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전쟁 범죄

슈트름게슈쯔 2020. 9. 23. 04:43

일제강점기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침략한 일본군의 전선 이동시 성노리개 역할로 곳곳으로 끌려다니면서

갖은 고초를 겪으며 매일 매일 성폭행을 당하면서 모진 세월을 보낸후 제 2차 세계대전 종전 18일후

중국 남부지역 윈난성 쑹산에서 연합군에 의해 구출된 조선인 성노예 여성들- 1945년 9월 3일 

(The U.S National Archives)

 

 경사지에 기대어 있는 만삭의 위안부로 잘 알려진 그 사진속의 여성은 고 박영심 할머니이다.

박영심 할머니는 앞서 2000년 이 사진 속 인물이 자신임을 밝히고,

북한에서 일본군의 만행을 고발하는 데 앞장서다 2006년 평양에서 작고했다.

영상 속 박영심 할머니는 당시 나이가 22살로 추정되며 매일 계속되는 일본군의 강간으로 인해

어절수 없이 일본놈의 씨를 배게 되어 배는 만삭으로 불러 있는 상태다.

할머니는 미-중 연합군 중국 국민당군이 “만세”를 외치며 즐거워하자, 어리둥절하던 표정을 걷고

이내 “만세”라고 따라 외치고 있다. 영상에는 박영심 할머니 외에 다른 성노예 여성들도 눈에 띈다.

국적을 알 수 없는 한 성노예 여성은 전투중 크게 다쳤는지 얼굴에 유혈이 낭자하며

한쪽 눈이 심하게 부어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KBS 한국방송이 미국 국립기록관리청에서 우연히 발굴하여 공개한 이 영상은 박영심 할머니등 일행이

미-중 연합군에게 발견되는 상황을 담고 있는 54초 분량이다. KBS 한국방송 측은 “영상이 촬영된 날은

1944년 9월 7일로 추정된다”며 “미-중 연합군이 중국 윈난성 쑹산에서 100일 동안의 전투 끝에

일본군 진지를 함락하던 날”이라고 말했다. 당시 진지에 남았던 일본군이 대부분 자결한 뒤,

위안소에 남아 있던 조선인 일본군 성노예(Sex slave) 여성들이 탈출했다가 

연합군에게 발견된 상황이었다고 했다.

 

 

미국 캔자스 주 토피카 출신의 하트 H. 스피걸 미 해병대 중위는 1945년 오키나와에서 잡힌

두 명의 키작은 일본군 병사와 대화를 시작하려고 할 때 수화를 사용했다.

왼쪽의 키작은 병사는 자신의 나아가 18세라고 주장했고 그 옆의 동료 병사는 나이가 20세라고 자랑했다.

키가 작아서 불과 12~13세 정도의 소년병인줄 알았던 그들은 징집 연령대(18~20)가 맞는 

나배기의 난장이 왜구였다.

오키나와에 있었던 수비대는 극히 일본군의 일부에 불과했지만, 상당수의 일본군은 자살을 하지 않고 항복했다.

오키나와에서 7,000명 이상의 일본군 병사들이 항복했다. 역사학자들은 미군에게 항복한 많은 수의

일본군 병사들이 일본군이 아닌 오키나와 징집병이라고 본다.

 

 

태평양전쟁 막바지 오키나와에서 미군에 항복한 일본군 난장이 왜구 포로들 - 1945년

 

 

 

 

연합군에 의해 구출된 조선인 성노예 여성들과 오키나와에서 항복한 일본군 난장이 왜구 포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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