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슈트름게슈쯔 2020. 6. 24. 01:36

연합군을 환영하는 로마 시민들 - 1944년 6월 4일 

 

 

나치 독일군의 점령으로 부터 해방시킨 로마 거리에서 검은 우산을 들고 행진하는 영국군 병사  - 1944년 6월 4일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의 주유소 지붕에 거꾸로 매달린 독재자 무솔리니와 그의 애인 클라라 페타치 - 1945년 4월 29일 

 

 

1945년 4월 전쟁의 패색이 짙어지자 무솔리니는 애인이었던 클라라 페타치와 함께 탈출을 시도한다.

그는 스위스를 거쳐 스페인으로 망명할 생각이었다. 4월 27일 공산주의 계열의 파르티잔인 제52 가리발디 여단

정치부 소속 우르바노 라차노는 코모 호 인근의 마을 동고에서 무솔리니와 페타치를 체포하였다.

체포 당시 무솔리니는 독일군으로 위장한 병사들과 함께 독일 장교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무솔리니와 페타치는 메체그라로 연행되어 데 마리아 가족의 집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이튿날 파르티잔은 무솔리니에 대한 재판을 진행하고 그와 페타치를 총살하였다.

처형 기록에는 무솔리니의 총살을 지휘한 사람이 "발레리오 대령"이라 되어있다.

발레리오 대령의 실명은 왈테르 아우디시오이었으며 무솔리니를 처형한 후

그 사실을 [전국 민주 평의회]에 통지하였다. 처형 당일 아우디시오는 무솔리니가 구금되어 있는 집으로 가서

"나는 당신을 구하러 왔다. 무기를 갖고 있는 사람은 없나?"

라고 말하며 무솔리니를 안심시킨 뒤 차에 태워 마을 교외로 데리고 나갔다.

아우디시오는 으슥한 곳에서 무솔리니에게 "내려"라고 명령했다.

무솔리니와 페타치는 서로를 끌어안고 공터에 서있었다. 아우디시오는 먼저 페타치를 쏘았다.

페타치가 쓰러지자 무솔리니는 재킷을 열고 "가슴에 쏴라"라고 말했으며

아우디시오는 무솔리니의 가슴을 관통시켰다. 무솔리니는 쓰러졌으나 숨이 끊어지지는 않았다.

아우디시오는 다가가 가슴에 다시 한 발을 쏘았다.

무솔리니는 몹시 고통스러워하였다. 아우디시오는 그의 운전병에게 "저 작자 좀 봐,

이제야 얼굴에 감정이란게 나타나는군"이라고 말했다. 무솔리니와 함께 있었던 병사들은 그날 밤 총살되었다.

1945년 4월 29일 무솔리니와 페타치, 그리고 함께 처형된 파시스트들의 시체는 트럭에 실려 밀라노로 보내졌다.

새벽 3시 그들의 시체가 밀라노의 피아자 로레토에 내려졌다.

그곳은 일전에 파시스트당에 의해 15명의 반파쇼 운동가가 처형된 곳이었다.

수많은 군중에 의해 차이고 짓밟힌 그들의 시체는 주유소 지붕에 거꾸로 매달렸다. 

그것은 실로 추악한 독재자의 최후였다.

같은 날 한때 "무솔리니가 신이다."라는 발언을 한 파시스트 왕당파 아실레 스타라체 역시 붙잡혀 처형된 뒤

무솔리니가 매달린 피아자 로레토로 실려왔다.

이탈리아 파르티잔들은 곳곳에 숨거나 저항하던 파시스트들을 붙잡아 처형하였으며

그들의 시체를 그곳에 매달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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