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답사/경북

김진석 2017. 1. 5. 14:21

망양해수욕장에서 일출을 보고나서 울진답사!


울진봉평비전시관-망양정으로 이어지는 답사였다!

울진봉평비박물관!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문을 열지 않았다ㅜ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ㅜ 1988년 1월 죽변면 봉평 2리 118번지 논에서 객토를 하기 위해 채토작업을 하던 중 노출되어 석비임이 확인되었다. 오랜 동안 땅속에 묻혀 있었던 까닭으로 비문의 일부가 마멸되어 정확한 판독이 어려우나 신라 법흥왕11년(524)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당시 신라가 영토확장으로 동해안 지역에 실직주(悉直州)를 설치하고 이곳 거벌모라(居伐牟羅:봉평)지역을 새로 편입함에 다라 주민들의 신라 부속반대를 위한 항쟁사태가 일어나자 신라가 이를 응징하기 위해 육부회의(六部會議)를 열고 대인(大人)을 파견하여 벌을 주고, 다시 대항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편 및 신라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 비를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비는 사각장방형의 자연석 화강암에 한 면을 다듬어 비문을 새겼는데, 규모는 작지만 형태는 고구려 장수왕 2년(414)에 세운 광개토대왕비와 유사한 고구려계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비문은 예서풍의 10행 398자로 이루어져 있다. 완벽한 판독문이 제시되어 있지는 않으나 당시 신라가 동해안 지역에까지 영토를 확장하였으며 노인법, 장형(장형)의 기술로 볼 때 법흥왕이 율령을 반포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과 부합된다. 또한 신라 육부(六部)의 언구가 있는 점으로 보아 육부회의가 이 때에도 행해졌음을 알 수 있고, 법흥왕을 매금왕(寐錦王)이라 했으며 각 부의 여러 신료들과 함께 명령을 내려 당시 신라 왕권의 한계를 보여주기도 한다.이 비는 당시의 신라영토, 율령체제, 왕권의 한계, 관료제도 등을 알 수 있는 자료로 가치가 크다.

봉평비박물관 뒤에 있는 비석들. 비석의 위치를 우리나라 지역 위치에 맞춰 설계하였다. 물론 비석들은 모조이지만 비석들이 우리나라 어디에 위치에 있는지는 알수 있다!

망양정! 관동8경의 하나로 현종산 기슭에 있던 것을 철종 11년(1860년)에 지금 위치로 옮겨둔 것이라 한다. 정자는 무성한 송림에 둘러싸여 있으며, 언덕 아래로는 동해안의 망망대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예로부터 해돋이와 달 구경 명소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숙종대왕이 관동팔경의 그림을 본 후 망양정이 가장 아름답다 여겨 친히 ‘관동제일루’라는 글씨를 적어 현판으로 걸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정철의 관동별곡, 정조의 어제시가 전해지고 있으며, 그림으로는 정선의 백납병, 관동명승첩에 있는 망양정도가 유명하다.

망양해수욕장! 망양정 밑에 있는 해수욕장! 특이하게 큰 돌들이 파도들을 거세게 맞고 있다! 저 돌들도 언젠가 풍화가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