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스페셜

슈트름게슈쯔 2007. 10. 16. 01:44

 

 

 

 

 

 

 

인간의 욕망이란 어떻게 보면 그 끝과 한이 없을 정도이기도 하며 

그리고 그 욕망을 결코 수치나 량으로써 측정하거나 가늠하기는 매우 어렵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과학 문명과 기술의 발달에 지대한 원동력으로 작용되어 왔다.

그리고 인간들의 욕망에 의해  어느때 어떤 곳에서든지

인간들의 집단이 형성된곳에서는 지속적이고도 반복적인 투쟁의 과정을 거쳐 오면서

비로소 국가라는 형태로 토착화 되였다.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벤덤은

해외의 식민지에서 거두어들인 물자들로 인하여 국가의 살림이 풍족해지자 

인간 다수의 욕망을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유사이래 서로 다른 국가간이나 국민들간이나  개인들간이나

인간 세상에서 비롯되는 만사의 유형이 다 상대적이고도 상호적 형태인지라

서로간에 충돌과  상호 세력들의 결집과 분열등으로 인해

자연 발생되는 크고 작은 투쟁들을  그 어떤 힘으로도 결코 소멸화 시킬수는 없었다.    

어떤시대 어떤 국가들은 자기들만의 소수가  잘먹고 잘살기 위해서 주변의 국가들에

대한 평화적인 가치나 우호적인 가치및 인도주의적인 측면을  철저히 무시해 버리고 

독단적이고도 비인도적인 야심을 표출시켰다.

강탈과 도둑질의 국가간의 수준은 전쟁 이라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1941년 6월  독일군은 300만명의 방대한 병력으로 북부집단군,중앙집단군, 남부집단군의

세 집단군이 세갈래 방향으로 나누어 소련 영토내로 침략해 들어갔다

그러나 그 동부전선에서 독일군이 싸워야 할 또다른 적은 광활한 러시아 평원에서 펼쳐지는 가혹한 자연의 섭리였다.

여름이 끝나자 곧 러시아의 가을장마인 라스푸티챠는 러시아의 비옥한 흑토지대를 일시에 진흙탕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로인해 러시아 평원을 질러 진격하는 대다수 독일군 차량들은 진흙탕에 빠져 전격전을 구사하지 못하게 된다.

기껏 독일군이 소련군을 상대로 펼쳤던 전격작전이었던 바르바로사 작전은 1941년 6월 부터

9월까지의 대략 3개월간이 그 정점의 시기 였다.

물자가 전적으로 모자랐던 독일은 1차 세계대전때의 과거전 당시와 마찬가지로 

 60만마리 라는 엄청난 말들을 전쟁에 동원시킬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독일 본토외 점령지 폴란드와 프랑스 등지에서 징발 수탈한 말들로서 

 기계화 부대와 포병대및 보급부대의 수송물자를 나르는 원시적이고도

복고적인 수송수단 이었지만 한편으로 독읽군에게는  제일 쓸모있는 수송수단이기도 했다,

이후 말은 또한 독일 추축국 군대의 식량으로 탈바꿈이 되기도 하었다

9월부터 추위가 시작되는 러시아의 겨울은 10월말이 되면 그야말로 상상할수도 없을 정도의 혹한으로 나타난다.

실로 영하 30~40도를 오르내리는 러시아 동장군의 기세에 독일군 특유의 목아 긴 가죽 부츠는 병사들을

동상에 걸리기  딱좋은 조건을 만들어 주었다.

거기에다가 쇠 철편을  아예 징 처럼 박고 진군했으니

 그 추위의 고통이란 이루 말할수가 없었다,

겨울에 병사들은 너나 할것없이 군화에서 쇠 철편을 제거해 버리고,

전투중 사살된 소련 병사의,두툼한 털가죽 부츠를 시체에서 벗겨 신는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만큼 독일군에 대한 후방의 물자지원이 거의 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프랑스에서 동부전선으로 보내온 포도주는 혹한의 한파로 인하여 ,

포도주 병은 얼어붙어 얼음이 되어 터져버려 코르크 마개가 퉁겨져 나오고,

딱딱하게 얼어버린 빵은 도끼로 찍어서 잘라 먹어야 했다.

또한 혹한의 동절기에  트럭이나 전차를 가동 시킬려면  전차의 엔진 하부에 장작불을 피우고

 예열을 시켜야 했으며 항상 대기해야될 차량은 연료의 손실이 크더라도 엔진을 항상 가동시킨 상태로 두어야 했다.

러시아 동장군 혹한의 맹위는 쇠붙이 마저 동결시키기도 했는데 독일군이  마우저 소총의 노리쇠를 제끼면 격자가 얼어붙어

쇠가 투드득 하며 쪼가리가 나면서 그대로 파손되면서  떨어져 나가기도 하였다.

 독일군들이 혹한에 소변을 보면 오줌 줄기는 그대로 고드름이 되어 버렸고 대변을 보면 바로 얼음덩이가 되어

 항문이 동상이 걸려 치질에 걸리지 않은 병사가 없었다.

이로 인한 여건으로 독일군은 러시아 침공 첫해는 겨울나기를 소강상태를 유지하면서 이듬해를 엿보고 있었다.

독일군은 얼어붙은 수송수단으로 인해 전선에 군수물자의 보급에 대단히 큰 어려움을 받기 시작했고

 독일에서 데려온 말들은 거의 다 얼어 죽어 버렸다.

그때 마지막으로  남아 신뢰 할수있었던 수송수단은 몸집이 작고

추위에 대단히 강한 코카서스산 검정말 밖에 없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소련의 농가에서 빼앗은 이 말들만이 혹한기 독일군의 유일한 운송수단이 되었던 것이다.

 

 

                  

 

 

 

 

   photo from : Histom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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