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공간(隨筆空間)·칼럼

김대근 2013. 1. 1. 12:10

식언食言

 

다시 돌아온 食言의 계절이다. 선거가 있을때마다 이러저러한 公約을 내걸어 표를 꾀었다가 선거가 끝나면 空約으로 변질시켜온 것이 어언 50년이다. 대의민주주의에서 선거란 결국 후보의 公約을 보고 찍는 것이다. 그러나 합리적 성향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는 나를 대신해서 어떤 일을 이루어지는 것보다는 인물이 좋다거나, 학벌이 좋다거나, 지역이 어떻다거나, 성씨가 무어라거나 같은 비정량적인 부분이 표심에 크게 작용하게 된다. 더 심한 것은 TV토론에서 왕창 깨지는 후보에게 불쌍해서, 안 되어 보여서 표를 찍었다는 세대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세대가 문제가 있는가 하면 그런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들이 배우고 지녀온 관습과 정서가 그러한 것을 어쩌랴 싶다. 아마도 이번 선거에서 고배를 마신 야당측 후보는 그점을 간과했으리라....

 

명심보감 24 염의편(廉薏篇) 제 3장에는 王不可食言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지도자의 말은 곧 公言이 되며 어떤 일이 있더라도 지켜야 된다. 고구려의 평원왕의 딸 평강공주는 어려서 울고 떼를 많이 썼다. 그때마다 평원왕은 "자꾸 울고 떼쓰면 바보온달에게 시집보내겠노라"고 자주 이야기 했다. 평강공주가 16세 되던 해 상부 고씨에게 시집 보내려하자 왕은 거짓말을 해서는 아니된다며 바보온달에게 시집가겠다고 하여 마침내 온달의 아내가 되었다. 그 온달이 나중에 고구려의 동량(棟梁)이 되었음은 익히 아는 바이다.

 

食言과 관련한 또 하나의 故事는 조조의 상투 이야기다. 때가 전국시대이다보니 군의 행렬이 지나는 곳마다 농민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군량이 부족하던 시대라 현지조달이 관례화 되었던 때라 피폐한 농민의 삶은 더욱 나락에 빠져 허덕대고 있었다. 정치인 조조는 농민의 마음을 사기위해 농민에게 피해를 주는 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참수를 하겠다는 군령(軍令)을 내렸다. 그런데 어느날 조조가 탄 말이 숲에서 날아오른 꿩에 놀라서 보리밭에 뛰어들어 보리밭을 짓밟아 버렸다. 조조는 자신이 내뱉은 말을 食言할 수도 없고, 자신의 목을칠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에 봉착하고 말았다. 조조는 자신이 아끼던 말의 목을 치고 자신의 상투를 잘라 公約의 지엄함을 보였다. 당시 중국의 풍습으로 상투는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점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조선말, 단발령이 내리자 상투를 지키기위해 자진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던 것과 같다.

 

선거는 끝났다. 이번 대선이 극명하게 세대간 대립의 골을 깊게 했다. 은퇴세대가 생산세대의 미래를 결정했다는 자조섞인 비판도 있었다. 찬성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반대하는 48%의 마음을 보듬는 일이 이긴 측의 숙제로 남겨졌다. 선거에 패배한 이들의 가슴에 남운 생채기에 가장 좋은 치료제는 公約이 空約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에게 채찍을 휘두르는 일일 것이다.

 

일전 뉴스는 일부 의원들이 추진해왔던 부자증세를 박근혜 당선인측의 반대로 상정도 못했다고 한다. 박 당선인측 인사는 공약실천을 위해 어마어마한 금액의 공채(公債)를 발행하겠다고 해 물의를 일으켰다가 철회를 했다. 결국 올해 예산에서 국방예산을 깎아먹었다. 군이 노래를 불렀던 대양해군도 물건너 간 셈이다. 그야말로 윗돌을 빼서 아랫돌로 고이는, 눈 감고 아웅이다. '평생 맞춤형 복지'를 주장해온 박 당선인의 행보에 비추어보면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신년 벽두부터 公約은 속이 비어가고 있는 중이다.