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야기

슈트름게슈쯔 2015. 7. 5. 19:26





헝가리의 자유화를 탄압하는 소련 공산주의 군대의 침공과 살륙에 대항하여 

노획한 소련군 파카를 입고  PPSh -41 따발총으로 무장한

 15세 헝가리 자유의 투사 부다페스트 소녀 에리카 - 1956년 10월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김춘수

 



다뉴브 강에 살얼음이 지는 동구(東歐)의 첫겨울

가로수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뒹구는 황혼 무렵

느닷없이 날아온 수발의 소련제 탄환은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

순간, 바숴진 네 두부(頭部)는 소스라쳐 삼십 보 상공으로 튀었다.

두부를 잃은 목통에서는 피가

네 낯익은 거리의 포도를 적시며 흘렀다.

-----너는 열세 살이라고 그랬다.

네 죽음에서는 한 송이 꽃도

흰 깃의 한 마리 비둘기도 날지 않았다.

네 죽음을 보듬고 부다페스트의 밤은 목놓아 울 수도 없었다.

죽어서 한결 가비여운 네 영혼은

감시의 1만의 눈초리도 미칠 수 없는

다뉴브강 푸른물결 위에 와서

오히려 죽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소리높이 울었다.

다뉴브 강은 맑고 잔잔한 흐름일까.

요한스트라우스의 그대로의 선율일까,

음악에도 없고 세계 지도에도 이름이 없는

한강의 모래사장의 말없는 모래알을 움켜쥐고

 왜 열세살 난 한국의 소녀는 영문도 모르고 죽어갔을까?

죽어갔을까, 악마는 등 뒤에서 웃고 있었는데

한국의 열세 살은 잡히는 것 하나도 없는

두 손을 허공에 저으며 죽어갔을까?

부다페스트의 소녀여, 네가 한 행동은 네 혼자 한 것 같지가 않다.

한강에서의 소녀의 죽음도

동포의 가슴에 짙은 빛깔의 아픔으로 젖어든다.

기억의 분한 강물은 오늘도 내일도

동포의 눈시울에 흐를 것인가,

흐를 것인가, 영웅들은 쓰러지고 두 달의 투쟁 끝에

너를 겨눈 같은 총부리 앞에

네 아저씨와 네 오빠가 무릎을 꾼 지금

인류의 양심에서 흐를 것인가,

마음 약한 베드로가 닭 울기전 세 번이나 부인한 지금

십자가에 못박힌 한 사람은

불멸의 밤, 왜 모든 기억을 나에게 당뇨 하는가,

나는 스물두 살이었다.

대학생이었다.

일본 동경 세다가야서 감방에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수감되어 있었다.

어느 날, 내 목구멍에서

창자를 비비꼬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어머니, 난 살고 싶어요!"

난생 처음 들어보는 그 소리는 까마득한 어디서,

내 것이 아니면서, 내 것이면서……

나는 콘크리트 바닥에 머리를 부딪고

북 받쳐 오르는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누가 나를 우롱하였을까,

나의 치욕은 살고 싶다는 데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내던진 죽음은

죽음에 떠는 동포의 치욕에서 역으로 싹튼 것일까?

싹은 또한 인간의 비굴 속에 생생한 이마쥬로 움트며 위협하고

한밤의 불湧?담담한 꽃을 피웠다.

인간은 쓰러지고 또 일어설 것이다.

그리고 또 쓰러질 것이다. 그칠 날이 없을 것이다.

악마의 총탄에 딸을 잃은 부다페스트의 양친과 함께

인간은 존재의 깊이에서 전율하며 통곡할 것이다.

다뉴브 강에 살엄음이 지는 동구의 첫겨울

가로수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뒹구는 황혼무렵

느닷없이 날아온 수발의 소련제 찬환은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

부다페스트의 소녀여.

내던진 네 죽음은

죽음에 떠는 동포의 치역에서 역으로 싹튼 것일까,

싹은 비정의 수목들에서부터

치욕의 푸른 명으로부터

자유를 찾는 네 뜨거운 핏속에서 움튼다.

싹은 또한 인간의 비굴 속에 생생한 이마쥬로 움트며 위협하고,

한밤에 불면의 염염(炎炎)한 꽃을 피운다.

부다페스트의 소녀여.



1957년 사상계



  김현승 시인은 이 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평했다.  

“해방 후 우리 시단에서 생산된 사회성과 시사성을 간직한 시 작품 가운데 가장 뛰어난 백미편이다. 

가장 박력 있는 표현으로 자유와 정의를 옹호한 시편으로도 유명하지만,

 이 시에는 현대시의 새로운 연상 수법이 교묘히 배합되어 있다.

 다뉴브 강의 흐름을 한강에 잇게 하여 헝가리의 불행을 

한국의 불행으로 감지케 하는 수법이랄지, 비굴에 관한 작자 자신의 잠재 의식을,

 부다페스트의 용감한 사건에 결부시켜 자연스럽게 사상의 전개를 결속으로 이끌어 가는 수법 등은 

보통의 시사성의 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하고 참신한 수법이다.”

         시집『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에는 「우계(雨季)」·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계열의 작품과, 

「꽃」·「꽃의 소묘」·「꽃을 위한 서시」로 이어지는 두 계열의 작품이 있다.

 부다페스트 계열의 작품은 소수에 지나지 않지만 희랍과 부다페스트에서의 

어린 소녀의 살해사건을 통해 우리 현실에 대한 접근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이 시집의 주류를 이루는 꽃 연작을 통해 

존재와 언어에 대한 탐구, 또는 존재에 대한 조명으로 바뀌어나간다. 

그의 초기 대표시 중의 하나인 「꽃」에서 꽃은 인간의 명명 행위 이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명명 행위에 의해 비로소 꽃이라는 사물로 존재하게 된다. 

 이 점에서 이 시는 사물이 인간의 언어 행위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현상학적 인식론의 세계를 보여준다





photo from : www.reddi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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