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성자료실/칼럼

마성 2020. 5. 28. 13:27

마성 스님의 법담법화

 

25.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의 차이

 

빨리어 삽뿌리사(sappurisa)는 착한 사람(善人), 바른 사람(正士) 등으로 번역되고, 그 반대말인 아삽뿌리사(asappurisa)는 나쁜 사람(不善人), 바르지 못한 사람(不正士) 등으로 번역된다. 이 세상에는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은 어떻게 다른가? ‘쭐라뿐나마 숫따(Cūḷapuṇṇama-sutta)’(MN110)에서 붓다는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의 차이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했다.

 

비구들이여, 나쁜 사람은 바르지 못한 성품을 가졌고(非法具足), 나쁜 사람과 교제하고, 나쁜 사람의 생각으로 생각하고, 나쁜 사람의 조언으로 조언하고, 나쁜 사람의 말로 말하고, 나쁜 사람의 행위로 행동하고, 나쁜 사람의 견해를 가지고, 나쁜 사람으로 보시를 한다. 비구들이여, 나쁜 사람은 어떤 바르지 못한 성품을 가졌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나쁜 사람은 믿음이 없고, 양심이 없고, 수치심이 없고, 배울 것이 없고, 게으르고, 알아차림을 놓아버리고, 지혜가 없다. 비구들이여, 나쁜 사람은 이러한 바르지 못한 성품을 가졌다.”(MN..21)

 

이것은 나쁜 사람의 여덟 가지 특징을 나열한 것이다. 첫째, 나쁜 사람은 바르지 못한 성품을 가지고 있다. 바르지 못한 성품이란 악한 성품(pāpa-dhamma)을 뜻한다. 둘째, 나쁜 사람은 나쁜 사람과 교제한다. 셋째, 나쁜 사람은 나쁜 사람의 생각으로 생각한다. 즉 자신을 해칠 생각을 하고 남을 해칠 생각을 하고 둘 다 해칠 생각을 한다. 해칠 생각이란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일 생각, 주지 않는 것을 가질 생각, 삿된 음행을 행하고자 하는 생각 등 열 가지 나쁜 행위(十不善業道)를 하고자 하는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다.

 

넷째, 나쁜 사람은 나쁜 사람의 조언으로 조언한다. 즉 자신을 해치는 조언을 하거나 남을 해치는 조언을 하거나 둘 다를 해치는 조언을 한다. 다섯째, 나쁜 사람은 나쁜 사람의 말로 말한다. 이른바 네 가지 나쁜 말, 즉 거짓말을 하고, 이간질을 하고, 욕설을 하고, 쓸데없는 잡담을 한다. 여섯째, 나쁜 사람은 나쁜 사람의 행위로 행동한다. 나쁜 사람의 행위란 몸으로 짓는 세 가지 행위, 즉 생명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고, 삿된 음행을 행하는 것이다.

 

일곱째, 나쁜 사람은 나쁜 사람의 견해를 가진다. 나쁜 사람의 견해란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결실도 없고 과보도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여덟째, 나쁜 사람은 나쁜 사람으로 보시한다. 나쁜 사람으로 보시한다는 것은 존중함이 없이 보시하고, 자기 손으로 직접 보시하지 않고, 성의 없이 보시하고, 내버리듯이 보시하고, 보시의 과보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견해로 보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나쁜 사람이 죽은 뒤 태어날 곳은 지옥이나 축생의 모태이다.

 

반대로 착한 사람의 특징에 대해 붓다는 다음과 같이 설했다. 비구들이여, 착한 사람은 훌륭한 성품을 가졌고(正法具足), 착한 사람과 교제하고, 착한 사람의 생각으로 생각하고, 착한 사람의 조언으로 조언하고, 착한 사람의 말로 말하고, 착한 사람의 행동으로 행동하고, 착한 사람의 견해를 가지고, 착한 사람으로 보시한다. 비구들이여, 착한 사람은 어떤 훌륭한 성품을 가졌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착한 사람은 믿음이 있고, 양심을 가졌고, 수치심을 가졌고, 많이 배웠고, 열심히 정진하고, 알아차림을 확립하였고, 지혜를 가졌다. 비구들이여, 착한 사람은 이러한 훌륭한 성품을 가졌다.”(MN..23)

 

이것은 착한 사람의 여덟 가지 특징을 나열한 것이다. 나쁜 사람의 특징과 완전히 정반대임을 알 수 있다. 그 중에서 나쁜 사람은 바르지 못한 성품을 가지고 있지만, 착한 사람은 훌륭한 성품을 가지고 있다. 또 나쁜 사람은 나쁜 사람의 견해를 가지고 있지만,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의 견해를 가지고 있다. 좋은 사람의 견해란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결실도 있고 과보도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또 앞에서 나쁜 사람은 나쁜 사람으로 보시한다고 했다. 반대로 착한 사람은 착한 사람으로 보시한다. 착한 사람은 착한 사람으로 보시한다는 것은 존중하면서 보시하고, 자기 손으로 직접 보시하고, 존경하면서 보시하고, 소중히 여기면서 보시하고, 보시의 과보가 돌아온다는 견해로 보시한다. 이러한 착한 사람이 죽은 뒤 태어날 곳은 위대한 천신과 위대한 인간이다.

 

이상은 쭐라뿐나마 숫따에서 붓다가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의 차이점에 대해 설한 것이다. 이 경에서 붓다가 굳이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명확히 구분해서 자세히 설한 까닭은 나쁜 사람도 비법(非法)을 버리고 정법(正法)을 구족하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왜냐하면 나쁜 사람의 성품과 좋은 사람의 성품이 처음부터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경험과 조건에 따라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는 가변적인 존재다. 또 이 세상에는 전적으로 나쁜 사람도 없고, 전적으로 착한 사람도 찾아보기 어렵다. 범부들은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의 속성을 동시에 갖고 있기 때문에 선과 악을 넘나든다. 어떤 때는 착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나쁜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일체의 삿된 생각과 나쁜 행위를 뿌리 채 뽑아버리고, 완전한 사람인 아라한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래서 붓다는 다른 여러 경에서 네 가지 바른 노력(四正勤, cattāro sammappadhāna)’을 닦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네 가지 바른 노력은 수행의 필수 요건이지만, 나쁜 사람을 착한 사람으로 바꾸어주는 묘약이라고 할 수 있다. 네 가지 바른 노력이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고, 이미 일어난 나쁘고 해로운 법을 제거하고자 하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유익한 법들은 일어나도록 하고, 이미 일어난 유익한 법들을 더욱 증장시키고자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정진을 통해 범부에서 성자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모름지기 불교도라면 나쁜 사람이 갖고 있는 바르지 못한 성품을 버리고, 좋은 사람이 갖고 있는 훌륭한 성품으로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그 밖의 다른 일들은 별로 가치가 없다.

마성/ 팔리문헌연구소장

― ≪법보신문1538, 2020520일자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