공약을 잘 지켜온 편이다. 주한미군 철수 공약까지 지킬 수 있도록 그를 지지하며 활용하는 게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을까.


2. 트럼프의 미치광이 협상술

 

  트럼프가 2017년 11월 방한했다. 10월 유엔총회에서 “로켓맨 (김정은)이 자살임무를 수행 중”이라며 북한을 “완전 파괴”하겠다는 등 험악한 말을 쏟아낸 직후였다. 그의 방한을 앞두고 광주에서 강연하며 난 그를 옹호했다.

 

  “여기 제가 서있는 강단 뒤에 ‘호전광 미치광이 트럼프 방한 반대’라는 큼직한 현수막을 걸어놓으셨는데 이거 잘못 됐습니다. 그는 호전광도 아니고 미친놈도 아닙니다. 미국은 전쟁을 통해 독립했고, 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장했으며, 전쟁을 통해 초강대국이 되었고, 전쟁을 통해 세계패권을 유지해왔습니다. 미국처럼 전쟁 많이 해본 나라도 없고, 좋아하는 나라도 없으며, 잘 하는 나라도 없지요. 1776년 독립선언 이후 2016년까지 240년 가운데 무려 219년 동안 전쟁을 치렀으니까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만 따지면, 세계 150개 이상 지역에서 약 250개 전쟁이 발발했는데, 이 가운데 200개 이상 전쟁이 미국에 의해 일어났습니다. 이렇듯 미국은 인류역사상 가장 호전적 (好戰的) 국가인데, 트럼프가 일으킨 전쟁이 얼마나 됩니까? 그는 미국이 직접 군사공격을 받지 않는 한 전쟁은 될수록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사람입니다. 그는 전쟁을 좋아하지도 않고 미치지도 않았는데, 금세 전쟁을 벌일 것처럼 위협하는 등 미친놈처럼 굴며 상대방의 양보를 받아내는 ‘미치광이 협상술 (madman theory)’을 쓰는 겁니다. 교활한 사업가 출신의 유능한 협상가에요.”

 

  2019년 말 논란이 되고 있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과 관련해, 10% 늘리던 금액을 100% 올려달라고 요구하면 서로 양보하자며 50% 정도 인상으로 합의하기 쉽듯, 500% 증액하라고 압박하면 줄다리기하다 200-300% 인상으로 합의할 가능성이 있다. 그게 협상의 귀재 트럼프의 노림수 아닐까. “주한미군은 북한의 남침을 막기보다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는 역할과 임무를 맡고 있으니 미국이 기지 사용료까지 내며 머물든지 아니면 철수하라”고 맞서는 지혜와 배짱을 겸비한 한국의 협상가가 나와주길 기대한다.


3.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의 필요성

 

  이젠 한미동맹의 필요성과 주한미군의 존재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자. 한미동맹은  1953년 7월 휴전/정전협정의 산물이다. 1950년 6월 전면전으로 치달은 한국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쉬거나 멈췄기에 북한이 다시 남침하면 함께 대응하자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은 것이다. 이에 따라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은 냉전시대 한반도 평화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냉전이 끝나면서 주한미군의 역할이 바뀌었다. 북한의 남침을 예방하고 저지하는 것에서 급속도로 떠오르는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한 것으로.

 

  그러나 한국의 보수/극우 세력은 탈냉전시대에도 여전히 한미동맹 강화와 주한미군 유지를 안정과 평화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국가 ‘목표’처럼 간주한다. 한미동맹이 약해지거나 흔들릴까봐 북한과 전쟁을 끝내면 안 된다는 한 국회의원의 반민족적이고 반평화적이며 얼빠진 망언까지 들리지 않은가.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이 북한을 겨냥하는 것이라면 언제까지 필요할까? 2018년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공동선언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남과 북은 비무장지대를 비롯한 대치 지역에서의 군사적 적대관계 종식을 한반도 전 지역에서의 실질적인 전쟁위험 제거와 근본적인 적대관계 해소로 이어나가기로 하였다.” 이와 같이 “한반도를 항구적인 평화지대로” 만들어 남북 사이에 더 이상 전쟁을 없을 것이라고 한 터에 북한을 겨냥한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이 왜 언제까지 더 필요할지 고민해보자.

 

  중국을 겨냥하는 것이라면 필요하고 바람직할까? 한국과 중국의 경제적 관계는 1992년 국교정상화 이후 눈부시게 발전해왔다. 한중 교역량은 2003년부터 한일 교역량을 넘어섰고, 2004년부터는 한미 교역량을 초과했다. 2009년부터는 한미 및 한일 교역량을 합친 것보다 많아졌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역의 내용이다. 일본에겐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단 한 해도 흑자를 기록해본 적이 없는 가운데 2018년 250억 달러의 적자를 보았다. 미국에겐 1982년부터 흑자를 기록하면서 2018년 140억 달러의 흑자를 냈다. 중국에겐 수교 다음해인 1993년부터 흑자를 기록해온 가운데 2018년 540억 달러의 흑자를 보았다. 세계에서 무역의존도가 가장 높은 나라 가운데 하나인 한국의 전체 교역량 가운데 1/4 이상을 중국이 차지하고, 전체 무역흑자 가운데 60% 이상을 중국에서 얻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을 겨냥해 한국이 미국과 군사동맹을 유지하는 게 합리적인가.

 

  게다가 미국과 중국은 패권경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미국은 중국을 봉쇄하는 군사정책을 전개하고 중국은 미국의 접근을 거부하는 군사정책으로 맞서며 무력충돌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만에 하나 미국과 중국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중국의 제1폭격 지역과 대상은 중국에서 가장 가까운 미군기지가 있는 평택이 되지 않겠는가. 주한미군 때문에 한국이 전쟁터로 변할 위험성이 크다.

 

  냉전시대엔 미국과 한국의 대외정책 목표가 같았다. 반공과 승공을 통해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지키는 것이었다. 그를 위한 수단이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이었다. 탈냉전시대엔 두 나라 대외정책 목표가 달라졌다. 미국의 목표는 경쟁자/도전자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해 패권을 지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여전히 한미동맹을 강화하며 주한미군을 유지하기 원한다. 한국의 목표는 한반도에 평화를 만들고 경제를 살리며 통일을 이루는 것이다. 한미동맹을 강화하면 중국의 반발을 부르지 않을 수 없고, 주한미군을 유지하면 북한과 평화통일을 이루기 어렵다.

 

  한미동맹 약화나 해체 또는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로 한국의 안보가 불안해질 것을 우려한다면 미국과 중국이 포함되는 동북아시아/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드는 게 바람직하다. 2000년대 초부터 추진되었지만, 미국의 견제와 반대에 부딪혀 진전되지 못했다.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주변 강대국들이 보장하는 한반도 중립화를 구상해볼 수도 있다. 미국이 과거 주한미군 철수를 고려하면서 구상한 방안이다.

 

<통일경제> 20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