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발자취모음

비로봉 2018. 10. 1. 16:22


- 산행일자 : 2018년 9월 30일 (일요일)


- 산행지 : 동악산(737), 전라남도 곡성군 곡성읍


- 함께 : 아내


- 산행경로 : 도림사 시설지구 주차장 ~ 월봉마을 ~ 378봉 ~ 567봉 ~ 신선바위 ~ 동악산 ~ 청계동계곡갈림길 ~ 중봉삼거리(매봉갈림길) ~ 배넘어재 ~ 청류동계곡 ~ 도림사 ~ 주차장 (먹고 쉬고 7시간)


- 등산앱 링크 : (GPS의 오류로 기록이 정상적으로 되지 않음)

 (루가) https://www.luga.me//post/5bb08aae9b7b3f454a190c63?utm_source=kakaolink&utm_medium=referral

☞ (트랭글) http://m.tranggle.com/istory/view/2018803045679


- 산행개요 : 아침 일찍 집을 나서 광대고속도로 지리산 휴게소를 지나 남원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할까하여 들렀으나 아뿔사, 남원휴게소엔 식당이 없고 편의점만 운영하고 있다. 서남원 TG로 내려 곡성군을 지나는 동안 아침식사를 할만한 식당을 찾을 수는 없다. 결국 도림사 일주문(매표소) 전에 주차를 하고 시설지구내 아침식사가 가능한 조그만 식당을 찾아 북어국으로 든든히 배를 채운다.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 도림사를 품고있는 곡성의 진산 동악산은, 도림사의 창건 당시 매일 아침저녁 음악 소리가 들렸다고 해서 동악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전라남도의 기념물인 청류동계곡은 곳곳의 너른 반석과 소들 그리고 맑은 계곡수로 인해 여름철엔 수많은 피서객들로 넘쳐나는 곳이기도 하다.

이번 산행은 도림사에서 징수하고 있는 통행료(문화재관람료)도 피하고, 동악산이 품고 있는 다양한 산길을 경험코자 동악산 남릉으로 신선바위를 올라 배넘어재에서 하산하며 청류동계곡과 도림사를 둘러보며 원점회귀할 요량이다.


도림사 매표소 전에 주차를 하고 아침식사를 해결한 후 주변을 그림에 담는다.







주차장을 돌아나와 월봉마을로 향한다.





1,2캠핑장 방향으로 진행해야 하지만


우측 건물이 있는 쪽으로 내려섰다가 사유지 펜션들이 자리하고 있어 되돌아 나온다.




펜션을 돌아나와 1,2캠핑장 방향으로 향한다.



다리를 건너 월봉마을에서 우측으로


정미소를 지나


포장길을 따르면


좌측으로 산행 들머리가 보이고


월봉마을 방향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산길로 접어든다.





얼마가지 않아 새로난 임도와 만나, 잠시 오르다가 좌측 산길로 향한다.



첫 조망처


청류동계곡 건너편의 형제봉, 대장봉 능선


우측으로 진행할 능선


동악산에서 배넘어재로 향하는 능선



서쪽으로 대장봉과 형제봉이 나란히 붙어있다.


도림사 일주문 방향



지나온 387봉





대장봉(우), 형제봉(좌) 방향







곡성군 방향


당겨본 곡성군



조망처


형제봉에서 시작한 공룡능선이 청류동계곡으로 흘러내린다.



대장봉, 형제봉 방향의 파노라마(클릭시 확대)





동악산 시루봉과, 신선바위 방향



좌측 대장봉에서 배넘어재로 이어지는 능선





오늘의 첫 이정표, 청류동 계곡에서 오르는 등로와 만나는 갈림길





우측 아래로 청류동계곡에서 올라오는 등로(마른계곡 길)


잠시 후 동악산 방향을 버리고 우측 신선바위쪽으로 향한다.



잠시 사면을 이어가다가


석문을 지나면


우측으로 바로 전망이 좋은 신선바위다



대장봉과 형제봉



신선이 앉아 놀기에 딱이라는 신선바위, 오늘은 신선이 되기엔 뜨거운 볕이 부담스러워 인근의 그늘을 찾아 먹고 쉬며 한참을 쉬었다가 산길을 이어간다.





능선 삼거리









중앙으로 진행한 능선


대장봉, 형제봉과 중앙으로 공룡능선




동악산 시루봉 정상부











건너편 삼각점이 있는 동악산으로 향한다.











뒤돌아본 동악산 시루봉



삼각점이 있는 실제 동악산 정상부


동악산을 내려서 배넘어재로 향한다.



뒤돌아본 동악산


동악산 시루봉을 당겨본다.

















중봉삼거리








배넘어재에 도착, 벤치에 앉아 한참을 쉬었다 하산한다.




연못을 꾸미는 공사가 진행 중인 듯


배넘에재에서 하산하는 산길은 전체적으로 잘 꾸며져있다.





꾸며진 연못









청류동계곡의 상류















길상암터 방향은 형제봉으로 이어진다.


청류동계곡에는 9개소의 명소가 자리하고 있다.






















천년고찰 도림사를 둘러본다.







당간지주





























일주문, 매표소를 지나며


돌아본 일주문








주차장으로 돌아와 산행을 마무리한다.



동악산은 도림사를 중심으로 형제봉, 대장봉, 시루봉을 크게 돌아 원점회귀하는 산행이 가능하지만 체력적, 시간적인 부담으로 신선바위, 시루봉 코스만을 돌아 보았다. 청류동계곡의 9곡 중 남겨진 마지막 1곡을 찾고, 나머지 반쪽 대장봉과 형제봉을 코스를 돌아보기 위하여 어느 좋은날 도인들이 숲을 이룬다는 도림사를 다시 찾아볼 숙제를 남겨둔다.


(♡)제70주년 국군의 날 건강관리 잘하시고 보람되게 보내세요^_^ (파이팅) (♡)
잘보고 갑니다 (!)
공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기온이 갑자기 많이 내려가고 있니다.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
안녕하세요.
저는 지성의 전당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원효대사 글이 있어서 댓글을 남겨 보았습니다.
제가 또 댓글을 달았다면 죄송합니다.
인문학 도서인데,
저자 진경님의 '불멸의 자각' 책을 추천해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와 죽음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아래는 책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제 블로그에 더 많은 내용이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정보를 드리는 것뿐이니
이 글이 불편하시다면 지우거나 무시하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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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할 수가 있는 ‘태어난 존재’에 대한 구성요소에는, 물질 육체와 그 육체를 생동감 있게 유지시키는 생명력과 이를 도구화해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의식과 정신으로 나눠 볼 수가 있을 겁니다.

‘태어난 존재’ 즉 물질 육체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역할을 다한 도구처럼 분해되고 소멸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육체를 유지시키던 생명력은 마치 외부 대기에 섞이듯이 근본 생명에 합일 과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와의 동일시와 비동일시 사이의 연결고리인 ‘의식’ 또한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보충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총체적 단절작용을 ‘죽음’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존재의 일부로서, 물질적인 부분은 결단코 동일한 육체로 환생할 수가 없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의식’ 또한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신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간이자 전제조건으로서, 물질로서의 근본적 정체성, 즉 나타나고 사라짐의 작용에 의한 영향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타날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으며, 태어날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불멸성으로서, 모든 환생의 영역 너머에 있으므로 어떠한 환생의 영향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신에 대한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자 실체로서, ‘있는 그대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체에 의한 작용과정으로써 모든 창조와 소멸이 일어나는데, 누가 태어나고 누가 죽는다는 것입니까?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을 하고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윤회를 합니까?

정신은 물질을 이루는 근간으로서의 의식조차 너머의 ‘본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윤회의 영역 내에 있는 원인과 결과, 카르마, 운명이라는 개념 즉 모든 작용을 ‘본체’로부터 발현되고 비추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태어난 ‘한 사람’, 즉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로 여기며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은 스스로 자율의지를 갖고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한다고 믿고 있지만 태어나고 늙어지고 병들어지고 고통 받고 죽어지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책임을 외면하기 위해 카르마라는 거짓된 원인과 결과를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거짓된 환생을 받아들이며, 이 과정에서 도출되는 거짓된 속박, 즉 번뇌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환영 속의 해탈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거짓된 자기견해 속의 환생과 윤회는,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려면 반드시 비교 대상이 남아 있어야 하며, 대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그 어떠한 자율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는 꿈속의 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뚜렷하고 명백하다 할지라도 ‘나뉨과 분리’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나’에 대한 그릇되고 거짓된 견해만을 바로잡았을 뿐입니다.

https://blog.naver.com/ecenter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