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야기

슈트름게슈쯔 2009. 11. 3. 21:58

 

 

 

                                                                        Jean   Jacpues  Rousseau

 

 

 

 

                                                                       Lev  Nikolaevich  Tolstoi

 

외국인의 시각으로 볼때 일본인들의 국민성中  대표적으로 밖으로 표출되는 것중 하나가 원기와 용기를 착각하는자들이 많다는데 있다

그들은 사회생활에 있어 어떤 경우든 여러 형태의 모임을 좋아한다.

여럿이 모임을 갖다 보면 서로 서로의 원기가 어우러져 일에 대한 집단적 협동과 단결이 잘되는 형태는 이제까지의 역사가 증명해주듯 누차 보아왔다.

그래서 단적인 예로 어디에 마케팅이나 설문조사를 할때라도 혼자가 아닌 2명의 사원이 조를 이루어 나가서 일을 벌이는것이 보통이다.

그러한 점이 효율적으로 보일수도 있지만 실제로 회사의 발전을 위하여 직원 개인이 세밀한 능력을 발휘하여 단시간 내에 효율적인 발전을 구사하기는 힘들다.

중소 규모의 회사 사장은 사무실에서 혼자 있기가 적적할때면 늘 공장을 둘러보는 일을 즐겨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을 자주 벌이다 보면 공장의 실무를 담당하는 공장장이라는 직책이 설데가 없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한 이유는 사사건건 작은일 하나라도 사장의 눈에서 보면 양이 차지 않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는 어디에서 생기는 것일까?

그것은 모임을 좋아하여 원기를 충만시키려는 국민성은 그렇다치고 개인적으로 제각기 용기가 부족한데서 비롯된다고 볼수있다.

그러한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장은 자기 자신의 능력을 발전시킬수 원동력을 개발하는데 용기를 발휘해야 할것이다.

원기가 있는 집단이 용기가 충만한것은 결코 아니라는점이다.

사실 회사의 사장이든 어떤 직책을 맡고 있는 사람이든간에  인간은 외로운 존재인 것이다.

에밀을 쓴 프랑스의 철학자

장 자크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라 어떠한 형태의 존재보다도 자연이야말로 인간을 치유시키고 힘을 줄수있는 인간의 크나큰 스승이다고 했지만 정작 그는 파리 뒷골목에서 술에 취해 객사하고 말았었다.

살아생전 항상 루소를 좋아했던 톨스토이는 하루에 10시간을 넘게 고된 농사일을 했을 만큼 힘 또한 장사였다.

그의 정신 세계를 펼쳐보면 당시 사회상이 혼탁했던 러시아라는 나라에서 영적인 면이 대단히 심오하고 충만했던 그러한자가 과연 태어날수 있었던가에 대하여 고개를 갸우뚱 거리게 만든다.

왜냐하면 말년까지 노름과 복권에 미친 도스토예프키와 단적으로 비교되는 입장을 발견할수도 있기 때문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러시아 범죄학 소설의 아버지라 할만큼 그를 한장 한장 넘기다 보면 인생이라는 자체가 암울 그 자체임을 느끼게 만든다.

톨스토이 또한 말년에 새 부인과 사이가 좋지않아 가출을 한 다음 어느 이름모를 역에서 객사하고 말았다.

그 자신 또한 인간이라는 면을 보여주었지만 그가 분명  세계인들에게 남겨준 인생의 메시지는 분명 용기였다.

작년에 동창중의 한명은 2030년이 되면  마산시의 인구가 25만명으로 줄어들어 버릴것이라는 암울한 보도를 들었다고 했다.

그말은 바꾸어 말하면 블루 오션을 개척하여 외부로 뛰쳐나간 용기있는 사람들이 많음을 뜻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나라의 정책은 바뀌어 그로부터 10개월후 마산,진해,창원 세도시는 창원시로 통합되어 인구 100만의 새도시가 탄생되었다.

새로 닥쳐올 역경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은 과거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있을 것이다.

평소에 사람들은 의(義)로써 모인다고 표면적으로 말은 내뱉지만 기실 그 속내를 들여다 보면 언제나 사람은 (利)로는 모일수 있지만 결코(義)로는 오래가지 못함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한비자에서도 볼수있듯 아낙네들에게 뱀과 뱀장어는 똑같이 만지기 징그러운 존재이지만 뱀은 배척하고 뱀장어는 잡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利)가 되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하여 종류에 따라서 뱀이 뱀장어 보다  더욱 큰 이(利)가 되는 세상으로 변했다.

세상은 변하는 것이다.

신선 노름에 도끼 자루 썩는줄 모른다고 좌정관천식으로 앉아만 있다면 인구가 25만이 되는것은 자명한 일이다.

결국 이(利)는 새로운 세계를 두려워 하지 않고 개척해 움직이는 유목 민족식의 결단이 있어야만 만들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직된 사고의 알에서 깨어나려는 이섭대천(利涉大川)의 용기가 항상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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