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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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행 사 진

2006. 11. 8.

 

 

남한산성에서

 

 

 

 

 

   

 

 

 

 

  

 

 

 

 

 

 

 

 

 

  

 

 

 

 

 

 

망월사

 

 

 

 

 

 

 

 

  

 

 

 

 

 

  

 

 

 

 

 

 

 

 

 

 

 

 

 

 

 

 

 

 

 

 

 

 

 

 

 

  

행궁 복원사업중

 

 

 

 

 

 

 

 

 

 

 

 

                                                                                                           2006.11.5. 찰영

 

 

김경남 - 님의향기(빗소리)




밤새 갈바람 잠을 잔듯이
조용한 바람인듯 눈을 감으면
님의 모습인가 향기인듯한 생각에
눈시울 적셔옵니다.
이별이 아닌데도 님이 떠난후
텅빈 가슴 어쩔 수 없어요
견디기 힘든 아픔만.
까맣게 태워 버린 밤 너무 허전해
뜨거운 가슴으로 길을 나서도
막상 갈곳이 없어요
못 다준 사랑의 아쉬움이
가슴에 남아 있는데 오직 그대곁에
머물고있는 사랑하는 내마음.
이별이 아닌데도 님이 떠난후
텅빈 가슴 어쩔 수 없어요
견디기 힘든 아픔만.
까맣게 태워 버린 밤 너무 허전해
뜨거운 가슴으로 길을 나서도
막상 갈곳이 없어요
못 다준 사랑의 아쉬움이
가슴에 남아 있는데 오직 그대곁에
머물고있는 사랑하는 내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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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57호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산1리일원

 

조선시대에 북한산성과함께 도성을 지키던 남쪽의 방어 산성이다. 남한산성 성벽의

외부는 급경사를 이루어 적의 접근이 어려우나 성내부는 경사가

완만하여 10여석의 쌀을 파종할 수 있는 정도의 논이있고 풍부한 수량을갖춘 천혜의

전략적 요충지다.  남한산성은 백제의 왕도였다는

견해도 있으나 최근의 발굴 조사에서 신라 문무왕12년(672)에쌓은 주장성(晝長城)일

가능성이 매우 큰 것으로 확인 되였다. 고려 시대에도

 이성에서 몽고군의 침입을 피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임진왜란 당시에도 사용했던

기록이 있다.  인조반정이후 후금(後金)의 침입에 대비하여

인조4년에 완공하였다. 이후 150년간10여차례 다시 고쳐쌓았다. 성의둘레는7.545m이고

높이는 낮은곳이 3m정도이고 높은곳은 7m내외이다.

성벽 위에는 여장이 설치되어 있으며 다른 성들과 달리 길이가 매우짧은

치가 설치 되어있다. 산성안에80개의 우물과45개의 연못이 있고

성벽에는30여개에 달하는 수구를 설치하였다.남한성은 동문인 좌익문(左翼門)서문인

우익문(右翼門)남문인 지화문(至和門)북문인 전승문(全勝門)등

4대문과 비밀문인 암문(暗門)이 16개가 있었다.  또한 다섯개의 장터가 설치되어 있었고

명사들의 숙소인 군포(軍鋪)가125성안에 설치되여 있었다.

성내에는 왕의 숙소인 행궁이 설치 되였으며 광주시의 읍치를 산성안으로옮겨 각종 관과

건물과 창고를 설치 하였다 남한산성은 병자호란의 치욕을 간직하고

있는곳이지만 역사적으로 한번도 함락되지 않은 대외항전의 전적지로서 최고의 수준에

달한 우리나라 성곽 축조기술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지다.

남문 (至和門)

 영춘정은 임명 팔각정 이라고 한데 남문아래 영춘정 있었던것을 옮겨 놓았다

 경기도 유형문화제 제3호

소재지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815-2

 

인조2년(1624) 남한산성을 쌓으며 동남쪽 부분을 책임지고 공사하다가 공사 경비를

횡령 했다는 누명을 쓰고 죽음을 당한 이회(李晦)의 이소식을 듣고

한강에 몸을 던져 자살한 그의 부인 송ㅆ와 소실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사당이다.이회는 누명을 쓰고 죽을때 자신에 죄가 없으면 사형을 당할때

매 가 한마리 날아 올것이라고예언 했는데 이회가 죽으려는

순간 과연 매 가한마리 날아와서 사형 당하는 것을 쳐다보았다한다.

이회가 죽은후 공사비 횡령 사건이 다시 조사 되였는데 조사결과

그가 한 공사는 모두 충실하게 축조되었고 공사비를 횡령한 사실도없습이 밝혀지자

서장대(西將臺)옆에 사당을 지어 그의 넋을 위로토록 했다고 한다.

 이와함께 남한산성 공사의 공로자로 위로하기 위한 뜻으로 초상을 안치 해

두었는데 6.25 전쟁때 분실되고 지금 있는것은 그 이후에 만든것이다.

사당은 정면 3간 축면 2칸으로 흩처마에팔작 지붕으로 되있다.

경기도 유형문화제 제1호

소재지   경기도 광주시 주부면 사성리 815-1

 

지휘와 관측을 위한 군사적 목적에서 지은 누각으로 남한산성 의서쪽 주봉인이곳 청량산에 있다 성안에

남아있는 건물중 가장 화려하고 웅장하게 지여 졌으며 왼쪽에는 사당인 청량당있다 뒷쪽에는 2개의 우물

이있어 장대를 지키는 병사들에게 물을 공급하였다 이건물은 이조2년 (1624) 남한산성 축성 때 단층

누각으로 지어 서장대 불린것을 영조 27년(1751)유수 이기진이 왕명을 받아 이층 누각으로 다시 쌓고

수어장대라는 편액을 달았다특히 병자호란때에는 이조가 친히 군사들을 지휘 격려하며 45일 간

항전하던 곳이다 수어장대에는 아래층이 정면 5칸 측면이 3칸 위층이 정면3칸 측면2칸인 팔작 지붕

양식의 이층 누각이다 지붕은 위 아래 모두 겹 처마을 둘렸으며 사래 끝 에는 토수를 달고 추녀마루에는

용두를 올렸으며 용마루에는 취두를 올렸다 건물의 기둥인 높이60cm의팔각장 초석위에 올려져 있고

또는 주심포 양식의 이출목 익공식이다.

 

매 바 위

 

 

 

무망루(無忘樓)

조선영조27년(1751)광주유수 이기진이 증축한 수어장대 2층의내편 문루로써 그편액이 2층누각에있어

1989년 전각을 건립하고 이안에 현판을 새로 설치 일반인이 볼수 있게 하였다 무앙루는 병자호란 때

인조가 격은 시련과 8년간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잡혀 갇다가 귀국후 북벌을 꾀하다 승하한 효종의

원한을 잊지말자는 �에서 영조가 이름 지은 것이다.

 

병암(屛岩)

 

 

 

                                          서문(右翼門)

 

 

 

 

승열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호

 

 

 

 

 

승열전

 

 

 

 

 

영월정(迎月亭)

 

 

 

 

 

 

                                            동문(左翼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