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의 삶

revival 2013. 4. 12. 21:25
이동희 기자 dong423@googood.com

지난해 7월에 타계한 이중표 목사의 별세신학에 대해 한국의 대표적인 목사들이 그 의미를 되새기고, 평가하는 자리를 가졌다. 이중표 목사의 별세신학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이라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 속에서 살지만 세상과는 다른 신앙의 세계관을 통해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조용기 목사와 옥한흠 목사, 박종화 목사는 16일 대담을 통해, 현재 한국교회에 이러한 별세신학이 절실히 필요함을 공감했다.

한국교회, ‘죽어야 산다’

조용기 목사는 한국교회가 경제 성장과 더불어 급속히 제도화•조직화 되면서 생명력을 잃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교회가 생명의 능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올바로 구현하는 별세신학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조 목사는 교회나 세상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에 대해 “교회가 세상에 대해 죽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조 목사는 “교회가 세상에 대해 죽고 성령에 따라 살기 위해서는 회개운동이 일어나야 한다”며 “교회가 수적으로 성장한 반면 질적으로는 성결이 사라진 이 시점에 별세신학으로 돌아가 통회하고 자복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조 목사는 별세신학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함을 주장했다. 그는 “별세신학을 실천할 수 있는 원동력은 성령의 역사”라며 “인간이 별세신학을 정립했다면, 이를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성령의 능력”이라고 강조했다.

박종화 목사도 ‘한국교회가 세상의 가치를 뛰어 넘어 하나님의 가치를 어떻게 이 땅에 구현해 낼 것인가’의 답을 별세신학에서 찾고자 했다.

그는 한국교회가 현재 그 어느 때보다 성장했지만, 세상적인 것에 매몰되어 복음의 내용인 교회의 본직적인 사명은 왜곡되어 있다고 봤다. 따라서 교회는 세상에 있으되 세속화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다른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별세신학을 확고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목사는 “별세신학은 세상 속에서 살되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사는 것(In the world, beyond world)을 말한다”며 “교회를 내실화시켜야 하는 이 시점에 한국교회에 별세신학이 뿌리 내려야 한다”고 밝혔다.

옥한흠 목사도 “오늘날 별세신학에 대해서 계속 논의 되는 것은 죽어야 될 사람들이 안 죽고 살아 있기 때문”이라며 별세신학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특히 옥 목사는 낮아짐이 없는 목회자에 대한 따끔한 충고를 덧붙였다. 그는 “의식있는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은 많은 목회자들이 낮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한국교회는 목회자가 잘못돼서 휘청대는 것이지, 평신도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이중표 목사가 살아계시면 ‘목회자부터 죽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별세신학의 스펙트럼

이러한 별세신학은 한국교회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 왔다는 의견이다. 별세신학이 가지고 있는 가치는 근본적으로 같지만, 목회 패러다임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용기 목사는 48년간 자신의 목회철학인 희망목회와 별세신학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라’는 삼중축복의 희망은 주님께로부터 오는 것으로, 옛 삶을 벗어버리는 별세의 과정 뒤에 찾아오는 새로운 삶이라는 것이다.

조 목사는 “사람들은 별세신학과 나의 희망목회가 다르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며 “희망은 세상의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받는 것이고, 이것은 옛사람을 완전히 벗어버리는 별세신학의 새로운 삶으로 가능하다”고 밝혔다.

즉 옛 아담의 삶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 때 결과적으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게 된다는 것이다.

옥한흠 목사는 제자훈련을 통해 평신도들을 작은 예수로 만드는 일이야말로 목회자와 평신도 모두 별세신학을 경험하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세웠는데, 제자는 곧 작은 예수”라며 “제자를 제대로 양육하지 못하면 예배도, 교회건물도 무의미하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35년간 제자훈련을 통해 목회자와 평신도가 모두 자기가 죽는 체험을 하면 삶과 인격이 바뀐다는 것을 경험했다”며 “한국교회의 미래는 성도들을 제자화 하는데 있다”고 언급했다.

박종화 목사는 별세신앙을 한국교회에 구조적으로 접목시켰다. 한국교회가 급속히 성장하면서 세계적으로 주목받았지만, 지금은 성장이 멈춘 상태이다. 이러한 시점에 한국교회는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단체와는 구별된 역할을 별세신학으로 실현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박 목사는 “교회는 세상과 다를 바 없지만, 선교와 복음의 공동체로서 교회의 공적인 성격을 구축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교회는 이미 세계적 교회로서, 세계가 요구하는 수준의 봉사를 해야 한다는 의미라는 견해다.

박 목사는 “유럽교회에 있어보니 사람 수도 적고 열정적이지는 않은데, 잘 알지 못하는 나라가 어렵다고 할 때 헌금 내는 데는 주저함이 없었다”며 “한국교회도 수많은 세상 사람들을 위해 조건없이 헌신하고 헌금을 드리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섬김에 대해 조용기 목사도 “사회가 한국교회를 등진 이유는 교회가 사랑의 실천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북한문제나 농어촌교회의 어려움, 사회문제도 사랑을 실천함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예수님이 제사장이나 레위인의 비교 대상으로 사마리아인을 예로 든 것은 종교주의나 외식주의가 얼마나 해로운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며 “예수님의 뜻대로 사랑을 실천하는 자가 되면 우리도 변화되고 세계도 변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동희 기자의 최근기사]

 
 
 

창조

revival 2009. 11. 16. 20:49

(Jesus teaching the ‘big picture’ from Genesis)
 Gary Bates, Russell Grigg

   복음을 설명하고 선포하는 것을 돕기 위해 창세기(Genesis)를 사용한다는 의미에서, 창조론적 복음주의(creation evangelism)는 새로운 것인가? AiG와 같은 단체들이 쓰고 있는 방법은 오늘날 해로운 문화적 영향을 끼치고 있는 진화론 교육에 단순히 대항하기 위함인가?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창세기부터 기초를 든든하게 하는 것은 오늘날 복음주의와 교회 교육이 자주 놓치고 있는, 성경과 구원의 큰 그림을 확실하게 하는 작업인 것이다.

진화론(과학으로서 과시되고 있는 인본주의적 믿음의 정당화)은 오늘날의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면역화 시켜 놓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과학(science)이 성경이 틀렸음을 입증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상 이와 같지는 않았었다.


듣기를 갈망했던 군중들

1950 년대에 빌리 그레함(Billy Graham)과 같은 복음 전도자들이 공개적인 집회를 열었을 때, 대형 체육관들은 그가 말하는 것을 듣기를 열망하는 군중들로 가득 채워졌었다. 모두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경, 기도, 찬송 등을 가르쳤던 학교 교육과 같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환경 하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구원에 대한 개념은 이해되어졌다. 기독교의 원리와 복음의 기초는 삶에 있어서 확립된 사실이었다. 이들 군중들에게 나타났던 많은 반응들은, 그들이 이미 알고 있었던 하나님께로 단순히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오늘날에는 잘 통용되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대부분이 비기독교인 사람들에게 '성경은 ~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면, 그들은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어쨌다는 거야?”


진화론으로 가득한 문화 속에서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은 교회를 다니지 않았고, 주일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다. 그들은 구원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새로운 개념을 배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초가 되는 처음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사도 바울은 아덴의 아레오바고(Areopagus)에서 이 방법을 사용했다 [1]. 이 이야기는 사도행전 17장에 기록되어있다. 주목해야만 하는 것은, 바울은 진화론의 형태를[2] 믿고 있었던 당시의 시장에 있었던 사람들과 철학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 말장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 라고 표현하고 있다. (행17:18).

바울은 '알지 못하는 신에게(To an unknown god)” 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는 그들의 제단을 가리켰다. 바울은 그들에게 그들이 경배하는 알지 못하는 신은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하나님 (24절)” 이시며,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한 사람으로부터) 만드신 (26절)” 분임을 말했다. 바울이 말했던 것은 무엇인가? 그는 세계의 진실된 역사로서, 창세기에서 발견되어지는 복음의 기원을 펼쳐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 중에서 단지 소수의 사람들만이 믿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 중의 한 명은 아레오바고 관원이었던 디오누시오(Dionysius)였다 (34절). 오래지 않아 교회는 시작되었다. 그리고 디오누시오는 그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 [3]. 아덴에서의 교회는 크고 영향력이 있게 되었다. 그들은 출발할 때부터 바른 기초를 가졌던 것이다.


교회 세대들에게 설교하기

이것과 대조적으로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사도 베드로의 설교는 단순히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을 설교하였다. 그리고 결론짓는다.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36절). 그 날에 삼천 명의 사람들이 세례를 받고 구원을 받았다 (41절) [4]. 

베드로는 신앙이 있었던 세대들, 즉, 이미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율법을 주신 분이요, 창조주요, 심판주로서 알고 있었던 유대인들에게 설교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창조와 타락, 그리고 죄가 들어옴과 이어진 형벌에 대한 창세기 기록을 알고 있었고, 믿고 있었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서 도움 받을 곳이 없는 그들의 상태에서, 예수님은 약속대로 오신 메시야로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그들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보내셨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 필요했다.

불행하게도, 구원에 관한 이 큰 그림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 많이 있다. 이것은 단순히 구원에 대한 감정적인 생각이나, 기초적인 가르침의 부족, 그리고 진화론적 교육에 의한 창세기의 불신과 같은 많은 것들에 기인할 수 있다.


예수님과 ‘큰 그림(big picture)’

‘큰 그림(big picture)’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던 일부 신앙인(유대인)들과 예수님도 또한 대면했었다. 누가복음 24장 13-35절에 보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두 명의 제자가 몇 일전에 일어났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엠마오(Emmaus)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예수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며, 서로 주고받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왜 그렇게 슬퍼하는 지를 물어보셨다. 그들은 예수님인줄을 알아보지 못하였고, 그 한 사람인 글로바(Cleopas)가 예수님께 묻고 있다. '당신이 예루살렘에 우거하면서 근일 거기서 된 일을 홀로 알지 못하느뇨?” 예수님이 이르시되 '무슨 일이뇨?”      

그들이 대답했다.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여늘,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된지가 사흘째요,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저희가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으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또 우리와 함께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의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글로바는 성경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의기소침해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님(그리스도)이 왜 죽으셔야만 했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와 그의 친구는 그들의 현재 상황과 국가적 상태에 열중되어 있었다. 이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던 것이다.

똑같은 일이 제자들이 모여 있는 다락방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을 때도 발생했다 (눅 24:44-46). 예수님은 모세가 자신에 관해서 기록했던 것으로 시작하면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그러면 모세가 기록했던, 분명한 복음을 위해서 예수님이 설명해야했던 것은 무엇인가? [6].

그것은 창조 (신약성서의 저자들은 예수님을 창조주로 기술하고 있다. 요1:1-3, 골1:16, 히1:2), 아담의 범죄, 죄가 들어옴, 인류에 내려진 죽음 등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이었다. 이것은 인류의 죄에 대한 대속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날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은 그가 죽으셔야만 했던 이유를 설명하셨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또한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구세주(Saviour)가 필요하다는 것뿐만 아니라, 왜, 도대체 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어야만 했는지를 설명해야만 한다. 그 이유에 대한 기본 개념은 창세기(Genesis)에서 확립되어지는 것이다 [7].

오늘날 복음을 전파하고 있는 크리스천들에게, 이것은 '큰 그림(big picture)” 이다.



* 참조 1 :

1. 거품 속에서 살아가기 : 교회가 창조과학을 가르쳐야 하는 이유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864

2. 교회여, 창조론을 가르치자!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412

3. 창조론 대 진화론 - 교회가 당면한 문제는 무엇인가?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40

 

*참조 2 : Did Jesus Say He Created in Six Literal Days?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nab/did-jesus-say-he-created-in-six-days

출처 : Creation 25(3):24–26, June 2003
URL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25/i3/teaching.asp
번역자 : IT 사역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