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야기

슈트름게슈쯔 2012. 2. 13. 15:28

 

 

곽가(郭嘉, 170년~207년)

 

 

 

곽가는 후한 말의 정치가로, 자는 봉효(奉孝)이며,

예주(豫州) 영천군(潁川郡) 양책현(陽翟縣) 사람이다.

 조조(曹操)가 가장 아끼던 일급 참모로 관직은 군좨주(軍祭酒)였으며 시호는 정후(貞侯)이다.

 곽혁(郭奕)의 아버지이자 곽심(郭深), 곽상(郭敞)의 조부이며, 곽엽(郭獵)의 고조부이다.

 

곽가는 어릴 적부터 장래를 내다볼 수 있는 통찰력이 뛰어났다.

20살이 되자, 이름과 경력을 숨기고, 천하의 영걸들과 교제를 맺고 속세에서는 떨어진 생활을 보냈다.

 곽가는 원소(袁紹)를 만났으나, 원소와는 함께 일할 수 없다고 여겨 그를 떠났다.

그후 순욱(荀彧)이 조조에게 희지재(戯志才)의 후임자로 곽가를 추천했다.

 

 

곽가는 조조를 만나 서로 천하에 대한 일에 의견을 나누었다.

조조는 "나의 대업을 이룰 자는 이 사람밖에는 없다"라고 높이 평가하였고,

한편 곽가도 물러나면서 "진정 나의 주군이다"라고 말하며 기뻐했다.

이때부터 조조의 군사(軍師;관직은 군제주)로써 섬기면서 수차례 조언을 하였다.

 

곽가는 삼국지연의에도 정사와 마찬가지로 천재적인 통찰력을 지닌 군사로 묘사되었다.

조조를 섬기게된 경위에 대해서는 순욱이 정욱(程昱)을 추천하였고,

정욱이 곽가를 추천하는 형식이었다.

곽가 자신도 유엽(劉曄)을 추천하였다.

 

 

또한 유비가 여포에게 패해 조조를 의지하려 할 때,

주위에서 유비를 죽여 후환을 없애자고 했는데

곽가는 조조에게 유비를 받아들여 천하에 주공의 덕을 보여야 한다고 반대했다.

이는 《삼국지》 본문에는 없는 내용으로, 주석으로 인용한 《위서》와 《부자》의 내용이 전혀 다른데,

삼국지연의에서는 《위서》의 내용을 따른 것이다).

또한 요동으로 도망간 원상 형제의 최후를 예측한 것도 곽가의 공으로 되어 있다.

 

 

 

 

곽가는 조조의 모사 였다.

곽가(자는 봉효)는 그리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의 책략은 100%의 적중률을 보였다.

제아무리 지략이 뛰어나다해도 실패는 많을터인데 곽가많은 그렇지 않았다.

 

삼국지 소설을 보면 수 많은 영웅호걸들이 나온다.

무장하면 여포..

참모하면 제갈량..

 

제갈량과 곽가 두 명의 전략가가 지략 대결을 했으면 과연 승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정사를 보면 제갈량의 능력은 소설만큼 즉 수 많은 책략가의 정점에 서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인재 욕심의 과하게 많았던 조조도 제갈량을 관우 만큼의 욕심을 보이지 않았고...

 현재 삼국지 모사들중 높게 평가 받고 성공한 모사라면 가후라고 말하고 가후 못지 않게 높게 평가 받는

 인물이 바로 곽가 이다. 

 

둘다 앞을 내다보는 선견지명이 아주 뛰어났다.

 조조의 모사 집단을 보면 대표적으로 곽가,순욱,정욱,순유,가후,모개을 들 수 있는데

곽가는 젊은 나이에 그들을 물리치고 최고의 참모직에 오를 정도였다.

 

 

우선 곽가의 책략을 보자면.

1) 서주보복전 반대-> 조조는 이를 반대하고 출병 했다.

 

복양이 여포한테 빼앗김. 끝내 되찾지 못하고 메뚜기떼의 습격으로 휴전.

2) 유비가 몸을 의탁할때 죽이라고 간언.-> 조조 이를 무시한다.

 

후에 유비는 더 없이 조조의 야망을 방해하는 적으로 성장했다.

3) 관도대전에서 여러 계략을 냄-> 조조 이를 수용. 계속 연승.

4) 사후 유언에 원희,원상을 쫓지 말라고 함.-> 조조 이를 수용.

 

북평의 세력. 원희,원상을 의심해 그들을 죽여 버리고 화해요청..하북 평정되다.

5) 적벽에서 패전후 조조가 "봉효(곽가의 자)가 있었더라면.."하고 한탄함.


[그래! 곽가가 있었더라면 이렇게 까지 패전하진 않았을거야!!]

적벽대전에서 남긴 조조의 명언이다.

"아..봉효(곽가)가 있었더라면!!" 인간조조란 책에선 조조가 참모를 차마 탓할순 없고

그냥 지나가자니 또 뭐하고 그래서 이런 말을 해 참모들을 무안하게 만들었다고 하지만

곽가가 살아있을때 저 무서울 정도의 책략 예측률을 보면

이런 말을 하는것 역시 무리가 아니었을것이다.

결국 가인박명,미인박명이란 말은 곽가를 위해 만들어진 말이며

곽가는 이런 말을 만들어 낼 만큼 능력있는 참모였다.

어쩌면 하늘은 조조의 패업을 방해하기 위해 곽가를 대려간것일지도 모른다.

이와같은 좋은 책략을 가졌으나. 곽가는 잘알려지지 않았으며, 일찍요절하여

그의 위세를 잘알리지 못한게 참으로 아깝다.
조조가 원소를 공격 할때 곽가가 병에 걸려서 죽게 되는데,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까지 글로써 조조에서 전략을 남기는데 그 부분이 정말 멋지다.

 

 

 


곽가의 자는 봉효요 조조의 모사인 곽가는 삼국지의 

초기에 나오며 더불어 38세의 나이로 일찍요절하여

유명세가 높진 않지만 그의 활약은 뛰어났다.

 

그는 순욱보다 높은 책략을 가졌으며 조조가 곽가가 죽었기 때문에

적벽대전에서 지지않았나 눈물을 흘리며 원통케한 인물이었다.

 

누구든 인생에 있어 친구및 지인들중에서 곽가같은 사람이 있어

한편으로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미처 생각치도 못했던 선견지명의 예측이 현실로 다가올때

 한번씩 곽가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통찰력이 대단한 곽가의 지략같았던 그의 말을 듣고 

일찌기 참고 했을걸 하는 후회를 해보기도 할때가 있다.

 

 

 


photo from : tool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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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곽거품, 곽푸치노. 순욱보다 높은 책략은 커녕 순욱, 순유 급에 비할 바가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